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드라마

새글

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최근연재일 :
2024.09.20 14:15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5,291
추천수 :
190
글자수 :
331,590

작성
24.07.16 07:15
조회
611
추천
6
글자
12쪽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DUMMY

“무슨 책을 보고 공부 했는데?”


“그냥··· 이것저것 봤어요. 특히 묘 시리즈가 재미있더군요.”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 제목을 잘못 말하는 경우가 생길 거 같아 실수 예방차원에서 그 유명한 사카다의 명저를 끄집어냈다. 많은 수의 1급을 만들어 낸 전설의 비급이다. 대다수 아마추어도 제목 정도는 들어 봤고 직접 연구해 봤던 사람은 감탄하는 그런 책이 있다.


“허헛. 그래? 그럼 바둑은 누구와 뒀니? 집에 아빠가 바둑을 잘 두시나 보구나.”


“아빠랑 바둑 둔 적은 없어요. 그냥 인터넷으로 뒀어요.”


아버지라··· 사실 그 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별다른 기억도 없고 긴밀한 관계라고 느낄만한 물리적 시간도 많이 부족했다.


“뉴스톤에서?”


“뉴스톤이란 이름을 오늘 처음 들어봤어요. 월드 와이드 고(GO)라고 외국 사이트에요. 한국 사이트가 있는 줄 몰랐어요. 이제 거기서 둬야죠.”


모르는 척 했다. 괜히 아는 척 했다가 아이디가 뭐냐고 물어보면 곤란하다. 대국기록을 지금 바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슬쩍 모를 만한 이름을 댔다. 영어로 바둑을 GO라고 한다. 그래서 서구에선 이게 일반적이다. 일본어의 영향이다. 서양에 바둑보급을 그쪽이 먼저 했다.


“어헛! 세상 참 좋아졌네. 디지털 시대가 되니까 이런 일이 다 생기는 구나. 라떼는···”


입으로 하는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손의 대화 역시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상대는 꽤 속기였다. 나도 따라서 속도를 맞췄다. 빠르게 바둑판은 흑백의 돌들로 메워져 갔다.


‘뭐야? 흐물흐물 하네. 1급은 무슨···’


포석이 끝나고 전투가 시작될 무렵부터 상대의 말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속기로 일관하던 모습도 주춤해졌다. 하지만 오래 생각한다고 보이지 않던 수가 보일 리가 없다. 만일 그랬다면 바둑의 최고수는 나이순이었을 거다.


대부분 현대 프로기사의 최전성기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이었다. 아마 바둑 기사가 나이 먹는 걸 가장 아쉬워하는 1위 직종이 아닐까 싶다. 이 점 또한 마음에 든다. 내 어린 나이가 바둑 동네에서는 재능의 영역이다.


‘이 정도면··· 꼭 이겨야겠네.’


나 역시 어느 사이엔가 흑백의 조화로움에 빠져 들어갔다.


[사범님이 이기겠지?]


[당연히···]


[쟨 누구야?]


[나도 몰라. 새로 왔나 봐.]


바둑 내용에 정신이 쏠려 의식하지 못했는데 어느 사이에 관전자가 여러 명 생겨 있었다. 아이 서넛이 수근 거리는 소리가 언제 부터인가 귓전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전무인(盤前無人)이 깨어졌다.


‘거의 다 뒀어. 이젠 별 상관없지.’


바둑도 종반에 이르러 한두 집 짜리 끝내기 정도만 남았다. 공배가 메워지고 이윽고 대국이 끝났다. 결과는···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는데 내가 질 수 있겠어?’


승패는 계가 들어가기 한참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대국자들은 그것에 거의 근접한 결과를 알고 있었다. 승부의 확인은 요식행위일 뿐이다. 고수가 될수록 결과를 아는 시점이 빨라진다. 이것이 형세판단이다.


당연히 1급 운운하는 실력을 가진 상대가 몰랐을 리 없다. 뒤에 두어진 100여수는 상대가 아쉬움과 열 받음이라는 인간적 감정 과잉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과정 중에 발생한 사고였을 뿐이다. 마음 비우고 던졌으면 큰 바둑 되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이 인간의 바둑이다.


“조금 남겼네요. 후반에 맹추격을 하셔서 몸 사리다 겨우 이겼어요.(승부가 결정 났으면 빨랑빨랑 던지지 뭘 그렇게 용쓰고 있어? 손님 실수 바랐던 거야?)”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자리든 거기에 맞는 형식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적절한 마무리 인사를 건넸다.


‘바둑이란 게 던질 때 던지지 못하면 이런 더러운 꼴을 당하는 거지. 기분이 어떠세요? 크크큭.’


“허헛. 잘 두네. 그래도 덤이 있었으면 이건··· 음.”


쪽팔림을 무릅쓰고 아집을 부린 결과물이 확실하게 나왔는데도 상대는 별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태도다. 반면으로 흑이 네 집울 남겼다. 치수가 백이 5.5집의 덤을 가지는 호선이었다면 백의 1.5집 승이었긴 하다.


‘호선으로 뒀으면 내가 마무리를 이렇게 했겠냐구. 알 만한 사람이 억지를 부리고 있어.’


반집 차이가 나도 백 집 이상으로 이겨도 바둑의 승패는 똑같이 1승이다. 룰에 맞춘 대국이었을 뿐이다. 종반에 가장 확률 높게 이기는 쪽으로 판을 짰다. 그 시점부터는 몸을 좀 사렸다. 이 또한 인간 바둑의 특징이다.


이 판은 더 꼼꼼하게 신경 써 끝내기를 했으면 몇 집 더 남길 수도 있었지만 승패가 확연한 대국에서 그렇게 반면을 운용하는 건 바보짓이다. 한 집을 이기더라도 더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 인간은 인간을 그렇게 이겨낸다..


“그러게요. 정선이 아니었으면 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판세였죠.”


슬쩍 장단을 맞춰줬다.


“허헛. 그···”


승패에 초연한 듯 웃음을 보이지만 안색이 저렇게 붉으락푸르락 하면서 말끝을 흐리면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이런 상대에게는 굳이 반발할 필요 없다. 괜히 반발했다가 치수를 조정하자고 하면 머리 아파진다. 물론 상대의 실력을 보아하니 호선으로 바꿔줘도 내가 지지는 않을 것 같지만, 왜 편하게 이길 수 있는 길을 놔두고 미련하게 머리와 힘을 더 써야 한단 말인가!


‘히힛. 좋네. 아주 좋아. 좋은 봉의 자세야. 한 판 더 하자고 해 볼까? 아님, 여운을 남겨서 훗날을 기약해?’


자고로 봉이란 사골처럼 오래오래 우려먹어야 한다. 세상을 살면서 마음에 맞는 친구를 사귀기는 아주 어렵다. 그에 못지않게 나에게 많은 걸 퍼줄 수 있는 봉 역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인간관계라는 게 상대적이어서 내 사정과 형편에 딱 맞는 이런 좋은 인연이란 게 결코 흔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할까요? 초반에 백의 대 착각이 나와 판세가 어지러워졌죠. 그 이후로는 흑이 웅크리기만 했던 내용이라서 제 실력에 대한 시험으로는 적당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한판 더 해볼까요? 계속 그냥 두기는 밋밋하니까 이번 판에는 짜장면이라도 걸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심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건 봉을 대하는 적당한 태도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10살의 초딩이다. 나이에 맞는 어휘선택을 해야 하는데 위 내용을 어떻게 바꿔서 말해야 할지 상당히 어렵다.


이럴 땐 고전적인 방법을 택하면 된다.


‘PASS'


턴을 넘기면 된다. 상대의 반응을 보고 다시 대응을 하면 쉽다. 바둑에서는 이런 걸 응수타진이라 하는데 폴리곤 연산을 리얼타임으로 처리하는 플레이 스타일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은 얼핏 상상이 잘 안 되겠지만 라떼는···


이제 특별히 해야 할일은 없다. 예의 차리는 말은 이미 다했다. 바둑판 위를 어지럽히고 있는 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흑돌과 백돌을 분리해 돌통으로 옮겨 담는다는 뜻이다.


이제 기다리면 된다. 적당히 기분 좋아 보이는 천진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 정도면 상대에게 주는 자극으로는 최상이다.


‘글 가운데 자연히 천종의 곡식이 있다. 글 가운데 자연히 황금옥이 있다···’


대답을 기다리며 권학문을 흥얼거렸다.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 겪어 보니까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더라고. 책 봐서 남 주는 것 아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물론 같은 책을 봤어도 해석이 다른 사람은 언제나 있었다.


“한 판 더 둬 보자꾸나. 이번 판은 너무 이르게 나온 착각 때문에 그 뒤부터는 정상적인 수로 두어 나가기가 어려웠지. 그 걸로는···”


눈빛으로 돌을 옮겨 담는 내 손길을 재촉한다. 빨리 정리를 끝내고 다음 판을 시작하자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런데 말이 길다. 원래 꿀리는 것이 있으면 구차해지는 법이다. 기다리고 있던 반응이었다.


“아! 예. 선생님. 저도 그러고 싶은데··· 배고파요. 그냥 밥 먹으러 집에 갈래요.”


돌을 옮겨 담는 손길을 멈추지도 빠르게 하지도 않았다. 그냥 하던 대로 묵묵히 돌을 정리할 뿐이다. 상대의 리듬에 맞춰 줄 필요 없다. 이런 것이 선수활용이다. 주도권은 내가 가져야 한다.


‘거절이 너무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오는 것 같아? 몰라. 나 10살이라구. 원래 이 나이 때는 변덕스러운 게 정상적인 거야. 보통 애들 하는 짓 보면 한시도 가만히 못 있잖아.’


난 지극히 상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거다.


“뭐? 이런 차···암! 후우!”


내 대답이 터무니없게 느껴지는지 심호흡으로 감정을 다스리려는 모습이 안쓰럽다. 기분대로라면 내 뒤통수에 한방 날리고 싶을 거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얼마 전 까지 교실에서 나도 많이 그랬다.


화는 나는데 어디에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이 안 보일 때 주로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된다.


“짜장면. 그래 너. 짜장면 좋아하지 않니?”


돌 정리가 끝나기 무섭게 딜이 들어왔다. 적당한 타이밍이다.


“너가 아니라 재영인데요.”


“허억! 하··· 그래 재영이. 배고프면 여기서 짜장면 먹으면 되지 않을까? 너도 좋아하지? 그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이 선생님이 사 줄게. 짜장면도 먹고 바둑도 두고 천천히 여기서 놀다 가도 괜찮지 않을까?”


회유가 시작되었다. 원래 미친놈과 어린 아이는 상대하기 힘든 법이다. 둘의 공통점은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하다.


‘사주는 짜장면 보다 내기로 따서 먹는 짜장면이 더 맛있는데··· 하긴 애하고 짜장면 내기 하자고는 못하겠지.’


무엇이든 과하면 해롭다. 봉에게도 배려는 필요하다.


“그럼···”


“강 사범. 아직 대국 안 끝난 학생들이 좀 있는데 수업 마무리는 해야지.”


“어?”


방해꾼의 출현이다.


“아! 원장님. 그게···”


아무런 잘못 없이 애태우는 게 조금 안쓰러워 보여 못 이기는 척 승낙하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견제가 들어왔다.


“재영이라고 했지? 방해해서 미안하구나. 그 짜장면은 내가 사 주마. 강 사범이 아직 일 중이라서 말이다.”


구경꾼들 중에 아이들 외에 어른이 한 명 있는 건 봤는데 그게 이 바둑 교실의 원장이었던 모양이다.


‘헐! 아까비,’


입 안에 다 들어왔던 떡에 갑자기 날개가 돋아 훨훨 날아가 버렸다.


‘음. 아닌가? 어차피 짜장면이 없어진 게 아니잖아.’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어쩌고 하는 말이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보다. 과정은 상관없다. 짜장면만 먹을 수 있으면···


'짜장면은 고정이고 사범이 원장으로 바뀌는 거네. 뭐! 고용인 보다는 사장과의 대화가 낫겠지. NOT BAD야.'


조금의 귀찮음만 감수하면 된다.


바로 강 사범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 자리에 원장이라는 풍채 좋은 40대로 보이는 분이 앉았다. 바둑판 위에 놓인 백돌통을 그 앞으로 쓱 밀어 줬다.


“하하. 아니 아니···”


당연히 한판 하자고 앉은 줄 알았는데 상대가 손사래를 쳤다.


“안 둬요? 그럼. 왜 거기 앉으셨어요?”


“짜장면 먹어야지. 학원에 다른 공간이 없어.”


“예?”


이건 또 무슨 물건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 24.08.07 159 3 13쪽
32 입단이란 24.08.06 177 2 12쪽
31 나의 믿음은 24.08.05 160 3 13쪽
30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7 3 13쪽
29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3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3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7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3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6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1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5 4 11쪽
14 버블 24.07.23 311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6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1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8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2 3 13쪽
»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2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4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