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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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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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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DUMMY

“입단 대회를 기권하겠다고?”


함 원장이 눈에 애매함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예.”


일반인 입단대회 신청은 리그전이 시작되기 전에 해 놓았었다. 그 때는 봄 상황이 이렇게 급진전 될 줄 몰랐다. 입단대회 예선 일정과 리그전 일정이 하루가 겹쳐졌다. 그런 상황은 의례 있는 일이다.


보통은 리그전 두 판 정도를 기권한다. 나 역시 그러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현재 나의 리그전 전적은 11승 3패이다. 이 달 남은 네 번의 대국 중에 단 한 판만 이겨내면 거의 승급이 확실해진다.


‘한 판? 아니지. 가급적이면 이길 수 있을 때 더 이겨 놓아야 해. 당장의 승급이 최종 목적은 아니잖아.’


연구생의 리그전은 복잡한 승점제로 운영된다. 승리 시 기본 승점이 있고 상위 조에서 승리하면 가산점이 붙는 식이다.


1년간 8차례의 리그전이 있고 그 안에서 계속 승강급이 반복되기 때문에 마지막 리그전에서의 순위가 2조 안에 있더라도 총점이 모자라면 연구생 입단결정전에 못나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한 판이라도 허술하게 승부할 수 없다.


하위조에 있을 때는 그런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신분 상승이 눈앞이라 별 게 다 신경 쓰인다. 이런 시기에 리그전과 입단 대회를 병행할 수는 없다.


“알았다. 그렇게 알고 있으마.”


함 원장은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일일 수도 있다.


‘1조 1위를 목표를 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기권패 두 번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의 눈에는 일반인 입단대회에서 두 명 안에 들어가는 것이 연구생들 끼리 벌이는 결정전에 출전하는 것보다 더 확률 놓은 게임처럼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연구생 연간 1위를 노리는 최상위권 몇 명은 대국 일정이 겹치는 문제 때문에 일반인 입단대회에 거의 출전하지 않거든.’


그렇게 생각하면 일반인 대회에 불참하는 연구생들이 모두 나오는 마지막 결정전이 더 승리가 어려운 게임일 수도 있다.


‘내 경우는 좀 다르지.’


일반인 입단 대회의 본선은 리그전 형식이다. 리그전에 익숙하고 껄끄러운 강자가 몇 명 빠진다는 좋은 메리트는 있지만 예선 통과가 먼저다.


‘그게 문제야. 일단 예선통과는 해야 뭘 해보려고 해도 할 거 아니겠냐고. 예선을 통해 보통 10~12명 정도의 본선 진출자를 뽑는데 그 과정이 토너먼트 방식이라서···’


보통 7~8연승 정도를 해야 하는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내가 그럴 수 있는 확률은 거의 희박하고 솔직히 자신도 없다.


‘내가 기세가 오르면 10연승이고 20연승이고 마구 할 수 있는 그건 스타일은 절대로 아니지.’


그런 기재였다면 몇 년째 승강급에 이렇게 연연하는 상황에 몰리지 않았을 거다. 다 아는 얘기지만 당대의 1인자들조차 최전성기 승률이 70~80% 정도였을 뿐이다.


예선에서 몇 판 이길 수도 있겠지만 토너먼트의 특성상 어느 순간 갑자기 단칼에 날아갈 게 뻔하다. 이미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었다.


지금이라면 조금 다를 지도 모르지만 몇 년간 계획했던 일의 성공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는데 정신을 분산 시키고 싶지 않았다.


‘포기할 건 빨리 해야··· 음. 요즘이라면? 작년의 내가 아니잖아. 에고, 이건 마구니의 유혹이야. 딴생각하지 말자고. 난 고성훈과는 달라.’


작년 이 대회를 통해 고성훈이 입단 했다.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 형 같은 스타일이 토너먼트 최적화 모델인 것 같다.


‘누가 그를 기복이 심한 기분파라고 까 내리기도 했었지만 그 기복이 좋은 쪽에 있을 때의 그는 정말 까다롭지.’


한 달을 둬야 하는 리그전에서는 한 끝이 모자랐지만 그 보다 단기간에 끝나는 일반인 입단 대회에서는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대회 막바지에 가서 예의 그 기복이 아랫 쪽을 향해 발목을 잡힐 뻔 했지만 그런 곳에서 작용하는 것이 운이다. 상대의 헛발질의 도움을 받아 끝내 입단에 성공했다.


사실 그가 나와의 승부에서 절대적으로 밀리는 게 이상한 일이다. 기복이 심하다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 역시 사이클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는 나만 상대하면 항상 컨디션이 바닥에 있었다.


‘상성 문제라고 풀이하기도 애매하긴 하지. 너무 극단적이라서···’


심리적인 것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본인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다. 그와는 지난 겨울 내내 대국을 가졌었다.


그도 그 문제 때문이었는지 전에는 나와 대국 하는 상황 자체를 피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일단 시동이 걸리자 작정하고 덤벼들었다. 약 두 달에 걸쳐 수백 판을 둔 것 같다. 정면 돌파를 선택한 그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결과에 너무 상처 받지 말았으면 한다.


‘쌍코피를 터트려 버렸지. 세어보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승륲이 대략 8대2 정도 나왔을 거야.’


상식선에서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중국의 모 기사가 세계 대회를 휩쓸며 1인자로 군림하고 있었을 무렵 한국의 돌부처가 그의 상대로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통산 상대 전적은 6승 27패. 그 6승조차 세계대회 결승 번기승부에서 한두 판씩 이긴 것이라 별 영양가가 없다. 7전 4선승제나 5전 3선승제에서 한두 판 이기는 게 프로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가 현역으로 활동할 기간 동안 토너먼트에서는 도무지 돌부처를 이겨내지 못했다. 한 때 18연패에 몰리기도 하는 등 그의 기사생활은 한국의 돌부처로 말미암아 끝장났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세상에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종종 생긴다. 그에 비하면 나와 고성훈의 상성관계 정도는 아주 점잖은 편에 속한다.


이번 방내기는 정당한 승부는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호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정선으로는 당연히 나와야 할 결과가 나왔을 뿐이다. 역시 방내기의 치트키는 치수조정이다. 그 여파인지 올 시즌 초반 고성훈의 출발은 그다지 좋지 않다.


‘결론은 일단 호구 잡히면 벗어나기 쉽지 않다. 이거지. 이 와중에도 스마일배 예선에서는 꼬박꼬박 이기던데··· 진짜 결승까지 갈 수 있을까?’



###


‘헐.’


백이 고목을 뒀다. 반상에 돌개바람이 일어났다.


승급은 확정되었다. 현재 13승 4패다. 이번 달 리그전의 마지막 판이다. 상대는 11승 6패 인데 그 역시 이 판을 이겨내면 승급할 가능성이 있다.


‘무조건 이겨내야 할 판에서 이러는 건 준비된 필살기라는 거겠지. 평소 연구를 해둔 모양이야?’


고목은 바둑판의 모서리를 기준으로 좌표상 4,5 지점이다. 굵은 점으로 표시된 귀의 화점(4,4)에서 변 쪽으로 한 칸 더 떨어진 지점을 그렇게 말한다. 거기서 변쪽으로 한 칸 더 가면 대고목(4,6)이라고 한다.


오청원과 기타니가 신포석을 제창하기 이전에는 첫수로 소목(3,4)이 두어질 확률이 99.99%였다. 신포석 이후 첫수가 화점, 삼삼(3,3)등으로 많이 다변화 되었지만 외목과 고목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60, 70년대 잠깐 유행하기도 했었지만 바둑 기술이 발전하고 수 나누기 등으로 연구한 자료가 많아진 현대바둑에서는 거의 두어지지 않고 있었다.


고목이나 외목은 한 수로 어느 정도 귀를 확보한 것이 아니라서 집계산이 애매하다. 일반적이지 않는 변화를 유도해 혼전으로 몰고 가겠다는 의도가 많이 포함된 한 수인데 요즘같이 정보의 공유가 일반화되면 그 혼란이 자신에게 꼭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리란 보장이 없다.


확정적인 실리도 없고 이후진행 역시 시도한 쪽이 그다지 유리하지 않은 것으로 연구되어 현대바둑에선 거의 사장된 수법이었다.


‘관심 두지 말고 손을 빼?’


여러 가지 대응법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상관하지 말고 내 나름대로 포석을 진행할 경우 백이 네 번째 혹은 여섯 번째 수를 고목이 두어진 귀의 소목자리에 두면서 귀를 굳힐 수도 있다.


수순이 조금 다르지만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첫수를 소목에 두고 두 칸 벌려서 귀를 굳이는 것과 똑같은 형태가 된다. 이건 지금도 많이 두어지는 형태다.


내가 흑번일 때 강하다는 건 연구생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아마 백이 변화를 모색하는 수단으로 고목을 들고 나온 것 같다.


‘일단은 두텁게 가야겠지. 화점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백이 일으킨 돌개바람은 멀리 떨어진 이곳애서는 주변을 살랑거리는 미풍일 뿐이다. 흑은 바람을 개의치 않고 계속 뿌리와 줄기를 뻗었다. 여전히 바람은 가벼운 걸음으로 돌 주변을 감돈다.


‘너무 순탄한데?’


결국 백은 복잡한 변화를 외면했다. 두 칸 벌려 한 귀를 굳히면서 평범한 진행으로 환원했다. 그의 예상대로 내가 반응하지 않았거나 애초에 변화구를 던지는 척 하며 내 대응을 보려던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이제 방향이 정해졌으니 서로 자기 갈 길을 가면 된다. 백은 사귀생하면서 현찰을 바싹 당겼고 흑은 상변에서 중앙에 이르는 대세력의 기반을 만들었다. 굳이 백의 실리작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두기 시작한 거지?’


원래 난 두터움을 선호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공격을 한다든지 하는 적극적인 스타일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그 두터움을 집으로 환원해서 형세를 굳히는 실리에 민감한 바둑이었다.


그런데 요즘 공중전을 벌이는 빈도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의도적으로 바꾼 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실리를 굳히는 수보다 중앙을 지향하는 수가 더 좋아 보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좋아 보이는 쪽을 따라 둔 것뿐인데 이렇게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이런 형태로 바둑이 짜이면 불리하다고 생각했거나 최소한 껄끄럽다고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이런 형태가 너무 편해졌다.


‘사귀생통어복(四隅生通魚腹)이면 필승이라지만 그게 중앙으로 통하지 못하면 진다는 이야기인 거잖아. 이 상태에서는 상대가 중앙으로 확장하는 것만 막으면 이긴다는··· 그래서 막았어. 아주 간단한 건데··· 그동안 왜 이런 발상이 안 되었던 거지?’


내 대응이 좀 느슨했다고 상대가 느꼈는지 백이 다시 바람을 일으켰다. 가볍게 상변 선수 비마달리기. 이선으로 붙여 막았다. 이제 100 여수 언저리인데 거의 판이 다 짜여졌다. 이런 건 예전에 내가 많이 하던 짓이다. 일명 딲기다.


‘너 뭔가 잘못 생각한 거 아냐? 이건 이겼습니다. 할 때 하는 거라고. 그런데 지금 네가 이겼어?’


이른 형세판단이지만 한눈으로도 봐도 내가 넉넉하게 남는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변화의 여지를 없애야 하는 장면인 것 같은데 그걸 상대가 해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매우 찝찝한 일이다.


‘이상하게 쉽게 두네. 왜 이러지? 내가 모르는 뭐가 있는 건가?’


백은 중앙도 깊지 않게 침입한다.


‘이건 침입이 아니라 거의 삭감인데? 이건 여유인 건가? 똥배짱이야?’


상대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둬 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떤 관점으로 생각해도 결코 내가 불리하지 않고 넉넉히 남기는 바둑이다.


‘무리할 건 없어. 조금 물러서 주자고. 시빗거리 자체를 없애면 되는 거잖아. 그래도 서너 집은 유리해.’


기분은 좀 이상하지만 스스로의 형세판단을 믿지 못하면서 대국을 할 수는 없다. 나도 순순히 물러나며 중앙 경계가 거의 확정 되었다.


이제 종반에 가깝다. 서너 집 차이는 절대적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승부를 뒤집을 수 없다. 이런 장면에서 그런 수가 돌출한다면 그게 묘수다. 그런 것을 못 봐서 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뭔가 좀 많이 찜찜해. 무엇 때문이지?’


분명히 내가 이겨 있는데 백의 스텝이 너무 경쾌하다. 그게 너무 거슬린다.


‘이러면 꼭 사고가 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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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입단이란 24.08.06 177 2 12쪽
31 나의 믿음은 24.08.05 160 3 13쪽
»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7 3 13쪽
29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2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2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6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3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6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0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4 4 11쪽
14 버블 24.07.23 311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5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0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7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2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1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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