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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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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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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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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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잠시 물러서다.

DUMMY

‘아···’


몇 번을 세어도 반집 부족한 것 같다. 상대보다 두텁지도 않다. 두터움이 곧 집은 아니지만 집이 될 가능성을 높이는 건 확실하다. 종반에 가까운 지금 펼쳐진 이 상황은 절망적이다.


‘마지막 입니다. 하나, 둘··· 여섯, 일곱. 여덟.’


딱-


급하게 팻감 하나를 활용해 시간 연장을 했다. 대국시계 버튼을 누르는데 어질어질하다.


‘어! 뭐지?’


급박한 와중에도 얼굴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주시하던 바둑판에서 시선을 살짝 들어 올렸다.


상대의 가슴이 보이고 목 그리고 입술이다. 끝이 살짝 휘어져 있다.


‘웃어? 이런 썩을···’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굳이 더 올려서 봐야 하나? 그래도···’


잠깐의 망설임 후 드디어 상대 대국자와 눈을 마주했다. 몹시 나른해 보이는 눈빛이다.


‘지겹다 이건가? 하아! 이런 미친···’


솟구치는 짜증에 바로 바둑판을 엎어버릴 뻔 했다. 이 자식 초딩이다. 연구생 된지 갓 1년 된 새파란 녀석이다. 이제 나도 이곳에서 마냥 어리지만은 않다. 원생 4년차이자 중1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나보다 어린놈한테도 밟혀야 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면 분노가 치솟아야 하는데 갑자기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이런 상황이 예전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데자뷰인가?’


대국을 더 이상 두어나갈 의욕을 잃어버렸다. 난 스스로를 너무 잘 안다. 그것이 내 장점이자 약점이다.


평범한 재능으로 비범한 기재들 사이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해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어리지도 않은 그냥 그런 원생 중의 하나로 전락하는 중이다. 지나간 세월에 바쳐진 내 청춘이 너무 아깝고 허무하다.


연구생 3조 한재영. 그에게 2006년 마지막 리그전 8회차는 11승 7패 3조 잔류로 끝나 버렸다. 이번 기회가 너무 아쉽다. 한발만 더 나갈 수 있었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그 한 발자국이 너무 어렵다.


“왜 던졌니?”


“모자랐잖아.”


재국이 형이 대국이 끝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와 시동을 건다.


“그런 것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 차이에선 사실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봐야 지. 상대의 실수가 나올 수도 있고··· 투료(投了)가 너무 빠르지 않았을까?”


“그게··· 음.”


그 말이 맞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결과론이지만 그 판을 이겼다면 원생 생활 이래 처음으로 2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너 유리한 바둑은 잘 마무리 하면서 왜 조금만 불리해지면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거야?”


“이길 가능성이 없는데 헛심을 왜 써야 하는데? 다 각자가 다른 생각을··· 어휴 관두자.”


이러면 이럴수록 비참한 기분만 더한다. 많이 경험했다. 초라한 진짜 내 모습을 계속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바둑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그런 맛이 좀 있어야 할 거 아니냐. 그건 실력 이전에 자세의 문제라고. 형세가 어떻게 항상 유리하게만 진행이 되겠어.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다운된 기분을 다스려···”


출중한 기재로 1조 붙박이인 그로서는 충분히 할 만한 말이다. 성훈이 형이 있었다면 무조건 너 잘한다며 기운을 북돋아 줬을 텐데 오늘 따라 그가 유난히 그립다. 재국이 형은 너무 곧이곧대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고성훈은 올 봄에 일반인 입단대회를 통해 다른 신분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 없다. 입단 첫해 프로 초단으로 그런대로 성적을 내고 있다. 전생에서 그는 연구생 연령제한에 걸려 퇴출 되고 나서야 입단했었는데 지금은 1년이 빨라졌다.


‘이렇듯 난 내 주변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존재라고.’


물론 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겠지만. 나만 잘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텐데 내가 이 모양 이 꼴이다.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나무가 되긴 정말 싫다.


“그게 그렇게 보였어?”


그냥 두면 한없이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일단 끊었다.


“아니란 거야? 아니라면 왜 그런 건지 시원하게 설명을 좀 해 봐.”


실수다. 이런 노골적인 물음은 예상에 없었다. 그냥 대충 넘어 가주리라 생각한 건 그와 내 친분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다. 이렇게 허물이 없는 사이가 되는 것도 가끔은 아주 불편하다.


“음··· 생각해 보니까 형 말이 맞는 거 같네. 좀 더 열심히 둬 볼께.”


인정했다. 말이 길어지면 피곤해진다. 물론 이렇게 한 건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도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야! 성의 없이 그런 식으로 말 좀 하지 마. 좀 듣는 척이라도 하면서···”


어린 녀석이 뭐가 이리 불평, 불만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


‘내가 인정했잖아! 그만 좀 하라고. 에이.’


짜증은 나지만 그래도 자기 딴에는 어린 동생에게 잘하고 싶어 하는 조언인데 그 성의를 봐서 이번에는 그의 말대로 해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열심히 듣는 척 하려고 한다.


‘하고 싶은 말 다 해. 듣고 흘리는 건 내가 잘 하지. 넌 몰라. 너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나에겐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네 말대로 하겠어. 이렇게 둬야 가장 많이 이길 수 있는 걸 어쩌겠냐고. 이걸 기풍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실력의 한계는 작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었다. 5조에 올라왔을 무렵이다.


도저히 계속 대국을 해 나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포석, 행마, 수읽기, 형세판단, 끝내기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조금씩 밀린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대국을 통해 내가 얻어가는 것 보다 상대에게 내가 더 빨리 더 많이 파악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단 하나다. 상대의 것들을 더 빨리 흡수해 내 실력을 더 높이면 된다. 그렇게 5조까지 승급해 왔었다. 그 전까지 그 흡수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패배의 기억은 아프지만 참고 쌓여갈수록 자연스럽게 그 수준으로 올라가곤 했었으니까.


시간을 투자해 그 시련을 정면 돌파 해내면 결국엔 성과가 돌아왔었다. 그런데 5조에 올라와서 부터는 그게 힘들었다.


승급을 하지 못하고 정체가 1년 정도 지속되었을 때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더 투자되면 언젠가 실력이 상승할 수도 있겠지만 연구생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실력을 인위적으로 높일 수 없으니 실수를 줄이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러기위해서는 대국을 하면서 잘 모르는 짓을 하면 안 된다. 모험적인 수를 최대한 배제하고 반면을 단순화시켜 상대의 과수나 실수를 응징해 승수를 쌓았다.


‘공부량을 겁나게 늘였지. 그 짓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고.’


그렇게 1년간 지속된 정체를 풀고 3조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이젠 이것조차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


어떻게든 2조에만 들어가면 옮길 수 있는 다음 스텝이 있는데 그것이 엉키고 있었다.


“야! 한재영 듣고 있는 거야? 너 딴 생각 하지? 형 말 좀 들어. 너 같은 기재가 바둑 두는 꼴이 그게 뭐야. 우리에겐 당장의 승부도 중요하지만 항상 기력향상을 우선순위로 먼저 두고···”


스스로 기재가 모자람을 통감하며 짜증이 폭발할 지경인데 그 와중에 잔소리 폭풍까지 감내해야 하는 건 내게 너무 혹독한 일이었다. 이런 인생에 대해 회의가 올 지경이다.


‘바둑을 계속해야 되는 걸까?’


‘중학교까지는 도전해보려 했었잖아. 아직 2년 남았어. 혹시 알아? 그 사이에 비약적 발전의 시기가 오게 될지··· 어느 날 일어나면 판을 보는 눈이 달라질지도 모르잖아.’


그건 그렇다. 아직은 모르는 거다. 아직은···


‘원래 프로가 되려고 했던 목적 중의 하나가 시드머니 확보 어쩌고도 있었잖아. 이제 그 문제가 다 해결되었는데 굳이 이 짓을 안 해도 상관없는 것 아닐까? 이제 학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그게 다일까?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는 건 아니다.


‘수백억이 있어도 하루 세끼 먹으면 충분한 거야. 난 재벌이 되고 싶진 않아. 너무 큰 부는 인생을 피곤하게 만들어. 하기 싫은 거 굳이 안 해도 되고 하고 싶은 거 즐기며 사는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바둑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만 둘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경제력이 든든해지면 굳이 프로 입단에 시한을 둘 필요가 없지 않나? 될 때까지 해봐도··· 음. 그건 좀···’


한창 머리가 잘 돌아갈 나이에도 입단이 안 되었다면 머리가 굳고 나서 입단 가능성이 더 놓아질 리가 없다. 이것이 합리적 판단이다. 해마다 새로운 영재들은 나타나면서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설 자리는 줄어든다. 적정연령에서 안되면 접는 것이 맞다.


‘다 때가 있는 거지. 의욕만으로는 안 되는 거잖아.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그건 망상일 뿐이야. 현실을 직시해야 해.’


자문자답을 해봐도 별다른 처방이 있을 리 없다. 이런 생각 지금까지 안 해본 게 아니다.


‘2년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이 생활 빨리 접어야··· 하아! 그럼 안 되는데···’


어느덧 나도 나이를 생각하고 있다. 그 압박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감하진 못했는데 한해 한해가 다르다.


“넌 차근차근 잘 해오고 있어. 올해 3조까지 왔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잊어버려. 내년에 2조를 넘어 더 도약할 수 있을 거야.”


격려의 말이 나오는 것 보니 드디어 잔소리를 끝내려는가 보다.


“말해줘서 고마워. 형.”


이런 걸 화답(和答)이라고 한다. 모양새를 생각하고 이러는 건 아니다. 빨리 이 대화의 끝을 확정지어야 했다. 토를 달면 말이 길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답 정도가 아니라 더 한 것이라도 할 수 있다.


“내가 미안해. 제일 답답한 건 너일 텐데··· 별 도움도 못 되면서 말만···”


정말 이런 늘어지는 말이 더 싫다. 그렇게 잘 알면서 잔소리를 왜 시작했냔 말이다.


올해 연구생 전체 1위 입단자는 김정호다. 그는 초3에 원생이 되어 1년 만에 1조가 되었다. 그런 그조차 1조에서 1위를 하는데 5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정말 이 동네는 타고나야 하고 거기에 노력까지 갈아 넣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난 마무리 했지만 형은 아직 남았잖아. 다음 주부터 시작하지? 컨디션 조절 잘해서 이번에는··· 알지?”


연구생 입단의 한 자리는 아직 미정이다. 입단이 확정된 김정호를 제외한 1조와 2조의 모든 인원이 리그전 형식으로 그 나머지 한 자리를 두고 대결을 벌인다.


“무조건 이기고 싶지.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그게 그렇게··· 아주 자신 있는 건 아니지만 이번엔 쉽게 물러나고 싶진 않아.”


“형이 5위던가?”


“정확한 포인트 계산이 아직 안 나오긴 했는데 5위 아니면 6위는 확정이지.”


재국이 형도 1조에 올라간 지 2년째 되었다. 입단하지 못하면 지지부진(遲遲不進)하다는 말을 듣는 건 똑같다. 이 사람이야 말로 딱 발자국 부족한 지점까지 진작 도착했는데 그 한 걸음 때문에 이러고 있다.


“잘 될 거야. 이번 결정전에서 다 이겨 버리면 되는 거잖아.”


“그건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이런 대국은 너무 변수가 많아서···”


그랬었다.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전체 2위가 가장 유리할 것 같지만 대국자 서로간의 상성관계 및 단기간의 컨디션 등이 많은 이변을 만들어 냈었다.


1조 상위권이 서로 치고받고 아래에서 의외의 인물이 치고 올라와 늘 혼란의 도가니가 되곤 했다. 하나 확실한 건 아직 2조에서 이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없었다.


‘거의 직전까지 갔던 사람은 있었지만 결국 안 됐었지. 어쩌면 그건 나만 가능한 미션일지도···’


이렇게 자신 있는데 2조에 올라설 수가 없다는 것이 나의 딜레머다..


‘하아! 정말··· 올라갈 때 가야 하는 건데···’


때를 놓치면 내년에 또 어떤 신입생이 치고 올라올지 모른다. 그의 일을 이야기하다 다시 내 걱정으로 돌아왔다. 머리를 털었다.


“재국이 형. 잘 될 거야. 난 믿어.”


“그래. 나도···”


그는 무엇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나 역시 굳이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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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입단이란 24.08.06 178 2 12쪽
31 나의 믿음은 24.08.05 162 3 13쪽
30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7 3 13쪽
29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3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3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7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4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6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1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5 4 11쪽
14 버블 24.07.23 311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6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1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8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3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2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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