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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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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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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에 관한 고찰

DUMMY

“푸하하··· 그런 건 기보에 안 나오지.”


역시 고성훈이다. 그는 내게 위로 보다 놀림을 선사했다.


“진짜로 미칠 것 같았다니까. 그런데 대국 끝나고 문득 생각해 보니까 중간에 집을 한 번도 안 세어 본 거야. 대국 중에 눈으로만 형세 판단을 했었는데 계속 나쁘지 않다고 생각만 했었고 정작 세어 확인해야 시점에 집을 정밀하게 세어 보질 않아서···”


“진 사범님이 구렁이지 오래 묵은 능구렁이. 후배에게 따끔한 교훈을 내려 주신거지. ‘이 놈아! 이런 것도 있다.’ 이렇게 말이지.”


“하! 그래도 졌을 줄은 몰랐어. 아니 대국 중에 승패 생각을 잊어버린 거 같기도 해. 나중에는 ‘빨리 끝내자’ 이런 생각만 했었거든.”


정말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대국 끝난 지 몇 시간 지났는데도 아직 머리가 멍하다.


“정신 바싹 차려야 해. 그래도 좋은 경험 한 거야. 훗날을 위해 예방 주사 맞았다고 생각해.”


“다 내가 모자라서 그렇지.”


억울함보다 자책이 앞선다. 패자의 구구한 사연은 변명일 뿐이다. 진건 진 것이다.


“그래. 넌 참 맞는 말만 하는 구나. 하하”


“어휴!”


프로는 이기는 자가 강자다. 결과로 이야기하는 세계에서 오늘은 그가 나를 삼켰다.


일반 대국실에서 만난 성훈이 형의 위로 아닌 위로를 뒤로한 채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 앞까지 가지 않고 일부러 큰 길에서 내렸다. 갑자기 그냥 좀 걷고 싶었다. 터덜터덜 걸으며 잡념들을 털어냈다. 해질녘 노을이 처량해 보인다.


바둑이 태생적으로 생사결의 요소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현대바둑은 300여 년간의 생사결 속에서 발전했다.


명인 기소를 차지하기 위한 4대 가문의 쟁패가 현대 바둑의 모태가 되었는데 그건 단순히 기량의 발전을 위해 연구 성과를 겨루는 그런 대결이 아니었다. 바둑이 원래는 풍류의 하나로 지식인들의 교양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후천적으로 생사결의 DNA를 그렇게 주입 당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결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얼핏 잘 떠오르진 않지만 되짚어 보면 없진 않았다. 남아있는 것들은 대개 축제의 놀이형태로 현대에 전해졌는데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것들은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거의 명맥이 끊어졌다.


생사가 오갈만큼의 위험함이라는 것을 현대사회에서 수용하기는 어렵다. 휴머니즘이 현대인의 정서 바탕에 자리 잡으면서 생사결과는 공존이 불가능해 졌다.


과거 즐겨하던 석전(石戰이란 놀이가 있었다,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근대까지 활발히 행해졌다,


조선시대엔 정월 대보름이나 단옷날에 했었다. 눈싸움과 비슷하지만 눈뭉치 대신 돌멩이를 던졌다. 일반적으로 인접한 두 마을끼리 했는데 직접 마주보고 던지거나 아니면 지형지물을 이용해 상대편 마을까지 진영을 밀어붙이면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놀이는 아주 험했다. 수십, 수백의 장정들이 서로 짱돌을 던져 곳곳에서 부상자가 속출했으며 승세를 탄 쪽이 상대방 마을로 쳐들어가 집까지 부술 정도였다고 한다. 마치 전쟁 같은 치열한 전투의 장이었다. 얼마나 과격했는지 실제로 사람 몇이 죽어나가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놀이 아닌 놀이가 최소 삼국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아주 성행했었다.


‘이런 걸 보면 우리 민족의 DNA도 보통은 아니야. 내재된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아.’


그런데 그런 DNA를 이어받은 내가 오늘은 이기지 못했다. 프로 기사의 패배는 어떤 면에서 죽음과 잇닿아 있다. 패배는 죽을 만큼 아프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어서 오너라. 저녁은?”


“안 먹었어요.”


“저녁부터 먹자.”


“예. 음. 오늘 대국은 졌어요.”


대국 결과를 알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묻지 않으셔서 그냥 먼저 말해버렸다.


“그래. 수고 했다.”


프로기사에게 승리가 빛이라면 패배는 그림자다. 극과 극일 수도 있지만 동반하는 관계이다. 항상 이길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역대 최고 기사들의 승률도 70% 내외였다.


어느 순간 신들린 듯 연승행진도 하지만 갖가지 이유로 연패도 한다. 아무리 우수한 기사도 세 번 중 한 번은 진다. 패배에 익숙해지면 안 되겠지만 받아들이기는 해야 한다. 인생과 대국은 계속 이어져야 하니까.


‘내일 이기기 위해서라도··· 잊자.’


“일찍 퇴근 하셨네요.”


“오늘 일이 별로 없어서 좀 빨리 왔어. 일이 일찍 끝난 김에 오랜만에 식구들과 밥도 먹고. 겸사겸사···”


아버지는 연신 싱글벙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매일이 좋지. 요즘 나쁜 게 없지 않니. 오랫동안 묵혀져 있던 네 입단 문제도 해결되고···나날이 즐겁구나.‘


아버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내 입단에 대해 말씀하시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모처럼 일찍 퇴근했더니 아들도 와 있고 마침 네 엄마가 음식을 잔뜩 해 놓았구나. 어떻게 웃지 않을 수가 있겠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에고, 내가 이기기만 했으면 이게 바로 축하파티인데···’


또 대국에 대해 생각을 해버렸다.


‘잊자. 잊어.’


지금은 온전히 가족과의 시간을 즐겨야 할 때다.


“이것도 좀 먹어 보렴. 뭐가 모자라니··· 더 줄까?”


“많이 먹고 있어요.”


“형아··· 오늘···”


가족들과 식사는 흥겨웠다.


‘이겼으면 더 기분 좋았을··· 아이고, 잊자니까 제발 좀. 그래도···’



###


“이 쪽으로···”


누군가의 손짓에 맞춰 고개를 돌렸다.


“퍼버펑.”


플래시의 점멸음에 맞춰 세상이 새하얗게 변했다. 순간 눈을 감았다.


“다시 한 번. 눈이 좀 부시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세요. 시선 똑바로 하고..”


아마 깜박임이 너무 심했나 보다. 곧 다 찍었다는 말이 들렸지만 내 몸은 아직 진행형이다. 눈앞에 아지랑이가 떠돈다.


“이번에 기전 사상 최연소 본선 진출자가 되셨는데 축하드립니다.”


이건 나도 처음 들어본 이야기다. 이렇게 인터뷰가 시작되는가 보다.


“예? 최연소? 제게요? 그럴 리가···. 그리고 본선 진출 한지가 3주도 넘었는데 이번이라고 하시면···”


최연소 타이틀은 대개 돌부처 사범의 몫이다. 세계 최연소 국내 종합기전 타이틀 획득, 세계 최연소 세계 종합기전 우승 등등.


‘최고위전 도전자가 되었을 때 13살 아니었나? 본선 진출은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당연히 더 빨랐겠지.’


“국기전에 있어서는 만14세 8개월로 최연소 맞습니다. 그리고 3주 정도 지난 건 당연히 이번이죠. 우리는 월간이니까. 더군다나 이달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다음 달 쯤 실릴 거니 신경 쓸 거 없어요.”


“옙.”


국내 유일이라고 하지만 가끔 유이(有二)가 되기도 하는 바둑잡지 월간 오로와의 인터뷰다. 이달의 기사라는 코너에 소개될 예정이란다.


“그렇군요. 제가 잘 몰랐네요.”


“아! 보통은 돌부처 사범님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좀 조사해보니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그 정도 제목은 달아줘야 독자들도 더 유심히 보게 되거든. 좋잖아. 뭐든지 빠르다는 건 관심 유발하긴 좋지.”


“아··· 예에···”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건 매체에 상관없이 기자라는 업을 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습성인 것 같다.


‘흥미를 끌기는··· 이제나 저제나··· 조금만 지나면 대중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다음 달에 다시 물어봐라. 최연소 본선 진출자가 누군지 모른다에 내 오른 팔과··· 에구, 관두자. 그런데 왜 은근슬쩍 말이 짧아져?’


인터뷰라는 색다른 이벤트에 고조되었던 기분이 확 상했다.


“본선 진출 소감 한 마디 부탁합니다.”


“기쁘고 다음 대국도 열심히 두겠습니다.”


“혹시 예선에서 고비가 된 대국이나 기억에 남는 대국이 있었나요?”


“모든 대국이 다 어려웠고 배운다는 입장으로 열심히 두었습니다.”


“음. 본인 바둑의 강점이나 약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모든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보완해서 열심히 두겠습니다.”


인터뷰어의 눈썹이 살짝 구부러졌다. 꽤 시원한 기분이다.


“음··· 이제는 본선 진출 하셨는데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직 목표를 정할 실력이 못됩니다. 그냥 열심히 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대에 보답할 수 있도록 열심히 두겠습니다.”


“휴우! 아~주 성실한 답변 감사합니다. 말씀이 그···. 평소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네요. 허허··· 좋았네요.”


기자란 건 보통 사람의 심장으로 하기는 어려운 직업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상당한 경지의 인내심을 보여준다.


‘그러~엄! 내가 성실하고 노력파지. 마지막에 좀 떨떠름해 보이네. 너님도 중간에 얼렁뚱땅 말 까려고 들었으니 피장파장이야.’


내심의 반을 숨긴 대답들이었지만 그래도 진심이 반 이상 들어가긴 했다.


‘내숭은 어쩔 수 없었어. 대중의 니즈란 것이 있거든. 이 시대는 겸손이야. 겸손은 언제나 옳다고, 그렇지 않아? 음. 이 시대에 그런 성향이 좀 더 심했다고 해 두지.’


어린 애가 ‘내 목표는 타이틀 획득이에요. 무조건 이길 수 있어요.’ 이러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아마 ‘똑똑하긴 한데 싸가지는 없네.’ 이러기가 쉬울 것이다. 그런 건 언제라도 피해야 한다.


내 인생 목표는 아주 뚜렷하다. 한 번도 직접적으로 이야기 한 적은 없었지만 그동안 나 하는 거 다 봤으면 대충 알거다.


‘튀지 말고 잘 살자. 이것이야.’


만약 내가 미친 듯이 연승 행진을 펼쳐 현존하는 모든 기전을 석권을 한다면 아마도 아주 많은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그걸 또 몇 년 계속해서 앞으로 지가상승이 예상되는 지역의 토지를 다 사버린다면···


말이 안 되는 건 나도 안다. 그러니까 만약이다, 그리고 전 타이틀 석권은 내 전생의 삶에서 실제 일어났다. 그것도 몇 번이나··· 현생에서도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닐 것 같다..


아무튼 그랬다 치면 내가 거부(巨富)가 될 수 있을까? 내 기억대로 세상일이 다 이루어질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 구조 속에 나라는 변수가 이미 등장했다. 변화는 필연적이다. 그래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겠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내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할 거란 보장은 없다.


나란 존재 자체가 변수가 된 현실을 의도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그래서 되도록 작게 관여 해야 한다. 그것이 커지면 나의 과거 기억이라는 것은 모두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아마 지금까지 현생을 살아오면서 가끔 기억과 현실이 조금씩 어긋났었던 건 알게 모르게 내가 변수고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미래를 안다는 버프빨 받고 잘 살려면 가급적 튀지 말아야 한다.


“이 내용은 적당히 편집되어서 정리될 겁니다. 아시죠? 이번 본선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내 정신이 어느 순간 딴 세상을 유람하는 와중에도 본업에 충실한 사람은 있었다.


“아··· 얘.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쩌나! 이미 본선에서 한판 졌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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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한계돌파를 위해 24.09.18 62 3 12쪽
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8 3 12쪽
56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5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4 4 12쪽
54 사노라면. 24.08.28 108 2 12쪽
53 열전 24.08.27 119 3 12쪽
»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20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8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6 4 12쪽
49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24.08.23 144 2 12쪽
48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5 3 12쪽
47 트라우마 24.08.21 132 2 12쪽
46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7 3 13쪽
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3 4 13쪽
43 위기와 응전 24.08.17 140 4 12쪽
42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6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38 도(道)를 아십니까? +2 24.08.12 14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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