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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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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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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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DUMMY

‘이런··· 이러면 어려워지는데··· 그냥 필살기를 썼어야 하는 건데··· 잘못 생각했나?’


프로 입단을 위한 마지막 관문이라고 해서 한판 대국이 특별하지는 않다. 평소에 늘 두어왔던 것처럼 한발 한발 앞으로 향할 분이다. 주발 리그전처럼 오전과 오후에 각 한 판씩 1일 2국을 두는데 이것을 연속 9일에 걸쳐 총 18국을 두게 된다.


상대를 제압할 절대적인 힘이 아직 모자란 내가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서는 전략과 전술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고사에 나오는 말 경주에서 이기는 방법 같은 것.


전기새마(田忌賽馬, 전기가 말 시합을 겨루다)란 사자성어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빈이 제나라 장군 전기의 빈객으로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전기는 제나라의 공자대부들과 내기 경마를 자주 했는데, 가진 경주마의 능력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데도 항상 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손빈이 이길 수 있도록 알려준 계책이 전기새마에 사용된 전략이다.


3판 양승으로 승부를 겨루는 경마시합에서 제일 못한 말(下馬)을 적의 가장 뛰어난 말(上馬)과 경주를 시켜 먼저 1패를 안아 적을 안심시킨 뒤, 제일 뛰어난 말과 적의 두 번째 말(中馬)을 두 번째 말은 적의 가장 못한 말과 겨루게 해 2승을 취하게 한 것.


​ 현재 나의 상황도 따져 보면 비슷하다. 가장 잘 뛰는 말인 1조 9명과 좀 떨어지는 2조 9명. 여기서 내게 난관이 될 만한 건 당연히 1조 멤버들이다. 그들 중에는 연구생을 하면서 한 번도 대국을 해보지 않은 원생들도 있다. 그 원생 몇 명은 내가 있었던 아래쪽 조로 한번도 내려온 적이 없었다.


솔직히 그들의 이름만으로도 두렵다. 사오 년 노력했지만 그림자조차 밟지 못했던 상대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이겨내어야 마지막에 내가 설 수 있다.


아주 긍정적인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직접 마주해본 적 없었던 상대들과의 대국은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모두가 우세를 점쳐도 본인이 상대를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잡기 위한 초반 50수 AI 포석. 내가 50수 까지 외운 AI 끼리의 명국이라 할 수 있는 20국이 있다. 전생에서 그 배움을 통해 1급이 되었었는데 이 생에서 아직까지 그 감각을 노출하지 않고 잘 버텨냈다.


이건 이 시대의 이론과는 너무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는 수순들이기 때문에 나와 처음 만나고 게다가 짧은 대국 시간을 가진 이런 대국에서는 절대 파훼할 수 없다.


‘뭐 그렇게 믿기는 하는데··· 혹시 하는 녀석이 있으면 어쩔 수 없고··· 만약 그런 놈이 있다면 그런 괴물은 천재지변과 같은 거야. 너무나 인간적인 감성을 가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인 거지.’


내가 하마(下馬)인 것처럼 보일 테지만 초반에 개념이 다른 포석으로 판을 짜 격차가 벌어진 상태로 경주가 진행된다면 승패는 오리무중일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차이가 나면 텐 백 전술로 그 차이를 지켜낼 작정이다.


‘원래 내 특기가 딲기였어. 요즘 들어서 잘 안 했지만 이제 인생을 걸고 한 번 더 닦아보려고 해.’


2조들과는 신수를 보여주지 않고 평소처럼 그냥 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이 판에서 하마다. 중마(中馬)인 나로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들의 대부분과는 올 1년 동안 지겹도록 봤었고 겨루어왔다. 냉정하게 승률을 판단해 봐도 나의 우세다.


‘결국 내가 원한 결과는 중마인 내가 1조의 상마들을 이겨내야 만들어지는 거야. 여기서부터 전기새마와 내용이 조금 달라지겠네.’


이런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 2007년을 2조에서 전체 랭킹 16위으로 마무리한 상대에게 바둑이 몰리고 있다. 2조 연구생들에게 쾌조의 3연승을 거두고 1조의 고인물도 하나 잡아내며 계획대로 잘 풀리고 있는 중에 돌연히 일어난 참사다.


‘너무 뜻대로 되는 바람에··· 그래서 기분이 너무 들떠버렸나.’


2조에서 1년 내내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정현우에게 넘어지기 일보직전까지 몰리고 있다. 흑번을 넘기고 좀 찝찝했는데 그동안의 대국에서 전혀 보여주지 않던 포진이 나왔다.


‘바로 응징?’


하고는 실었지만 이런 중요도가 있는 대국에서 차마 그 짓을 저지르지 못하고 어어 하다가 여기까지 끌려오고 말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낯선 모양에 상대가 연구해둔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는데 꼭 이겨야 할 이런 대국에서 머리 박고 돌진은 절대 금물이다..


가끔 이런 순간이 올 때 마다 한 번에 반상의 변화를 뚫어보지 못하는 내 재능이 아쉽다.


아무리 잘 모르는 모양이여도 시간제한 없이 느긋하게 참고도를 몇 개씩 그려가면서 분석하라면 다소 능력이 모자라는 나도 당연히 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빡빡한 대국 시간제한 등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심리 상태를 압박하는 요소가 차고 넘친다. 난 이런 환경에서 그런 것을 해낼 수 있는 굵은 신경줄을 가지지 못했다.


‘음흉한 자식.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하라, 이런 말도 못 들어 봤냐? 1년 동안 열 몇 판을 두면서 이렇게 좋을 걸 감춰 놔? 좋은 게 있으면 미리 테스트도 좀 하고 그랬어야지. 이렇게 갑자기··· 요즘은 어린 것들이 더 하다니까.’


아무리 투덜거려 봐야 지금까지의 헛손질로 만들어진 반상의 결과가 변하지는 않는다. 살짝 시선을 올려 상대를 흘기기도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반상으로 고개를 숙인 채 내게 눈길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작정을 하고 왔네. 역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정현우 이놈이 내 앞 길을 막으려고. 아! 열 받아.’


나 보다 한 살 어린 연구생 새내기에 속하는 녀석이라서 그동안 잘 대해줬었다. 대인 관계에 서툰 내가 같이 어울리는 몇 명 안 되는 아이들 중의 한 명이었다.


‘어쩌겠어 나도 사회적 동물인 걸. 이제 성훈이 형이나 재국이 형은 생활 반경이 틀려져서··· 최소한 밥 같이 먹을 사람은 있어야 하니까.’


그의 기재는 최상급이었다. 원생 생활 2년 째일 뿐인데 2조까지 치고 올라왔다. 물론 이곳에서 기고만장하던 자신을 돌아보는 암초들은 만나 좀 겸손해지긴 했지만 조만간 스스로의 바둑을 정립하는 계기가 생기면 다시 위로 행할 것이 확실하게 보였다.


‘아마 녀석에게는 제쳐야 하는 암초 제 1번이 나였을지도··· 그래서 그렇게 친근하게 가까이에서 살랑였던 거야.’


과거 누군가가 바둑황제의 전성기를 끝장낼 다음 세대는 누구일까? 하고 반상의 잡초에게 물었다. 그 분 왈 ‘나도 그것이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가장 가까이서 표적을 노려보던 누군가가 아닐까?’


그때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처럼 느껴졌지만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인가를 깨닫고 소름끼쳤다 한다.


바둑황제의 전성기를 끝장낸 건 그의 내제자인 돌부처였다. 원래 사제 관계는 연령차이가 꽤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사로서의 활동기가 같아지기 어렵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무슨 인연이 삼세에 미쳤는지 10년에 걸쳐 타이틀을 주고받으며 공식대국만 300국을 헤아린다. 결국 그 대결에서 60% 대의 승률을 올린 제자가 스승의 전성기를 무너트렸다.


‘청출어람이 진리라는 걸 나이도 얼마 안 먹은 내가 후배에게 직접 증명 당하는 날이 오다니··· 아! 이럴 수가···’


열이 머리와 얼굴을 오갔다. 이런 상황은 심장에 아주 해롭다.


이런 장면에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열심히 더 열심히 수를 궁리하고 쉴 새 없이 판을 흔들어 최후의 역전에 이르기까지 분투를··· 절대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같은 조에서 니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하며 1년간 티격태격했다는 건 기본적으로 동일한 실력대라고 판단해야 한다. 물론 미세하게 내가 조금 낫긴 하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거기서 거기다. 이게 아주 합리적 생각이다.


내가 갖은 난리를 친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해 꼭 역전에 이른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같은 실력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수의 99%는 상대도 보고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건 결국 뭘 어떻게 해도 비세를 승세로 바꾸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게 했을 때 역전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인간사를 닮은 반상에서 어떤 변수가 개입할지는 불가해의 영역이다.


‘역전 가능성을 AI 식으로 말하자면 5%나 될까?’


그런 건 돌발적 사고에 의해 아주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 연구생 1, 2조의 실력은 그런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준에 올라있다.


‘그렇게 오만 용을 다 썼는데 져버리면 오후엔 어쩌냐고. 모두 그렇지만 오후에 한판 더 둬야 한다고. 또 그쪽은 1조 멤버야.’


바둑기사에게 승리와 패배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생활을 하노라면 많이 이기고 많이 진다. 한 시대를 석권한 기사들의 전체승률을 보면 7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물론 곧 도전기가 없어지고 상금제로 대회 시스템이 달라지면 많은 변화가 생기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랬었다.


입단 결정전은 전체 18국을 둬야 한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마라톤까진 아니어도 중거리 보단 더 먼 거리를 뛰어야 한다.


‘이제 5국 째인데 열 받는다고 날뛰어서 컨디션을 흐트릴 순 없지.’


어차피 접어야 할 판이라면 길게 붙들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성의 없이 둔다는 말이 좀 나오겠지만 난 이미 배수진을 쳤다. 난 뒤가 없다. 일찍 접어서 체력보존이라도 하는 것이 전체로 보면 득이다. 사석 하나를 1선에 가만히 올렸다.


“어?”


상대와 마주 앉은 지 거의 한 시간이 지났는데 숨소리 이외에 처음 들은 소리인 것 같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다. 상대는 아직 상황 판단이 좀 덜 된 듯 어리벙벙한 표정이다.


‘정현우. 이 자식! 너 복 받은 줄 알라고. 내가 오후 스케쥴만 없었어도 혼내줄 수 있었는데··· 아이고 삭혀야지. 수승화강. 오후에 꼭 이기자.’


정현우와 대국을 시작한 이후 처음 눈을 맞췄다. 왜 별안간 투료했는지 궁금증이 가득한 눈이다. 무슨 말인가 하려다 참는 기색이 완연하다.


몇 년간 한재영 하면 성적은 그저 그렇지만 최후까지 열심히 둔다고 해서 진땀이라 부르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짜증 나는 바둑이라는 의미란다.


‘좀 의도적인 부분이 있었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어.’


이제 그런 컨셉에 날 가두지 않을 거다. 어쩌면 마지막 대국들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냉정한 판단력과 합리적 선택 기민한 작전 수행으로 무조건 입단할 것이다. 이건 멀리뛰기 위해 한 번 움추린거란다.


‘다음 판은··· 아이고! 이렇게 지다니 이게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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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승리의 통쾌함과 패배의 허탈함. 24.09.19 50 3 13쪽
58 한계돌파를 위해 24.09.18 62 3 12쪽
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7 3 12쪽
56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4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4 4 12쪽
54 사노라면. 24.08.28 108 2 12쪽
53 열전 24.08.27 119 3 12쪽
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9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7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6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3 2 12쪽
48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4 3 12쪽
47 트라우마 24.08.21 132 2 12쪽
46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7 3 13쪽
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2 4 13쪽
43 위기와 응전 24.08.17 140 4 12쪽
»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6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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