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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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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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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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테미온 참사

DUMMY

그 기회는 로젠테미온 참사로 실권을 장악하면서 자연스럽게 오게 됐다. 권력을 한 손에 쥐게 되자 부국강병을 목표로 국가개조를 위한 총체적 개혁을 단행했다.




가장 먼저 손댄 부분은 세제개혁이었다. 스피글리츠는 프란디아가 국가의 잠재력에 비해 낮게 평가 받는 게 중앙 정부가 허약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세제개혁을 통해 중앙정부의 재정을 늘림으로써 중앙집권을 강화할 계획이었다.




세제개혁을 위해서는 먼저 세금을 낼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지방 영주들에게 설득과 압력을 동시에 행사하는 방법으로 수년에 걸쳐 호구조사를 실시하면서 카르타법을 시행했다. 이와 함께 국토의 정확한 경계선을 그어 영주들간에 잦았던 분쟁의 씨앗을 없앴다.




기존 토지대장에 기재되지 않았던 땅들은 강제로 중앙정부로 귀속시켰다. 졸지에 땅을 빼앗긴 영주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피해를 본 사람은 자신의 텃밭을 가지고 있던 자영농들이었다.




구획이 명확해지면서 자신이 일군 텃밭을 빼앗기게 돼 다시 소작농으로 전락한 농민들이 전 국토에 걸쳐 일백만 명에 달했다.




소작으로 전락한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기존 토지대장에 없던 텃밭을 일군 자영농들에게만 영구토지임대가 가능토록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토지매매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법은 아니었다.




그리고 스피글리츠는 법치주의를 내세우며 법령 정비에 나섰다. 당시 프란디아의 법률 체계는 고대로부터 잔존한 티롤 제국 법률의 잔재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지역과 상황에 따라 교단의 법령이나 지방의 관습법이 융합되고 황제의 칙령 등이 뒤섞인 복잡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영주들은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적용함으로써 법의 권위가 서질 않았고 갈등만을 양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스피글리츠는 복잡하고 방대한 법령을 모두 모아 선별하고 하나의 완결된 형태의 법령으로 만들어 일관되게 적용하겠다는 목표로 법령 정비에 나섰다.




하지만 막시밀리언 1세 말기부터 시작된 법령 정비는 스피글리츠 공작의 노쇠화와 영주들의 반발, 복잡한 법 체계를 이용해 돈을 벌어왔던 기존 법무서기들의 태업 등으로 인해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스피글리츠 개혁의 핵심은 가문이나 혈연이 아닌 능력 위주로 인재를 운영하는 관료제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스피글리츠 공작은 부국강병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국민의 1%도 되지 않는 귀족 가문에서만 인재를 선발할 것이 아니라 평민들에게도 관료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고급 장교와 중앙 행정관료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 820년 옥타비우스 1세 때 설립된 중앙군사행정학교를 972년 중앙군사학교와 중앙행정학교로 분리하면서 입학 문턱을 낮췄다.




제르베우스 국왕 시절이던 923년 평민들 중 최상위 부유층에게만 문호를 개방한 이래 그 문턱을 더 낮춰 더 많은 평민들에게 입학 기회를 부여했다.




중앙행정학교는 입학시험만 통과하면 학비 20길론으로 누구나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각 지방 중심도시에 지방행정학교를 설립해 지방행정을 담당할 하급관료 양성 시스템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방행정학교의 학비도 2길론으로 웬만한 농민들의 두 달 생계비와 맞먹는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료 양성 시스템의 마련은 평민들에게 출세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프란디아 왕국 전체로 볼 때 양질의 행정전문가들이 대거 양산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었다.




스피글리츠는 영토 확장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00년 전 호튼족의 침략으로 상실한 트란베스트의 재병합은 스스로 최고의 업적으로 생각했다.




비옥한 토지와 철광석, 금, 은, 구리 등 다양한 지하자원이 매장된 트란베스트의 병합은 영토 확장과 함께 막대한 세금수입도 보장했다.




스피글리츠는 권력을 잡자마자 곧바로 트란베스트의 7대 가문의 협상을 속개했다. 7대 가문과의 협상은 10여년 전 시작됐지만 귀족 작위 수여 여부를 두고 프란디아 조야가 합의를 하지 못해 지지부진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귀족 작위 수여를 주장했던 스피글리츠가 권력을 잡으면서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스피글리츠는 기존 봉토에 대한 조세권 등 모든 권리를 인정해주는 대신 호튼족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중앙에서 파견한 국경수비대를 주둔시킴으로써 프란디아의 영토임을 확실히 했다.




이처럼 트란베스트의 재병합이 손쉽게 이뤄진 것은 이미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통합돼 있었던 탓이 컸다. 또한 같은 프란드어를 쓴다는 공통점에다 불과 100년 전에는 같은 국가였다는 점도 작용했다.




스피글리츠는 7대 가문을 제외한 나머지 군소 가문들은 준귀족 지위를 부여해 영지에 대한 소유권만 인정했다. 즉 영지의 소작농들로부터 받는 세금은 인정했으나 군역, 노역 등은 중앙정부의 몫으로 돌렸다.




분봉왕 에테베의 후손이 살고 있던 베르린츠는 군대를 동원해 강제 병합시킨 뒤 트란베스트의 주도로 삼았다. 스피글리츠는 에테베가 심혈을 기울여 건설한 궁전에서 에테베의 후손들을 쫓아낸 후 작은 땅을 줘 살아가도록 했다.




스피글리츠가 지방영주들의 반발을 물리치고 중앙정부 주도의 다양한 개혁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세수의 영향이 컸다. 당시 코반트 대륙으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 발견 이후 무역 증가로 인해 세수가 크게 확대되고 있었다.




늘어난 정부재정은 군개혁 작업에 많은 부분 할애됐다. 스피글리츠는 정규군을 확충하고 현대화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일반병사, 부사관, 부관, 장군 등의 직급으로 운영되던 군대 직급을 세분화하고 군대 내에서는 신분보다는 계급 체계가 우선됨을 명문화했다.




이른바 귀족 신분의 장교가 평민 장군의 지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에 가까운 군개혁 작업이었다.




정규군 장교가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 중앙군사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법령도 마련했다. 중앙군사학교는 학비가 무료였기 때문에 신분상승을 꿈꾸는 평민들의 각광을 받았다.




스피글리츠는 궁극적으로 영지의 사병을 혁파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은 귀족들의 큰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정규군 강화라는 명목으로 개혁작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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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글리츠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던 막시밀리언 1세 시기에는 이 같은 개혁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코를리우스 1세 즉위 이후 스피글리츠가 80세를 넘기면서 노쇠해지자 귀족들의 반동이 시작했고 개혁은 점차 동력을 잃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코를리우스 1세 재임 5년째인 984년 스피글리츠 공작의 신장에 이상이 생겨 정무를 돌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자연스럽게 스피글리츠의 권력은 상당 부분 아들 게오르크에게 넘어갔다.




아버지와 달리 권력욕심만 많았던 게오르크는 귀족들의 특권을 약화시키는 개혁에 불만이 많았다. 게오르크는 어릴 때부터 귀족들의 특권을 제한하려는 아버지의 생각에 반대했다.




게오르크는 자신의 집에서 가신으로 일하며 아버지 스피글리츠의 핵심 참모로 활약하던 하움바이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평민 주제에 아버지 덕으로 재상부의 고위 관료가 됐다는 게 게오르크의 미움을 샀고 권력을 잡자마자 그를 내쳤다.




게오르크는 인간은 타고나면서 고귀한 귀족과 평민으로 계급이 뚜렷이 나눠진다고 생각했다. 하움바이크의 죄는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상인계급은 게오르크의 심기를 가장 거슬렸다. 무역이 발달하면서 상인들이 큰 부를 축적한 이후 새로운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들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귀족들의 저택을 사들이는 것은 물론 생활양식도 귀족들의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건방지게도 귀족의 생활양식을 '신사도'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마치 자신들이 신흥 귀족인양 행세했다.




심지어 기존 귀족들의 영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축산물 등은 이들의 손을 거쳐 이윤이 붙어 판매되고 있었다. 신흥자본가들이 이미 귀족들을 손에 쥐고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게오르크는 이들의 전횡을 막을 방법을 강구했다. 상행위를 당장 막아버린다면 이미 이들의 유통경로를 통하지 않고는 판매처를 확보할 수 없는 귀족들이 더 타격을 입을 것 같았다.




게오르크는 권력을 잡은 후 이들을 어떻게 손봐줄 것인지 골몰했다.




병석에 있지만 아직까지 막강한 막후 영향력을 가진 아버지가 두려워 노골적으로 신흥자본가들을 괴롭힐 수는 없었다. 게오르크의 작업은 서서히 진행됐다.




정부조직 인사를 장악한 게오르크는 개혁 성향의 관료들을 퇴진시키고 그 자리에 보수적인 귀족들을 앉힘으로써 개혁을 점점 무력화시켜나갔다.




게오르크가 행한 개혁에 대한 반동의 절정은 지난 985년 무역선을 규제하는 녹인장 발행이었다. 국내 농축산물 유통 규제는 기존 귀족들의 타격도 컸기 때문에 외국과의 무역을 규제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치품의 무분별한 수입으로 인한 국부 유출을 막겠다는 명목으로 시행한 녹인장 제도는 곧바로 프란디아 경제에 궤멸적 타격을 가했다.




봉토를 소유한 농업자본가였던 귀족들이 신흥 상인자본가들에게 가한 노골적인 보복이었다. 이들에게 국가 경제 따위는 관심밖이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게오르크의 예상을 벗어나 귀족들에게도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고율의 관세부과와 녹인장 발행으로 프란디아로의 수출이 막히게 된 다른 나라들도 보복차원에서 프란디아로부터의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곧바로 프란디아의 주력 수출품이었던 농축산물의 판로가 막혀버리고 말았다.




거대한 영토를 가진 프란디아는 트란베스트 합병 후 제국 내 가장 큰 농업대국이었다. 농축산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농산물의 수확량이 늘었고, 소 양 돼지 등 목축업도 규모가 커지면서 수출량도 크게 늘고 있었다.




수입만 규제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게오르크로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당황하긴 했지만 일단 신흥 자본가들에게 큰 교훈을 줬다는 생각에 프란디아 전체 경제의 후퇴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무역규제가 계속되면서 베르벤처럼 번성하던 여러 항구도시들은 하루아침에 활력을 잃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프란디아를 드나들던 외국 상인들도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사치품 수입규제는 밀수와 힐베르담을 통한 육로 수입이 늘면서 전혀 효과가 없었다. 향신료 모직물 가죽 등 생필품의 경우 고율의 관세가 붙었기 때문에 해당 제품들의 가격이 폭등,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졌다. 상인들은 상인들 대로 무역량이 줄어들어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곡창지대인 트란베스트에 이상 기후가 계속되면서 농작물 수확량이 줄었다. 한쪽에서는 잉여농산물이 범람하면서 가격이 떨어뜨렸고 한쪽에서는 이상 기후로 수확량이 줄자 농민들의 고통이 가중됐다.




게오르크의 무역규제로 인해 상인들의 경제활동이 활기를 잃으면서 프란디아 내 유통망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도 문제를 가중시켰다. 한쪽에서는 잉여농산물을 불에 태우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겨우내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무성의 귀족 관료가 구휼식량을 빼돌려 이를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민심은 폭발했다.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불만이 고조되면서 서서히 프란디아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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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10 0 9쪽
63 신들의 돌 24.08.02 11 0 10쪽
62 신들의 돌 24.08.02 11 0 10쪽
61 신들의 돌 24.08.02 8 0 10쪽
60 신들의 돌 24.08.02 10 0 10쪽
59 신들의 돌 24.08.02 9 0 12쪽
58 신들의 돌 24.08.02 12 0 9쪽
57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10 0 11쪽
56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9 0 12쪽
55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9 0 11쪽
54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7 0 9쪽
53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9 0 9쪽
52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6 0 10쪽
51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9 0 11쪽
50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6 0 9쪽
49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5 0 9쪽
48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7 0 10쪽
47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8 0 10쪽
46 교종과 대상 24.07.31 13 0 13쪽
45 교종과 대상 24.07.31 8 0 10쪽
44 교종과 대상 24.07.31 9 0 9쪽
43 교종과 대상 24.07.31 9 0 9쪽
42 교종과 대상 24.07.30 11 0 11쪽
41 교종과 대상 24.07.30 11 0 13쪽
40 교종과 대상 24.07.30 14 0 9쪽
39 교종과 대상 24.07.30 15 0 10쪽
» 로젠테미온 참사 24.07.29 21 0 12쪽
37 로젠테미온 참사 24.07.28 1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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