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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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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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광해였다 - 5

DUMMY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던 김류는 곧바로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다음의 말을 꺼내기 위해서다.


“저하, 소신과 함께 가볼 곳이 있습니다.”

“······?”

“군기시입니다.”


군기시라면, 무기를 만드는 곳이었다. 불현듯, 광해는 김류가 진심으로 이번 전투에서 승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무기.


“설마, 비격진천뢰?”

“역시······, 저하께서는 명민하시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소신, 비격진천뢰를 좀 더 일찍 전쟁에 쓰고 싶사옵니다.”


듣자마자, 광해의 몸속에 흥분 세포가 날뛰기 시작한다. 원래 비격진천뢰는 군기시의 화포장 이장손이 개발했다.

왜란 중에 등장했는데, 도화선 방식의 시한폭탄이었다. 실상 게임체인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본 측의 기록에도 나와 있을 정도였다.

조선을 정벌하러 간 그들은 비격진천뢰를 처음 보자마자, ‘괴물체’로 표현했다.

우레와 같은 소리 이후 흩어진 파편에 맞아 죽은 자의 숫자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어차피 수개월 후에 나올 거였습니다. 하여, 화포장 이장손을 찾아가 원리만 말해줘도, 아니, 대충 그런 게 있다고만 알려줘도, 금세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지금 만들기 시작하면, 과연 견훤산성 방어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충분한 양을 만들 수 있느냐는 뜻이야?”

“저하, 지난 과거, 이일이 순변사로 뽑히고 나서 언제 한양을 떠났습니까? 자그마치 사흘을 머물렀습니다. 병략에 밝은 군관이나 용맹한 병사들이 하나도 없었으니,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서 긁어모아야 했죠.”

“그럴지도 몰라, 좌상께 보낸 서신에 서둘러달라고 당부했네.”

“그렇다면 선조가 그렇게 빨리 결심할까요? 아니, 조정의 대신들이 이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일까요? 탁상공론하느라, 시간을 다 보낼 거라고 제 손 하나를 걸겠습니다.”


회귀하고 나서, 김류는 망발을 일삼는다. 선조까지야, 임금이 죽은 후에 붙은 묘호라서 못 알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붙은 말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간다면?


“네가 정녕 경을 칠 말을 자꾸 하는구나.”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게 없지. 너는 현재 옥에 갇힌 죄인의 아들이야.”

“저하의 말씀 가슴에 깊이 새기겠사옵니다.”


영혼 없이 허리를 숙이는 김류를 보며, 광해는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하는 말.


“일단 군기시로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세.”


* * *


한편, 편전에서는 종일 대책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은 오랜 평화 속에서 전란을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국경을 노략질하던 오랑캐와 왜구만을 머릿속에 그렸을 뿐이다. 즉, 조선 땅을 점령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줄 예상한 자, 극소수에 불과했다.

임금도 그중 하나였다. 그래서 곧바로 분노하여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경상 우수사 김성일을 즉각 파직하라!”


일본에 다녀온 후,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고한 김성일. 추상같은 임금의 명에 신하들은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김성일과 친한 류성룡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나으리라.’


김성일을 위한 변호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그는 임금의 화가 누그러졌을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대신에 신료들이 분분한 의견을 내는 사이, 슬슬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전하, 왜적이 북상 중입니다. 이에 장수를 가려 뽑고, 군사를 징발하여, 서둘러 내려보내야 할 것입니다.”

“옳은 말이오. 그래, 누가 좋겠소?”

“조선 땅에서는 가장 용맹한 장군으로 신립과 이일이 있사옵니다. 둘 중 하나는 내려보내시고, 다른 하나는 전하 곁에 두시옵소서.”

“그렇게 하겠소. 어서 진행하시오.”


이럴 때는 임금이 주저하지 않았다. 난리가 났을 때, 그가 누구를 가장 의지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긴, 류성룡이 낸 방책에 따라, 아까 경상도에 먼저 기발을 보내지 않았는가.

의문이 없진 않았다. 상주라면 충청도에서 경상도를 건너자마자 있는 고을. 그래서 굳이 그렇게까지 후퇴해서, 적을 맞이해야 하냐고 반대 의견도 나올 정도였다.

대구가 낫다. 차라리 칠곡쯤이 더 괜찮지 않겠나? 이런 의견이 오간 것.

한데, 중간에 계속 전령의 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산 진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적이 동래성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래성이 위험하다고 하옵니다!”


기발은 시차가 있다. 말을 모는 자에 따라 더 빨리, 더 늦게 도착할 수 있었다.

고로, 왜군이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진격하고 있다는 건 겪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랬기에 류성룡이 주장하는 바에 따라 각 군현의 지방관에게 전령을 보냈다. 상주로 병력을 모아서 사수하라고.

또한, 이순신에게 당장 출격 명령을 내려, 왜적의 후속 부대를 물리치라 전했다.

그다음으로는······.


“전하, 장수를 가려 뽑는 것보다는 전란 전체를 살펴보는 중신이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고로, 서둘러 체찰사를 임명해야 할 것이옵니다!”


드디어 대신들이 청을 올린다.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체찰사를 뽑아서 난을 수습하는 것은 조선의 오랜 관례.

신료들의 청에 임금은 또 그리하라 했다.

그런데 과연 누가 할 것인가? 임금은 여기서 잠시 휴식을 명했다. 단, 이를 진짜 쉬라는 뜻으로 알아듣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붕당 정치가 치열해지는 이 시점, 신료들이 알아서 정하게 하는 것이 임금의 내심이요, 꼼수 중 하나였다.

남은 대신들은 처음에 눈치만 봤다. 그러다가 삼정승에게 시선을 모았다. 누구나 안다. 그들의 합의에 따라 체찰사가 정해진다는 것을.


“휴······.”


그중 영의정 이산해가 한숨을 내쉬었다.

기축년에 벌어진 정여립의 난이 떠올라서다.

그때의 옥사로 인해,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섰다.

이산해는 남인의 좌장, 따라서 북인의 영수 류성룡을 견제해야 하건만.


“좌상 대감께서 맡아주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전란에 어찌 당을 갈라 생각한단 말인가. 다행히 우의정 이양원도 이산해의 말에 힘을 보탠다.


“네, 저도 주상께 그리 청을 올렸으면 합니다.”


류성룡은 따지고 생각할 틈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권의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지 한다. 그러나 지금은 몸을 보신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어차피 누군가 할 일이라면, 차라리 제가 그 짐을 지겠소이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편전에 들어온 임금이 류성룡을 체찰사로 임명했고.


“이일 장군을 순변사로, 성웅길을 좌장 어사로, 조경을 우방 어사로 하여, 각각 중로, 좌도, 서로를 통해 상주로 내려보내겠습니다. 또한······.”


종일 생각했던 대책을 막힘없이 입 밖으로 쏟아냈다.

임금과 대신들은 모두 류성룡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종일 굶었던 류성룡이었다.

다른 신료들과 함께 간단히 배라도 채울 요량으로 밖으로 나왔다.


‘당분간 퇴청하긴 글렀구나.’


이를 위해, 사람을 보내서 집안에 미리 알렸다. 궐 안에서 먹고 자고 할 터이니, 준비를 좀 해달라고.

당연히 식사 후에 자신을 찾는 사람은 물건이 다 도착했다는 내용을 전달할 줄 알았는데······.


“광해군께서 나에게 서찰을?”

“그러하옵니다. 꼭 직접 전달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밌는 것은 본인을 병조 좌랑 강수남이라고 소개한 자였다.

곧이어 발견한 도승지 이항복에게도 또 하나의 서찰을 내밀었으니.


“제자분께서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라면?”

“그자가 자신을 김류라고 하였습니다.”


김류라면?


‘김여물의 아들이 아닌가?’


류성룡은 머릿속을 뒤져서 지난해 유배 간 정철을 떠올렸다.

광해를 세자로 서둘러 책봉해야 한다고 읍소한 뒤, 그는 봉변을 맞았다.

함께 당한 이가 또 김여물이란 자였다. 지금 옥에 갇혀있는······.


‘사실 김여물이 병략을 꽤 잘 아는 사람인데 말이야.’


류성룡은 동인뿐만 아니라 서인도 편견 없이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서인인 김여물과도 교분을 쌓았다.

또한, 광해의 서찰을 읽은 후, 이항복에게도 편하게 말을 걸 수 있었다.


“김류라면, 김여물의 자식이 아니오?”

“내 제자이기도 합니다. 근데 이 녀석이 간밤에 여자를 진하게 품었나? 헛소리를 너무 심하게 하는군요.”


가끔 장난과 농이 지나치다고 비난까지 받는 이항복.

류성룡은 그의 해학을 좋아한다.

특히나 지금처럼 무거운 분위기에서는 이항복의 가벼운 말이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허허허, 뭐라고 적었기에 그러십니까?”

“이일 장군과 함께 상주로 내려가겠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제자 놈이 아무래도 접신을 한 모양입니다. 귀신이 아니고서야, 궐 안에서 방금 논의한 일을 이놈이 알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항복은 늘 귀신을 잘 팔아먹었다.

지금도 말도 안 되는 농을 던졌다.

실은 아끼는 제자 김류를 변호하기 위해서다.


‘이 녀석이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좀 전에 편전에서 류성룡이 세운 대책. 이일이 군사를 징발하여 상주로 보낸다는 계획은 극비 중 극비였다.

그런데 제자 놈의 서찰에는 경천동지할 말이 적혀있었다.


<스승님, 상주의 견훤산성은 좁은 서문 출입구와 절벽을 끼고 세운 남, 북, 동쪽 성문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농성한다면, 능히 적은 숫자로 왜의 대군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일 장군은 분명 출격을 고민할 터, 옆에서 그를 반드시 일깨워 필패를 면해야 하옵니다. 하여, 제자는 이일 장군 옆에서 종사하기를 청하오니······>


이항복은 이일의 인물됨까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하나, 보신주의가 뚜렷하고, 그래서 예전에 이순신을 모함한 것은 귀띔으로 들었다.

여진과 전투에서 공이 있었기에 모른 척 넘어갔으나, 제자가 서찰에 이토록 부정적으로 언급할 줄은 몰랐다.

의문은 들었다. 적을 상대하기 위해 성문을 나와 출격하는 것이 어찌하여 필패란 말인가?


‘김류 이 녀석은 허언을 입에 담을 녀석이 아니다.’


제자 놈은 너무나 진지했다. 가끔 스승의 농을 지적하기까지 했다.

당연히 허튼소리가 아니라고 여겼기에, 류성룡에게 슬쩍 운을 띄운 것이었다.


“흠, 제자가 그런 말을 하오이까?”

“그렇사옵니다.”


다행히 류성룡은 내용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이항복이 반길만한 말을 꺼냈다.


“하긴, 이일 장군 곁에는 신중한 사람이 필요할 거요. 하나 김류는 모르겠고, 그의 아버지인 김여물이 어떻겠소?”

“허허, 좌상. 설마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 거요? 김여물은 지금 옥에 갇혔소이다.”

“알고 있소. 그리고 김여물이 병략을 잘 아는 사람인 것도요. 김류가 아마 자기 아버지를 닮은 듯하오. 해서, 도승지께 서찰로 종사관이 되겠다는 청을 올린 게 아니오.”

“종사관은 무슨, 제자 놈은 아직 멀었소이다. 융통성이 너무 없어서, 말을 마음속에 진득하니 품고 있질 못합니다. 그래서 이일 장군을 따라가면, 상주로 가기 전에 맞아 죽을 게 분명합니다.”

“허허허. 그럼, 김여물을 종사관으로 삼고, 함께 내려보내시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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