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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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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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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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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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을 지켜주세요.

DUMMY

기타니라는 사람이 있었다.


20세기 바둑사의 최대 사건이라 불리는 신포석법이 그와 오청원이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에서 비롯되었다. 현대 바둑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선각자이지만, 오청원이라는 희대의 천재와 동시대에 활동했기 때문에 기사로서 1인자는 되지 못했다.


사람이 때를 잘 타고 태어나는 것도 복이다.


일찍부터 도장을 열고 제자를 키웠다. 그의 제자들은 일본 바둑계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6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기전을 석권했다. 그 기간 일본 바둑계를 독점했다라고 표현해도 별로 과하지 않다.


그 긴 기간 동안 일본 7대 기전의 타이틀 홀더나 도전자의 대부분이 기타니 문하였다. 최초의 대삼관도 그의 문하에서 나왔고 최고 인기기사도 그의 문하였다.


미학파, 대마킬러, 정밀한 계가전문, 폭파전문가, 대세력 바둑을 구사했던 낭만파, 철저한 실리파··· 같은 스승에게 배웠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개성적 기풍을 가진 기사들이 끊이지 않고 그의 문하에게 배출되었다.


당대 최고의 재능들이 그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실력을 갈고 닦아 화려하게 비상했다. 천재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연구와 경쟁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이곳의 환경 역시 비슷하다. 난 아니지만 이곳의 영재들이 과거 기타니 문하생 보다 못할 것 같지는 않다. 웬만해서 거를 타선이 없다. 조금만 허점을 보이면 시골동네 강아지 같은 눈망울을 한 어린 아이가 반상에선 사자, 호랑이처럼 물어 뜯으려한다.


어떤 계기가 만들어지면 연구생 누구라도 폭발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폭발의 내용물이 어떤 것일지는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재영이 왔구나. 오늘도 빨리 끝내고 한 판?”


시간 맞춰 대국장에 나왔는데 먼저 와 있던 오전 대국의 상대자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한 판이 바둑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경쟁심이 다른 곳에서 폭발한 것 같다.


‘에구, 눈치 보이게···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괜히 옆으로 쭉 붙어있는 다른 테이블의 대국자들을 힐끔거리게 된다.


‘아직 애들이 어려서··· 예전엔··· 이건 아닌가?’


과거의 천재들을 현재에 데려다 놓으면 지금 이 아이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환경이 다르면 사람은 다른 식으로 적응할 수밖에 없다. 즐길 거리가 전시대에 비하면 확실히 많아졌다.


“어! 형. 그건 나중에··· 사범님들 계시는데···”


“별 눈치를 다··· 으응. 알았어. 쨔샤,”


지난주에 애들하고 좀 놀아줬더니 이번 주엔 날 대하는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 그건 나쁘지 않은데 이런 식은 좀 곤란하다.


‘역시 애들이라서 좀 툭탁거리기도 하고 그래야 친해지나 보네.’


지난주에 재국이 형과 여러 명을 좀 심하게 두들겼는데 그 영향이 좋은 쪽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갔었던 PC방에 안면 있는 애들이 많더라고.’


어찌되었든 1승 올리는 데 별로 장애가 있을 것 같진 않다. 이미 강등이 결정된 상대에게 이 판의 승패는 아무 의미가 없다. 말하는 걸로 봐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행패를 부릴 것 같진 않다.


“빨리 끝내자고.”


“알았어.”


대답을 위해 이빨을 악물었다. 이 생활 몇 년 하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복화술의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


쫘르르-


상대의 손에서 아무렇게나 움켜잡았던 백돌이 펼쳐졌다. 홀수. 맞췄다. 흑번이다. 사실 상대가 백돌을 대충 몇 개만 손아귀에 쥐었는데 그 내용물이 얼핏 보였다. 어린 몸이라서 그런지 나의 동체시력은 상당히 좋다.


못 맞추는 게 이상한 일이긴 했다. 그렇지만, 고의적으로 흑번을 노린 건 아니다. 난 어느 때이나 무조건 돌 한 개만을 올린다. 보통은 돌을 쥐는 측에서 한 움큼 가득 쥐어서 홀짝이 무작위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매너다.


‘예전에 어디서 듣기로는 일부로 홀짝을 구분해서 쥐는 연습을 한 프로가 있었다던데··· 난 굳이 그렇게 까지는 안하고 싶어.’


초반 진행이야 그 동안 수많은 선배들이 연구한 광대한 자료에 힘입어 척이면 척이다. 정말 의욕이 안 생기는지 상대는 속기로 일관하고 있었다. 흑백 모두 불만이 있을 수 없는 평범한 진행이다.


상대가 단순하게 두어 가는데 나 역시 굳이 복잡한 진행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괜히 기분 내려다가 어이없는 실수라도 나오면 역으로 내가 망가질 수 있다. 상대가 지금은 별 승부욕을 보여주고 있지 않지만 특별하게 대국상황이 좋아지면 어떤 식으로 마음이 변할지 모를 일이다.


‘대충 장단 맞춰주다가··· 중반 이후에 좀 타이트 하게 두면 슬슬 밀리는 척 하면서 양보하겠지.’


상대도 너무 공개적으로 승부욕 없음을 보여주긴 어렵다. 성의는 보여야 한다. 지도사범이 문제가 아니라 이 판의 결과로 자신의 승강급에 영향을 받는 다른 연구생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강급 당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흉내라도 내야 한다.


‘에고, 우리 너무 빨리 두고 있는 건가?’


슬쩍 옆을 돌아보니 다른 테이블의 바둑판들에는 돌들이 아직 드문드문한데 우리는 이미 100수를 넘어섰다.


‘이거 눈치 보여서··· 이 짓도 고역이네.’


상대에게 슬쩍 눈빛으로 신호를 줘도 못 본 건지 모르는 건지 돌통에서 바둑판으로 돌이 옮겨지는 속도가 전혀 줄지 않는다.


‘에라이··· 정말. 도적질도 손발이 맞아야··· 스타에 미친 놈 같으니라고. 그러니 니가 아직도 9조에서···’


“악!”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손이 헛나갔다. 원래 놓아야 할 곳 한 칸 옆에 돌이 놓여졌다. 백이 차단하면 변에서 중앙으로 뻗어 놓은 흑 다섯 점이 죽어버리는 수순이 주르륵 그려진다.


‘후우!’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삼켰다. 지금 옆 테이블 대국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날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 줌 몇 명은··· 으···’


지금 내 피부와 접촉하고 있는 것이 공기만이 아닌 것 같다. 화끈거리다 못해 따끔따끔할 지경이다. 헛손질이 부끄럽고 실수한 티를 낸 건 더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미친 짓을···’


이 와중에 자책까지 날 괴롭힌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괴롭다. 고개를 들기가 두렵다. 이게 무슨 바보짓이란 말인가!


‘확 바둑판을 엎어버려? 후우! 아무리 열 받아도 그건 아니지.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찾아야 하는데···’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 대국 시작한 지 미처 10분이 안된 것 같은데 피로감이 장난 아니다.


‘10분? 그래. 시간을 별로 쓰진 않았지.’


이 판을 지금까지 엄청나게 빨리 두긴 했다. 대국시계를 확인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다. 제한시간이 30분이니까 앞으로 20분 정도는 이대로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시간을 너무 쓰면 불리한··· 무슨 생각을··· 어떻게 되어도 이 상황 이상으로 불리할 수가 있겠어?’


지금 유불리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형세분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결정을···


‘던져? 미쳤어? 이런 중요한 판을? 내가 실수하듯이 상대도 실수 할 수 있잖아. 일단 판을 최대한 어지럽히면서 끌고 가야 해. 하아! 그런 쪽팔리는 짓을 꼭 해야 하나? 할 수 없잖아. 자존심 세우려면 애초에 헛짓거리를 안 했어야지. 에고.’


역전은 냉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일단 머리를 식혀야 한다고 스스로를 향해 계속 되뇌였다. 그런데, 점점 더 열이 오른다.


‘아아악! 그런 머저리 같은 짓을 하고 이따위 생각이나 하다니··· 아악! 다 집어치워!’


“······”


눈을 떴다. 대국시계부터 확인했다. 내 남은 시간은 1분 42초.


‘꽤 남았네. 초읽기 3회가 있으니까. 그럭저럭 둘 수는 있겠네.’


중간에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이번 판은 시간패를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최악은 면했다.


형세판단은 이미 마쳤다. 끊임없이 자책하는 마음이 들면서 실수하는 장면이 계속 오버랩 되더니 저절로 바둑판의 상황이 읽어졌다.


현재 반면으로 10집 정도 모자란다. 덤까지 생각하면 15집 이상의 차이다. 한두 집을 다투어야 하는 이런 대국에서 이 정도 차이면 절망적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이제 100수 좀 넘었다는 점이다. 아직은 초반이라 결정되지 않은 곳이 많다는 게 좀 더 둬볼까란 생각을 놓지 않게 한다.


‘전에 김정호가 이런 대목에서 어떻게 풀어 나갔더라? 응수타진. 그렇지 그걸로 시작했었지.’


내 의도가 드러내지 않게 시빗거리가 일어날만한 곳을 일단 찾는다. 몇 군데 눈에 들어왔던 곳은 있었다.


‘빌어먹을··· 그런데 이게 말이야. 말이 안 되잖아.’


기본적으로 상대는 나와 동수다. 적어도 나보다 하수는 아니다. 같은 조이니 당연한 얘기다. 그러면 내가 보는 수를 상대가 못 볼 리가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런데 이런 몰리는 상황에서 내 의도가 쉽게 숨겨지겠냐고.’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온다. 가슴이 답답하다.


[마지막 입니다. 하나, 둘···]


급기야 인간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대국시계의 초읽기가 시작되었다.


[··· 여덟.]


딱- 탁


명료함과 둔탁함으로 대비되는 소리가 거의 잇달아 울려 퍼졌다. 바둑판에 돌이 놓아지고 대국시계 버튼이 눌러졌다.


‘저질러 버렸네. 아 몰라. 이후 수순은 나도 모른다고. 상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때 그 때···’


정밀하게 수 읽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무엇인가가 얼핏 보이긴 했다. 순간적으로 휙 스쳐간 잔상과도 같은 생각의 끄트머리에 반사적으로 올라탔다.


수십 분 만에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봤다.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보며 멋쩍은 웃음을··· 멍청하게도 이런 개뿔 같은 기대를 하다니···’


상대의 정수리만 보인다. 스스로 낙마한 것과 같은 나의 헛손질이 그에게 승리에 대한 욕망을 다시 불러일으킨 것 같다.


‘아니 이런 식으로 쉽게 마음을 바꾸면 안 되는 거잖아.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이렇게 쉽게 마음이 왔다갔다 하니까 니가 아직도 9조에··· 음, 인신공격은 자제하는 걸로.’


빈 머리로 대충 손 따라 응수를 하고 그래야 무엇인가 사고가 생겨도 생길 텐데··· 저런 신중한 자세로 수읽기를 해대면 웬만해서 터무니없는 실수는 하지 않는다. 돌변한 대국 상대의 자세에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지경이다.


‘적당히 하라고. 너 시간 많잖아. 시간 공격 안 하냐? 나 초읽기야. 이러면 니 시간을 이용해서 길게 수 읽기를 할 수도 있어. 그럼 너에게도 결코 이득이 되지 않잖아.’


상대는 절대로 나 같이 어이없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듯 전례 없이 침착하다.


딱-


‘오호! 움츠렸어? 많이 이겼다 이거야? 어휴! 그래. 어쩌면 이게 현명한 판단이겠지.’


대국을 시작할 때 보인 승패에 초연하던 담대한 마음을 어디론가 날려버리고 상대는 도저히 정상적인 바둑에서 나올 수 없는 형태를 취하며 물러났다.


좋게 생각하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절절히 배여 나온 한 수이고 나쁘게 말하면 스스로 우형(愚形, 어리석은 모양)을 만들었다.


바둑을 배우면서 수백 판, 수천 판의 대국 경험을 가지다 보면 많지는 않아도 이런 경우가 적잖게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승세를 굳히거나 불리함을 타개하고자 한 경험은 꽤 많다. 거기서 알게 된 건 우세를 계속 지켜나가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역전은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 판 역전 가능할까?’


작가의말

대삼관(大三冠) : 일본 언론이 만든 말로, 일본에서 가장 큰 3개의 바둑기전인 기성전, 명인전, 혼인보를 동시에 모두 보유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이 대삼관 달성을 곧 천하통일의 위업으로 간주한다. 일본 바둑 역사상 조치훈 9단이 최초로 1983년에 이 세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였다. 이후 타이틀을 잃었던 조치훈은 1996년에 기성전 타이틀을 탈환하였고 1997년에도 우승해 1998년까지 3년 연속 대삼관을 차지했었다. 그 후에 20131017일에 이야마 유타가 38회 명인전을 우승하며 사상 두 번째로 대삼관을 기록한 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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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6 3 13쪽
29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2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7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2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6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2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5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0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4 4 11쪽
14 버블 24.07.23 310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5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0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7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2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1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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