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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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갈량 - 2

DUMMY

임진왜란 발발 9일 차인 4월 20일.

이일의 백여 명 병력이 상주에 도착했다.

원래의 역사보다는 훨씬 일렀으나, 김류의 예상보다는 다소 지체됐다.

그게 아쉬워, 김류는 입맛을 다신다.


‘중간에 비가 오지만 않았어도 하루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준비가 안 된 병력일수록, 시간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이일도 견훤산성에 모인 병력을 파악하자마자, 훈련에 들어간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막상 훈련을 시키자, 이일은 끊임없이 탄식을 흘려냈다.


“이런, 내가 직접 훈련까지 시켜야 해?”


그 말을 들었을까? 한 병졸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장군님, 그래도 다행이십니다. 적어도 저희는 칼을 거꾸로 들지는 않으니까요.”


이건 뭐, 군기도 엉망이라서, 오합지졸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까울 정도다.

맥이 빠져서 훈련을 시키기도 싫었다.

그렇지만 누구한테 맡기겠는가.


‘제기랄.’


조선은 철저한 문치주의였다. 그래서 이일과 같은 장수는 대부분 북방을 지키고 있었다.

그나마 아래쪽에서 전투를 경험한 장수 하나가 있었다.


“밀양 부사 박진입니다.”


박진이 옆에서 도왔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온 병력은 실전을 겪어서 그런지 말도 잘 먹혔다.


“죽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잘 준비해야 해.”

“맞아. 그 잔인한 놈들이 귀를 자르고 코를 베기까지 한단 말이지.”


함께 데려온 군관과 병사들도 영향을 받았던 것은 물론이다.

사실 수군대는 내용을 듣자니, 이일도 궁금했다.

하여, 이날 훈련이 끝나자마자, 박진에게 왜군의 전력을 물어보았다.

박진이 답하길.


“멀리서 들으면 콩 볶는 소리지만, 가까이에서는 우레와 같은 조총 소리에 그만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조총이군. 그래, 적병의 수는 얼마나 되는 것 같소?”

“소관이 추정하건대, 보급까지 합쳐서 대략 십만은 넘을 듯싶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밀양에서 밀린 후, 여기저기서 패잔병들을 모아왔습니다. 일시를 보니,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성을 친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대충 헤아려 봤는데, 적게 잡아도 십만일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견훤산성에 모인 천오백 병력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동시에 오는 동안 김류가 줄기차게 외쳐온 말이 떠오른다.


- 제가 장담하는데, 왜적은 십오만 이상이옵니다.


‘그 녀석 말이 틀리지 않았단 말인가.’


따로 훈련에서 열외를 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과장한 줄 알았다. 이유는 소수로서 다수를 치기 위해서 비격진천뢰를 활용할 방법을 찾겠단다.


‘비격진천뢰라······.’


기껏해야, 스무 개 가져온 포탄. 과연 그것으로 왜적을 막아낼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으나, 김류는 시키지 않아도 할 일을 척척 해냈다.


“조선의 땅이 외침을 당하였소! 하루가 멀다고 백성이 죽어 나가고 있소! 하여, 상감과 세자께서 노심초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소! 심지어 세자께서는 상감께 청하여 직접 군을 이끌고 남하하기로 하였소! 또한, 세자께서 목 놓아 말씀하시었소! 조선의 의로운 자들이여, 함께 백성과 강산을 구하자! 이 땅을 밟은 왜적을 절대 살려서 돌려보내지 말지어다!”


환갑에 가까운 이일의 피도 끓는데, 저 말을 들은 상주의 유생들과 백성들은 어떻겠는가.


“그대들의 충심을! 조선 천하에 보여주시오! 다른 건 필요 없소!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지키고, 부모와 형제, 처자식을 지키고 싶은 자들은 나오시오!”


이렇게 김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곳. 남자들이 저마다 싸우겠다고 나섰다.


“내가 가리다!”

“나도 가겠소!”

“나도 이 나라와 백성, 부모 형제를 지키겠소!”


조선 팔도에서 사람 많기로 다섯 손가락에 꼽는 곳이 상주였다. 이 때문에 삽시간에 수백 명이 모일 수 있었다.

단,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장군! 상주 성 말고, 견훤산성에서 적을 맞이해야 하옵니다!”


김류란 놈이 자꾸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뭐라고 할라치면, 김여물도 김류의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장군, 제 자식놈이 혈기만 앞세워서,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하나, 상주 성은 높이가 너무 낮고, 적은 병력으로 큰 병력을 막기 까다로운 것 같소이다. 반면, 견훤산성은 높이도 높이요, 성이 작아서 소수로 다수를 막는 데 수월한 듯 보이오. 바꿔 말하면, 성 자체도 상대가 매우 공략하기 어렵소이다.”


솔직히 옳은 말이었다. 이일 자신이 보기에도 상주 성보다 견훤산성이 방어하기 편했으니.

그렇지만 장군 체면상, 한마디 정도는 해야 했다.


“그 말씀이 옳다고는 하지만, 견훤산성은 뒤가 없소. 자칫, 왜적에게 함락이라도 당하면, 모두가 성에 뼈를 묻어야 할 것이오.”


이는 자신의 목숨이 소중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물론 생존 욕구가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젊은 인재들이 여기서 다 희생당한다는 게 아까웠다.

그때, 박진까지 돕고 나섰다.


“장군, 저는 밀양에서 왜적을 상대해 봤고, 다른 성도 함락된 과정을 들었사옵니다. 그 결과, 놈들은 조총 부대를 활용하여 정면에서 주의를 끈 뒤에 좌우 측면과 후면에서 전 병력이 동시에 들이치더이다. 해서, 상주 성은 그렇게 공략하기에 딱 적합한 곳이지만, 견훤산성은 정면만 막으면 되옵니다.”


상주에서 분연히 일어난 의병장 김준신과 김일 또한 한마디 거들었다.


“다른 건 모르지만, 상주 성보다 견훤산성에서 대군을 막기가 더 쉬운 것 같습니다.”

“지금은 파죽지세로 북상하는 왜적의 발을 늦추는 게 먼저 아니오? 그러다가 상감과 세자께서 원군을 보낼 테니, 그때 적을 무찌르는 게 나을 성싶소이다.”


결국, 이일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그럼, 견훤산성을 병참기지로 삼겠소.”


대신, 성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부하 장수에게 명하길.


“무기와 식량 등을 모두 성안으로 옮기고, 상주 성 모든 우물에 돌을 넣어 메우시오!”


이른바 적의 보급을 끊는 청야 전술.

이것까지 모두 끝내자, 이틀이 훌쩍 지나 4월 21일이 되었다.

이때부터 견훤산성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김류의 눈에 보이는 타이머.


02:22:49:38


‘휴, 이거 살 떨리는구나.’


남은 시간 안에 과연 교전이 일어날까? 아니면, 역사가 바뀌면서 다른 변수가 생길까? 그건 모르겠지만, 이날 저녁 변수 아닌 변수가 생겨났다.


“어서 문을 열어 주십시오! 빨리 문을 여시오!”


조만간 왜적이 침입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밖에서 문을 열어달라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에 의해 견훤산성은 이일부터 말단 병사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누구냐?”

“개령에서 피란 왔소! 어서 문을 열어 줘요! 곧 왜놈들이 쳐들어올 것이오!”


사위가 어둠이 깔린 산성 바깥. 얼른 불을 밝혀서 보니, 조선 사람의 행색은 분명했다. 그래도 함부로 들일 수는 없었기에, 성 위의 문지기가 막 올라온 이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일 또한 아무나 들일 수 없었다. 이에 개령 사람이라는 자에게 몇 마디 더 물었다. 마침내 의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개령 사람이라는 게 확인되자, 문을 열어 주었는데.


“큰일 났습니다! 개미 떼처럼 어마어마한 숫자의 왜놈들이 지척에 있습니다!”

“지척이라면 어디를 말하는 것이냐?”

“김천입니다.”

“김천의 관군은? 혹시 패퇴했더냐?”

“아마도 그럴 것이옵니다. 관군과 왜놈들의 숫자가 상대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왜놈들이 백 곱절, 천 곱절이 더 많습니다.”

“네 이놈!”


이일은 당장 불호령을 내었다. 인제 보니, 과장이 심한 놈이었다. 아무리 현재 조선이 밀렸다고 해도, 김천 규모의 고을에서는 오백이나 천 정도는 병력을 모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백배와 천 배라니?


‘안 되겠다.’


경험만큼 무서운 게 없었다. 밀양 부사 박진이 데려온 병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직접 왜적을 겪은 그들. 상대의 강력함을 입에 올리기는 했으나, 반드시 싸워서 이기겠다는 의지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개령 놈은 아니었다. 본인의 경험을 과장하고 있었다. 아군 진영에 혼란과 공포라는 전염병을 퍼지게 할 수 있었다.

이일은 즉시 검을 뽑았다.


“네가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아이고, 나으리! 왜 이러십니까?”

“묻겠다! 정녕 왜적이 지척에 있느냐?”

“그, 그건······.”

“아마도 너는 아군과 적군이 싸우기 전부터 도망했을 것이다. 그걸 보고, 지레 겁을 먹었겠지. 내 말이 틀렸느냐?”

“마, 맞사옵니다!”

“또한, 개령부터 여기까지는 한나절쯤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빠르게 교전이 끝났어도, 너보다 반나절은 늦을 텐데, 뭐가 어째? 지척에 있다?”

“나, 나으리. 제, 제가 잘못했사옵니다! 살려주십시오!”


이일의 지적이 틀림이 없는지, 개령 사람이 즉시 엎드렸다. 그러고 나서 벌벌 떨며 살려달라고 말한다.

하나, 이일은 이번에 일벌백계하고 싶었다. 군의 기강을 위해서라도. 견훤산성에 모인 상주 백성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그때 김류가 나섰다.


“장군! 제가 가겠습니다!”

“뭐라?”

“제가 가서 살펴보고 오겠단 말씀입니다. 그리고 왜적이 어디까지 왔는지, 만약에 가까이서 발견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복귀할 것이요, 그래도 시간 여유가 좀 더 주어진다면, 백기를 들고 교섭해 보겠습니다.”


함께 올 때부터 느꼈지만, 김류 이놈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인간이었다. 기가 차서, 김여물에게 또 시선을 던졌다.

뜻밖에도 아버지는 아들을 말리지 않았다. 심지어 뭔가 큰 결심까지 한 얼굴로 김류의 말을 거들었다.


“장군, 한양을 떠나오면서, 소관과 아들놈은 조선과 금상, 그리고 세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자고 각오했소이다. 기왕 마음먹은 것, 뜻깊게 쓰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이에, 저 녀석을 정찰 겸 사신으로 보내주시오. 소관 또한 왜적이 들어오면, 가장 선봉에 나설 수 있도록 해주시고요.”

“허허허.”


이일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시종일관 김여물 김류 부자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감탄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었다. 그랬기에 중간중간에 의견 충돌이 있어도, 웬만하면 그들의 청을 들어주었던 것.

이번에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나 그들 부자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보는 종사관들과 병사들, 그리고 백성들의 시선을 읽고?

결국, 이일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정 그렇게 원한다면······, 그래. 김류, 부탁한다.”

“감사하옵니다.”


한데, 잠시 후에는 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김류는 적장에게 보여줄 서찰까지 원했던 것.


“정말인가? 정말 그렇게 적어달라고?”

“네, 그렇사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류가 원하는 내용을 믿을 수 없었다.


‘이건, 뭐······, 자결하겠다는 마음인 건가?’


그건 아닌 듯하다. 이일은 결의에 찬 얼굴이 아닌, 무덤덤한 김류의 눈빛을 보았다.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고개를 내저으며 글을 써나갔다.

단, 김류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서찰을 내주며 하는 말.


“김류, 명령이다. 부디, 꼭 살아 돌아오도록.”


진심을 담은 이일의 명령 아닌 명령에, 김류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왜놈들 말도 좀 할 줄 아는데요. 그 옛날 서희 장군이 거란 놈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호통을 쳐서 쫓아내고 오겠습니다. 하하하.”


일부러 허세를 내보이며 김류는 견훤산성을 나섰다.

하지만 어둠 속으로 말을 몰수록, 복잡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솔직히 겉으로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현대의 지식을 가진 그였지만, 지금은 16세기 조선의 한 청년일 뿐이었다.


‘이게 정말 현명한 선택일까?’


김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좋아, 김류. 넌 지금 조선의 운명을 바꾸러 가는 거야. 두려워하지 마. 넌 할 수 있어.’


결연한 마음으로 말에 채찍을 더 가한 김류. 그의 눈빛이 점점 더 결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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