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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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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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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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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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DUMMY

확실히 사범 보다는 원장이 고수인 것 같다. 선수 가져오기가 힘들다.


바둑에서 흔히 쓰이는 선수(先手)와 후수(後手)라는 용어가 있다.


선수는 상대의 응수에 강제성을 부여한다. 대마(大馬)의 사활이 걸리거나 모양의 급소, 집으로 아주 큰 자리를 선점하여 상대로 하여금 그 다음 수로 자신의 모양을 보강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제한다.


‘복싱에서 말하는 잽의 역할이지.’


당연히 후수는 상대의 수에 대해서 즉각 반응하지 않고 다른 곳에 두더라도 상관없다. 선수 행사를 잘해서 주도권을 확보한 상태로 계속 두어갈 수 있으면 고수다.


원장은 대화를 바둑 두듯이 하고 있었다. 기자쟁선(棄子爭先:돌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취하라)의 기리를 충실히 실천한다. 마이페이스를 고수하며 내게 응수를 강요했다.


알면서 상대가 하자는 대로 다 해줄 수는 없다. 이것이 반발이다. 선수에 많이 당하면 바둑에서 승리의 기회는 줄어든다. 큰 위력이 없는 잽도 자꾸 맞으면 데미지가 누적된다. 처음부터 안 맞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다.


서로 마주보고 앉은 자세에서 대치 아닌 대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너무 뻘쭘하다.


“뭐라도 하긴 해야 하지 않을까요?”


바둑돌을 만지작거리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져주기로 했다. 어떻게 두더라도 한 판의 바둑이다. 어떻게든 흘러간다. 지금 이러는 건 쓸데없는 신경 소모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하고 있잖아.”


“예? 뭘 하고 있다는 거예요? 전 아무것도···”


“그러니? 난 짜장면 기다리고 있지. 너 심심한가 보구나? 할 수 없네. 짜장면 올 때까지는 내가 좀 어울려 주마. 집은 어디니?”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무엇인가 손해 본 것 같다는 기분이 가득하다.


“언제 짜장면 시키셨어요?”


동문서답처럼 들린다면 성공이다. 선수행사에 대한 반발이다. 도남의재북(圖南意在北)이라 했다. 그림은 남쪽에서 그리지만 뜻은 북쪽에 있다는 뜻이다. 즉, 일을 도모하자면 내 의도가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원래 일이란 건 말이다. 넌 아직 어려서 이해가 어렵겠지만 준비할 때 끝나있어야 하는 거란다. 그래야 끝이 해피엔딩이 되면 아주 좋고 반대가 되어도 후회가 안 남아.”


짜장면의 행방을 묻고 있는데 왜 이 장면에서 이런 고차원적인 선문답 같은 말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난 10살이란 말이다. 이런 대화는 가당치 않다. 일단 후퇴다.


“저기··· 무슨 뜻인지 잘···”


“그래? 그렇겠지. 내가 표현이 서툴러서 미안하구나. 난 속에 구렁이 몇 십 마리쯤 감춘 채 행동하는 아이가 있길래 당연히 이 정도는··· 오해였던 모양이야. 하핫.”


이 아저씨 말로는 오해했다면서 웃는데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무슨 캐릭터가 이래?’


이 분은 직업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 바둑교실이 아니라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춰야 할 사람이다. 주로 작두를 이용하는 좀 위험스런 그런 것.


“전혀 모르겠다는 건 아니고··· 제가 그런 말에 괜히 아는 척 하면 어른들이 걱정하셔서···”


대화 상대가 뭔가 아는 듯 말을 건네는데 계속 외면하면 대화가 단절된다. 살짝 말이 섞일 공간을 열어줬다.


“그렇지. 그게 참 그래. 원해서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닌데 주변에 맞추기 위해서 가면을 써야 한다는 게··· 오래 전부터 이 땅의 사람들이 좀 편협한 구석이 있었지. 날개를 달고 태어나면 날기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날개를 꺾으려 들었던··· 음.”


‘김덕령? 날개 달린 장수 이야기? 이거 장르가 뭐야?’


아무래도 내가 현대판 도인을 만난 것 같다. 민담에 빗대 나를 발가벗기려 하고 있었다. 과거 바둑 동네 주변에 이런 류의 사람이 이따금 서식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봤었다.


‘과거에 관철동의 철학자라 불리던 이도 있었고 시대에 맞지 않게 고서를 탐독 하던 예언자 같은 이도··· 음. 이 분도 그런 유형?’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은 무난한 응수를 택했다. 상대에 대해 호기심이 강하게 생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처음 내 속을 다 보여줄 순 없다. 그런데 어쩌면 이미 알지도 모르겠다.


“속에 생각을 너무 담고만 있으면 병 생겨. 다 주변 어른들이 못나 못 받아줘 그런 거지. 네가 움츠릴 필요는 없다고. 길을 열고 싶어서 오늘 여기 온 거 아니야? 그럼 원하는 걸 정확하게 말하려무나. 빤히 보이는 길 굳이 돌아갈 필요 없어.”


‘헐!’


도대체 나의 어디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놀랐다. 이 양반의 대화법은 풀이 과정이 생략된다. 느닷없이 답부터 툭 내뱉어 사람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든다.


“어허허. 그렇죠. 바둑이 막히는 부분도 있고 요즘 좀 많이 답답했죠.”


쪽집게 점집에 가면 이런 기분을 느끼려나? 그런 곳에 가본 적은 없지만 거기에 홀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마 지금 나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럼 어째야겠어? 할 말 하면 되지.”


“제가 여기 왜 왔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머리를 거치지 않은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걸 내가 꼭 알아야 하는 건가?”


‘아니, 이 아저씨가···’


내가 한발 나아갔는데 상대는 한발 빼며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다. 정말 정신 바싹 차려야겠다. 이 양반은 소크라테스가 현대에 환생한 게 아닐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다에 얼핏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음. 그럼 왜 기껏 바둑 두려는 사람을 가라하고 그 자리에 앉으신 겁니까?”


‘너 짜장면 사주려고 그랬다.’ 이런 대답이 나올까 두렵다. 하도 예측 불허의 말들을 진담인 듯 농담인 듯 툭툭 내뱉어서 이제는 정말 진정성 있는 답변을 좀 듣고 싶다. 그래야 대화란 게 이루어질 게 아닌가! 일방통행은 대화가 아니다. 대화는 쌍방이 오고가야 한다.


그래도 기대는 좀 된다. 앞선 말들에서 나름 나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 같은 내용으로 여운을 남겨 그 다음이 듣고 싶어졌다.


“네 사정이야 네가 알아서 헤치던 풀던 해결을 해야지. 너 누가 조언이랍시고 몇 마디 하면 바로 듣기 싫지 않아? 스타일이 딱 순응 보다는 반발을 좋아할 거 같은데···?”


정말 미아리 쯤 가서 점집하면 번성하실 거 같은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시는지··· 내게 그런 성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좋은 말은 되도록 따르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그럴 거라고 생각해. 네가 좋은 말이라고 판단을 내리기가 좀 어려워서 그렇지. 그거만 되면··· 방울소리가 나는데 고양이가 왜 두렵겠어?”


네 본성이 문제란다. 이젠 비비꼬기 시작했다.


“그 방울을 좀 달아주시죠.”


“그런 말도 알아듣고 평소 독서량이 좀 되나봐.”


사람 열을 올리면서 마음을 흔들리게 만든다. 이 원장님은 그런 재주가 탁월한 사람이었다.


“대개는 모르는 척 하는데 다 들키고 나서 또 그러긴 부끄럽잖아요.”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죄지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처음에 당황해 너무 허둥거렸다. 어수룩했다. 반성 중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쁜 일이 아닌 것 같다.


과부 사정을 은 홀아비가 잘 안다.


‘바유가 좀 저렴하지? 그러나 아주 직관적이지 않나?’


즉, 내 사정을 알 듯 말듯하게 이야기하는 이 원장도 직접 이레귤러로 살아왔거나 과거 간접적으로나마 그런 삶을 지켜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런 표현이 가능하리라. 아주 마음에 든다.,


“네 사정은 당연히 네가 챙겨야 하는 것이고 난 내 얘기만 하면 돼. 각자의 길이 다른 거니까. 이게 기본 맞지?”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예. 그건 그렇죠.”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 원장님은 뭔가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다음에 나오는 말이 무엇일까? 벌써 궁금하다.


“내가 요즘 상황이 몹시 어려워요,”


‘엉? 이게 무슨 말?’


이런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째 장르가 신파극으로 흐를 것 같은 분위기다.


‘아! 몰랑. 원장님이 그렇다잖아.’


세상에 안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 모진 풍파를 맞으며 그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난 이 생을 절대 그렇게 살진 않을 거다.


“그걸 왜 제게···”


“너 나하고 일 하나 하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대사다.


“예?”


“너 말이다. 주변을 좀 돌아봐라.”


“예? 그게 무슨···”


그는 점점 더 모를 이야기 속으로 나를 끌고 갔다.


“긴 소리 말고 그냥 한 번 돌아보라고.”


“예.”


굳이 하라는데 계속 물음표만 달고 있을 순 없어서 하라는 대로 고개를 돌려 보라는 시늉을 해 줬다. 이 정도야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짜장면 사준다는 좋은 아저씨에게 이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떠냐?”


“뭐가요?”


진짜 모르겠다. 나도 나름 눈치가 백단인데 이제는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는 건지 전혀 감을 못 잡겠다.


“허전해 보이지 않니?”


“예?”


이렇게 감상적인 사람이었는지 정말 몰랐다. 무심하다 느껴질 만큼 냉정한 말로 사람 가슴을 후벼놓고 이제 와 이런 말이라니··· ‘허전?’ 얼굴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내가 말이다 청운의 꿈을 가지고 이곳에 바둑교실을 연지 6개월이 지났어. 평생 바둑 밖에 몰랐던 나로서는 큰 결심을 한 거지.”


어떤 생각이 들기 전에 그냥 어이가 없다.


‘청운(靑雲)? 초등학교 앞 바둑교실 하나로 무슨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할 거라고. 잘하면 과거 공부한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네. 나 참! 바둑밖에?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아! 근래에 신(神)을 받았나?’


“5개월 전에는 테이블의 절반이 채워져 있었단다.”


‘테이블? 아! 전에는 원생 숫자가 그 정도 되었다는 뜻인 건가?’


다시 슬쩍 돌아보니 지금은 한 1/3 쯤 차 있다.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커지는 걸로 봐서 이제 마치려는 모양이다.


‘복잡하지 않고 딱 좋구만. 뭐!’


영업이 부진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5개월 전··· 그러니까 여름 방학 전 내 결심은 겨울이 오기 전에 남는 테이블이 없도록 하겠다였는데 현재 가장 붐비는 시간대가 이래. 이게 현실이란다. 희망이 헛된 꿈으로 끝날 것 같았지.”


‘그러니까 업종변경을 추천한다고. 적성에 맞는 걸 해야지. 당신은 미아리로 가서···’


이런 생각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당연히 입으로 내뱉진 않았다. 내가 그 정도로 현실 감각이 떨어지진 않는다.


“무슨 문제 때문에 이렇게 된 거 같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전 여기 온 것도 오늘 처음이에요. 여기 사정은 원장님께서 가장 잘 아시겠죠.”


이건 진실이다. 물론 앞으로도 귀찮아질 일은 별로 알고 싶지 않다. 나는 세상으로 도약할 발판이 필요해서 이곳에 왔을 뿐이다.


“그렇지. 상식적으로는 그게 맞는 말이지. 그런데 문제는 이 나이 먹도록 바둑만 두어 오던 내가 그런 원인 분석을 어떻게 하겠니? 억지로 그런 걸 한다고 해서 그게 과연 세상사의 정답일까?”


어쩌란 말인가! 하마터면 ‘내 사업도 아니고 당신 사업이잖아.’ 이런 큰소리를 대놓고 지를 뻔 했다. 책임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그 내막을 알 순 없지만 현 시점에서 적어도 난 아니다. 일은 관계자가 하는 것이다.


‘본인 입으로 각자 제 앞가림은 스스로 하자라고 조금 전에 말해 놓고선···’


분명히 네 사정은 네가 챙기라고 했었다. 그런 말을 하려면 당연히 본인 역시 그렇게 하겠다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나를 뚫어보던 그 냉철한 눈에 자기 자신은 안 보이나 보다.


“하아! 원장님, 죄송하지만 그건 제게 하실 말씀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 맞아. 그래서 일 하나 같이 하자고 한 거야,”


말문이 막힌다. 이거 엉뚱하게 덤터기 써서 귀찮아 지는 일은 없어야 하는 데 매우 불길한 예감이 몰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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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 24.08.07 159 3 13쪽
32 입단이란 24.08.06 177 2 12쪽
31 나의 믿음은 24.08.05 160 3 13쪽
30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7 3 13쪽
29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3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3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7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3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6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1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5 4 11쪽
14 버블 24.07.23 311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6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1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8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3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2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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