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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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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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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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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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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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

DUMMY

“어디든··· 차 좀 빼서 길가로 좀 붙여 보라고.”


“마음 급한 건 알겠는데 우리가 차를 이용하니까 20분 거리인 거지 걸어서는 시간 안에 대국장까지 도착할 수 없어. 아직 한 시간 이상 남았잖아. 여기서 좀 더 기다려보자고. 곧 구청에서 구호차량이 나와서 염화칼슘이라도 뿌리면 정체가 갑자기 풀어질 지도 몰라.”


대회장을 찾아준 형들과 운치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최후 결전에 대한 결의를 다진 것 까진 아주 좋았다. 다만 그 장소에 머물던 1시간 동안 내 평생 경험하지 못했던 폭설이 쏟아진 것만 빼면.


대국장으로 복귀하려 느긋하게 주차장으로 향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현실을 깨달았다. 눈 속에 펼쳐진 동화의 나라는 아름다웠으나 지독한 교통 정체가 함께 왔다는 걸.


“아니 형은 그냥 대국장 근처에서 짜장면이나 먹으면 되지 왜 분위기 타령하면서··· 오후 대국이 남아 있는데 이렇게 멀리 나와 가지고. 어휴!”


“멀리 나오긴 뭘 멀리 나와. 대국이 몇 시간이나 남았었고. 다리 하나 건너 왔을 뿐이잖아. 20분 거리, 그리고 재영이가 기분 전환 하고 싶다고 해서··· 아이고 아무튼···”


지금 이렇게 말다툼 벌여 봐야 아무 소용없다.


“차 좀 빨리 세워 보라고. 어디 전화해야 되죠? 퀵 서비스라도··· 오토바이면 차들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너 미쳤어? 이 눈길에서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오겠다는 누가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온다고 해도 절대로 안 돼.”


“그럼 이대로 기권패 당해야 하는 거야?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인 거 같은데···”


“아! 정말 미치··· 이 대회 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네.”


지각패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도 이 대회의 상세 규정은 잘 모른다. 누가 그런 것 까지 자세히 알아보고 출전하겠는가! 그러나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은 연구생 교육 때 들은 적이 있었다.


심사위원이 대국개시를 선언한 후 선수가 자리에 착석한 시간 기준으로 일반 대국(제한 시간이 긴 대국)은 늦은 시간의 2배를 공제한다. 총 15분 이상 늦으면 기권패 처리된다.


아마도 우리 대국은 속기라 규정이 좀 더 엄할 것이다.


‘기권패 기준이 기준이 10분이던가? 그거 보다 적게 늦어도 무조건 1분만 주어지는 거 같은데···’


드문드문 계속 떠오르는 기억은 점점 더 절망적인 내용들 뿐이다.


“주최 측에 미리 연락하면 어떤 방법이 안 생길까?”


“다들 대충은 알잖아. 내 생각에 규정 자체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적시해 놓은 거라 우리 쪽에서 문제 제기 할 소지가 별로 없어.”


답이 뻔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지금 이 사태는 천재지변에 준하는 일인 거잖아. 우리 뿐만 아니라 점심 먹으러 밖으로 차 타고 나온 사람들이 좀 있었을 거야. 그럼 몇몇 대국은 우리 같은 일이 무조건 발생할 텐데··· 협회가 이번 건에 대하여 특별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따지고 들면···”


논리력이 약하고 말 주변이 없는 성훈이 형의 발언 치고는 아주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 의견 제시였다.


“그래서 지금 미리 연락이라도 취해 놓자고?”


아니라고 말만 안 할 뿐 재국이 형은 현 상황에 아주 비관적인 태도다.


“혹시라도 모르니까 해볼 건 해보자는 이야기지.”


“어쩌니 저쩌니 해도 말입니다. 우리 협회는 유구한 전통을 가졌다고 하는 어떤 단체를 모델로 해 디자인 된 거잖아요.”


현 대화 주제에서 좀 벗어나는 듯한 말이다. 우리끼리가 아니라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는 조금 수위가 있는 발언이었다.


“시비의 여지는 좀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


“그 말도 안 되는 전통이 문제랍니다. 예전에 그 단체는 교퉁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기사에게 원래 대국 스케줄을 이행하게 만든 적이 있었고 심지어 이전 전쟁 때는 공습 받는 와중에도 대국을 취소하지 않았지요. 그런 골통의 후예라고 할 만한 단체에 이 정도로 천재지변을 인정하라니··· 어림없어요.”


그런 편협함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 받은 우리 협회가 감히 신성한 대국의 권위를 훼손할 위험이 있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재국이 형은 단언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 돼? 정말 이럼 곤란하지. 난 배수진을 친 사람이야. 이 대국을 못 두게 되면 이대로 내 바둑 인생은 끝이라고. 하아!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이렇게 허무하게···’


의기롭게 일어서 이 한 몸 바친 것으로 최후를 맞이한 것도 아니고 지각에 의한 기권패가 내 바둑 인생의 마무리 사유라는 건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이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현실 인식의 5단계를 밟아가는 난 너무 인간적인 면이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부정, 분노, 거래에 이어 좌절 수용에 이르기까지의 현실 인식 과정이··· 어 뭐지?’


갑자기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이곳··· 에서도? 여기가 어디지?’


“재영아··· 재영아···”


어디에선가 멀리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꼭 이렇다. 좀 복잡하게 생각할 일이 생기면 언제나 동시다발적으로 새로운 사건들이 벌어졌었다.


“어! 그래. 잠깐만··· 헛. 왜 이러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미 무엇인가 가득 들어차 뻣뻣해진 상태다.


“재영아. 이제 다 왔어. 일어나야지.”


구분하기 어려웠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재국이 형이다.


‘다 오긴 어딜? 우린 폭설 때문에 차가 밀려서 도로상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음··· 기권패가 아닐 수도 있겠는데···’


갑자기 몸에 힘이 팍 들어왔다, 의식이 명료해졌다.


‘이런··· 놀랐었잖아. 에고고, 요즘 몸이 허해졌나? 웬 개꿈?’


눈을 떴다. 자동차 앞좌석이었다. 어김없이 우리 협회의 전관이 눈앞에 드러났다.


“여기서 내려. 재영이 너··· 겁나 센 척 하더니··· 긴장감이 크긴 컸나 봐. 크크큭,”


아무렇지 않은 척 앉은 자세를 바로 했는데 괜히 볼이 달아오른다.


“식곤증 때문이야. 좀 졸 수도 있는 거 아냐? 별로 특별한 일 아니라고.”


“누가 뭐래? 형들은 다 이해해. 우리도 다 같은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른 거잖니. 이제 마지막인데 멋있게 마무리 해야지. 흐흐흣.”


좋은 대사와 내용인데 왠지 마지막 웃음이 마음에 걸린다.


“왜 그렇게 웃어?”


“풋, 웃긴 누가 웃었다고, 크크큿.”


성훈이 형은 바로 부인했지만 아주 찜찜하다.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마지막 마무리 잘해. 이제 목표에 거의 다 왔잖아. 빨리 내려. 우리도 여기서 바로 가야 해.”


재국이 형이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요. 오늘 고마웠어요. 기분 전환이 되었네요. 웃으며 다시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이상하게 나와 헤어짐을 서두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런 소소한 일까지 일일이 신경 쓰기엔 앞에 남은 일이 너무 거대하다.


이제 최후의 결전이 남았다. 깔끔하게 이기고 새로운 나의 인생을 만들어가겠다.



###


대회 운영진의 대국 개시 선언으로 2007년 연구생 입단자 결정전 최종국이 일제히 시작되었다.


‘앗싸! 흑번이네.’


하늘마저 내 앞길을 축복하며 사정 없이 윙크를 보내고 있었다. 사실이 그런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진실을 누가 알겠는가! 다만 나에게 이런 긍정적 신호들이 나쁘게 작용할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 포인트다.


상대는 올해 들어 연구생 1조에 합류한 신참 중 하나였다. 작년 까지는 주로 2조에서 자주 보이던 얼굴이었다.


민현서.


‘내가 실력이 오르고도 잘 잡아내지 못했었고 좀 할 만하다 싶으니까 어느 순간 1조로 훌훌 날아가 버렸지.’


내가 거의 못 이겨 봤던 연구생들 중의 하나다.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고인물이 아닌 것만 해도···’


이 대회에서 내가 비록 고인물로 지목된 상대들을 다 이겨 왔지만 그건 여러 가지 특수한 상황들이 겹쳐서 그런 것이다. 뭐라 뭐라 해도 그들은 가장 오랜 기간 검증된 상위의 실력자들이었다.


이 대회에서 고인물들의 부진이 의외의 결과라고 사람들에게 받아 들여질 수 있겠지만 역대 결정전에서 고인물들의 승률이 높았던 적은 별로 없었다. 기존 강자들의 낙마는 자주 있던 일이라 별로 새롭게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아마도 오랫동안 앞에 머물렀던 것에 대한 부작용이겠지. 다수의 하위 연구생들에게 집중 연구 대상이었을 테니까. 그건 강자라고 소문난 이가 감내해야 하는 족쇄 같은 게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대회에서 난 누구에게도 그리 큰 경계 대상은 아니었으리라.


‘민현서 이 형은 어땠을라나? 아무튼 이번에 애 썼네. 14승 3패면 어디 가서도 부끄럽지 않은 전적이야. 곧 4패가 되겠지만. 유감스럽지만 이 동네에서 2등은··· 크크긋.’


이 판은 처음 시작부터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다.


바둑에서 포석이라 함은 초반 이후의 전투나 집 차지에 유리하도록 요처에 미리 돌을 벌려 놓거나 차지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부분의 포석은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 없지만 일부 유명한 포석 형태엔 이름들도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누군가 그 포석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이뤄내야지. 결정적인 승부에서 승리한다든가. 아니면 논리적으로 결함 없이 매 장면을 설명할 수 있다든지···’


중국식 포석이라는 이름이 한 때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여러 기사들의 손을 거치면서 연구되어 낮은 중국식, 높은 중국식, 미니 중국식 등 수많은 변형이 나타났다.


중국식 포석은 일정한 특징을 가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시대에 따라, 유행에 따라, 대국자에 따라 그 때 그 때 그 쓰임이 달라졌다.


이것이 그렇게 긴 생명력을 가졌던 주된 이유는 상대방의 착수를 제한하고자 하는 현대 바둑의 경향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특징들로 인해 갈수록 사용이 빈번해졌으며 변형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장점으로 인해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사용될 예정이다.


AI 시대 중국식 포석에 대한 연구는 주로 파훼법이었다. 내가 외우고 있는 20국의 AI 대국 중에서 이와 연관되어 초반이 진행되는 것이 3국이나 된다.


그 기보들을 공부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난 중국식 포선에 대해 한 수의 가치와 이해득실을 현재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AI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낮은 중국식으로 시작했다. 오늘은 역으로 간다. 내가 인간의 바둑도 아주 잘 둘 수 있음을 보여 주겠다.


상대는 나와 절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바둑판을 향해 있었다. 이건 대부분의 기사가 대국에서 보여주는 경향이지만 오늘의 민현서는 묘한 위화감을 준다. 난 그와의 대국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이런 느낌은 처음 받았다.


‘무엇 때문이지?’


무심결에 흘깃 상대를 쳐다봤는데 공교롭게도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리고 바로 이런 느낌이 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주, 상당히, 몹시 불안해 보였다.


‘자식 쫄았네.’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가진 나와의 대국임에도 이 대국의 무게에 눌려 그의 심리 상태는 최악의 상태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대 호재야. 이거 작전변경 해야겠네.’


저런 심리 상태는 결국 어느 시점에서 파탄을 부르게 되어 있다. 한 수 한 수 두어가며 긴장감이 높아지면 저런 나약한 정신으로는 점점 버텨내는 게 버거워진다. 지금부터 나의 컨셉은 견실이다. 확실한 실리를 챙기면서 상대의 파탄을 기다린다.


‘어쩌면 이렇게 긴장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


연구생 누구도 이 정도 긴장감을 받으며 대국 하는 경험을 가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그 못지않게 매웠던 세상살이에 대한 인내의 경험을 가졌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오늘은 서로 바둑 수를 겨누는 게 아니라 험난한 상황으로 부터 얼마나 자신의 원래 모습을 지켜낼 수 있는지가 승부의 관건이 될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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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9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7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6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3 2 12쪽
48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4 3 12쪽
47 트라우마 24.08.21 132 2 12쪽
»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7 3 13쪽
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2 4 13쪽
43 위기와 응전 24.08.17 140 4 12쪽
42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5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38 도(道)를 아십니까? +2 24.08.12 148 3 12쪽
37 실마리 24.08.11 151 2 12쪽
36 우울한 날 보험 증서를 꺼내다. +2 24.08.10 154 2 12쪽
35 위기 관리 24.08.09 156 3 12쪽
34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24.08.08 166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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