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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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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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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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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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개성적인

DUMMY

주택가 담 벼락 너머로 개나리가 흐트러지게 피었다. 늘어진 줄기를 따라 노란색 꽃잎이 봄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린다.


‘오호!’


개나리의 꽃말 중에는 희망과 달성이라는 것도 있다. 생명력이 왕성한 꽃이라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눈에 착 감기는··· 지금 내게 아주 어울리는 좋은 꽃이야.’


아름다운 계절이다. 이렇게 마음을 조금만 다르게 쓰면 아름다운 세상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그동안 너무 각박하게 살았나 보다. 작년에도 분명히 이 길을 걸어 다녔을 텐데 전혀 못 봤던 풍경들이다. 마음의 여유가 이렇게 중요하다.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무중력 상태에서 유영하는 것처럼 거리를 떠다니다 도장에 도착했다. 규모는 작지만 아주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인격이 고매한 원장님이 계시는 곳이다.


‘물론 바둑 실력도 탁월하시지. 그건 기본이잖아.’


“뭐하다가 이제 나타나.”


츤데레 형의 사람이라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가끔 말이 좀 직설적일 때가 있다.


“뭐하긴요. 학교 마치고 바로 왔죠. 봄바람이 좋아서 거리를 좀 거닐었는데···”


“얼씨구. 어울리지 않게 무슨 봄바람 타령이야? 계단 조금 내려가는 것도 귀찮아서 밥도 배달 안 해주면 안 먹는 놈이 무슨··· 뭐? 거리를 거닐어? 정신 똑바로 차려. 안 하던 짓 하면 탈 난다.”


이 양반이 좀 많이 구식이라 기분과 느낌 이런 같은 감각적인 면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주로 이런 무미건조한 말밖에 못한다. 그래도 사람이 악의는 없다.


“인생에 무수히 많은 날이 있지만 다 같은 날이 있을까요?”


“뭐? 허허헛. 그래 그건 그렇지.”


이 사람의 좋은 점이다. 자신의 생각과 좀 달라도 합리적이라 생각하면 인정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그건 그렇고 어제는 왜 안 왔어? 리그전 복기는 해야 하는 거잖아. 그날 둔 바둑을 바로 복기하는 것과 다음 날 놓아보는 건 느낌이 다르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셈이야.”


이 사람에게도 오늘은 어제와 같은 날이 아닌가 보다.


“몇 번이라뇨. 원래 그런 말 한 적 없잖아요. 잔소리 같은 거 안 하시더니 오늘 따라 왜 이러세요? 나보고 하던 대로 하라더니 원장님은 왜 평소에 안 하던 걸 하려는 거예요?”


이 말은 진심이다. 내가 몇 년간 이 도장의 지박령이라도 된 것처럼 지낸 가장 큰 이유는 함 원장의 자유방임형 교육철학에 감화되었기 때문인데 이러시면 몹시 곤란하다.


“그랬었지. 그런데 올해부터는 좀 달라져야겠다고 마음먹었어.”


“왜요? 전 불만 없어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왜라니··· 너도 이제 입단해야지. 언제까지 어린 게 아니잖아. 이제 너도 중학생이야. 아직도 늦은 편은 아니지. 하지만 언제까지 시간이 네 편이겠니? 이제 새 마음을 가지고 성실하게···”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건 따를 수 없다.


“제 발전은 알아서 챙길 겁니다. 부족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건 알지. 하지만 그게 지금 좀 정체된 것 같으니까 내가 이러는 거잖아. 한동안 분위기를 좀 바꿔본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니? 일단 1조 들어갈 때까지라도··· 다른 원생들 스케쥴을 함께 소화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프로를 지망하는 보통 수련생들의 스케쥴이 어떤 줄 아는가?


09:00 부터 자체 리그전을 한 판 둔다. 끝나면 복기는 필수 12:00가 되면 밥 먹고 또 한 판 둔다. 역시 복기는 필수. 이후 사활과 최신 기보분석을 18:00 까지. 이러다 저녁 밥 먹고 다시 전체 인원이 모여 원장님과 오늘 둔 대국의 복기를 겸한 일종의 공동연구 시간이 이어진다. 개인별로 피드백을 받고 어쩌고 하면 21:00에 마치는 기본일정 정도는 가볍게 무시된다. 그래도 00:00 전에는 대충 끝내 주긴 한다. 다음날 그 짓을 또 해야 하니까.


. ‘학교? 음. 대개 안 가지.’


결석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학 자체를 거의 안 한다. 바둑 공부 시간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일반 학업은 대개 중도포기 한다. 직업군들 중에 평균 학력을 따지면 바둑기사는 아마 저 아래쪽일 것이다.


과거엔 고학력을 가진 기사가 간혹 있었다. 다양한 재능들이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프로기사가 되었다. 요즘은 그런 것 없다. 이건 한국기원 연구생 제도가 활성화 되면서 생긴 부정적인 면이다.


고학력이 좋고 저학력은 좋지 않다 이런 말이 아니다. 바둑계의 가장 중추가 편중되었다는 의미다. 어떤 조직이든 순환이 이루어져야 생명력이 길다.


물이 고이거나 생각이 치우치면 어떻게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알지만 스스로 그것을 교정하긴 어렵다. 대부분의 인간에겐 자기 일이 되면 인식 장애를 일으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시야가 좁아질수록 더하다.


도장은 일종의 기숙학원이다. 강요는 아니지만 지방 출신은 100% 원장님 댁에서 숙식을 하고 서울에 집이 있는 원생의 일부도 그렇게 한다. 하루 24시간 모두 바둑공부를 위해 투자된다. 자고 먹는 시간 역시 그것을 보조 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동안 난 일종의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들의 스케쥴에 함께 참여할 때도 있었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난 그 동안 일종의 방치 상태였다고나 할까. 어쨌든 누가 그걸로 시비 걸지는 않았어. 천재 이미지가 상당히 도움이 되었지.’


어쩌면 바꾸자고 하는 그런 식의 생활이 빠른 기력 증진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해보지 않았으니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전에 내가 그 과정이 주는 스트레스에 못 견딜 것 같다.


‘그리고 난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긴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단체 생활에 들어가면 당연히 수시로 내가 원할 때 시간 내기는 어렵지.’


지금은 아직 핸드폰으로 갖가지 일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음. 말씀하시는 것 생각 좀 해 볼게요.”


“그렇게 말하지 말고.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거 싫다는 뜻이잖아. 너도 이제 치고 나가야 할 때가 되었어. 아니, 네 기재를 생각하면 좀 늦었지. 이제 방법을 바꿔볼 때가···”


“네?”


어째 분위기가 수상하다. 아무리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해야 한다지만 이건 오버가 심하다. 내가 생각해보겠다고 한 건 다음 월초 쯤 이번 리그전의 성과가 나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으리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리그전의 결과를···”


“그래 그게 문제야. 실망이 크겠지만 너무 낙담하지 말고. 평생 둬야 하는 바둑 한두 판 질 수도 있지. 심기일전해서 더 노력하면 돼.”


“네? 져요? 제가요? 무엇을···”


주행 중에 바퀴가 헛도는 느낌이다.


‘설마 내가 어제 저녁 때 도장에 안 나온 걸 리그전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건가? 애들이 알리지 않았나?’


이제 우리 도장에는 연구생이 나 말고도 여러 명 있다. 분명히 누군가는 어제 대국 결과에 대해서 말했을 텐데 이런 반응이라니···


“어? 어제··· 음. 혹시 이겼니?”


“예.”


“두 판 다?”


“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백준기도 있었잖아.”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상당히 기분 나쁜 말투다.


‘아니 이 아저씨가 내가 지는 게 정상인 것처럼 말하네. 백준기가 한 때 잘 나가긴 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3조잖아. 하강세에 들어선 그 보다 지금은 내가 낫다고. 내가 아래에 놓일만한 사람이 아니라니까?’


함 원장이 과거에 너무 얽매인 것 같아 짜증은 나지만 그러려니 해야지 어쩌겠는가! 승리는 사람을 아주 너그러워지게 한다. 곧 짜증은 사그라졌다.


“음. 저도 잘 느끼지 못했는데 제가 조금 달라졌나 봐요. 모르셨어요? 어제 제 리그전 결과?”


“그게··· 어제 내가 상가 집 갈 일이 있어서 새벽까지 거기 있다가 들어오는 바람에···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알 거야. 요즘은 주변에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많아서···


말이 길어지는데 제대로 된 해명이 안 된다? 이건 빼박이다. 이해한다. 중년의 남자에게 가끔 해방구는 필요할 때가 있다.


‘주말이라··· 우리야 요일이 관계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만나는 그 누군가는 휴일이어야겠지. 친구들? 어딜 갔었지? 크큭.’


더 파고들고 싶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프라이버시라는 건 중요하다.


“험.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기보 좀 놓아봐.”


이런 순간이면 의례 나오는 말 돌리기가 시전 되었다. 왜 안 나오나 싶었다. 나도 필요했던 일이기에 두말하지 않고 바둑판이 놓인 테이블로 이동해 주르륵 어제 둔 바둑을 재현했다.


“여기서 왜 하변을 보강하지 않았지? 이 쪽이 크지 않았을까? 물론 중앙에 파고든 수 역시 나쁘다고 말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넌 원래 어음보다 현찰을 좋아하는 쪽이잖니. 하변을 선택하는 게 네 스타일에 맞는 행마인 것 같은데···”


“그런가요? 듣고 보니까 그러네요. 왜 선택이 그렇게 된 건지는 설명이 좀 어려워요. 다만 그 때는 중앙 쪽이 더 급한 자리인 것 같아 보였죠.”


보통 실리가 당장 눈에 보이는 곳은 큰 자리다. 급한 자리는 내 돌의 안정을 도모하는 곳이나 상대의 발전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바둑 격언에는 큰 자리보다는 급한 자리에 우선 두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내 약점을 보강하며 참거나 상대의 약점을 추궁하는 것이 길게 보면 더 승리에 가까운 길이라 풀이한다.


‘다 추상적인 표현이라서 미안한데 사람의 방식으로는 이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되어서···’


AI처럼 저 자리에 두었을 때 승리확률이 55.7% 다른 곳은 55.3% 이런 계산이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제한시간 30분 짜리 준속기였다.


“큰 자리보다는 급한 자리가 눈에 들어왔어요. 아니 그쪽이 급해 보였어요.”


수의 득실에 관한 판단은 아주 어렵다. 종합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다. 나 역시 그 자리가 왜 급하게 챙겨야 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제1감이었니?”


머릿속에서 면밀하게 수에 대한 검토를 하기 전 제일 먼저 스치듯 눈에 들어오는 자리를 그렇게 부른다.


“예.”


“확실히 네가 좀 변하긴 한 것 같아. 나도 정확하게 득실은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이 자리가 내게 일감은 아니었지. 눈에 확 들어오는 자리는 아닌데 네 말 듣고 자꾸 보니까 상당히 그럴 듯하게 느껴지긴 하네.”


내 바둑은 알게 모르게 함 원장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가르침을 구할 수 있는 사람 중에 그가 가장 강자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이게 좋은 걸 까요? 혹시 일시적으로 기세를 타서 안 보이던 게 보이는 걸까요?”


정말 진지한 조언이 필요했다. 과감과 무모는 한 끝 차이다. 나로서는 내 스타일 변화가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판단할 수 없다. 주관이 배제된 냉정한 평가를 원했다.


“토요일부터 시작된 네 판의 내용은 제각각 이었지만 중요한 승부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건 네가 실리의 확정을 서둘지 않았다는 거야. 확실히 작년과는 눈이 좀 달라지긴 한 것 같네. 의식적으로 그런 건 아니지?”


“예. 그런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가장 좋아 보이는 자리를 선택한 거죠.”


“성훈이랑 겨울에 툭탁 거릴 때 좀 뭐라고 하려다 참았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잘 한 짓 같기도 하고··· 이것 참! 이래서 바둑이 재미있어.”


달라는 답 대신 엉뚱한 감상이 튀어나온다.


‘하아! 정말··· 어쩌겠어. 아쉬운 놈이 참아야지.’


“그러셨군요. 그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다른 애들과 합류하라고 한 거 미안하다. 그 말 취소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나이 들면서 감이 죽었나 봐. 내 알량한 경험으로 널 재단하려고 하다니··· 알아서 이렇게 잘 크고 있는데···”


갑자기 함원장의 자아성찰이 시작되었다.


“아···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하긴 한데 봐주신 바둑에 대해서···”


“그거? 바둑 내용에 대해서는 답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니. 결과가 증명하겠지.”


이건 이겨서 증명하라는 뜻이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다고요. 결과 보고 말해주겠다고 코치를 하면 어쩌자는 거냐구!’


이런 게 자유방임 교육의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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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 24.08.07 159 3 13쪽
32 입단이란 24.08.06 177 2 12쪽
31 나의 믿음은 24.08.05 160 3 13쪽
30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7 3 13쪽
»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3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3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7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3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6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0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5 4 11쪽
14 버블 24.07.23 311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6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1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7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2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1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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