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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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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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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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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의 권리

DUMMY

‘어? 거참!’


상대의 손놀림을 무엇이라 표현하면 좋을까? 응수가 번개 같다. 이런 장면은 이미 공부가 다 되어 있다는 듯 거침없이 두어온다.


슬쩍 쳐다보니 무아지경인 것 같다. 내 착수에 맞추어 그냥 수를 날리고 있다. 평소 훈련량이 많았었는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다. 조금의 시비 거리도 생길 수 없는 아주 무난한 수들이 연속적으로 주르륵 펼쳐졌다.


바둑 한 길을 수년 혹은 수십 년 정진한 전문가들이 고심해서 만들어낸 모양들이다. 그런 형태들이 나쁠 리가 없다. 착수와 응수가 아주 잘 균형을 이룬 이른바 정석에 부합하는 수들이다.


상대의 응수는 복잡한 형태를 피하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간결하고 길이 확실하게 보이는 수를 선호한다. 무의식에 가까운 휘청 거리는 정신을 붙잡아 이 한판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빤히 보인다.


‘좋네. 아주 좋아. 몹시 훌륭한 자세야. 역시 바둑이 되려면 모양이 좋아야 한다니까.“


단 한 가지의 문제만 빼면 상대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 아마추어끼리의 대국이라면 아주 칭찬 받을 수들의 향연이지만 프로는 이래서 안 된다.


이런 무난한 수들을 구사하는 것만으로 승리를 가져갈 수만 있다면 그 이상 좋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식으로 이겨내는 건 전성기의 돌부처만 가능했던 일이다.


보통의 기사들이 그런 식으로 판을 짜면 건 편안하게 이기기보다는 무난하게 지기 더 쉽다. 현역 프로기사도 그런데 아직 그 프로가 되기 위해 시험대에 오른 우리 같은 지망생들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우리는 실력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승부를 내야 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 거잖아.’


특히 나처럼 후대의 연구 성과를 알고 있는 이에게 이런 식으로 상대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과거 누가 내게 4분의 1집이 어쩌고 하면서 한참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이 판에서는 그 보다 좀 더 적은 차이가 총 수순이 한 수씩 늘어갈 때 마다 꾸준히 쌓이고 있었다. 무난한 수순을 비틀어 받는 후대의 연구에 의해 밝혀진 포인트가 계속 올라갔다.


상대는 현재 다른 생각을 활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할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 중반을 넘어서 전체적인 구도가 만들어진 이상 되돌릴 수 없다,


‘이미 늦었다고. 그런데 언제쯤 이상을 알아차릴까?’


회광반조(廻光返照)라는 게 있다, 대개 무협소설에서 죽기 직전 잠시 원기를 회복하는 순간을 그렇게 표현했다. 원래는 선불교에서 쓰는 용어다. 자성반조라 하기도 하고 우리 마음의 본성을 자각의 빛을 돌이켜 통찰하는 것을 말한다.


상대가 그 회광반조의 순간에 들었을 때 이 승부가 마무리될 것이다. 슬쩍 고개를 돌려 대국 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꽤 많이 남았다. 이렇게 흘러가는 대국에서 시간이 모자랄 리 없다.


상대가 아무리 정신을 못 차리고 변해가는 상황에 휘둘려 흘러간다고 해도 승부에 대한 훈련은 이성이 아니라 몸에 본능적으로 새겨지도록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것이 지금 나온 것 같다.


‘어?’


규칙적으로 나오던 상대의 응수가 갑자기 딱 멎었다. 반상 위로 올라온 손이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 슬그머니 다시 바둑판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쯧쯧. 조금 이른가?’


무슨 이유에선가 상대의 리듬이 흐트러졌다. 스스로를 완전한 함정 속에 가두기 직전이었는데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않고 웅크리고 말았다.


머리를 흔들고 목을 돌린다. 그리고 상대의 마른 세수가 시작되었다. 많이 꼴불견이다. 나 같으면 질 때 지더라도 부끄러워 도저히 할 수 없는 행위인데 저 쪽은 이제 가릴 것이 없나 보다.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아주 쓸데없는 생각을 상대에게 불러일으킨 동기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뭐든 무슨 상관이야. 그래봐야 이젠 늦었어. 안 두고 뭐하니? 계가? 크큿. 이제야 정확하게 세고 싶은 마음이 든 거야? 그래서 넌 안 되는 거란다.’


바둑판에서 승부를 가릴 때면 난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이해나 공감과 같은 인간적인 가치를 철저히 외면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상대의 응수를 보고 '왜 그렇게 뒀을까? 다음 번에는 좀 더 잘 보렴. 네 실수에 내 마음도 아파’ 이럴 수는 없지 않겠는가!.


프로의 바둑에서 첫 번째 미덕은 승리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든 이용한다. 오늘 이 대국에서 상대는 한순간 내게 틈을 보였고 난 그 감정을 공유하기 보단 슬쩍 비켜서 그 곳에 상처를 만들려 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승리란 것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난 이길 수만 있다만 더러워도 괜찮고 비겁해도 문제없다. 그것이 프로의 바둑이다. 이기지 못하는 프로는 존재 가치가 없다.


‘이 한 판만 이겨내면 바로 그 프로가 되는 거야.’


상대는 지금까지의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계가 삼매경에 들었고 내 가슴은 두근거림을 더해간다.


상대가 장고(長考)에 들어간 만큼 거기에 맞춰 나도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 변한 분위기가 굉장히 어색하다.


‘현재 집 차이가 얼마나 날까? 한 집? 두 집?’


아직 완벽하게 집들의 구획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보는 관점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우세하다고는 생각되는데 아직 완벽하진 않다.


‘아주 중립적으로 이 판세를 판단해보면 흑에게[ 우세한 흐름이 있어지고 있다 정도?’


이 장고가 끝나면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아무튼 지금까지 둬 오던 대로 상대가 해준다면 바둑이 끝날 시점에서 내가 무조건 두세 집은 남기겠지. 그렇다면 상대가 그 흐름을 비틀려 하지 않을까? 당장? 아니 아직은 아니지만 결국은 그런 시도를 할 수밖에 없겠지.’


문득 바둑판에서 시선을 높였다. 상대가 아닌 바둑판이 놓여있는 테이블 옆으로. 나란히 8개의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고 거기서 16명의 연구생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세상의 고뇌란 고뇌는 다 짊어진 표정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우리는 왜 승패에 목을 매여 하는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것일까?’


프로 기사의 길이란 때론 인간의 감정을 절제하고 야수의 심장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이다.


‘에고, 마귀가 들려 하는 구나. 여기까지 다 와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바둑은 이미 우세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평상심을 가지고 곧 날뛸 상대의 예봉을 피하면 된다. 그럼 상대는 스스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따악-


마침 알맞게 백의 착수가 이루어졌다. 그 고민의 끝은 강렬한 반발이었다. 민현서 그는 참지 못했다. 그의 인내심은 지금 종이장 같았다.


‘오호! 편안히 가시게나.’



###


투료를 선언하려는지 민현서의 손끝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나보다 두 살 많다고 해봐야 우리 나이로 열일곱 아직 어린애다. 감정 자제가 어려운 거 다 이해한다.


‘그러니 이제 좀 사라져 주지 않으렴? 오늘 날 뛸 만큼 날 뒤지 않았냐고.’


이 대국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민현서가 주도했다. 나의 역할은 미미했다. 그냥 평소처럼 내 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그리고 승리를 가져갔다.


감정에 휩싸여 승부를 서둘면 어떻게 되는지 민현서가 잘 배웠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조용히 퇴장해 주세요.’


이윽고 떨리던 손끝에서 돌 하나가 일선으로 옮겨졌다.


‘드디어 끝났네.’


가만히 고개를 숙여 자리에서 일어나는 패배자를 배웅했다.


‘이 자식 막판까지 안 던지고 애먹이더니···’


이겼다. 프로의 자격을 드디어 획득하고 말았다. 이런 날이 오면 감격에 겨운 눈물이라도 쏟아질 줄 알았는데 뜻밖에 너무 덤덤한 마음이다. 생각보다 감정의 일렁임이 크지 않다.


‘음. 실감이 안 나서 그럴 거야. 좀 지나면 달라지겠지.’


감정 표현은 서툴지만 아주 기쁘긴 하다.


‘에구구. 이제 나도 가야지.’


그런데 집에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모님이나 원장님이 온다고 그랬을 때 그냥 가만히 있을 걸.’


번거롭고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모두에게 굳이 오지 마시라고 미리 말씀을 드렸었다. 사람 말 잘 안 듣는 성훈이 형이나 재국이 형은 기어이 점심시간에 나타났지만 그 분들은 다르다.


‘그래. 성훈이 형이나 재국이 형이 나 내려주고 볼일 보겠다고 했지만 그 청개구리 같은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냥 갔을 리가 없어. 어디 근처에 있을 거 같은데··· 연락을 해서···’


일단 자리에서 일어섰다.


찌릿-


‘어? 뭐지?’


이쪽 저쪽 태이블에서 아직 대국 중인 연구생들의 눈빛이 사정 없이 내게 내려 꽂혔다.


질시, 부러움, 감탄··· 시선의 색깔들이 뚜렷이 느껴진다.


‘에공. 니들 바둑이나 신경 쓰라고, 난 이제 니들과 신분이 달라졌어. 당분간 겸상은 안 할 거란다. 크크큿.’


조금 기분이 업 되려고 한다. 어깨를 으쓱이며 대기실로 들어섰다.


“재영아!”


“어! 어떻게···”


“내 발로 가고 싶으면 어딜 못 가겠어? 내가 네 말을 꼭 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함 원장님은 괜히 툴툴 거렸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웃고만 계신다.


“어어엉, 제가··· 억억. 제가··· 어어엉··· 이렇게···”


갑자기 막혀있던 봇물이 터지듯 온갖 감회가 쏟아져 내렸다. 어쩌면 기억이 다시 시작된 후 처음 흘린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성취에 대한 기쁨, 두려움에 대한 극복 그 모든 것이 눈물에 녹아 흘러 내렸다.


“그래. 그래, 안다 다 알아··· 잘 했다. 잘 했어.”


비로소 아버지가 다정하게 안아 등을 두드려 주셨다.


“애 어른처럼 굴더니 애 맞네. 웬만하면 그만해. 아니지 눈물범벅 인터뷰 이런 거 하면 좋겠네. 아~주 감동적이겠어.”


“흐흑흑··· 원장님, 무슨 인터뷰요?”


“넌 경험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입단자가 결정되면 ‘월간 오로’ 같은 데서 당연히 인터뷰를 하지.”


월간 오로는 가장 대표적인 바둑 잡지이다. 그런데 일종의 협회 기관지 성격도 가지고 있는 곳이라 별 영양가 없다.


‘별거 없네. 나 필 받았다고. 말리지 마.·’


지금은 누구에게도 방해 받고 싶지 않았다.


“으엉엉··· 아버지 이제 제가···”


한바탕 울고 났더니 아주 시원해졌다.


‘스트레스가 싹 풀리네. 아직 앤데 좀 울면 어때. 다 이해할 거야. 그래도 다음엔 좀···’


밖에서 잠깐 인터뷰가 있을 거란 이야기에 대충 옷매무새도 정리하고 젖은 수건으로 얼굴도 닦았다.


‘이 정도면 대충 넘어가겠지. 자~알 생겼다. 크큿.’


거울을 보면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대기실을 나섰다.


너무나 밝은 불빛이 눈을 찔렀다.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눈을 찌푸려 실눈으로 간신히 앞을 살폈다. 어깨에 둘러멘 카메라가 보였다. 마치 스팅어 같다. 정신이 번쩍 든다.


‘악! 이게 뭐야! 설마 TV?’


시커먼 몽둥이 하나가 불쑥 턱 끝에 닿았다.


“역대 최연소로 연구생 내부 입단자가 되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무슨 최연소? 내가? 그럴 리가 있나? 그런 것도 체크하는 사람이 있어? 그나저나 이거 진짜 TV인 거야?’


“어··· 에··· 조아···”


갑자기 목이 확 잠겼다.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하시는군요. 이제 마음 좀 놓으시고 편안하게 소감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헐! 좀 전에 세수라도 할 걸 그랬나 봐! 닦았어도 얼굴이 엉망일 텐데··· 사진 빨이··· 아니 사진이 아닌가? 에고고 아무튼 망했어.’


“에··· 또.··· 감사합니다. 저의 승리는···”


상황을 매끄럽게 넘기려는 리포터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웅얼거림으로 인터뷰는 제대로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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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한계돌파를 위해 24.09.18 62 3 12쪽
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8 3 12쪽
56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5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4 4 12쪽
54 사노라면. 24.08.28 108 2 12쪽
53 열전 24.08.27 119 3 12쪽
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9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8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6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4 2 12쪽
»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5 3 12쪽
47 트라우마 24.08.21 132 2 12쪽
46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7 3 13쪽
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3 4 13쪽
43 위기와 응전 24.08.17 140 4 12쪽
42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6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38 도(道)를 아십니까? +2 24.08.12 14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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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위기 관리 24.08.09 156 3 12쪽
34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24.08.08 167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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