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재능의 AI기반 바둑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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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작품등록일 :
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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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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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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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左衝右突)

DUMMY

5명의 퍼포먼스를 구경하다 보니 나름 재미가 있었다. 완전히 취향저격 당한 것 같다.


한동안 보고 있었더니 오른쪽 다리가 조금 저리다. 뒤에서 바둑판을 뒤덮은 뒤통수와 등판을 피해 보려다 보니 내 자세가 자연히 비스듬하게 기울어 진 탓이다. 재미있는 것도 한참을 봤더니 좀 힘들어졌다.


‘짝다리는 짚지 말아야지. 일단 좀 앉자.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기운들도 좋아.’


소파에 앉았더니 눕고 싶어 졌다. 뒤로 몸을 기대는데 소파의 쿠션이 온 몸을 감싸 안아 금방 노곤해졌다.


바둑판 앞의 기사들은 내가 뭘 하든지 관심도 없다.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분투중이다.


남자 5명이 우글거리는 눈 앞 풍경이 썩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이곳도 상당히 쾌적한 환경이다. 기사 휴게실은 왠지 어색해서 잘 이용하지 않았는데 오늘 와 보니 나름 괜찮은 공간이다.


‘올 시즌이 끝나면 우리 집도 좀 더 큰 곳으로 이사를 하자고 해볼까? 부모님이 싫어하실라나? 그럼 아파트 대출금이나 좀 갚아드리고···’


급격히 내 관심사항이 바둑에서 멀어졌다.


헉! 좀비. 이게 뭐야.‘


어디인지 모를 공간에서서 좀비 다섯이 날 덮치려 한다.


‘애고, 이제 잘 살 수 있는데··· 미처 누려보지도 못하고···’


“재영아··· 재영아···”


‘아! 재국이 형 목소리가···’


형이 날 구하러 온 것 같다.


“헉! 음?”


순간 눈이 확 떠졌다.


“무슨 잠을 그렇게 곤하게 자니. 어제 늦게 잤어? 짜장면 시켜 놨으니 먹자.”


“아! 재국이 형. 조... 좀? 헉!”


하마터면 이상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 했다.


‘에고! 대낮에 무슨 꿈이 이렇게··· 낮에 꾸는 꿈은 개꿈이야. 그럼.’


“형? 짜장면이라고?”


“응, 깨워서 물어볼까 하다가 너무 곤하게 자길레 안 깨우고 그냥 시켰어. 왜 짜장면 싫니?”


“짜장면이 싫을 수가 있어? 그건 우리 근본을 부정하는 말이야.”


바둑과 짜장면은 뗄려고 해도 뗄 수가 없다. 바둑을 안두는 사람은 당구장과 짜장면의 관계를 생각하면 된다.


“하하, 예전부터 많이 시켜먹긴 했었지.”


살짝 몸을 일으켜 슬쩍 돌아보니 다른 기사들이 보이질 않는다.


“그 기보 분석하던 거 결론이 어떻게 났어요?”


“응? 그거 일단 보류하고 밥 먹으면서 생각 정리하서 다시 분석해 보기로 했어.”


‘헐! 아직도? 징그러운 인간들 같으니라구. 그 짓을 또 하려고?’


‘짜장면 기다리는 동안 세수라도 한다고 잠깐 나갔는데 금방 다시 올 거야.”


별로 더 안 보고 싶다. 그와는 별개로 오늘 이곳은 꽤 상큼했다. 그동안 협회에서 자유로운 공간이라고는 일반 대국실 정도였는데 그곳은 일반 손님도 받는 공간이여서 가끔은 불편할 때도 있었다. 거기에 비해 이곳 휴게실은 프라이버시 보장이 훨씬 잘되는 공간인 것 같다.


바둑중독자 몇 명만 참을 수 있다면 훨씬 낫다. 오늘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


여름이 다가도록 열심히 연구회에 나갔다.


“재영아! 한 수 하자.”


강민호 5단이다.


“예. 그러죠. 그런데 갑자기··· 민호 형. 내일 대국 아니에요?”


“맞아. 오늘 이상하게 너무 처지는 것 같아서 대국 전에 정신 줄 좀 땡겨 보려고··· 혼 좀 내줬으면 해.”


처음엔 잘 못 느꼈었는데 좀 알고 났더니 이 형은 체면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러면 초속기로 하죠.”


“좋아, 그럼. 10초 바둑이야.”


“좋아요. 그럼.”


우리 끼리 바둑 한판 두려는데 별다른 준비는 필요치 않다. 그냥 주변에 있는 바둑판 하나를 쓱 당겨서 앞에 놓으면 된다. 판을 움직이기 어려우면 우리가 직접 움직여 가든지.


따악, 딱, 따악···


“어허! 너 왜 이래? 안하던 짓을 다하고.”


“자유로운 발상 몰라요? 좀 신선해 보입니까?”


가끔은 이렇게 두고 싶었다. 10초 수읽기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그래서 대개 10초 바둑은 알고 있는 정형대로 판을 짜서 알고 있는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 가는 대로 두고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의도적으로 감각적인 착점을 꺼리게 되었다, 아마도 승부의 영역에서 바둑을 두기 시작한 후 부터였을 것이다. 후속 수단이 준비되어 있지 않는 수를 피하게 되었고 모험 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승리는 많아졌지만 나의 본질에서는 벗어나는 길을 가게 된 것 같다. 내 바둑은 현재의 틀로는 규정할 수 없는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본능이 억제된 것이다.


이렇게 우연히 만들어진 자리. 이런 연습바둑에서 꺼릴 것이 없다. 자극을 바라는 강 5단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며 내게 큰 공부가 된다.


‘근래 성훈이 형이나 재국이 형과는 너무 많이 둬서 이제 너무 익숙해져 버렸어.’


그렇다고 아무나 하고 둘 수도 없다. 이것저것 시험할 수 있는 비슷한 수준의 상대가 잘 없었다. 그러나 민호 형이라면 날 잘 받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바둑에서 내 시작이자 본질은 기존 이론에 대한 반발이 발상의 전환으로 이어져 자유로운 착점을 가져왔고 그 어디 쯤에서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기존의 형식과 발상을 답습하고 있었다. 안 될 일이다.


출발점이 인간의 영역밖에 있었는데 도착은 인간의 영역으로 한 셈이다. 여기서 괴리가 시작된 것 같다. 발상의 자유로움을 인간의 틀에 맞춘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인간인 이상 영원히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벗어나려는 시도라도 해보고 싶었다.


이런 승패에 구애받지 않는 10초 바둑이라면 가능하다.


‘상대도 새롭고···’


“흐흐. 좀 살살하라고. 내일 대국이라니까.”


아직 중반인데 엄살이 심하다.


“긴장감을 달라면서요.”


“자신감도 같이 주면 더 좋은데 이렇게 대마가 몰살당하면 있던 자신감도 날아가겠어.”


반상의 사정이 이렇게 된 이유는 스스로의 기분에 취해 수위조절이 안되었던 탓도 있었으나 대마라고 보기엔 잡은 돌이 갯수가 좀 적다. 상대가 일부러 죽였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강 5단의 기민한 사석활용으로 외견상 팽팽한 판세가 유지 중이다.


‘내게 조금의 유리함은 있지 그래서 잡은 건데···’


내 형세판단으로는 무조건 내가 낫다.


“하하··· 지금 저도 마음이 이끄는 대로 두는 중이라 조절이 마음대로 안 되네요.”


“아이고 이쯤에서 던지마. 여기서 용쓰고 싶지 않아.”


강 5단이 몸을 사렸다. 여기서 승부를 보려면 아주 어려운 길을 가야한다. 나의 우세는 구체적으로 몇 집 우세라고 말할 수도 없는 아주 미미한 차일 뿐이다. 이것이 끝까지 갈 수 있단 보장도 없다. 국면이 뒤집히려고 하면 판이 끝날 때까지 수십 번도 가능하다.


다만 그렇게 되려면 민호형이 반발하며 전력투구해야 하는데 내일 정식 대국을 앞두고 그러기는 싫었을 것이다. 이건 연습바둑이었다. 내일 대국에 사용할 날선 감각을 유지시킬 목적의··· 강 5단이 적절한 때 잘 멈춘 것 같다.


“잘 두었습니다. 강민호 5단님. 아낀 힘 내일 쏟아서 꼭 이기세요.”


이렇듯 내 바둑 역시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폭이 넓어지고 있었다.



###


이번 기 국기전 마지막 대국에서 받은 느낌이 맞았다. 그 이후 계속 몹시 시달리는 중이다.


‘올해 남은 대국이 얼마 없었기 망정이지 큰 일 날 뻔 했네.’.


만난 상대들은 하나같이 초반 접전을 피하고 두텁게 두면서 중후반에 승부를 걸어왔다. 거의 모든 판이 접전 양상이었다. 확고한 우세로 쉽게 끝내는 판이 없어졌다.


국기전 마지막 상대였던 임 5단에게 내가 이기긴 했지만 그 대응방식과 과정이 좋지 못했다. 거기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내 공략법의 힌트를 준 것이다. 주의해야 할 점이 또 생겼지만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좋은 교훈도 된다.


‘다 좋은데 지금 너무 힘들다고. 이렇게 계속 두다간 제명대로 못살 것 같아. 대국 내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


상대가 노림을 터트리지 않는다고 대비를 안 할 수도 없다. 사실은 상대가 지켜만 보고 있어도 신경이 긁히는 기분이 든다. 물론 상대에게 노림수를 터트릴 기회 자체를 봉쇄할 수 있으면 나의 승리이긴 하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하기는 어렵다.


‘매 판 악전고투의 스페셜 편을 찍고 있다고.’


요즘은 날 상대하는 실리파라고 불리는 기사들도 자신의 기풍과 상관없이 두터움을 위주로 판을 짠다. 최대한 판을 단순화 시켜 일단 그것으로 응수타진을 봉쇄하고 두터움을 바탕으로 노림을 가지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흔들릴 시점까지.


두터움은 딱 몇 집이라고 헤아리기 어렵다. 당장의 현찰이 모자라 보이더라도 돌아올 채권을 생각하면 항상 당장 보이는 것 보다 더 크게 생각해야한다. 그래서 내가 우세한 것 같은 국면에서도 상대의 노림에 늘 주의하게 된다.


두터움을 계속 쌓아서 일격필살을 노리는 상대는 계속 신경을 긁는다. 이런 상대들에게는 이겨도 진이 다 빠진다. 대국시간이 늘어나고 긴장이 높아질수록 실수가 나올 확률도 높아져 가고.


‘아이고! 미치겠네. 헛손질을···’


그런 장면이 실제로 나오기도 한다. 아무래도 진짜 ‘필독 한재영 죽이기’ 이런 보고서라도 돌고 있는 모양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간단하다. 내가 바뀌면 된다.


그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그렇게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야구에서 수비 쉬프트, 투구분석 이런 걸 왜 하겠는가? 상대가 반대로 하면 아무소용이 없을 텐데··· 알아도 대비가 어려우니까 그런 것이 통하니까 하는 거다.


한판의 바둑은 거대한 유기체다. 포석부터 끝내기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점과 지점을 연결하는 톱니바퀴의 크기만 좀 달라져도 전체가 기능하지 않게 된다.


어느 분야든 고수가 되기 위한 훈련이란 시스템을 잘 만들고 운용하는 방법에 대한 훈련이다. 누구나 바둑판의 어디든 돌을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같은 위치라도 그 돌이 놓이는 의미는 다르다. 어떤 이에게 그것이 1인치 톱니바퀴라면 누구에게는 5인치 톱니바퀴일 수도 있다.


세력에 대하여 실리로 대항한다고 돌 몇 개 놓는 위치를 다르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상대는 그 연결 고리의 약한 점을 노리고 있다. 난 아직 톱니를 바꿔 끼울 수 없는 형편이고. 지금까지 내 약점을 후벼 파던 적들은 그리 강하지 못했다. 그래서 의도가 성공하는 확률이 떨어졌었다.


‘하지만, 그보다 좀 더 강한 상대가 노린다면 당연히 방어가 점점 더 어려워지겠지.’


아직까진 그다지 심각한 상황에 이르진 않았다. 하지만 해가 가고 내가 높은 순위에 오를 수록 좀 더 강한 상대들을 만날 텐데 그때가 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내년 국기전 본선에서 지금 하는 것처럼은 어렵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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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각자의 어려움은 다르다. +3 24.09.17 68 3 12쪽
» 좌충우돌(左衝右突) 24.09.16 75 3 12쪽
55 미쳐 사는 사람들 +2 24.09.16 74 4 12쪽
54 사노라면. 24.08.28 108 2 12쪽
53 열전 24.08.27 119 3 12쪽
52 패배에 관한 고찰 24.08.26 119 2 12쪽
51 교훈(敎訓)을 얻다. +2 24.08.25 148 3 12쪽
50 외전) 내가 1급이 된 이유 +5 24.08.24 13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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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승리자의 권리 24.08.22 144 3 12쪽
47 트라우마 24.08.21 132 2 12쪽
46 마지막 한 걸음 24.08.20 137 3 13쪽
45 목표에 접근 중 +2 24.08.19 135 3 13쪽
44 제 8국 24.08.18 142 4 13쪽
43 위기와 응전 24.08.17 140 4 12쪽
42 승리와 패배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24.08.16 146 3 12쪽
41 준비 완료 24.08.15 140 3 12쪽
40 지음(知音) 24.08.14 151 4 14쪽
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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