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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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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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광해였다 – 4

DUMMY

잠시 후, 이혼은 공원묘역에서 하차하여 약 10분쯤 걸어갔다. 가는 동안 속으로 얼마나 탄식했는지 모른다. 무덤으로 이어지는 어귀. 어렵사리 찾은 입구를 보니,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녹색 철사로 만든 담장이 처져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급기야 자물쇠로 달린 문 앞에 서 있자니, 참으로 처량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연산군보다 못한 왕이었나.’


조선 최고의 폭군 연산군마저도 서울로 옮겨져, 양지바른 곳에 묻혀있었다. 그러나 담장 넘어 보이는 광해군 부부의 묘지는 과연 해가 들까, 의문이 들 정도로 음습했다. 그야말로 악지 중 악지.

울적한 마음 가눌 길 없었을 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김류였다.


“여보세요?”

(이혼, 나 도착.)


이혼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남에서 안산까지 가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릴 텐데, 왜 이렇게 빨리 전화했을까?


“뭐? 아니, 이렇게 빨리?”

(택시 타고 왔어. 이제 어떻게 해야 해?)


김류의 질문에 이혼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실은 묘지에 도착하면 시간 여행이 시작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떠올린 또 하나의 가설.


“일단, 한 시간만 기다려 보자.”

(한 시간?)

“그래, 지금 두 시잖아. 어제 세 시에 발동했으니, 어쩌면 시간도 영향이 있을지 몰라.”

(뭐, 오케이. 알았어.)


대답이 어째 미심쩍은 뉘앙스였다. 솔직히 이혼 역시 확신이 없다. 그저 가설만 세웠을 뿐이다. 다만 이게 또 맞는다면 소득은 어마어마했다.


‘성공하면, 언제든지 다시 갈 수 있단 말이야. 같은 시각에, 각각 안산과 남양주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을 아는 것은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그냥 회귀하는 게 아니다. 현대에서 여러 전략을 세우고 접근할 수 있었다.

좀 더 비유한다면, 치트 키를 사용하면서 게임을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가설이 맞아떨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란 이혼.


‘시간, 왜 이렇게 안 가?’


느리게 가는 시간만 탓하고 있었다. 더구나 날도 추워서 한기가 슬슬 몸으로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담장 주변을 서성대면서 다시 여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뭔가 생각날 때마다 김류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가자마자 나는 류성룡에게 네 아버지를 이일과 함께 보내라고 할 거다.)

(진짜? 신립 장군이 아니라, 이일 장군과 우리 아버지라고?)

(그래. 신립과 함께 가면, 살 확률이 별로 없어.)

(아, 하긴. 그 사람 고집이 장난 아니지.)

(그냥 고집이 아니라 아집이지.)


초반 부산포와 동래, 그리고 밀양 등등이 빠르게 왜군에 점령당했을 때. 조정은 수습할 장수로 이일을 먼저 내려보냈다.

그다음이 신립이었다. 이때 함께한 종사관이 김류의 아버지 김여물이다. 그가 병략에 밝다는 걸 아는 류성룡이 신립의 곁에 붙인 것이다.

문제는 신립이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점. 천혜의 요새인 문경새재에서 방어하자는 김여물의 건의를 뭉개버렸으니. 최악은 탄금대에서 기마전으로 왜군의 조총 부대에 몰살당했단 것.


(이거, 잘하면, 상주에서 박진과 합류해 고니시를 막아낼지도 모르겠는데?)

(막긴 힘들고, 더 버티긴 하겠지. 워낙 전력 차이가 심해서 말이야.)

(아냐, 상주에는 견훤산성이 있어. 축조 방식이 보은의 삼년산성이랑 비슷하다고.)


이혼의 눈이 잠시 커졌다. 삼년산성이라니. 그곳은 난공불락의 요새로였다. 즉, 수성한 쪽은 패배를 몰랐다.

다만 광해군 때에도 직접 가본 적은 없었다. 당연히 축조 방식을 눈으로 확인하진 않았다.

따라서 삼년산성과 견훤산성이 비슷한 구조로 되었다는 것 역시 알 수 없었는데.


(거기가 왜 견훤산성이겠어? 견훤이 신라와 고려를 공격하고 방어하려고 쌓은 곳이거든. 즉, 두 곳 성이 다 삼국 시대에 비슷한 방식으로 축조되었단 말이지.)


김류는 꽤 잘 알았다. 혹시 과거의 기억이 되돌아와서 그런 걸까?


(나, 올해 초에 삼년산성 들렀다가, 내친김에 견훤산성 갔었거든? 삼년산성보다야, 조금 미흡하지만, 성문이 좁고 1선과 2선 방어선이 확실해.)

(아니, 직접 가봤다고, 그렇게 잘 알아?)

(내가 사실 밀덕이거든. 가끔 유투브로 이것저것 보다가 궁금하면 직접 가서 확인하기도 해. 어제도 그래서 안산에 있는 별망성지에 가다가 그 꿈을 꾼 거지.)


김류가 밀리터리 덕후였다니.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살짝 들었을 때, 그 지식이 상당해 보였다.


‘이거, 변수가 될 수도 있겠는데?’


그것도 긍정적으로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김류의 말이 이어졌다.


(그나저나 역시 박진이야. 원래 역사에서도 밀양에서 왜군을 잘 막았는데, 이번에도 살아남았어. 비록 패배했지만, 나중에 경주성도 탈환했고.)

(그야 군략을 잘 아는 무관 출신이니까.)

(네가 미리 류성룡을 통해 조언한 것도 신의 한 수였는데? 시간상 대구는 무리고, 차라리 상주가 낫겠다고 여겼을 테니.)

(그렇게 구체적으로 조언하진 않았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아무튼, 이제 이일이랑 힘을 합치면, 진짜 잘 막아낼 수도 있을 거 같아.)

(그거까진 몰랐지. 나는 그냥 버티다가 밀리면, 문경새재에서 또 한 번 제대로 막아보잔 생각을 했거든. 나중에는 신립을 한강 방어전에 쓰는 것도 나쁘지 않고.)

(오, 그것도 괜찮다. 이왕이면 비 오는 날에 맞춰서 기마대를 출격하는 것도 괜찮을 거고. 아닌가? 폭우가 쏟아지면, 조총 무대는 무력화되니까. 음, 차라리 유격전을 펼치는 게 더 나으려나?)


이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기만의 전략을 입 밖으로 꺼내는 김류를 떠올리며 웃음을 머금었다.


‘이 자식이 슬슬 각성하기 시작한 건가? 아니면, 밀덕이라서?’


뭐가 어쨌거나, 천만다행이었다. 역사를 바꾸는 것은 혼자보다 둘이 훨씬 더 낫다. 그런데 겁 많고 소심한 데다가, 무능한 김류는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안 되겠다. 내친김에 너랑 세시까지 전략‧전술을 좀 더 가다듬어야겠어.)

(나야 좋지. 전술‧전략 이야기라면, 무조건 대환영이야.)


이때부터 두 사람은 과거로 돌아간 뒤의 시나리오를 촘촘히 설계했다. 그러다가 슬슬 졸음이 쏟아지고······.


(이상하게 졸린다.)

(나도······.)


이혼과 김류는 드디어 두 번째 시간 여행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눈을 뜨자마자, 이혼은 가장 먼저 타이머를 인지할 수 있었다.


006 : 23 : 59 : 59


앞에 한 칸이 더 생겼다. 누가 봐도, 날짜였고······.


‘일주일?’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주어져서 마음이 가벼웠다. 그다음에 확인한 것 또한 그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여긴, 류성룡을 만난 곳이다.’


아마 현실의 시간이 지나갈 동안, 과거 시간이 멈춘다는 걸 증명하는 장면.

실제로 집에 돌아가니, 이혼의 처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아침도 안 드시고, 어딜 그렇게 다녀오시나이까?”

“좌상 대감을 뵙고 왔소.”

“좌상 말이옵니까? 어인 일로······?”

“아무래도 전란이 일어난 거 같소.”

“그게 무슨 말씀인지. 설마 여진 오랑캐가 쳐들어왔단 말씀인가요?”

“아니요. 왜구요.”

“아······.”


아내 류 씨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전란을 말해줬다.

그다음으로 광해는 재빨리 류성룡에게 보낼 서신을 적기 시작했다. 내용은 김류와 대화를 나누었던 것 중 김여물을 이일과 함께 상주로 보내라는 것.


‘직접 만나서 설득하면 더 좋으련만······.’


불가능하다. 전령이 계속해서 궁궐로 들어갈 것이다. 그들을 통해서 촉박한 상황을 계속 전달받을 테니, 퇴청은 요원하지 않을까?

그래서 적은 서찰이었다. 내친김에 광주 목사로 있는 장인 류자신에게 보낼 것을 적었다.

그리고는, 일어서는데······.


“아무리 급해도, 밥 한술은 뜨고 가시지······.”

“다녀와서 들겠소.”

“그러다가 몸 상하십니다.”

“괜찮소. 부인이나 몸조리 잘하시오.”


시간을 쪼개 쓰는 광해. 류씨 부인의 걱정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가득 찬 것은 전쟁 관련이다. 어떻게 하면, 이 전란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


‘그 녀석도······, 왔겠지?’


함께 온 김류가 제 몫을 해줄까? 이 또한 매우 궁금할 뿐이었다.


* * *


다시 육조 거리. 어둠이 슬슬 깔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퇴청을 미루는 관리로 인해서 각 관청은 밝았다. 광해는 그중 한 곳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어?”


실은 출입이 통제된 곳이라서, 아무리 왕자라도 막아야 하거늘······. 당황해서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이에 광해는 자신을 바라보는 불특정 다수에게 재빨리 말했다.


“현재 기발이 몇이나 있느냐?”


기발(騎撥)이란 말을 타고 공문을 전하는 관료를 뜻한다. 다들 하급 관리라서 우물쭈물. 이에 광해는 답답하기만 했다. 다행히 누군가 나왔는데······.


“저, 저하, 어인 일이시옵니까?”


깊숙하게 허리를 숙이기 전에 이미 광해는 그를 알아보았다. 병조정랑 강수남이었다.


‘아니, 지금은 좌랑인가?’


강수남은 왜란이 발생한 그해 10월 삭녕 전투에서 죽은 자였다. 죽은 후 충열공이란 시호를 받았기에 똑똑히 기억한다.


“강공이 입궐하여, 좌상 대감을 만나야겠소.”


광해의 지시를 들으면서, 강수남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저하께서 고작 정6품밖에 안 되는 좌랑 나부랭이를 알고 계신단 말인가?

국본이 정해지지 않은 현재. 그러나 언젠가 세자가 될 분이 광해라고 믿는 신료들이 대다수였다. 강수남도 그중 하나. 당연히 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좌상 대감 말씀이옵니까?”

“그렇소. 만나 뵙고, 이 서찰을 전해주시오.”


강수남은 떨리는 손으로 광해가 내민 서찰을 받았다. 동시에‧‧‧.


“아, 가장 빠른 기발 편에 이 마패와 서찰도 부탁하오. 나의 장인인 광주 목사에게 빠르게 전해야 할 것이오.”

“저하, 분부 받들겠습니다!”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누구시오?”

“어허, 막지 마오. 잠깐만 들어가겠소. 내, 급한 일이 있소이다.”


듣는 순간, 광해의 한쪽 입술이 위로 끌어올려진다.


‘너도, 왔구나.’


뒤를 돌아봤더니, 역시나 김류가 당도해 있었다.


“안 되오! 출입을 금하오!”

“급한 일이오!”

“안 된다니까!”

“어허, 잠깐만 들여보내 달라니까!”

“아니, 누구신데 이렇게 생떼를 쓰는 것이오?”


결국, 광해가 나서야 했다.


“들여보내도 좋소. 내 벗이오.”

“어? 네네.”


간신히 비변사에 들어온 김류. 광해를 발견하더니 눈을 찡긋했다.


‘뭐야, 이놈은······.’


본래, 조선의 김류는 저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대의 김류 성격이란 뜻인가? 아니, 찐따 김류라고도 보기 힘들었다.

그냥, 양 시대의 김류의 정체성이 마구잡이로 섞인 모양이다.

그 김류가 품속에서 서찰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강수남에게 불쑥 내밀며 하는 말.


“이거, 도승지 대감께 전해주시오.”

“아니······, 귀하는 누구신데······?”


아무리 광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강수남은 꼭 들어야겠다는 표정으로 김류에게 물었다.


“앗, 제가 소개를 잊었군요. 김류요. 도승지 대감의 제자입니다.”


조선 왕의 비서실장 격인 도승지. 현재는 이항복이 맡고 있었다. 그 이름을 들으니, 강수남의 표정이 겸연쩍어진다.


“어험, 처음부터 본인이 누군지 밝혔으면······.”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그나저나 저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강수남의 말을 자르다니, 다소 무례한 짓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시간을 다투는 일이란 뜻.

이를 눈치채고, 광해가 김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저하, 계속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제가 이일 장군과 함께 가야겠습니다.”


찐따 김류가 그 위험한 전장에 나서겠다? 놀랄 ‘노’ 자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김류는 조선의 김류와 잘 섞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첫 승을 기대해도 될까?”


광해는 부담과 기대를 한 번에 담아 물었다.

이 질문에 김류의 손이 오케이 사인을 그린다.


‘이놈, 무엄하기 짝이 없다.’


그 생각과 다르게, 광해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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