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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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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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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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수련

DUMMY

‘이게 잘 하고 있는 짓인지 모르겠네.’


첫 방문 이후 바둑교실에 2주째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그래도 처음 세운 계획에서 많이 벗어난 건 아니니까.’


그날 바로 부모님께 함 원장이 직접 전화를 했다. 두 분은 좀 얼떨떨한 반응이었는데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갑자기 누구에게 아드님이 천재 비슷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장사 속으로 하는 말이라 의심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 부모 된 심정이다.


그날 우리 모두 무엇에 홀린 것처럼 함 원장 진영에 합류하고 말았다.


‘아주 정상적인 과정을 거친 결정이었지.’


부모님은 굳이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으셨다. 무엇인가 꺼림칙한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도 별다른 반발 없이 바둑교실에 등록을 시켜주고 열심히 해보라는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 뒤부터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침 9시에 나와 혼자 앉아 책을 본다. 겁나게 두꺼운 정석사전이다. 점심을 먹고 또 본다. 같은 책이다. 그래도 저녁은 집에 가서 먹는다.


‘개인 지도를 할 것처럼 모양새를 내더니··· 개뿔···’


페인트 모션에 완전히 넘어간 것 같다.


‘어쩌면 바둑 대회 어쩌고 하는 게 미끼였고 그 자체가 영업 전략이었나? 설마 학원비 몇 만원 때문에 그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


덜컥 의심이 들었지만 사실 그건 말이 안 된다.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손해를 보면서 치는 사기란 게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미친 척하고 이 짓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무료하진 않아서 좋기는 한데···’


원장이 진단한 내 바둑은 포석감각 보통. 모양의 맥을 보는 건 준수. 기본기 너무 떨어짐이었다.


“바둑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처음 보는 장면이 나오더라도 나름대로 길을 찾아 갈 수 있지. 그게 감각이고 실력이잖아. 그런데 승부는 전혀 다르지. 승부에서는 실력을 제한시키는 요소 일테면 정해진 대국시간, 긴장감 이런 것들이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야.”


“그래서요?”


“이거 외우라고.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수순을 외워. 이런 걸 잘 아는 게 기본기야. 넌 그게 부족해. 사활도 같이 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좀··· 그건 나중에 천천히 하자.”


여러 권으로 된 두꺼운 책 한질을 던져 주고 가버렸다. 그 뒤로는 원장을 통 볼 수 없었다.


지금 보고 있는 책에는 귀와 변에서 일어나는 정석이 약 3만개 쯤 나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형태는 찬찬히 생각하면 뒤에 일어나는 변화를 내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낼 수 있지만 실전 대국에서 그렇게 느긋하게 수읽기를 할 수는 없다.


기본적인 변화에 대해 미리 알고 있는 것과 그때그때 일일이 찾아야 하는 건 실력여하를 떠나 실전대국의 승패에 아주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된다.


대국 시 주어진 제한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수읽기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면 좋다. 모른다는 경우의 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이득이다. 이것이 지금 내가 이 짓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다. 이게 기본기란다.


‘들어보면 그럴 듯한 말인데···’


공감은 되는데 솔직하게 말해 하기가 싫다. 오전만 지나면 몸이 배배 꼬인다. 현재 내 집중력의 한계는 그 정도인 것 같다. 면벽 수련이 따로 없다. 다행이 점심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나온다.


‘그럼 좀 덜 지겹··· 으응? 헉! 이럴 수가··· 내가 트롤들을 기다리다니··· 미친 거 아냐?’


아무래도 요즘 수련의 강도가 너무 높았나 보다. 심신이 지쳐 상황 판단능력에 심각한 에러가 생긴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일단 프로의 문을 두드려 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문제없다. 너무 즉흥적인 충동으로 벌인일이 아니었냐고 반문해 봐도 그 최초의 생각에 논리적 결함은 없었다.


‘당연하지. 바둑 프로 기사가 되겠다, 이게 아니라 시도해 보겠다잖아.’


이 두 가지 명제는 엄연히 다른 거다. 시도해 보는 건 하다가 안 되어도 괜찮다는 의미다. 내가 그 시도를 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게 전혀 아니다. 난 구체적으로 그 한계기간을 정해놓았다.


일본 바둑계 최전성기를 대표하는 기사들을 언급하면 꼭 나오는 이름이 있다.


그는 최고의 실적을 가지진 못했지만 대중적 인기는 최고에 버금갔다. 중앙 경영을 중시하는 호쾌한 바둑으로 일세를 풍미한 그 이름도 유명한···


‘자꾸 일본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 좀 그런데··· 기전이 오랜 기간 활성화되었던 지역이 거기 밖에 없어서 그래.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가 거기 였지,’


그 기사의 아버지가 의사였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기재를 보이는 아들에게 계속 바둑을 시키는 게 그의 장래를 위해 옳은 일인지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바둑과 같은 예체능계는 승자독식의 세상이다. 그래서 일류프로가 되지 못하면 프로가 되지 못한 것 보다 인생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사서 걱정한 것 같다 싶기도 한데 자식 일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란 게 그렇다.


‘그래서 최정상급 기사들의 평균 입단연령에 대해 조사를 했지. 그 결과 만 14세까지 전력으로 지원하고 안 되면 깨끗하게 포기하는 걸로 결론을 냈어. 프로기사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기위해선 그 정도 기재는 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거야.’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딱 그 정도가 좋다. 중학교 정도까지 노력해 보고 안 되면 포기 할 거다. 만약 입단에 실패할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 정도라면 다른 방향으로의 노선 변경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2회 차가 그 정도의 어드밴티지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아무리 기본학습에 소홀했다고 하더라도 중학교 교과과정 정도는 언제든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 결정의 배경이 되었다.


아무튼 잘 안되면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은 일을 굳이 시도해보려는 첫 번째 이유는 현재의 내가 도저히 학교생활에 적응 할 수 없어서이다.


‘의무교육을 회피할 방법이 없잖아. 그래서 제도의 통제를 조금이나마 느슨하게 받을 수 있는 예체능을 방패삼아서··· 대충 무슨 뜻인지 알겠지?’


두 번째는 진지하게 내가 프로기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나이 쉰이 넘어서 바둑이 늘어? 아무리 미쳐 몰두해도 안 되는 놈은 안 되는 게 그거라고.’


젊어서 1급이 되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는 어렵다. 이건 상식이다. 그런데 난 그 상식을 넘어서는 경험을 가졌다. 그건 때를 놓쳤을 뿐 내 기재 자체는 상당히 좋았다는 뜻이다. 이제 어린 몸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 상황이 받쳐주는데 솔직히 복권 한 번 긁어보고 싶다.


세 번째는 만일 프로가 될 수 있다면 새 인생 설계에 필요한 시드머니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점이다. 10대 아이의 몸으로 억 단위의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이것이외에 무엇이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거의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빠른 시간 내에 프로가 될 수 있다면··· 모든 계획의 아귀가 딱 맞아진다고. 그건 프로로 성적을 못 내도 상관없어. 일단 되기만 하면···’


과거 바둑은 오랫동안 기예에 가까운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기도(棋道)라고 칭했다. 스포츠라고 불리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예술은 공연을 하면 당연히 관람료 등의 명목으로 공연자가 돈을 받는다. 바둑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약 10년 동안은 그 상태가 유지된다. 이 시기엔 프로가 바둑을 두면 대국료라는 명목으로 승패에 상관없이 무조건 돈을 받았다.


‘2010년 정도부터 대국료 제도가 없어지고 거의 모든 기전들이 상금제로 운영되지. 상금은 본선 진출자에게만 주어져. 그 때부터는 예선에서 떨어지면 수입이 제로라고.’


상금제로 바뀐 이후 본선 멤버가 되지 못하면 피곤한 인생으로 전락하겠지만 그전까지는 매년 십여 개가 넘는 기전에 출전해 무조건 10대의 나이로는 벌기 어려운 금액을 보장받는다. 예선 첫 판에 져도 소정의 대국료를 받을 수 있다. 나에게 그 정도면 충분하다.


‘가끔 이길 때도 있을 거잖아. 그거 모아서 집 살 거 아니라고. 2010년 이후에는 그런 상금 따위는 신경도 안 쓸 만큼 부자가 되어 있을 거야.’


나 생각 없는 놈 아니다. 이건 성공과 실패의 경우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나름대로 꽤 멋진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공부 많이 했니?”


드디어 어느 날인가 불쑥 원장이 나타났다.


“열심히 하긴 했어요.”


지난 2주간 바둑 한 판 못 뒀다. 이 바둑교실에서 나와 둘 수 있는 수준이 되는 사람은 강 사범이 유일한데 원장은 그에게 나하고 대국을 하지 말라고 했단다.


‘애들하고 두면 되지 않냐고? 아이, 말이 되는 소리를··· 허헛. 그냥 웃고 말아야지.’


굳이 두려고 했다면 인터넷 대국을 하면 되었지만 코치가 선수에게 경기 전에 하지 말라는 걸을 그렇게까지 해서 하고 싶진 않았다. 원래 난 선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사회인이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대국을 할 수 기회가 생겨서 아주 반갑다. 원장의 실력이 기대된다.


“10초 바둑이다. 무조건 10초에 한 수씩···”


“네?”


2주일 간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갑자기 나타나서 바둑을 두자는 것 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이것까지는 안 되겠다. 보통 속기도 아닌 초속기로 두자니 이건 무슨 도깨비 놀음을 하자는 건지 정말 동의도 안 되고 하고 싶지도 않다.


10초 바둑은 머리 비우고 두자는 건데 난 그렇게는 못 한다. 그건 사람의 도리에 어긋난다. 원래 사람이란 게 생각이란 걸 하고 살게 되어 있다.


‘호모 사피엔스 몰라?’


일부러 그걸 제한한다는 건 천리(天理)를 거스르는 일이다.


“8강 까지는 제한시간 5분에 40초 3회라고 들었는데 왜 10초 바둑을 둬야 하죠? 대회 룰에 맞춰 연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람은 합리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말과 행동이 평소에 나와야 한다. 현재의 나를 평가하는 기준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내 언행이다. 그런데 그런 걸 싹 무시하고 아무 생각 없이 두자니···


“생각할 여유가 없어야 쌓여진 실력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거야.”


“그거야··· 음.”


코치가 그렇다는데 굳이 아니라고 말하기가 좀 그렇다.


‘에이, 다 모르겠고···’


복잡한 생각을 하기엔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내가 불리한 조건인 건 틀림없다. 어쩌면 지금 내 행동은 치수 조정을 원하는 본능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것까지는 아닌가? 그래도 10초면··· 그냥 재미로 한번 해보는 거면 몰라도··· 지금은 대회 대비 훈련을 해야 하는 거잖아.’


대국을 기대하던 마음이 이런 식으로는 두기 싫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솔직히 좀 짜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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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 24.08.07 159 3 13쪽
32 입단이란 24.08.06 177 2 12쪽
31 나의 믿음은 24.08.05 160 3 13쪽
30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7 3 13쪽
29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3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3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7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3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6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0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5 4 11쪽
14 버블 24.07.23 311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6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1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 면벽수련 24.07.18 428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2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1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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