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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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광해였다 - 7

DUMMY

크지도 작지도 않은 김류의 집.

김류의 어머니와 아내가 늦은 식사를 광해 앞에 대령했다.

시장이 반찬이라서 맛있게 먹었다.

물론 먹으면서도 앞으로의 전략을 세우는 걸 멈추지 않았던 두 사람.

그러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바닥에서 널브러졌다.


“음······.”


둘 중 먼저 아침을 맞이한 사람은 광해였다.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얼핏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게 누구요? 영감! 영감!”


작은 소리도 아니었고, 감격에 겨운 울부짖음이었다.

광해는 얼른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서 코를 골고 자는 김류를 깨웠다.


“잠깐, 일어나 봐. 누가 온 거 같아.”

“음······.”


간신히 김류가 눈을 뜨는데, 이번에는 바깥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마누라. 허허허. 집안 꼴이······. 나 때문에······.”

“어? 아버지가?”


자나 깨나 걱정하던 아버지 김여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류가 벌떡 일어나서 버선발로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

“류, 이놈아. 허허허, 그래, 이 아비가 왔다. 이 아비가 왔어!”


뒤따라 나온 광해의 얼굴에 웃음이 맺혔다. 가족들이 부둥켜안고 감격스러운 해후를 맞이하는데, 흐뭇하게 지켜볼 수밖에.

그러다가 정신을 차린 김류가 아버지에게 고한다.


“실은 여기 계신 저하께서 아버님이 풀려나실 수 있도록, 힘을 써주셨습니다!”


이제야 김여물은 광해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는 황망하다는 듯, 털썩 엎드리며 외쳤다.


“저하, 망극하나이다!”


그걸 보고, 광해가 얼른 그를 일으켰다.


“이러지 마시오.”


조선에서 옥살이한다는 것. 단번에 몸이 망가지는 일이었다. 다행히 김여물은 그렇게 몰골이 상해 보이지 않았다.


“경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때문에 투옥된 게 아니오? 하여, 늘 노심초사했소.”

“저, 저하······.”


지난해 세자 책봉 문제를 정철이 거론했다가, 서인은 된서리를 맞았다. 정철과 특히 친했던 김여물은 모진 고초도 겪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어찌 미안한 마음이 없겠는가.

그러나.


“피차 할 말이 많겠지만, 일단은 좀 휴식을 취하셔야 하오. 자세한 내용은 류에게 들으시고, 우리는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광해는 여기서 말을 줄였다.


‘이일과 함께 상주로 가라고 전해 들었겠지?’


하면, 서둘러 자리를 피해줘야, 김여물이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으리라.


“저, 저하······.”


눈가가 촉촉해지는 김여물을 보자, 광해는 또 한 번 웃는다.


‘이번에는 일찍 죽지 마오.’


동시에 김류에게 시선을 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잘해야 한다.’


김류도 광해의 눈빛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삶에는 아버지를 절대 죽게 하지 않겠다.

그런 의지가 읽혔기에, 광해는 안심하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 *


집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자가께서는 어명을 받드시오!”


도승지 이항복이 왕자를 부르는 공식적인 호칭 ‘자가’를 입에 담았다. 그리고 직접 임금의 교지를 읽었다. 세자 책봉을 위해 즉시 입궐하라는 내용이었다.


“자가, 감축드리옵니다!”

“저, 저하, 가, 감축드리옵니다!”


다 읽고 나서, 축하 인사를 건네는 이항복, 그리고 바로 곁에서 말을 더듬는 부인 류씨.

이 자리에서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은 유일한 이는 광해뿐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예상보다 더 빨리 세자로 올라섰지만,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새삼,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일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입궐을 준비하는 동안, 기발을 통해 심각한 내용이 전해졌으니.

적이 양산성 앞까지 나타났단다.


‘거긴, 이미 함락되었을 것이고, 다음은 언양 성이겠구나.’


입궐하자마자 찾아뵌 임금도 광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빨라도 너무 빠르구나······.”


왕을 보면서 생각했다. 과연 일본의 진격 속도가 느렸다면, 자신을 세자로 책봉할 마음을 먹었을까?

광해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왜란은 나에게 기회였다.’


겁 많은 위인, 이연. 이번에 임명한 체찰사 류성룡에게 전쟁을 맡기고 혼미한 정신을 부여잡기 바빴다.

쉽지 않았다. 특히나 장계 내용에는 점차 적의 위용이 상세하게 묘사되었기에, 점점 공포감이 밀려왔다.


“양산성의 군사와 백성들이 새장 속에 갇힌 새와 같단다. 이와 비교하면, 성 밖의 왜적은 땅을 뒤덮은 듯, 그 숫자가 수천, 수만에 이르고, 귀청을 때리는 신병에 아군의 사기는 계속하여 꺾이고 있다니, 이를 어찌할꼬······.”


어느 순간부터는 내용을 놓친 적도 많았다. 그러다 장계를 다 읽은 류성룡에게 묻고 또 물은 다음에 결심했다.

우선 세자를 책봉하리라. 그런 다음 어깨 위에 놓인 짐을 아들과 함께 나누리라.

마침 전날 도승지 이항복이 세자 책봉을 청했다.

곧바로 이연은 류성룡에게 뜻을 물어봤다. 그 역시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간언했다.

이연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대신을 소집해서, 속전속결로 결정해 버렸다.

여기까지가 광해가 이연 앞에 온 과정이었다.

더불어, 추가로 말하길.


“이틀 만에 양산성이라니? 적이 잘 싸우는 건지, 우리가 대응이 부족한 건지 모르겠구나.”

“전하······.”

“그래, 준비가 부족했던 거겠지. 좌상 역시 적이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말했는데, 뒤집으면 우리가 못 한 거라고 본다.”


입궐한 광해가 그래도 든든해 보였을까? 이연은 점점 이성을 되찾는다.


“다만 순변사로 임명한 이일이······, 출발조차 못 하고 있어 답답하구나. 좌상한테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마땅히 데려가야 할 군관과 병사를 가려 뽑기가 어렵다고 말했단다. 하여, 김여물 등 옥에 갇힌 이 중에 병략에 밝은 이를 사면하긴 했는데······.”


광해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봤다. 아버지와 길게 말을 섞어본 일이 극히 드물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울러,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한 적도 없었다.

그만큼 심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 급기야, 이연은 속에 품고 있던 ‘금기어’까지 입에 올렸으니.


“어쩌면 파천까지도 염두에 둬야 하느니라. 세자는 그런 줄 알고, 급한 상황이 발생할 시, 절대 과인 곁에서 떠나지 말라.”


광해는 즉시 고개를 조아리고, 그러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었다.


‘파천이라니요. 이번에는 절대 거기까지 안 가도록 하겠습니다.’


왕을 위해서가 아니다. 조선의 미래를 위해서다.


* * *


세자 책봉식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약식으로 진행하였다. 이게 미안한지, 임금은 광해에게 몇 번이나 따뜻한 말을 건넸다.


“전란이 끝나면, 내 다시 제대로 해주마.”


물론 속지 말아야 한다.

분명, 이때는 진심이었겠지만, 이연은 겁이 많은 만큼 질투심도 많았다. 언젠가는 그 마음으로 세자를 견제하고 경계하리라.


‘그 전에 내가 병권을 잡겠다.’


그 시작이 책봉식 다음 날이었다. 광해는 류성룡을 따로 만났다.

아무리 왕자에서 세자로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도, 이렇게 정치적인 행보를 취해서는 안 된다.

한데, 그사이 왜적은 양산성이 함락시키고, 언양 성까지 짓쳐 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류성룡이 보기에, 광해는 이번 전란에서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 그랬기에 비변사에서 순순히 광해를 맞이했다.

문제는 만나자마자, 광해가 엄청난 말을 쏟아냈다는 것.


“아마 지금쯤 적은 경주성 앞까지 당도했을 것이오.”

“경주성······, 말씀이옵니까?”

“그렇소이다.”


이는 언양 성은 물론이요, 주변 성까지 모두 함락되었다는 뜻. 사실 광해라고 어찌 이걸 다 알 수 있겠는가.


‘김류, 네가 더 잘 알겠지.’


광해는 이틀 전에 김류의 집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밀리터리 덕후인 그는 날짜별로 어느 곳이 일본에 점령되었는지까지 줄줄 읊었다.

심지어 앞으로 왜군의 진격로까지 상세히 설명했다.


“장계를 꼼꼼하게 읽어봤더니, 적은 크게 3군으로 나뉘어서 올라오고 있는 것 같소이다. 하여, 순변사 이일이 상주에서 1군을 맞이하게 될 것이요.”

“그, 그렇사옵니까?”


류성룡은 말을 더듬었다.

세자가 장계를 꼼꼼히 읽어봤다? 그리고 적이 세 곳으로 나뉘어서 올라오고 있다?

류성룡 역시 몇 번이나 살핀 장계였다. 도대체 어는 부분에 그런 내용이 있단 말인가?


“2군은 언양을 기점으로 울산과 영전, 나아가 충주를 진격 방향으로 잡은 듯하오. 마지막으로 3군은 김해와 추풍령을 거쳐 올 심산인 듯하니, 내, 미리 광주의 류 목사에게 길목을 막아야 한다고 연통했소이다.”

“······!”


광주의 류 목사란, 광해의 장인 류자신을 일컫는 말이었다. 벌써 거기까지 손을 썼다?

류성룡은 광해의 과감한 언행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류자신은 광주 목사다.

지금까지의 관례에 따른다면, 사위를 보좌하라는 명분으로 한양으로 불려 올라와야 정상.


‘지금은 아니다.’


광해는 현시점에서 그가 길목을 막는 것이 더 먼저라고 판단했다.

장인은 몇 년 전 정여립의 난을 진압한 인물. 그 과정에서 군 편제를 직접 경험했다.


“내, 좌상께 여쭙지 않고 먼저 연통한 건, 상황이 매우 급했기 때문이오.”

“네······.”


류성룡은 전란 전체를 살펴보라고 임명된 체찰사다. 아무리 세자라도, 그를 뛰어넘어서는 안 되는 일. 그렇지만 류성룡은 그래서 광해의 진심이 느껴졌다.


‘이분이 진정 전쟁을 막고 싶어 하시는구나······.’


원래 세자가 책봉되면, 외척 중심으로 권력의 구심점 또한 서서히 조성될 수밖에 없다. 즉, 세자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나중에 왕의 장인이 될 사람의 주변에 파리가 꼬이는 법이다.

왕세자 또한 믿을만한 사람을 주변에 두길 원한다. 그래야 편이 생기고, 편이 많아야 힘도 생긴다. 그중 장인이나 처남들만큼 신뢰할 만한 인물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도 광해는 주변을 채울 사람들을 전장으로 보낼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잘못하면 사지가 될지도 모르는 곳으로 말이다.

류성룡은 속으로 탄복한 후, 세자에게 물었다.


“한데, 길목이라 하심은 어딜 말씀하시는 겁니까?”

“질문 잘하셨소. 잠깐 이것 좀 보시오.”


광해가 옳다구나 생각하고, 가져온 백후지(白厚紙 : 조정에서 쓰는 상급 종이)를 꺼냈다.

이 종이에는 조선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류성룡이 살펴보니, 파란색의 주요 도시에 빨간색으로 적의 진격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가 아까 말씀드린 적의 1군이요. 최근 함락된 곳들은 죄다 1군만의 힘이었다고 봐도 무방하오.”

“음······.”

“아마, 1군은 곧바로 들어온 2군과 힘을 합쳐서 언양까지 빠르게 진격했을 것이오. 이후, 갈라져서 올라오겠지만, 차후에 문경에서 만나지 않을까 생각하오. 단,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이 순변사가 상주에서 1군을 잘만 막아준다면, 왜적의 2군을 문경에서 막을 수도 있소이다.”


광해의 설명에 류성룡이 잠시 왜적이 되어보았다. 점입가경이었다. 지금 들은 진격로가 최단 거리였기 때문.

속으로 또 한 번 감탄하는데, 세자가 곧바로 다음 말을 쏟아낸다.


“여기 3군은 창원, 창녕, 거창, 그리고 김천으로 향할 거요. 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장인이 빠르게 병력을 모아서 출격한다면 옥천이나 청주 사이에서 적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오. 특히, 여기 보은의 삼년산성은 삼국 시대 이후 단 한 번도 점령된 곳이 없는 난공불락이니, 장인께 이쪽으로 가서 수성하라 일렀소.”


삼년산성이라. 류성룡 또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세자 말대로 삼국 시대 이후 한 번을 제외하고 수성전에서 패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육조를 두루 거친 류성룡도 겨우 귀동냥으로 들었던 곳까지 광해가 파악했다?


‘세자께서는 도대체 나를 얼마나 더 놀라게 할 작정이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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