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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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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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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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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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DUMMY

오전 대국의 흥분이 채 식기도 전에 오후 대국을 맞이했다.


3조의 상대들은 만만치 않았다. 10조에서 이곳까지 오는 건 상당히 험난한 여정을 필요로 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은 그랬었지. 아닌 소수도 있긴 하지만···’


김정호는 1년. 진재국도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것도 3조가 아니라 1조까지 가는데 그랬다.


‘난 3조까지 지금 4년··· 으음. 가지고 태어난 게 다른 걸 어쩌겠어.’


1, 2조에 비할 순 없지만 어찌되었든 이 3조도 만만치 않다. 여기까지의 여정에서 거를 만큼 걸러지고 남은 원생들이라 그들의 바둑에는 특별히 약점이라고 할 만한 구석이 없다.


포석, 전투, 끝내기등 기본기가 아주 탄탄하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기본이다. 여기까지 올라온 대부분이 다 가진 것들이다. 이제부터는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강점을 얼마나 키워 나가는가가 앞날을 좌우 한다.


‘그런 식으로 기풍이 확립되어야 1조가 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런 곳을 밟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냥 어디에선가 들었던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현실이 조금 슬프네.’


돌을 가리고 나의 흑번으로 대국은 시작되었다.


‘계속 흑이네. 운도 따라주고··· 좋아. 나는 이길 수 있다.’


사람들에게 말해지는 내 특별한 강점은 없다. 약점 역시 대개는 꼭 집어내지 못한다. 스포츠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능력치가 육각형 모양으로 형성되는 균형 잡힌 기력의 소유자. 굳이 비교하라면 김정호와 비슷한 유형이다.


그와의 차이점은 육각형의 사이즈가 다르다. 내 육각형은 좀 작다. 김정호의 다운그레이드 판이라고 누가 폄하해도 반발이 어렵다. 그게 사실이니까. 그렇게 실력을 키워와 지금 이도 저도 아닌 바둑이 되어 버렸다. 무색무취다. 내가 괜히 닦기 위주의 운영을 한 것이 아니다.


나도 사이즈를 키우고 싶다. 왜 안 그렇겠는가! 지난 4년 간 노력을 안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사이즈는 거의 타고난 재능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한 부분 육각형에서 포석 부분은 나도 발전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둑을 보드게임의 한 종류라 한다면 집 짓는 보드 게임에서 집의 기초를 잡는 작업이 포석이다. 가장 초반에 해당한다. 한판의 바둑에서 바둑돌이 가장 적게 놓여 있는 순간이다. 그래서 어렵다.


비어있는 공간이 많을수록 경우의 수는 커진다. 바둑판에 선택할 수 있는 착수점이 적은 끝내기 단계에서는 사람의 학습으로도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확인해 볼 수 있지만 포석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포석은 사람에게 감각의 영역이다.


앞으로 올라갈 기둥과 대들보, 지붕의 형태와 재질이 여기서 결정된다. 가장 적은 재료를 유기적으로 구성해서 형태를 다져야 한다. 그래야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 그럴수록 상대가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내 포석 감각은 일부러 억제 시킨 부분이 있다. 그것을 쓰게 될 곳이 따로 있기 때문에 미리 공개할 수가 없다. 여긴 내 몇 주간의 노력을 30분에 끝장낼 수 있는 인간들이 득실거린다. 그래서 미리 보여줘선 안 된다. 그건 짧은 제한 시간을 가진 대국에서 숨은 필살기로 제격이다.


2조에만 오르면 연말의 입단 결정국에서 아낌없이 다 쏟아 부을 생각이다. 그 단 한번을 위해 지금껏 참아왔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에고고, 대국 중에 웬 딴 생각을··· 이 판부터 이기고··· 되도록이면 두텁게···’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에 나의 대부분의 대국은 포석에서 특별한 수단을 부리지 않았다. 평범 그 자체다. 내 승패는 중반전투에 거의 가려진다. 두터움을 가지고 제한된 상황에서의 수읽기를 상대에게 강요한다.


거기서 실리를 번다. 그것이 특별히 잘하는 것 없는 내가 상대를 이길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선택 가능성의 범위를 스스로 좁히는 것이기도 했다. 고수의 바둑은 발상이 자유롭다. 얽매이지 않는다. 나의 장점이자 약점은 같은 곳에 있었다.


서로가 상대의 의도를 거스르는 반발이 이어지면서 공중전이 벌어졌다. 중앙에서 돌들이 부딪치며 몸싸움을 벌인다. 난타전이다. 사석을 이용한 바꿔치기가 연달아 나오면서 패가 만들어 졌다.


패는 요술쟁이다란 말이 있다. 그만큼 예측이 어렵다. 바둑, 장기, 체스와 같은 보드게임류에는 공통적으로 동형반복금지란 규칙이 있다. 같은 모양이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나오면 누가 양보하지 않는 한 승부를 가릴 수가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규칙이다.


바둑에서 패는 서로 단수가 한 점씩 물려 있는 모양이다. 한 쪽에서 돌을 따내도 상대도 똑같은 모양으로 돌을 다시 따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형태가 나타나면 바로 따낼 수 없고 다음 수를 다른 위치에 두고 그 다음 수에 따낼 수 있게 하는 것이 패의 규칙이다.


한 점씩 물려 있기 때문에 양보해도 한 집 손해 밖에 안 된다. 더군다나 양보하면 선수를 잡을 수 있다. 선수의 가치는 최소한 덤의 가치이다. 먼저 두는 쪽이 그만큼 유리하기 때문에 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양보하지 못할까?


‘인간의 바둑에선 기세가 중요하거든.’


기세 좋게 패를 이으며 난전을 마무리했다.


백의의 장군 뒤를 따르는 병사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처음엔 대등했던 병력이 각처에 웅크린 적의 견제를 위해 점점 나눠지고 흩어진 병사들은 각개격파 되었다.


이제는 적의 포위망 속에서 이리저리 쫓기기에 바쁘다. 포위망의 약점을 살펴가며 탈출을 모색하지만 여의치 않다. 흑은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린다. 직접적인 공격 없이 펼쳐 놓은 그물의 코를 그저 좁히기만 한다.


‘이건 외통수야.’


상대의 눈빛이 꺼져 간다.


흑이 반면 10집을 남겼다. 4.5집 승. 나의 전형적인 승리의 패턴은 아니었지만 잘 풀렸다. 상대는 형식적인 복기도 하기 싫은지 그냥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어휴! 힘들었네. 적당히 좀 하지. 마지막까지 그렇게 뻗대면 어쩌자는 거야?’


리그전의 시작부터 연승을 거두었다. 그것도 전혀 나답지 않는 방법으로··· 대국 중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무엇인가 좀 이상하긴 하다.



###


‘어? 뭐지?’


어리둥절하다. 이겼는데 이런 기분이라니···


어제 운이든 무엇이든 모처럼 맞이한 2연승으로 기분 좋게 두 번째 날 대국에 임할 수는 있었다.


이기기 위해 대국에서 온갖 노력을 다하긴 했지만 다시 이런 결과가 나오리란 기대는 당연히 별로 없었다.


‘이기고 싶긴 했었지. 그런데 연승을··· 3조에서?’


내가 작년에 3조에서 심하게 시달리긴 했었나 보다. 한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늘 해내던 3연승 정도로 이런 감격스러움이 밀려들 줄 미처 알지 못했다.


대국 상대가 쓴 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어? 티 났어? 미안.’


복기를 안 하는 건 상관없는데 그에게 내 마음을 읽힌 것 같아 괜히 부끄럽다.


‘그래. 이 형이 좀 흥분했다. 니가 좀 이해해 주렴. 내가 3조에서 3연승은 처음이라··· 3연승? 이게 무슨 일이지? 아니야. 첫판을 정상적인 승리라고 볼 수는 없잖아. 이건 2연승이라고 생각해야 해.’


2연승은 그래도 가끔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함량미달이든 뭐가 되었든 간에 3연승은 3조에 이름을 올리고 나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무리를 최대한 지양하는 내 바둑 스타일 상 연승이 나오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물론 덕분에 연패가 잘 없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기세가 오르면 10연승, 20연승 거침없이 전진을 보여주는 천재들과 내 기재를 견주고자 하는 마음은 애당초 없었다. 그들과 난 다르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그러나 느리지만 꾸준히 한 칸씩 올라온 스스로에 대한 작은 자부심은 가지고 있다.


‘3연승이라··· 이러면 이번엔 진짜 한번 쪼아 봐야 하는 건가?’


문득 가슴에 작은 설렘 하나가 들어왔다.


‘설마 내가 기력이 늘었어? 헙! 하아··· 아직은 모르는 거야. 오후에 한판 더 둬보면···’


애타게 기다리던 오후가 돌아왔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더니 대국장에 다시 들어온 지금에야 배가 고프다.


‘이거 왜 이러는 거냐. 소풍 가기 전날 아이처럼 굴고 있잖아. 오늘따라 중국 음식이 좀 느끼하긴 했었잖아. 그래서 먹다만 건데··· 재국이 형이 다른 거 시켜준다고 할 때 뭐라도 먹을 걸 그랬나? 괜히 거절해서···’


언제나 그랬듯이 재국이 형과 난 같이 점심을 먹고 어떤 일도 하기 싫어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대국장에 입장했다.


‘왜냐면 도시남자는 시크해야 하니까. 음. 농담이야. 중2병 이런 거 아니야. 재국이 형한테 조금 맞춰준 거라고. 중2라서 그런지 그런 거 되게 좋아하더라. 나에겐 사회생활의 일종이랄까.’


대국장은 다섯 개의 각진 테이블아 10줄로 맞춰 세팅되어 있다. 전면의 공간에는 관계자들이 자리하고 각조의 모든 인원은 한 번에 대국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대국자 이름을 대신하는 고유번호가 각 테이블 마다 붙어 있다. 자리에 가서 앉았다. 계속 함께하던 재국이 형과 비로소 떨어졌다. 이곳에서 다른 신분끼리는 겸상이 불가능하다.


‘한동안 꽤 멀어진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두 줄 너머 뻔히 보이는 곳까지 왔어.’


올해는 적어도 한 칸은 더 위로 이동해야 한다.


‘저 형도 이제 입단을 해야 할 텐데···’


그는 올해가 1조에서 3년째다. 2조로 강급 당하지 않고 대부분의 기간 동안 1조를 유지해냈는데도 입단을 못한 건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다.


‘그만큼 모든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겠지.’


1조는 가보지 않았지만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하다.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던질 각오로 대국에 임한다. 필사적이다.


최고 상위권 몇 명을 제외하면 매월 순위가 바뀐다. 그러나 그 멤버들 조차 승강급은 거의 1, 2조 내에서만 이루어진다. 특권과도 같은 재능을 타고 나서 그것을 유지할 노력마저 체화한 존재들. 연구생들 중의 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입단이라는 작위만 얻으면···’


그곳에서 전체적인 멤버 교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 가끔 한 명씩 새 얼굴이 보이는 정도다. 매년 2명 있는 입단과 나이 초과로 인한 퇴출이 가장 큰 변경 요인일 것이다.


‘연구생 고인물 파티라고나 할까. 그런 존재들이지.’


멍하니 허공에 시선을 두다 재국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살짝 웃음기를 보였다 빠르게 무표정으로 돌아간다.


'Good luck!'


이제 본신의 실력을 발휘해야 할 시간이다. 운이 덧붙여지면 아주 좋다. 테이블마다 살벌한 눈빛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장난기 많은 10대 소년들이 전사로 탈바꿈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사슴과 토끼를 닮았던 눈망울에 사자와 승냥이가 출몰한다.


‘남들에게 나도 저렇게 보이겠지? 예전 아래쪽에 있을 땐 순한 맛들도 가끔 있더니 윗 쪽 공기는 세월이 지날수록 살벌해지네. 나도 참! 이제 짬이 좀 찬 건가?’


이젠 이런 광경들도 눈에 들어온다. 불과 지난해만 하더라도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다. 오해하진 마시라. 떨었다는 게 무서워서 그랬다는 건 아니다.


‘흥분에 겨웠을 뿐이야. 마치 오르··· 그··· 좀 다른 종류의··· 음.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잖아.’


이윽고 대국 시작 신호가 떨어졌다. 테이블 마다 긴장을 땔감 삼아 타오르는 형형한 눈빛의 전사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돌 가린다는 걸 너무 거창하게 표현했나 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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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8 경화둘
    작성일
    24.08.03 12:56
    No. 1

    ai에 의해 각성한 재능은 언제 나오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1 OXY
    작성일
    24.08.03 20:02
    No. 2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문제는 회차가 진행될수록 서서히 나오게 될 겁니다. 50회 쯤에 외전이 준비되어 있는데 거기 각성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바둑에서 지식과 경험의 전달은 기보로 이루어지고, 각성은 그것이 매개가 되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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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2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6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2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5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0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4 4 11쪽
14 버블 24.07.23 310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5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0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7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2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1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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