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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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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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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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0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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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되돌림의 미학

DUMMY

복기란 두었던 바둑을 승부 후 다시 놓아 보는 것이다. 보통 바둑 한판이 끝나기 위해서는 흑백의 돌이 번갈아가며 바둑판 위에 약 200~300번 가량 놓여 져야 한다. 이 과정을 되돌려가며 중요 장면마다 각자가 구사한 전략과 전술에 대해 감상을 교환하는 것이다.


이것의 장점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바둑을 보는 관점이 지극히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걸 기풍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복기를 통해 다른 관점에서의 의견을 들음으로서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즉 중립에 가까운 관점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20년 후 AI라는 물건이 나오면 의논의 주체 자체가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이것은 보통 아마추어들이 바둑을 관전할 때 가장 놀라워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사실 라이트한 바둑 팬들에게 바둑 관전은 대체로 재미는 적고 지루함이 많은 일이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대국자들의 생각의 깊이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해설자가 있기는 하지만 해설 역시 잘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해설자가 대국자 보다 실력이 뛰어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해설자가 정확하게 판세를 이해하고 있는지 조차 의심이 드는 순간이 생기기도 한다.


혼란스러움에 절어 관전 시 대부분의 시간이 혼수상태다. 아주 짧은 충족감의 순간만이 존재한다. 그런데 복기는 아주 다르다.


일단 그들의 눈에는 흑백의 돌에 특별한 표시가 되어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순서에 맞춰 300번의 수순을 재현할 수 있는지 아주 신기하게 보인다. 게다가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장면마다 참고도를 몇 개씩 보여준다. 그 장면에서 왜 그렇게 두었는지의 이유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쯤 되면 해설도 들을만해진다. 전혀 이해가 안 됨에서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함으로 바뀐다.


‘사실 복기는 바둑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거야. 수순을 외우는 게 아니라 과정을 기억하는 거라서···’


계단 오르기에 비유하면 한 계단 오르고 나서 다음 계단이 보이는 건 당연한 거라고 밖에 설명을 못하겠다. 보이는 다음 계단을 디디면 되는데 수순이 왜 헷갈리겠는가!


‘그게 안 보인다고? 그건 본인의 눈이 이상한 거지. 병원을 가보던지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에고고··· 큰 돌은 던지지 마라. 작은 거만···’


아무튼 복기를 하면서 말을 돌려가며 확인한 결과 원장은 200수 언저리에서 우세를 확인한 것 같다. 내가 100여수 동안 미로를 헤맬 때 그는 지도를 보며 웃고 있었다니 억울함의 눈물이라도 쏟고 싶다.


“너 바둑이 뭐라고 생각하니?”


또 이런다. 복기만 합시다. 손 빼려고 하지 말고 응수를 좀 하란 말이다. 이 장면에서 그런 질문이 왜 나오는 건지···


“물음이 너무 포괄적이잖아요. 구체적으로 물어야지 대답을 하지요. 초등학교 3학년에게 그런 식으로 묻는 게 어디 있어요?”


“그렇구나. 내가 말을 좀 잘 못 하긴 한 것 같네. 음. 포괄적, 구체적 이런 단어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꼬맹이가 흔한 게 아니라서 말이다. 조금 헷갈렸나 봐.”


“새삼스럽게 말꼬리 잡지 마세요. 뭘 몰랐던 것처럼 그러세요.”


응수타진에 순순히 응하다보면 대세를 그르칠 수가 있다. 승부는 누가 먼저 상대의 둑을 허물 수 있냐의 싸움이다. 일단 물길이 트이는 순간 승부의 추는 확 기울어진다.


“그러니까 과거로부터 수많은 보드 게임이 있었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데 바둑이 그런 것들과 무엇이 다르기에 수천 년간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다 생각하냐고 물은 거란다.”


‘흐흣. 어이가 없네.’


이건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완강히 저항했지만 상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고집을 세우고 있다. 이건 조금 풀어 말하면서 부분적으로 굴복한 척만 한 거다.


‘에이··· 항상 이런다니까.’


조금 고민이 생겼다.


‘뭐라고 해야 하지?’


이 게임을 만들어 낸 사람들은 도덕경(道德經)과 같은 세상의 이치가 반영되고 음양(陰陽)이 뛰어놀며, 인간 세상의 굴곡을 이루어 내는 심리적 사회적 요인을 반상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고 그것을 전쟁과 비교하기도 하면서··· 우칭위엔(吳淸元)은 조화(調和)라고 했지요. 바둑의 논리적인 설명과 비유적 이해가 조화라는 개념으로 융합할 수 있으며 바둑에 관한(about) 개념이 바둑의(within) 개념들을 이끈 것으로, 철학이 과학을 이끈 예와 비교할 수 있다란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어요.’


뜬금없게 생각되는 물음이지만 설명하려고 들면 할 수 있다. 철학적 사고와 논리가 바탕이 된 나름 진지한 풀이가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지금 진짜 이렇게 하면 선을 넘는 것이라는데 있다. 물론 지금도 적지 않게 선을 넘나들고 있지만 그 정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마도 지금 내 속에 있는 말을 하는 순간 난 똑똑하고 조숙한 아이를 넘어 이질적이고 섬뜩한 존재로 비춰질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존재를 인간은 결코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 미지(未知)는 대개 공포를 유발했다. 이건 역사가 증명한다.


“답을 낼 수 없는 거죠.”


“뭐?”


단순하게 가야 한다. 그리고 이 기회에 털 수 있는 건 털고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궁금하시다는 건 알겠는데 하필이면 왜 어리디 어린 저에게 그런 걸 물으시는 거죠? 제가 배움이 짧아서··· 아시다시피 제가 학교에서 공부한 게 인생에서 총 3년 밖에 안 되잖아요. 그런 제가 뭐 그리 깊은 지식이 있겠어요?”


슬쩍 질문을 비켰다.


“나도 그런 점은 감안하고 묻는 거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의 의견을 듣고 싶은··· 넌 그러니까··· 기재도 출중하지만 그 외에도··· 음. 이걸 통찰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넌 좀 다르잖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건 아마 공자나 맹자가 10살이면 너처럼 말하지 않았을까 싶어.”


‘헉! 뭐? 공자? 이 아저씨가···’


언제는 날개 달린 장수 민담을 이야기하더니 이제는 성인(聖人)을 호출한다. 살다보니 별 소릴 다 듣겠다. 그런데 분명히 오해에서 비롯된 말인데 그것이 나에게 나쁘게 작용할 것 같지가 않다.


‘흐흣. 이거 내가 요상한 유형의 천재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네.’


그런 인식으로 나를 봐주면 이해하고자 하는 범위가 대폭 늘어난다. 좋다. 너무 좋다. 하지만 너무 나대면 안 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겸손한 언행으로 최대한 거부감을 줄여야 한다.


“제가 또래 아이들과 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건 걔들이 스타를 할 때 전 인터넷의 바다에서 좀 다른 방식으로 놀았기 때문이에요. 시대를 잘 타고나 지식습득이 용이했을 뿐 사고의 깊이가 특별한 건 아니에요. 그런 성인과 제가 어떻게 감히 비교가 되겠어요. 전 그냥 웹 서핑으로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많은 아이일 뿐이랍니다.”


정말 지금이 그나마 기술의 발전이 좀 이루어진 시기라 다행이다. 지식이나 정보 습득의 출처도 밝힐 수 있고 적어도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제약은 전시대에 비해 훨씬 덜하다.


‘모든 건 인터넷 때문이야.’


이것저것 핑계 대기가 너무 좋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 많은 똑똑하고 조숙한 아이 이게 현재의 내 포지션으로는 딱이다. 얼떨결에 이루어진 캐릭터이지만 이 정도면 내 주변인들에게 나름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전에도 말했었지만 너무 많은 걸 의식할 필요 없어. 여기 있을 때는 편하게 지내려무나. 나나 강 사범이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야.”


‘오! 쪼끔 감동할 뻔···’


인간관계란 이렇다. 이익을 전제로 인연이 시작되었어도 어쩌다 감정의 교류가 그것보다 우선될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감정을 잘 컨트롤해서 이 우호적 관계가 가급적 길게 가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이젠 마지막 못질이 남았다. 질문에 답해줘야 한다. 똑똑한 아이답게


“다른 이야기가 좀 길어졌네요. 바둑 이야기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모든 게임은 엔딩이 있잖아요. 그런데 바둑은 그게 없지요.”


“승부의 끝은 있잖니? 대국이 끝나서 승패가 갈리는 건 어떻게 설명할래? 그게 엔딩이 아니면 뭐냐?”


내 말이 다소 엉뚱하게 느껴진 건지 바로 반박이 나왔다.


“부분적으로 보면 그렇죠. 하지만 끝이라고 표현하려면 그 과정에 대한 해석이 정확히 나와야 하는데 바둑은 사실 이긴 사람이나 진 사람이나 구경한 사람이나 왜 대국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잖아요.”


“패착, 승착 이런 표현들을 하는 게 다 부질없는 짓이다, 뭐 이런 생각이니?”


“비슷해요. 흐름이니 기세니 돌의 체면을 살려야 한다는 등 그런 게 다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해요. 잘 모르니까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거죠, 누가 그랬잖아요. 만일 바둑의 신이 있다면 그의 눈에는 정수와 악수 밖에 안 보일 것이다.”


“네 논리대로 생각하면 고수와 하수는 별 차이가 없는 거네.”


꼭 반발을 한다. 상대의 의도대로 해주기 싫어하는 건 바둑장이의 속성이다.


“분명히 차이가 있죠. 그 과정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더 많이 이기겠죠. 하지만 그걸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낼 순 없잖아요. 흔히들 바둑이 세다고만 표현하지요. 그 정도가 사람이 할 수 있는 바둑이겠죠.”


초일류라고 하는 기사들의 전성기를 봐도 그 때 승률은 7~80% 수준이었다. 절대적으로 세다면 그 보다는 훨씬 더 높은 수치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남들에 비해 좀 더 진리에 접근했지만 그걸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는 그런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둑의 신이 현세에 강림하면 그는 다르게 표현할 거다 이거냐?”


“그거야 모르죠.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다만 신이 있다면 그 눈에는 상대의 수가 48.5% 불리, 50.6% 유리 이렇게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런 신은 생각보다 빠른 미래에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크크큿. 역시 젊은 사람은 상상력이 풍부해. 네가 대단하다는 게 말을 나누면서도 계속 느껴지네. 내가 살면서 이렇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어린 친구와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눌 줄 어떻게 알았겠냐?”


“그거야. 원장님께서 사람을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대하기 때문이죠. 저도 평소에 이런 식으로 말하진 않아요.”


“뭐? 설마 부모님과도?”


갑자기 함 원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더 조심해야죠. 우리 애가 이상해요. 이런 말 들으면서 병원에 들락거리고 싶진 않으니까요. 언젠간 자연스럽게 아실 날이 오겠죠.”


방점을 찍었다.


“허헛. 너 답답해서 어떻게 사니?”


조금 말투가 이상하다. 조금 촉촉해졌다고나 할까! 이건 세상과 단절된 듯 보이는 어린 천재에 대한 측은지심일까?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원장님 같은 분이 생겼잖아요.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살아야지요.”


원래 내가 이렇게 소박한 사람이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바둑계만 보더라도 어린 나이에 튀어 보이던 사람이 적지 않았어. 지금의 일인자는 운동화 끈도 스스로 못 묶는다고 이상한 시선을 받았었고 그 전에는 아홉 살의 나이로···”


어디선가 좀 들어본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날 위로하는 용도로 각색되어 나오는 내용이 아주 새롭게 다가온다. 그런데 거론되는 사람들이 다 일인자다. 그런 기사들과 내가 동급처럼 취급되어 이야기 되다니 가슴이 좀 두근거린다.


‘이러다 진짜 나 뭐 되는 거 아냐?’


이왕 결심한 것 열심히 해보긴 해야 할 것 같다. 복기 후 반상을 정리하는 손길이 한결 가뿐하다.


함 원장은 한동안 대회 관계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최강부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추천이 있어야 한단다. 32명 출전자들 대부분이 바둑 전문도장 출신들이라 조금 조정이 필요했다고 그 내용을 얼버무렸다.


‘대충 알아들었어. 출전권 확보를 위해 인맥활용 했다는 게 되게 부끄러운가 보네. 기득권과의 투쟁과 타협. 나 그런 거 웬만큼 이해해요. 살다보면 때로는 몸에 때가 묻기도 하는 거라···’


세상살이가 특별한 게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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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입단이란 24.08.06 177 2 12쪽
31 나의 믿음은 24.08.05 160 3 13쪽
30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7 3 13쪽
29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2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2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7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3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6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0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4 4 11쪽
14 버블 24.07.23 311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6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1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7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2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1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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