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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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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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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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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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닿지 않는 그 어딘가

DUMMY

우아앙- 흐흐흑-


정말 아이처럼 펑펑 울어 버렸다.


“재영아. 괜찮아. 4강이면 엄청나게 잘 한 거야. 사실 3학년이 6학년에게 이기는 게 이상한 거라고. 그런데도 넌 세 번이나 이겼잖아.”


‘원장님 당신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그래. 재영아. 원장님 말씀이···”


부모라고 자식의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나의 이 억울함은 절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내 최고의 날에서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이런 악몽을 겪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바둑 둔 지가 몇 년인데··· 어쩌다가··· 안 돼.’


큰일이다. 다시 감정이 격해지는 것 같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모두들 위로 하는데 그까짓 패배 쯤 나도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고 싶다.


‘하아! 그런데···’


우아앙- 흐흐흑-


모짜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리의 마음이 이런 거였을까? 대국 상대의 찬란한 재능에 완전히 압도된 나머지 나의 존재가치가 의심될 지경이다. 넋 놓은 지금 상황이 엄청나게 부끄럽고 내가 굉장히 하찮게 느껴진다.


‘진 것이 억울하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질만했다. 상대의 실력이 확실히 나보다 나았다. 누구도 두는 모든 판을 이기지 못한다. 승리에도 익숙하고 그 만큼 많은 패배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건···’


이번에 최강부에 출전한 몇 안 되는 5학년 중 토너먼트의 유일한 생존자가 내 준결승 상대로 정해졌을 때 다들 나쁘지 않은 대진이라고 했었다.


‘기중 낫다고 하더군. 그런데 그게 김정호였어.’


지도 만든 사람 말고 그··· 나 같은 아마추어가 이름으로 바로 알 정도면··· 그래 맞아. 오성 화재배, 추국배 등등 세계대회 우승만 6회에 달하는 그 김정호.


가늘고 길게가 아니라 두텁고 길게 프로 생활을 했던 기사. 보통 20대 중반에 끝난다는 전성기가 30대 중반 이후까지 이어졌던 그 탑 클라스.


‘내심 찔끔했지.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만일 프로가 된다면 그와 동시대를 함께 걸어가야 하고 조금 뒤엔 박서진까지 나오게 되는데 피하고 말고 할 수가 없는 상대인 거야.’


굳은 결심을 했다. 어차피 이 세계는 밟지 못하면 밟힌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아직 실력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시기인 지금이라면 이길 가능성이 좀 있지 아닐까? 더군다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필승의 초식이 건재하다. 어제 수급 세 개를 베어낸 흥분이 채 식지 않았는데 새로운 사냥감은 더 탐스러워 보였다.


바둑은 처음부터 잘 풀렸다. 김정호는 아무 대비 없이 나와의 대국을 맞이했음이 확실했다. 예의 대세력 포진의 함정 속으로 조심성 없이 뚜벅뚜벅 걸어들어 왔다.


그는 전성기에 약점이 없는 기사로 불렸다. 포석, 행마, 수읽기, 형세판단, 끝내기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물론 이걸 뒤집어보면 특별한 강점 역시 없다는 말이 되긴 한다.


지금의 김정호는 좀 달랐다. 엄청난 속기였고 초반부터 간단한 수순 착오를 일으키기도 했다. 정석사전을 공부하면서 익혔던 모양이 나왔는데 마침 상대가 수순 하나를 빠트린 걸 바로 응징해 버렸다. 그의 얼굴에 짜증스러움이 비칠 때 많이 기뻤다.


‘너무 통쾌했었지.’


신중한 성격으로 거의 큰 실수를 하지 않았고, 하더라도 티내지 않던 훗날 그의 모습을 거기서 찾기는 어려웠다.


상당한 우세를 안고 대세력으로 그를 압사시키려는 듯 밀어붙였다. 일단 내가 두텁고 초반 그의 실수로 인해 실리마저 많았다. 이렇게 되면 실력의 고하는 무의미해진다. 양보할 것 양보하면서 확실히 닦으면 도저히 뒤집어질 판세가 아니었다. 필승지세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거기서 균열이 일어났다. 어느 순간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화장실을 다녀온 김정호가 장고에 들어갔다. 어제와 오늘은 룰이 좀 달랐다. 준결승부터는 각자 1시간에 30초 초읽기 5회가 주어졌다.


약 30분의 장고 뒤부터 난 줄 달린 인형이 되었다. 상대의 응수타진이 끝없이 이어졌다. 상대가 줄을 밀고 당기는 대로 내 의지와 별개로 손발이 움직였다.


내가 이렇게 미칠 것 같은 건 그 때문이다. 내 관점에서 내 응수에 실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연속적으로 이어지던 응수타진 끝났을 무렵 판세는 오리무중으로 변해 있었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판세가 그렇게 변한 건 내 응수의 어느 곳에선가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난 모르겠다고. 그래서 미칠 것 같아.’


그게 더 문제다. 그런 게 실력 아니냐고 한다면 아니라고 반박하기가 좀 애매하다. 하지만 난 정말 아닌 것 같다. 상대의 승부 호흡에 내가 완전히 녹았다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모르는 건 공부가 부족해서 그렇다. 더 공부하면 언젠가는 나아진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 수순들 역시 시간을 들여 연구하면 결국 알게 될 것이다. 학습이란 그런 거다. 단언하건데 그 장면에서 김정호가 보여준 건 학습으로 익혀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몇 주에 걸쳐 집중적으로 연구한 모양과 변화들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었다. 상대는 그 형태에 대해 잘 몰랐다. 그건 분명하다. 그래서 완전히 내 함정에 빠진데다 착각까지 겹쳐 수렁에서 목만 달랑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즉석에서 달랑 30분의 생각만으로 반전을 만들어냈다. 어제 이겼던 세 명도 시간이 조금 더 주어졌으면 저랬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몇 주간의 걸친 내 노력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상대의 30분만도 못한···’


그건 당하면서 아프기 보다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찬란한 재능의 개화를 보면서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리고 거기에 질려 버렸다.


‘스스로 빛을 내는 그런 종류의 천재성에 대해서 몰랐던 건 아니지. 그럼에도 직접 겪고 나니까 가슴에 와 닿는 밀도가 다르더라고.’


간접경험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재능의 크기가 나하고는 완전히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내 노력으로 절대로 좁혀지지 않을 절대의 그 무엇. 이 한 판 이겨서 뭐 하겠냐는 생각이 갑자기 밀려들었다.


그 때 판세는 나의 절대 우세에서 호각이 된 정도였다. 역전까지 당하진 않았다고 판단했지만 갑자기 두려워졌다. 보지 못했던 곳에서 날아 온 손에게 목덜미를 잡혔는데 더 진행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중요한 장면이 나오면 또 이럴 텐데···


‘그런 마음이라면 그 때 던졌어야 했어. 그리고 열심히 복기를 하고··· 모자라면 배움을 구걸이라도 했어야지. 아니면 정말 마음 비우고 승패 보다는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휴우!’


난 그러지 못했다. 승부욕이 앞섰다. 그러나 그 욕망을 실력이 못 받쳐줬다. 그러면 사람이 추해진다. 억지를 쓰는 내 인간 본연의 모습이 나와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수가 제대로 보일리가 없다. 복기조차 하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한 마무리로 스스로에게 실망을 안긴 한판이었다.


어떻게 끝내고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잠시 허깨비가 되었나 보다. 함 원장의 손에 이끌려 대국 장소를 벗어나 관람석에 계시던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억지로 눌러 놓았던 서글픈 감정이 말릴 새도 없이 터져 나왔다.


‘아! 비하인드 스토리가 너무 길었네. 이제 슬슬 이 소란을 끝내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은데 정말 부끄럽다.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부모님만 계시는 게 아니었다. 제일 최악인 건 우리 바둑교실 새싹부, 꿈나무부 참가자들이 득실거렸다.


‘쟤들이 지금 여기 왜 있는 거야? 어제 다 져서 오늘 둘 수 있는 애가 없었을 텐데···’


난감하다. 격했던 감정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데 또 다른 난관이 쉴 새 없이 앞을 가로 막는다.


‘정말 내가 우는 모습을 쟤네들한테 보였단 거야? 하아! 정말 정신 줄 놨네. 놨었어. 트롤 같은··· 아니 쟤들은 학교의 그 트롤들 보나 쪼~끔 낫기는 해. 그렇지만 기본 속성이 어디 가겠어? 다 거기서 거기지.’


내게 이렇게 흘릴 눈물이 많을 줄 미처 알지 못했다. 몸이 어려지니 마음마저 자제력이 줄어들었나 보다.


“얍삽하게 닦아대더니 쪽팔리게 울고 있어.”


“3학년이잖아.”


감정이 내려앉으니 감각이 일어섰다. 그냥 흘려보내던 모든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상당히 거슬리는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6학년 아이들이다.


‘아니 이것들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어렵게 누른 감정이 다시 끓어오르려 한다.


‘음. 이게 나쁘지만은 않은 건가?’


“형들, 보지도 않은 바둑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어떻게 이 장면을 벗어날까 궁리 중인데 이건 마치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준 꼴이다. 이들이 어제 내 바둑을 봤을 리가 없다. 혹시 봤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안 된다.


“어? 재영아. 너 괜찮아?”


‘안 괜찮다. 이 놈들아. 그런데 이제 곧 괜찮아질 예정이란다.’


내게 트라우마로 남을만한 상처를 건드리면서 괜찮냐니 이게 무슨 주옥같은 말인가 싶다.


‘그래. 이놈들아. 오늘은 그 얍삽한 짓도 못해보고 져 버렸어. 이러니 속이 시원하냐?’


이렇게 대꾸하며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그냥 생각은 생각으로 끝내는 게 좋다.


“닦는 건 얍삽한 게 아니야.”


점잖게 한마디하고 끝내면 된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화제 전환으로 부끄러운 이 장면을 넘기고 싶었다.


“야! 게임은 당당하게 해야지. 스타에서도 그러잖아. 쿼터플을 하려면 미리 말은 해 주잖아.”


‘하아! 스타··· 정말 돌겠네.’


쿼터플은 더블 커맨드의 변형이다. 진영을 극단적으로 더 끌어올린다. 2개가 아니라 4개의 자원을 차지해 우월한 생산력으로 승리를 이룬다. 아주 초반에 멀티 3개를 차지하기에 본진이나 멀티 한두 개가 털려도 남은 멀티의 자원을 이용해 승리를 얻어내는 식의 전술이다.


‘이 놈들아! 내가 왕년에···’


방언이 터지듯 마음속에 담아둔 말들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쏟아지려 한다.


‘아! 안 돼. 참아야···’


“맞잖아. 왜 말을 못해. 또 울고 싶어?”


머릿속에서 가느다란 선 하나가 툭 끊어졌다.


“닦기 자체가 경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중반에 맛을 남기지 않고 큰 끝내기를 미리 결정해버리면 상대가 모르겠어? 그리고 쿼터플에서 미리 경고를 하는 건 미리 알려주는데도 그걸 못 피하냐 이렇게 농락하기 위한 빌드업이라고. 이걸 그렇게 비교하면 안 되는 거야.”


쿼터플을 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대응 전략이 뻔하다. 초반 찌르기가 일감이다. 그런데 이미 멀티를 짓기 위해 1000이상의 미네랄을 소모한 상태다. 정상적으로는 반격이 안 된다.


‘에고, 저질러 버렸네.’


“야! 그게 말이 되냐? 쿼터플은···”


‘아니, 그래도 이 녀석이···’


강변하는 얼굴에 학교의 트롤들이 겹쳐 보인다. 이들과의 대화는 불가능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지성을 갖춘 자로서 그냥 입을 다물 순 없었다.


‘이건 니들이 선 넘은 거야.’


“바둑에서는 반집을 이겨도 1승이고 백 집을 이겨도 1승이야. 위태롭게 백 집 이기기보다는 안정적으로 반집 이기는 것이 더 훌륭한 기술일 수도 있는 거라고.”


“그게 비겁한 거지.”


억지 부리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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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 24.08.07 159 3 13쪽
32 입단이란 24.08.06 177 2 12쪽
31 나의 믿음은 24.08.05 160 3 13쪽
30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7 3 13쪽
29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2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2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7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3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6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0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4 4 11쪽
14 버블 24.07.23 311 4 12쪽
»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6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0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7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2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1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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