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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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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DUMMY

봄이다. 만물이 생동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한다. 겨울이 가고 봄날이 왔다는 은유적 표현은 고생이 끝나고 행복한 나날들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한다.


‘대개는 그렇지. 난 그 대부분에 속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고.’


내게 봄은 몇 년간 아픔이었다. 악몽과 같은 리그전이 다시 시작된다는 신호다. 2006년엔 무조건 승급해서 입단 결정전에 나가고 싶은데 올해도 예년과 그다지 다를 것 같지가 않다.


‘언제 안 그런 해가 있었나? 뭐···’


기대하다 실망하는 것도 이제 지친다. 몇 년 전부터 똑같은 소망을 가지고 노력했었지만 아직 이 모양 이 꼴이다. 그러나 이런 나도 올해 첫 상대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그는 올해가 원생의 마지막 해다.


‘10년 내 최고 기재니 뭐니 시끄럽더니 이 형도 결국 이렇게 되었네. 하긴 이 동네에서 그런 소리 안 들어 본 원생을 찾기가 더 어렵겠지.’


돌을 가렸다. 좋아하는 흑번이다. 덤이 5.5집인 경우 통계적으로 흑의 승률이 좀 높다. 약 54% 정도라고 하는데 이것 때문에 덤은 세월이 지날수록 흑백 승률이 일치하는 곳을 향해서 6.5집 7.5집 등으로 점점 더 커진다. 지금 6.5집까지 왔다.


나의 흑백의 승률은 통계치 보다 차이가 좀 더 많이 난다. 공식대국 기록이 아니라서 정확하진 않지만, 흑번일 경우 70%가 넘는 것 같다.


닦기에 특화된 내 스타일의 영향일 수도 있고 미래 유산의 일부를 기억하는 덕택에 포석이 남다른 속도감을 가지게 되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부분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이상 감각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옳다.


‘나중에 다 증명이 된다고. 이래서 최초가 힘들다고 하는가봐.’


상대는 초반을 평범하게 시작했다. 선착의 효를 가진 내게 반발보다는 순응으로 무난하게 응수한다. 이러면 쉽다. 포석을 다룬 책에 모범 답안으로 나올만한 기계적인 착수들이 이어졌다.


대개 이렇게 판을 짜면 서로 너무 잘 아는 길이기 때문에 단번에 승부를 가릴 만한 호수(好手)나 묘수 같은 것이 나오기 어렵다. 평범한 진행이라고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연구가 엄청나게 많이 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럴 때 괜히 호기를 부리다가는 힘도 못 써보고 단칼에 목이 날아간다.


최대한 복잡하지 않는 길을 택해 상대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올 해 첫 대국이라 조심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맞이한 리그전이라 그런지 긴장과 흥분이 뒤섞여 상당히 기분이 묘하다. 게다가 승급에 대한 각오며 희망까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럽다.


‘이런··· 조금 밀리나?’


이제 좀 멍한 기분에서 벗어나 대국에 몰두가 될 만한데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아! 이거 뭐지? 너무 손 따라 뒀나?’


이러면 곤란하다. 이제 곧 중반에 돌입하는데 실리가 딸리면 내 필승전략에 문제가 생긴다. 딲기 위해서는 현찰이 중요하다. 세력은 어음과 같다. 부도나면 하나도 못 건진다.


‘아이, 첫 대국부터 이러긴 싫은데···’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순응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가벼운 몸싸움으로 전단(戰端)을 구했다. 상대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주저 없이 반발했다. 용감하고 씩씩한 돌진이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한 번 놀아 봅시다.’


집중이 필요한 시간이다. 조금 이르게 승부처가 잡혔다.


‘예비 프로답게 승부엔 냉철한···’


귀에서 변으로 전투는 확대되고 중앙에서 돌들이 날아다닌다.


‘아직도 모자라나?’


아직 중반이라 정확한 계가는 안 되지만 느낌이 안 좋다. 이건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의 감각이다.


‘뭐! 어차피··· 얌전히 끝내긴 어려워졌고···’


내 돌의 안정을 먼저 도모하려던 생각을 버렸다. 대신에 상대 대마를 압박했다. 상대는 다 죽어가는 퇴물이다. 기세에 눌릴 순 없었다. 서로의 곤마가 엉켜 수상전 형태가 만들어졌다. 한순간 상대의 손이 멎었다.


‘어? 뭐지?’


그와 더불어 나의 머릿속에서도 가상의 돌들이 서로 간에 메워지고 이어진다.


‘먼저 먹여치고··· 아! 이게 뭐야? 그런 게 있었네. 그럼. 한 수 부족인가? 다른 방법은 없나?’


순간 가슴속에서 이상한 울림이 느껴졌다.


‘너 최선을 다한 거니? 뭐? 상대가 상대라서 대충 승부를 보려고 했던 건 아니고? 절대로 아니지. 어떻게 고의로 져주겠어. 난 최선을 다해··· 음.’


왠지 모르게 부끄럽다. 갑자기 바둑판 보기가 어렵다. 고개를 숙였다. 이게 최선이라 할 수 있는지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휴우! 어쩔 수 없나?’


미련을 억눌렀다. 던지려는 마음을 굳혔다,


딱-


때마침 상대의 착수가 이루어진다. 2006년 리그전의 첫 판부터 불계를 선언하기엔 아쉬움이 많지만 더 끌고 갈래야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으응? 이건 또 뭐야?’


저절로 고개가 올라간다. 상대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착수에 기합을 얼마나 넣었는지 돌 놓는 액션에 바둑판이 쪼개지며 그 파편이 내 가슴에 날아와 꽂히는 줄 알았다.


‘어허헛···’


나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는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상대의 눈이 다시 바둑판으로 향했다. 상대의 얼굴이 곧 창백해졌다.


‘두고 나서도 몰랐던 건가? 나 참! 이제 알았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너무 생각이 많다보면 한순간 두뇌 각 부분의 연결이 이상해질 때가 생긴다. 그럴 땐 간단한 수순도 이상해 보이고 이상한 수순도 이상한 줄 모른다. 상대의 대착각이 나왔다. 자신의 공배를 메웠다. 자충이다. 이젠 오히려 백이 한 수 부족하다.


아마추어가 간단한 수상전을 착각하는 경우는 흔하다. 하지만, 연구생 3조 정도면 준프로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아무리 아직 공배가 많이 비어 있었지만 실력 수준을 감안하면 있을 수 없는 실수가 나왔다.


‘마음 비우고 편안하게 두는 것 같아 보이더니 아니었나? 마지막에 폭탄을 터트려버리네.’


티가 안 났을 뿐 상대 역시 이 대국에 꽤 부담을 느꼈나 보다.


‘결정적인 승기를 잡자 갑자기 마음이 풀어져··· 음. 좀 잘하지 그랬어.’


대국 상대인 내가 이런 마음이 들 정도인데 본인은 오죽할까? 상대는 연구생 최고참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올해 무엇인가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다시는 그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중요한 해 첫 번째로 치루는 리그전의 첫 판에서 이런 실수라니···’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던 상대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잠시 눈을 감더니 이내 눈을 떴다. 그것으로는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진정하기가 어려워? 이해는 되는데··· 지금 와서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제는 움직임을 멈춘 채 뚫어져라 반상을 쳐다보고 있다. 넋이 반쯤은 나간 것 같다.


‘눈매가 촉촉해 진 것 같은 데 그냥 내 느낌이겠지? 설마 울기야 하겠어?’


울고 싶을 거 같긴 하다.


‘내가 덩달아 이러면 안 되는데···.’


상대에게 동화되려는 마음을 다시 조였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늦춰주는 건 상대에 대한 기만이다. 동정심은 프로의 덕목이 아니다. 그것이 받는 쪽이던 주는 쪽이든 간에···


난 최선을 다해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입단을 위해 노력하는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가만히 한 수를 더 가져다 놓았다.


“후아!”


상대의 큰 한숨이 바둑판을 덮었다.


‘어이구, 이런 상황에서 내가 실수할 거란 기대가 있었어? 한숨 쉬긴··· 내가 몰랐다면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사고였겠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겠냐고.’


보통 기원에서 아저씨들 끼리 대국을 하다 이런 장면이 나오면 꼭 한마디 한다. 이 수가 놓여 지기 전에 던졌으면 큰 바둑이 될 텐데··· 조그만 기대라도 품었다면 그건 당신의 오산이다.


‘어휴! 진정하자. 저 형. 속도 속이 아닐 텐데···’


아마도 지금 그는 자괴감이 심각한 수준일 것이다. 대국을 하다 보면 상대에 대한 투쟁심이 승부에 도움을 줄 때도 있지만, 그 끝이 자기비하를 넘어 자기혐오에 이를 때도 있다.


대개 착각을 매개체로 해서 만들어지는 이 같은 경우다. 패배를 자초한 스스로에게 향하는 분노의 잣대는 더욱 엄격하다.


스스로를 향한 자책과 그것으로 부터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을 바로 45cm 너머 건너편에서 바라봐야 하는 상대에게도 그 고통과 번민이 그대로 전해진다.


바둑을 두면서 누구나 많은 패배의 기억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대개 다음 번 승리를 위한 자극제의 역할을 한다. 노력의 바탕에 기쁨과 격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그 노력의 동기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경우는 그랬다.


하지만 때로는 패배 그 자체에서 절망을 느낀다. 그곳에서 내 재능의 바닥을 보고나면 살기가 싫어진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봤기 때문에 더욱 더 지금 이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다.


‘18세가 연구생으로서는 많은 나이지만, 인생에서는 출발점에 가까운 시기일 뿐이야. 넌 아직 충분히 어려. 바둑이 네 인생의 모든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너무 상심하지는 말았으면···’


한참 동안을 숨죽이다 다시 기나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상대의 투료가 이루어졌다. 돌의 무게에 마음의 무게까지 더해진 듯 돌 놓는 손짓이 힘겨워 보인다.


‘결국 이렇게 되었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되도록 되어 있었던 건가?’


망나니가 칼춤 추고 난 뒤 기분이 이럴 것 같다. 승리의 대한 기쁨보다는 상대를 향한 연민과 다음 대국에 대한 걱정 같은 모순된 감정이 먼저 다가온다,


이번 대국은 전혀 나답지 않게 둔 한 판이었다. 아무래도 지난겨울 동안 성훈이 형과 자주 대국했던 것이 득보다는 실(失)이였나 보다. 나도 모르게 발상이 너무 과격해졌다.


‘불리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뒀을까? 수상전까지 가야할 이유가 없었잖아. 나 역시 마음이 급했나?’


30분 짜리 바둑에서 뒷 변화를 읽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완벽하게 수읽기를 하면 좋겠지만 연구생 중 누구도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이건 거의 사실이다.


‘대국 후에 복기를 하다보면 은연중에 수읽기의 깊이가 다 드러난다고.’


지금 상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장면에서 타협하지 못했다. 빨리 교정해 내지 못하면···


'으휴! 난 절대로 저런 꼴이 되어서는 안 돼.'


내가 지금과 반대의 입장이 되는 건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이제 1승을 했을 뿐이다. 그것도 운 좋게··· 승급을 위해선 최소 11승이 더 필요하다.


‘반전무인(盤前無人) 그것만 생각하자. 그것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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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 24.08.07 159 3 13쪽
32 입단이란 24.08.06 178 2 12쪽
31 나의 믿음은 24.08.05 162 3 13쪽
30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7 3 13쪽
29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3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4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7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4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7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1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5 4 11쪽
14 버블 24.07.23 312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6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1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8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3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2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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