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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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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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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

DUMMY

‘하··· 에공.’


하품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눌렀더니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혔다. 티 나지 않게 서둘러 눈가를 닦아냈다.


2000년대부터 서울과 경기도의 모든 공립중학교에서 혼성반 편성이 의무화 되었다. 물론 초등학교도 마찬가지 환경이었지만 중학교는 확실히 다르다.


‘10대 아이들에게 1년은 아주 크다고. 그 성숙도가··· 음음. 아무튼 그렇지. 자연의 섭리란···’


남중, 남고의 경험밖에 없던 내게 이런 환경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주변의 시선이 의식된다는 건 엄청나게 불편한 일이다. 역시 내게 학교는 안 맞는 곳이다.


묘한 설렘 때문에 어젯밤 잠을 좀 설쳤더니 그 후유증이 지금 나타났다. 내가 입단을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어?’


이건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다. 대국 때면 불현듯 찾아오는 개미가 맨몸 위를 기어갈 때 나는 그 간질거리는 느낌. 그 느낌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하나의 시선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눈이 딱 마주쳤다.


‘에구, 사람 무안하게 왜 그렇게 웃으면서 쳐다봐요?’


“넌 어제 뭐하고 놀았길래 이제 2교시인데 벌써 하품이야?”


“하품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참으려고 했지.”


푸하하하-


느닷없이 교실에서 한바탕 웃음의 파도가 일어났다. 결코 의도적인 게 아니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질책하려는 것으로 들리지는 않아 장단 한번 맞춰준 거였을 뿐이다. 예전 같으면 그냥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겠지만 알다시피 내가 요즘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만.


‘이게 웃음을 유발하는 그 의외성이라는 건가?’


아이들이 내게 가지는 기대치가 바닥이었던 것 같다.


‘멀쩡한 놈이 아니었던 거지. 그래서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웃어주는 거고.’


“푸하핫. 그럴 듯 했어. 응? 너 이름이··· 이상하네. 학기 중반이 다 되었는데 얼굴이 왜 이렇게 생소하지?”


혼잣말 하듯 중얼거리는데 다 들린다. 생소한 게 당연한 일이다. 초면이다. 사회과목 선생님인데 공교롭게도 일주일에 세 번 있는 사회 수업이 다 5, 6교시에 있었다. 난 4교시 마치고 없어지는 학생이고.


오늘 갑자기 수업 일정이 국어와 바뀌지 않았다면 학기가 끝낼 때까지 얼굴 마주할 일이 없었을 거다.


“잰 못 보셨을 거예요. 맨 날 4교시만 하고 가요.”


어느 곳에서나 이런 장면에서 참지 못하는 인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조금 의외다. 누군가 나서서 나를 이런 식으로 대변해줄지 몰랐다.


난 학교 아이들과 거의 대화를 해본 일이 없었다. 그들도 내게 편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으로는 말없이 오전 수업만 듣고 사라지는 아이와 접점을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워서일 것 같은데 .나도 그냥 그게 편해서 굳이 가까이 하려 애쓰지 않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지만 이미 삶의 지향점이 다르고 생각의 깊이와 폭이 다르다.


“응? 이름이··· 아! 한재영. 네가 그 연구생인가 보구나?”


“예.”


“이야기는 들었는데 만나는 건 처음이네.”


“예.”


길게 설명 안 해도 될 것 같아 다행이다. 뻔한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는 건 인간으로서 차마 못할 짓이다.


“연구생이 뭐야?”


“연습생을 잘못 말한 거겠지.”


또 한 차례 웅성임이 교실에서 일어났다. 여긴 너무 투명한 곳이다. 나 보고 들으라고 하는 건 아닐 텐데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속으로 말을 못한다.


바둑기사는 자신의 의도를 절대로 들키지 말아야 한다. 반상에서 상대를 기만하고 의표를 찔러야 승리의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 걸 몇 년에 걸쳐 매일 몇 시간씩 하다 보면 자연히 체화된다. 몸에 익어버려 모든 상황에서 은연중에 그것이 나와 버린다. 직업병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반의 아이들은 두눈박이고 난 한눈박이라는 거네.’


“오늘 신문에 입단대회 결과가 나오던데 우리 재영이는 안 나갔니?”


‘헐! 우리 재영이? 뭐래. 언제 봤다고. 바둑돌 좀 잡아보신 선생님인 건가?’


“연구생 리그전 때문에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출전 신청을 하고 기권했다가 맞지만 사소한 일을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내게 관심을 보인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부모님을 제외하면 바둑계 관계자 정도나 그랬을 뿐이었다.


지금 실제로 바둑을 두는 인구가 200~300만 명 정도 된다고 하는 데,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일반인 중 90% 이상의 사람들이 사전적인 의미 이상으로는 바둑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선생님의 아는 척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그가 연구생 리그 같은 걸 알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이렇게 대충 아는 건 모르거나 마찬가지다. 학교 잘 안 나오는 애가 있다던데 이 정도만 언급될 수 있으면 딱 좋겠다.


“그래. 뭐든지 열심히 해야지.”


“예.”


딱 좋은 수준의 덕담이다. 선을 잘 지켰다. 나와는.


“야! 니들은 배로 열심히 해야 해. 친구는 이렇게 이른 나이에 목표를 정하고···”


깬다. 전통적인 교사상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소통을 잘 하려 하는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이미지가 와장창 내려앉았다. 갑자기 존재감 없던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천재 비슷한 그 무엇으로 소개가 되고 있었다.


“연구생이 그런 거였어?”


“그럼 존나 똑똑해야 할 수 있는 거네.”


반 아이들 사이에 조그만 소란이 생겼다.


‘이게 꼰대질? 뭐! 비슷한 그런 거?.’


내가 말릴 수가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일어난 관심이 불편하다. 나와 별 관련 없는 신문 기사 한 줄이 이렇게 까지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다니···


‘그냥 좀 냅 둬요. 다들 신경 안 쓰고 딱 좋았는데··· 아! 이제 좋은 날은 다 간 건가?’


이 소란은 시작에 불과했다.


“재영아, 안녕.”


안면은 있지만 잘 모르는 여자 사람 꼬맹이다.


“?”


“이거 먹어. 이제부터 우리 친하게 지내자.”


‘헐!’


사탕인지 초코렛인지 무엇인지 정체가 모호한 것을 몇 개 준다. 얼떨결에 받았다.


“왜?”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난 아이들과 얼굴 정도 익힌 사이일 뿐이다. 그런데 내게 먼저 말 거는 아이가 나타났다. 그것도 여자아이가···.


“난 네가 연습생인 줄 알았다고. 그래서 애들하고 말도 안 하려 하고 수업도 잘 빠지고··· 그런 줄로 알았었어. 그런데 아니라면서···”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무슨 말이지? 뭐? 연습생? 설마 엔터 회사에서 뽑는 그거 말하는 거야? 요즘 애들은 농담이 과해.’


연구생과 한 글자가 달라졌을 뿐인데 느낌이 많이 다르긴 하다. 아무리 괜찮게 봐주려고 해도 내 외모가 그런 것과 연관 짓기에는 많이 모자란다. 나도 어느 정도 객관적인 눈으로 주제파악이란 걸 하고 산다.


‘당연히 아니지. 만일 내가 연예인을 욕심 내도 괜찮은 정도의 외양을 지녔다면 새 인생의 목표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풋! 살다 보니 별 소리를 다 들어보네.’


할 수만 있다면 연예인도 괜찮은 직업이다. 해가 갈수록 연예인의 사회적 위치는 상승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난 아니다. 전면에 나서는 직종을 하기에는 외모가 적합하지 않고 외모가 크게 중요하지 않는 역할엔 끼가 모자란다.


넓게 보면 감독이니 PD, 방송작가 등도 그 부류에 넣을 수 있지만 난 창작에는 별 소질이 없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기억나는 오마주니 클리셰를 남발하면서 남의 것을 원용하면서 태연하기에는 너무 합리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연예계는 생각조차 안 해봤다. 물론 엔터사의 주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과 연예인은 엄연히 다른 장르다.


갑자기 떠오른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잠깐 멈칫한 나를 여자아이 하나가 요리조리 훑어보고 있다. 괜히 기분이 뒤숭숭하다. 눈 터지는 계가 바둑에서 헛 패를 쓰고 난 다음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주 어색하다. 이런 분위기를 깨고 싶은데 말 붙이는 아이에게 용건을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떠나기가 좀 그렇다. 피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까지 이 상태 이대로 계속 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별다른 용건이 없으면 내 자리로 가도 될까? 이건 고마워. 잘 먹을게.”


이 불편함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사귀자.”


“뭐? 아니···”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무슨 전개란 말인가!


“나 싫어?”


“난 널 잘 모르는데 좋다 싫다 말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간신히 적당한 이유를 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현실일 수가 없다. 요새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스타일의 농담이 유행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너무 개연성이 떨어진다.


“내가 싫지는 않다는 거네.”


묘하게 말을 비틀었다. 그것이 사실이긴 한데 순순히 그렇다고 인정해주기엔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직감이 대답을 가로 막았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왜 싫어하겠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알아 가면 되잖아.”


‘헐!’


무엇을 알아야 한다는 것인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서로가 잘 모르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많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너무 즉흥적이잖아. 좀 시간을 두고 깊게 생각해보면 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감정에 순수한 아이를 너무 찌든 마음으로 대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리고 정말 이건 아니다.


“오래 보고 오래 생각했어. 지금 순간 기분으로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무논리에 대해 왜 그럴까란 생각은 적당하지 않다. 그냥 듣고 흘리면 된다. 문제는 내가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란 거다.


“하아! 그럼 언제 그런 생각··· 그러니까··· 음.”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 상황이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반 배정 되고 나면서부터 사귀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다른 애들이 다 너 연습생이라고 하길래 그냥 있었던 거야. 연습생은 연애 금지나 그런 게 있다고 해서··· 그런데 아니라며”


오늘 사회 선생님과 지나가듯이 한 간단한 대화가 바로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아이··· Tlqkf. 입 다물고 있을 걸. 괜히 나서가지고···’


시간으로 따지면 1~2분에 지나지 않았던 그 대화의 후폭풍 치고는 너무 심각하다,


“그래. 나 연습생은 아닌데 연구생이야 바둑 연구생. 바둑이 무엇인지는 알지?”


“그럼. 나도 초딩 때 바둑교실 좀 다녔어. 줄 친 나무판에 돌 놓은 게임이잖아.”


정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신박하고 간단명료한 정의다. 그나마 그 정도라도 알아서 다행스럽다.


“그러니까 내 사정이 말이지···”


내가 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사정조로 말을 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수습이 우선이다. 인생이든 바둑이든 계속되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입단을 하고나야 사귈 수가 있다는 말이야?”


내 재주로는 이렇게 밖에 말을 못 돌리겠다.


‘어? 아니 그 말이 아니잖아. 입단하고 나서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거라고.’


바로 반박을 하려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좀 귀엽긴 하다.


‘헉! 미쳤나 봐. 내가 무슨 생각을··· 에구구. 나도 몰라. 이게 정답이야. 바로 딱 잘라 거절하면 어린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솔직히 내가 입단을 언제 할지도 모르는 거고.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리라. 내가 인생 짬밥이 몇 년인데···’


이 나이 때 아이들은 대개 참을성이 모자란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 또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결국 수정이란 여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고 그 주변을 둘러싼 아이들 사이에서 ‘까였네.’ 어쩌고 하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황당한 상황 자체에 너무 수치심이 든다. 정말 학교는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자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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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 24.08.07 160 3 13쪽
32 입단이란 24.08.06 178 2 12쪽
31 나의 믿음은 24.08.05 162 3 13쪽
30 나에겐 너무 어려운 멀티태스킹. 24.08.04 157 3 13쪽
29 너무나 개성적인 24.08.03 163 3 13쪽
28 게임의 법칙 +2 24.08.03 169 2 13쪽
27 나의 꿈은 타인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 +2 24.08.03 168 4 12쪽
26 반전무인(盤前無人) :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평정심을 가지라 24.08.02 174 2 12쪽
25 외전) 모든 것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다. 24.08.01 177 2 14쪽
24 바둑은 멘탈 스포츠다. 24.07.31 193 3 13쪽
23 잠시 물러서다. 24.07.30 194 2 13쪽
22 연구생의 이중생활 24.07.30 211 3 12쪽
21 몽상가들 24.07.29 216 2 13쪽
20 현세의 호그와트 24.07.28 233 2 13쪽
19 환희는 없었다. 24.07.27 244 2 13쪽
18 초심을 지켜주세요. 24.07.27 244 2 12쪽
17 파랑새가 울었다. 24.07.26 257 3 12쪽
16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2 +2 24.07.25 281 6 11쪽
15 이무기가 구름을 타는 법 1 24.07.24 295 4 11쪽
14 버블 24.07.23 312 4 12쪽
13 닿지 않는 그 어딘가 24.07.22 306 4 12쪽
12 The winner takes it all 24.07.21 325 4 13쪽
11 되돌림의 미학 24.07.20 361 3 13쪽
10 치열하게 24.07.19 390 3 12쪽
9 면벽수련 24.07.18 428 1 12쪽
8 동상이몽(同床異夢). 24.07.17 458 2 11쪽
7 매력이 넘치는 원장님 24.07.16 563 3 13쪽
6 인연(因緣) : 아재가 아재를 만나다. 24.07.16 612 6 12쪽
5 그만해. 상대는 이미 죽어있어. 24.07.15 655 4 13쪽
4 지극히 도발적인 24.07.15 71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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