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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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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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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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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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파랑새가 울었다.

DUMMY

“잘 배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곧바로 복기가 이어졌다. 바둑돌을 한참 들어냈다. 이 판의 중후반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초점을 맞춰야 할 곳은 초중반이다.


‘이거 좀 이상했어.’


몇 수 수순을 따라가다 문제수였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멈추며 손가락을 하나를 까닥였다.


‘무슨 소리야. 눈이 썩었네.’


위아래로 출렁이던 손가락이 펼쳐진 손바닥에 가로막혔다. 곧 다음 수순 몇 개가 연이어 놓아졌다.


‘억지 부리지 말라고···’


점잖게 타일렀다. 놓아진 상대 돌 몇 개를 걷어내고 다른 응수를 몇 수 보여줬다. 이것이 말 그대로 수담(手談)이다.


“이런다고 흑이 더 나아질 건 없어. 차지한 실리 보다는 두터움이 더 커.”


억눌린 분노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손짓만으로는 터져 나오는 감정을 감당하기가 힘든가 보다.


“그 결과는 뒤 수순들이 증명했잖아. 형 생각이 잘못된 거야. 그 생각이 맞으려면 형이 이겼어야지.”


핏덩이들에게 형형 거려야 하는 게 싫어서 웬만하면 말을 아끼는데 상대가 먼저 선을 넘었다. 이럴 땐 무시가 답이 아니다. 할 말은 해야 한다.


‘우길 걸 우겨야지.’


“그건 그 뒤 수순이··· 하아!”


상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뒤? 어디에 문제가 있었다는 거야?”


바둑돌에서 손을 뗐다.


‘말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 증명이 될 수순을 보여 달라고.’


상대의 눈꼬리가 일그러졌다.


“이··· 이··· 익. 바보에게 더 이상 설명해 봐야 내 입만 아파.”


상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나가버렸다. 나보다 두어 살 많기는 하지만 아직 애다. 감정 자제를 잘 못한다.


“갈 때 가더라도 바둑돌 정리는 하고 가야지.”


이젠 들어줄 사람 없는 중얼거림이다.


‘쯧쯧. 성질머리 하고는···’


상대가 내팽개친 바둑돌까지 정리해야 하지만 별로 기분이 나쁘진 않다. 이겼으니까. 만약 졌는데 이런 꼴을 당했다면 많이 언짢았을 것 같다.


6승째다. 패는 8패. 정말 한판 이기기 오지게 힘들다. 이 판도 초반에 상대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면 진땀 좀 흘렸을 거다. 상대는 지금까지 10승을 한 강자였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쟤는 이제 4패가 되었네. 승급 때문에 이렇게 예민하게 군건가?’


그러고 보니 상대에게 이 판은 승급이 결정되는 판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올라서야 할 때 그러지 못하면 연패(連敗)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나이 때라서 기분이 한 번 삐끗하면 끝 모르고 성적이 하강곡선을 탄다.


‘에고고, 어디고 안 복잡한 곳이 없네. 내 코가 석잔데 남 걱정은···’


오늘 전적만 보면 난 1승1패. 반타작했다.


‘두 번째 달에 이 정도면··· 어휴! 앞날이 까마득하네.’


진짜 9조에서 이럴 줄은 몰랐다. 한동안은 그냥 위로 쭉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 5, 6조 까지는 무난할 줄 알았는데···’


이런 리그전이 거의 매달 1번씩 1년에 8번 있다. 같은 조 10명 중 3위 안에 들면 상위 조의 하위자 3명과 자리바꿈을 한다. 이게 승강급이다.


여기서 순위를 끌어올려 최소 2조 안에는 들어가야 한다. 그게 내 목표다. 아직 시간은 좀 있다. 이제 난 만 10세가 되었을 뿐이니까.


주말 토, 일 이틀에 걸쳐 하루에 두 판씩 둬야 한다. 그렇게 한 달 약 4주에서 5주 간 총 18국을 둔다. 이번 달에 남은 대국 수는 4판. 다음 주에 이번 기 대국은 끝난다. 남은 판에서 3승을 더 하면 내 총 전적은 9승 9패가 된다. 그 정도면 잔류할 정도는 된다. 2승 2패는 좀 위험하다.


‘총 전적 8승 10패면··· 하아! 안 돼. 벌써 뒤로 밀리면···’


바둑 실력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느는 것처럼 보여도 그건 긴 시간 동안의 노력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출발점에 선 거나 마찬가지인데 벌써 지치면 안 된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노력, 노오력 밖에 없어.’


서둘러 바둑판 정리를 마치고 일어섰다. 공부하자. 공부하러 가야 한다. 당장 다음 주에 3승이 필요하다.


“재영아! 이겼니?”


저쪽 테이블에서 누가 날듯이 달려와 말을 걸었다. 그쪽도 끝났나 보다


“응. 이번엔 억지로 이겼어. 형은?”


“잘 됐네. 나야 이 정도는 껌이지.”


진재국이다. 나보다 한 살 많은 12살. 말하자면 연구생 동기인 셈이다. 연구생 선발테스트에서 같이 선발되었다. 연구생이 될 기회는 생각보다 자주 있다. 리그전이 치러질 때마다 10조에서 강급 되는 3명의 자리가 신규가 들어가는 자리기 때문이다.


좀 웃기는 얘기지만 이 선발에도 말하자면 재수, 삼수가 있다. 연구생 탈락 이후에도 다시 도전하는 사례가 꽤 많다. 원칙적으로 만 15세 이하면 몇 번이고 상관없다.


그 선발 조건을 충족하는 인재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한 번에 연구생 되기도 쉽지 않고 유지하기 또한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여기나 저기나 고인물이 문제다. 그런데 나와 이 형은 단번에 그 관문을 뚫었다. 그런 아이가 동시에 둘이 있는 경우는 좀체 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모두가 서로 대충 아는 사이인데 우리 둘만 그렇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친해졌다.


사실 일방적인 구애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애들 별로 안 좋아하는 거 다들 알지 않나. 결코 내가 먼저 접근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하게 지내자고 먼저 살랑거리는 아이를 어떻게 외면하겠는가! 그래서 이곳에서는 어디든 대개 같이 다닌다. 그런데 얘가 좀 웃긴다. 어디서든 나한테 형 노릇을 하려고 한다.


‘웬만하면 다 양보하려고 해. 바둑만 빼고.’


9조 리그전에서 이 형에게 두 판 다 졌다.


‘10조 때는 1승 1패였는데··· 그 사이에 실력이 늘었나? 그건 아니겠지?’


어쨌든 하는 짓이 귀여워서 대충 형이라고 불러주고 있다.


‘이런 게 플러팅인가? 그건 그렇고 이 형이 또 이겼다고?’


그러면 12승을 찍었다. 다음 주 남은 4판을 다 진다고 해도 12승이면 거의 승급 확정이다.


‘에고, 동기끼리 이제 신분이 나눠지네.’


유일하게··· 아! 재국이 형이 여기서 유일(唯一)하게 아는 사람은 아니다. 유이(唯二)다. 사실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김정호. 어린이 바둑 대회에서 만났던 그 김정호다. 이제 6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그와는 접점이 별로 없다.


‘곈 1조니까.’


두 달 가까이 지내본 결과 이곳은 공공연한 신분제 사회였다. 그 기준은 바둑 실력이다. 상위 조에 있을수록 대접 받는다.


‘1, 2조는 선택 받은 자 이거나 귀족이지. 브라만, 크샤트리아. 그 아래로··· 하아!’


요즘 내가 한숨이 많아졌다. 평소에도 가슴이 답답하다. 바이샤도 아닌 수드라로 살아서 그런가 보다. 난 아무래도 이런 경쟁 사회에 잘 맞는 체질이 아닌 것 같다.


어쨌든 김정호는 3학년 때 연구생으로 들어와 4학년 때 1조가 되었다고 한다. 연구생 1조는 당장 프로로 뛰어도 5~60위권은 될 거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이다.


예전에 내가 초반 필승지세의 바둑을 만들어 놓고도 진 게 다 이유가 있었다. 터무니없는 놈에게 진 건 아닌 거 같아 조금 위안을 받았다.


‘그런 인간이 왜 초딩들 바둑대회에 나와서··· 양학이나 똑같은 짓을 한 거잖아.’


그건 행패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아이들 상대로 힘자랑을 하다니 그런 짓을 일삼는 것들은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부류다.


‘한번 마주쳤는데 기억을 못하는 건지 그냥 지나치더라고 나도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았어. 한번 바둑 두면서 안면 정도 익힌 건데··· 아는 사이라고 하기도 그렇잖아.’


현재 난 불가촉천민까지는 아니어도 아직 카스트의 바닥에서 헤매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유일하게 친하다고 할 만한 재국이 형이 위로 간단다.


‘에고고, 쪽 팔리게··· 질투하는 것처럼 왜 그래. 친한 사람이 잘 되면 좋지. 뭐! 생각보다 기재가 괜찮은가 보네.’


전생에서 진재국이란 이름의 프로기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게 절대는 아니다. 혹시 프로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다. 내가 그 당시 400명이 넘었던 모든 프로기사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아니니까.


‘프로가 되었다 하더라도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건 확실하지. 상위 랭커는 웬만하면 안다고. 그런데 그 정도 기재에게도 벌써 내가 밀린다? 휴우!’


또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러다 고질병 생기겠다.


“재영아. 승급 때문에 그러는 거야? 너도 곧 승급할 거잖아. 여기서 네가 제일 어린데 뭘 그렇게 걱정해. 기분 안 풀려? 놀러 갈까? 스타 할 줄 알지? PC방 가자. 바둑 끝난 애들 많이 간다고 하더라.”


누가 프로기사 지망생 아니랄까봐 눈치는 겁나게 빠르다. 바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날 달래려 한다.


리그전은 오전과 오후 각 한 판씩 치러진다. 제한시간 30분짜리 속기에 가까운 바둑이기 때문에 아무리 길어도 대국시간이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아직 오후 4시가 안 되었다. 초저녁도 아니고 늦은 오후라고 하기에도 빠른 시간이다.


‘스타 한판 정도 할 시간은 충분··· 하아! 공부해야 하는데··· 뭐! 공부는 어두워져야 집중력 있게 잘 되는 거지. 해지기 전까지 한 판하고···’


“재영아. 기분 풀어. 형이 PC방 쏠께.”


상당히 구미가 당긴다.


“라면도 사줄 거야?”


“그러엄. 동생을 위해서 형이 그 정도는 얼마든지···”


아이의 정성이 갸륵하다. 타협이 이루어졌다. 내가 어린 애 갈구고 그럴만한 깜냥이 못 된다. 풀 때는 풀어줘야 한다. 동생이면 동생답게···


‘내가 왕년에 스타는 좀 했었다고.’


이곳도 작은 사회인데 언제까지나 혼자 외톨이로 지낼 수는 없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 많은 수는 앞으로 바둑계에서 계속 봐야 할 사람들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 적당히 하자.’


변명이 너무 길어지면 사람이 추해진다. 그래. 나 애들하고 놀고 싶다.


‘난 이제 11살 되었는데 그게 이상하냐?’


기분 꿀꿀할 땐 풀어야 한다. 그게 청소년이 지향해야 할 자세다.


‘어! 그건 아닌가?’


내가 지금까지 연구생 생활에서 힘들게 느껴지는 것들만 이야기했는데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이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일단, 이곳에는 무지성으로 삑삑거리는 애새끼들이 없다.


‘아! 가끔 바둑 지고 헛소리 하는 애들이 있긴 한데··· 그건 아직 어려서 그렇지. 아마 걔들도 자신들의 행동이 합당하다고는 생각 안 할 거야.’


이곳이라면 내가 어느 정도 맞춰 나갈 수 있고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야! 한재영. 빨리 가자.”


“알았어. 이것만 챙기고···”


이런 곳에서 이런 날 바둑 공부는 하루쯤 쉴 수도 있다.


‘음. 전혀 논리적이지 않네. 원래 청소년은 이런 거라고. 어쨌든 이 정도면 별 스트레스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까다로운 사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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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 24.08.07 159 3 13쪽
32 입단이란 24.08.06 178 2 12쪽
31 나의 믿음은 24.08.05 162 3 13쪽
30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7 3 13쪽
29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3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3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7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4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7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1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5 4 11쪽
14 버블 24.07.23 312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6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1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8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3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2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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