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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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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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敎訓)을 얻다.

DUMMY

“아이고, 나도 아직 못간 본선을···”


재국이 형의 목소리가 샐쭉해졌다.


“음··· 이 동네가 원래 좀 그렇죠. 청출어람 몰라요? 민 사범님.”


새해에 들어오면서 프로 면장을 받고 다시 이어진 기념대국. 신예기사전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행사를 마치고 드디어 내 첫 프로 공식 대국을 국기전에서 하게 되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 기전에서 성적이 너무 잘 나왔다. 예선을 파죽지세로 돌파했다.


시즌 일정 진행이 가장 빠른 국기전은 시즌을 시작을 여는 기전이라 할 수 있다.


“뭐야? 청출어람? 난 너 같은 제자 둔 적 없어.”


원래 프로기사들은 직유보다는 은유를 좋아하고 비유 또한 수시로 사용한다. 그런데도 이런 식의 반응은 괜한 트집 잡기다.


“꼭 제자라서 그렇다기보다 형보다는 제가 좀 낫다 그런 거죠. 태어난 순서대로 본선에 오르는 건 아니잖아요. 실력지상주의. 초단에게도 아주 공평한 룰이죠. 그렇지 않나요? 민 사범님.”


나와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 좀 놀려도 타격감이 별로 없다. 내가 그런 유형의 사람들을 좋아하나 보다. 어쨌든 그것의 첫 번째는 성훈이 형이지만 재국이 형도 그다지 이런 말장난에 영향 받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반응이 좀 세다.


“휴! 말을 말아야지. 다음 기에는 나도 올라갈 거야.”


월척을 낚는 손맛을 좀 느껴보나 했더니 재국이 형이 금방 페이스를 회복해 뒤로 물러서 버렸다. 이러면 재미가 적다.


‘에구, 너무 이르잖아. 빠질 때 빠지더라도 내게 재미를 좀 달라고.’


재국이 형은 천재형에 속하는 기사였다. 연구생을 하면서 그런 소리 안 들어 본 기사가 있겠느냐만은 그 중에서도 좀 특별했다. 1조로 승급하는 것도 빨랐고 일반인 입단 대회를 통해 늦지 않은 나이에 무난하게 입단도 해냈다. 그런데 정작 프로가 된 후 이겨내지를 못하고 있었다.


봄과 가을. 봄 입단은 바로 그해 면장을 받기 때문에 다음 해 면장을 받는 가을 입단자와 1년차가 나는 것 같지만 입단시가를 굳이 따져 보면 사실은 몇 개월 차이밖에 안 나는 셈이다. 그런 나와 요즘 비교가 되니 아무리 온화한 성격의 재국이 형이라도 민감해 질 수밖에.


같이 출발한거나 마찬가지인데 한쪽이 벌써 처지면 아주 곤란하다. 이 동네는 사람 착하고 성실해도 다 소용없다. 대국에서 이겨야 존중받고 살아남는다.


“올해 벌써 예선에서 다 떨어진 거야? 아직 여름도 안 되었는데 벌써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해?”


“한두 개 남았는데 지금까지 해온 걸로 보면 그것도 별 수 없겠지. 가능성이 아주 낮아. 일단 마음비우고 다시 재정비해서 내년을···”


느긋하다 못해 늘어지는 말이다


“어휴! 그게 무슨 소리야!”


재국이 형은 언재나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꼭 좋은 기사인 것은 아니다.


바둑 동네는 초식동물이 살기 어려운 곳이다. 살아남아 누리려면 포식자가 되어야 한다. 이겨야 된다는 말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합리, 비합리를 따지지 않는다. 원칙을 지키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이 동네의 생존 법칙은 후일을 기약하지 않기 때문에 이겨도 지금 당장 이겨내야 한다.


재국이 형이 지금 말하는 대로 그렇게 잘 준비해 내년을 맞으면 그 땐 또 다른 사정이 생기고 또 다른 강자가 등장할 것이 확실하다.


“형. 의욕 좀 내 보라고. 그게 아니란 걸 잘 알잖아.”


“그래. 그래야겠지.”


말로는 부정하지 않는데 눈은 여전히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공허하다.


‘아이 참!’


그래도 나보다 형인데 너무 심하게 들릴만한 말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형. 그런데···”


일단 질렀다. 목소리 톤을 살짝 가라앉히고···


“내일 대국이지? 잘 둬라. 난 먼저 들어갈게”


바로 봉쇄당했다.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려 했는데 돌연히 말을 끊고 재국이 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우리가 입단 전 부터 사랑방처럼 사용하는 협회 일반 대국실의 한 귀퉁이다. 아주 편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던 곳인데 재국이 형에게는 이제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 예. 그럼···”


“어! 그래.”


급하게 이루어진 인사가 너무 어색하다. 그렇게 가만히 돌아선 재국이 형의 어깨는 쳐져 있었다.


‘하아!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동네에서··· 아무튼 난 다르다고.’


난 국기전 본선 첫 대국을 꼭 이겨내겠다는 의욕에 잠을 못 이룰 지경이다. 대국 전 며칠 동안 본선 대국 상대의 기보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열심히 대비책을 연구했다.


대국 상대는 진용재 7단. 중견기사로 전성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는 평가를 받는 기사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두 기전의 본선에 한 발을 걸치고 간간히 터지는 한방 펀치로 최상위권 기사를 잡아내기도 해 아직 기량이 퇴색하지 않았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솔직히 그런 걸 퇴물이라고 하지. 그 일보직전이던가.’


몹시 싸가지 없는 표현이다. 나도 안다. 그러나 이곳은 프로 바둑판이다. 이겨야 사는 동네. 승부에서 밀리는 순간 이 정도 말을 듣는 건 각오해야 한다. 내가 그와의 승부를 이겨내면 좀 버릇없는 말도 자신감의 표출이 된다.


기보로는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잔 수에 능한 끈질긴 기풍인데. 요즘의 나는 이런 스타일도 곧잘 잡아낸다. 이길 자신이 생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진용재 7단 대 한재영 초단. XX기 국기전 본선 제 1국 시작하겠습니다.”


입회인의 대국 개시 선언을 시작으로 돌을 가리고 우하귀 화점에 첫수를 놓았다.


상대는 바로 응수할 마음이 없는지 그의 손이 천천히 바둑판 옆에 비치된 찻잔부터 찾는다.


‘그래. 천천히 합시다. 어르신 제가 좀 기다려 드리죠.’


호호 불어가면 뜨거운 차로 입을 적시더니 앉은 자세를 바꿔 의자 등받이에 파고들듯 깊게 몸을 기댄다.


‘어? 아저씨 뭐 하는 거야. 가 상대를 기다리게 만들어 초조함을 불러일으킨다. 미야모토 무사시. 뭐! 이런 거야? 바둑 둡시다. 심리전 같은 건 소용없다고.’


기분이 쬐끔 상하려고 한다.


‘아무리 제한 시간이 3시간이라지만 이게 첫 수부터 뭐하자는 건지. 에이, 몰라 나도 누워.’


좀 기다렸는데도 상대가 착수 할 기미가 보이질 않아 나도 자세를 풀었다. 상대의 손은 여전히 찻잔과 입사이만을 오갈뿐 바둑판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솔직히 겁나게 무료하다.


‘예전엔 이럴 때 한 대 하면서 여유롭게 기다리고 그랬었는데···’


가끔은 그 때가 그립다. 나 역시 이런 대국장은 아니지만 빛바랜 간판이 정다웠던 한일기원의 자욱한 연기 아래서 열심히 바둑을 뒀었다. 그랬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공식대국에서 흡연은 2001년부터 금지되었다. 사실 그렇게 오래전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 그땐 이 아저씨도 차가 아니라 담배를··· 음.’


이제야 상대가 찻잔에서 손을 떼 좌하귀 화점에 착수를 한다. 바둑판으로 올라가는 손이 슬로우 모션이다.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첫 수에 20분? 뭐 하자는 거지? 이거 실화냐?’


자세를 바로 잡고 우상귀 화점에 세 번째 수를 놓았다. 상대의 손이 또 찻잔으로 향하고 있다. 상대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몹시 한가해 보인다. 다시 의미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또 장고인가? 맘대로 하세요. 나도 느긋하게···’


내 자세가 풀어지자 상대가 또 착수를 한다. 다시 자세를 잡고 응수를 했다.


‘이게 뭐하자는··· 아! 별 짓을 다 하시네.’


그렇게 내 첫 본선 대국은 흘러갔다.


대국 시간이 1시간 30분 가량 지났는데 바둑판에 놓여 진 돌이 열 개 남짓 하다. 지금까지 내 소요 시간은 3분이었다. 앉은 자세를 풀었다 접었다 하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부터 나도 자세가 완전히 풀어져 반 눕듯이 앉아 있다.


‘형세는··· 풋!’


나쁘지 않다. 나쁠 수가 없다. 이번에 내가 탁자 한편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었다.


‘별 생각을 다 하네. 총 10수 뒀는데 이걸로 어떻게··· 놓인 돌이 있어야 형세 판단을 하지. 그래도 제한 시간이 좀 줄어들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한 시간 정도만 더 버티면 저 아저씨 좀 빨리 둘 수밖에 없지. 조금만 더 참자.’


딱-


상대의 착수에 몸이 꿈찔 한다. 응수를 위해 내 돌통으로 돌을 집으러 손이 움직이려다 다시 움찔거리며 멈추고 말았다.


무거웠다. 빈손이 아니었다. 손에 들린 찻잔의 차가 넘칠 듯 출렁거렸다.


‘에잉, 별 게 다 걸리적거리네.’


이후로도 상대는 때로는 착수를 빠르게 해서 두 세수 두다가 뜬금없이 장고에 들어가기도 하고 돌을 놓을 듯 말 듯 하다 찻잔으로 손을 돌리기도 했다. 이제는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자동으로 불규칙적인 근육의 긴장과 이완이 이어졌다. 이제는 뇌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피곤한 양반이네. 이 아저씨. 하지만 아무리 날 그렇게 흔들려고 해도 승부에 영향이 갈 일은 없을 거예요.’


평소에 특별히 시간을 내어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가끔 사찰을 가면서 가벼운 산행을 곁들이기도 해 체력은 문제없다. 특히 현재 십대 중반의 이 육체는 회복력이 탁월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대국 중에 지친다든가 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오늘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음에도 왜인지 대국 중에 진땀이 흐른다.


여전히 상대는 느긋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며 가끔 한 수씩 착수하고 있었다. 흡사 본인이 대국자가 아니고 구경꾼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이제 십분 남았어요. 안 두고 뭐하는 거예요? 설마 시간패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상대의 시간패를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 왜 이런 생각을···’


짜증이 벌컥 밀어 닥친다.


100여 수가 진행되었지만, 아직도 내게 남은 제한시간은 2시간 40분이다. 워낙 상대가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해준 덕에 내 시간은 거의 쓰이질 않았다. 상대는 이제 느긋하다 못해 나른해진 표정이다.


‘아! 두는가 보네. 에고, 또 차. 5분밖에 안 남았는데 왜 이렇게 느긋한 거야. 또··· 엥? 두는 거야? 그럼 둬야겠지. 시간도 없는데··· 아! 차 마시려던 거였어? 어이구, 미쳐.’


속이 다 뒤집어지다 못해 터지겠다. 이 대국 제발 빨리 좀 끝났으면 좋겠다. 사람 진이 다 빠진다. 남은 시간을 다 쓰고 30초 초읽기 중 28초가 흐른 뒤에야 상대의 돌이 놓여졌다.


‘에고고. 드디어 다 끝났어. 초읽기야. 이젠 빨리 둘 수밖에 없지.’


서둘러 착수를 했다. 세 시간여 동안 바둑판에 드문드문 놓여 지던 바둑돌들이 이제야 좀 뚜렷하게 형태를 드러낸다. 길고 길었던 시간이었다.


‘빨리 끝내자. 더 끌면 돌아버릴 것 같아.’


치밀어 오른 짜증과 화를 바둑돌에 담아 한 수 한 수 둬 나갔다. 상대는 여기서도 끝까지 버틴다. 다음 수가 뻔한 자리임에도 잇지 않고 초읽기 여덟까지 기다렸다 그제야 잇는다.


‘아! 아저씨 단수에요. 단수 몰라요? 아다리. 아! 진짜 미치겠네.’


이제는 윗머리로 김이 솟아오른다.


막고 잇고 연결하고··· 겨우겨우 억지로 마무리를 했다. 상대의 28초 신공에 얼굴에 열이 올라 앞이 안보일 지경이다.


‘휴우! 이제 겨우 끝났네. 하마터면 바둑판 엎을 뻔 했어. 계가를··· 엥?’


공배를 메우고 계가를 했다. 반면으로 흑이 4집을 남겼다.


백 1.5 집 승. 입회인이 승패를 확인한다.


‘헐!’


내 대국시계는 아직도 2시간 10분이 남아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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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사노라면. 24.08.28 108 2 12쪽
53 열전 24.08.27 119 3 12쪽
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9 2 12쪽
»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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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38 도(道)를 아십니까? +2 24.08.12 14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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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위기 관리 24.08.09 15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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