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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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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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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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크마르의 각성

DUMMY

"이보세요, 비서실장님. 사무총장의 분노가 생각보다 큰 것 같은데 아무 문제 없겠습니까?"




디트리히도 사실 사이몬트의 위세에 약간 겁을 먹은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이 먼데 여기서 겁을 먹고 다음 단계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걱정마시옵소서. 사무총장이 아무리 반발해봐야 교단의 주인은 교종 성하이십니다. 앞으로 교단의 체계를 정비하면서 교종 성하의 권력을 확고히 하시면 됩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알크마르는 사이몬트가 마지막 한 말이 귀에 거슬렸다. 과연 디트리히는 무슨 속셈으로 자신에게 붙어 이 같은 사단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알크마르는 더 이상 허수아비 교종 노릇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디트리히가 자신을 이용한다면 알크마르도 디트리히를 이용해 교종 권력을 강화할 것이라 속으로 다짐했다.




?어쨌든 사이몬트가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자 디트리히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디트리히는 교종을 정점으로 비서실, 사무국을 비롯해 포교국, 정보청, 종교재판소 등 성모정교와 같은 산하 조직들을 만들려 했으나 번번이 사이몬트의 벽에 막혔다.




사이몬트는 디트리히가 만들려는 조직이 이미 사무국 내에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디트리히가 아니었다.




디트리히의 원래 계획은 사무국과 동등한 수준의 여러 조직들을 만듦으로써 사이몬트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의도를 모를 사이몬트가 아니었다.




사이몬트의 방해공작으로 신규 조직 창설이 힘들게 되자 디트리히는 우회적으로 비서실 내에 포교성, 정보성 등 산하 조직을 만들었다. 이들 업무가 사무국 내 분과들 업무와 중첩됐기 때문에 관할권을 두고 양측간 갈등이 불가피했다.




디트리히로서는 잃을 게 없는 싸움이었다. 어차피 사무국에서 관할하는 업무를 자신들이 빼앗아오려는 의도가 깔려 있어서 실패하더라도 잃는 게 없었다. 오히려 문제를 불거지게 해 관활권을 다툼으로써 비서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




비서실의 권력이 점점 비대해질 수 있었던 데는 교종 알크마르의 의도적 방관과 적절한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디트리히를 사이몬트의 경쟁자로 만듦으로써 알크마르는 자신의 권위를 공고히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전까지는 알크마르와 사이몬트가 같은 선상에 있었다고 한다면 디트리히의 등장으로 알크마르를 정점으로 사이몬트와 디트리히가 2인자 경쟁을 하는 구도로 바꿔놓았다.




어떤 사안이 있을 경우 예전에는 사이몬트가 독단으로 처리했지만 이제는 꼭 알크마르의 의중을 물어봐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알크마르와 사이몬트 사이에는 주종관계가 확고해졌다.




뮈덴바흐의 신도들도 이 같은 권력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디트리히의 등장 이전만 해도 솔라멘테교는 사실상 사이몬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디트리히가 등장하면서 2인자 경쟁구도로 바뀌고 알크마르가 알게모르게 디트리히 쪽으로 힘을 몰아주자 신도들 사이에서도 알크마르의 위상은 점점 올라가게 됐다.




해가 바뀌어 991년 새해가 밝았을 때 알크마르가 반포한 신년교서는 교단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알크마르는 향후 교세를 보다 체계적으로 확장시킨다는 명분으로 포교국 설립을 선언했다.




포교국 총장에는 제9제자 페이노르트가 임명됐다. 페이노르트는 원래 '범 사이몬트파'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완전히 사이몬트의 사람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인물이었다.




페이노르트는 오랫동안 제국을 여행하며 많은 솔라멘테교 회당을 건립한 신실한 제자로 발라스쿠스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의 도시 카이젤부르크에 비밀 회당을 건립하고 다수의 신도들을 확보한 페이노르트의 업적은 교단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그런 페이노르트를 포교국 총장으로 임명한 것은 알크마르 나름의 승부수였다. 사이몬트와 디트리히를 경쟁시키면서 정치력에 눈을 뜨기 시작한 알크마르는 현재의 2인자 경쟁을 보다 복잡하게 만듦으로써 교단의 주도권을 자신이 확실하게 잡기 위해 페이노르트를 끌어들인 것이었다.




페이노르트의 등장에 디트리히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이노르트는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신도들로부터 신망이 높아 그를 따르는 무리들도 꽤 있었다.




포교국 총장 지명에 페이노르트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사양했지만 알크마르의 간곡한 설득에 결국 수락했다.




포교국 신설로 그렇잖아도 비서실의 위세에 밀려 권한이 줄어들고 있던 사무국 업무가 다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알크마르는 교단 내부 일은 사무국이, 교단 외부 일은 포교국이 관할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디트리히도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알크마르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실세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미 알크마르는 스스로 영역을 개척하며 정치력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교단 내 역학관계를 이용해 아무런 배경도 없던 알크마르가 어느덧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크마르를 중심으로 하는 교단 내 조직체계가 갖춰지면서 솔라멘테교는 일견 안정을 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내부 사정은 교단의 권력을 두고 더욱 치열한 눈에 보이지 않는 다툼이 진행되고 있었다.




디트리히 등장 이후 계속 수세에 몰려있던 사이몬트가 믿는 구석은 바로 재정 부분이었다. 수십 년 동안 교단 재정을 맡아온 사이몬트는 조직 체계가 변동되는 과정에서도 결코 재정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사이몬트는 새해를 맞아 교단 예산을 짜는 과정에서 포교국에 대한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반격을 시작했다. 업무가 모호해 해당 부서에 대한 예산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페이노르트는 예산담당관 켈투를 불러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사이몬트의 명령을 실행했을 뿐인 켈투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켈투를 붙잡고 씨름해봐야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페이노르트는 직접 사이몬트와 담판을 벌여야 했다.




2월초 눈발이 휘날리던 어느 날 페이노르트는 사이몬트의 집무실이 있는 대회당 내 사무국을 찾았다. 페이노르트는 노기등등한 눈을 하고 곧바로 사이몬트 집무실로 향했다.




"대사형,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신설된 포교국 예산이 한 푼도 없는 것입니까."




사이몬트는 페이노르트가 찾아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느긋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뭐가 그리 급한가. 일단 자리에 앉게."




페이노르트는 화를 삭이며 사이몬트의 맞은 편에 앉았다.




"뮈덴바흐에 온 후 한 번도 찾지 않더니 이제서야 왔구먼. 그동안 잘 지내셨는가."




페이노르트가 뮈덴바흐로 돌아론 때는 작년 12월이었다. 평소였다면 당연히 사이몬트에게 가서 인사를 했을 터였지만 뮈덴바흐에 도착하자마자 교종의 부름을 받았다.




첫 만남에서 교종으로부터 포교국 설립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이를 완곡히 사양했지만 교종의 의지는 강력했다. 결국 포교국 총장 자리를 수락한 페이노르트는 이후 포교국 설립을 위한 사전 작업을 하느라 바빠 사이몬트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사이몬트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못내 미안한 일이었지만 교단 공무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해 인사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늦게 인사드린 건 제 불찰입니다.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이몬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 자네와 나 사이에 용서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나. 이제서라도 인사했으니 됐네."




사이몬트의 표정은 예전처럼 온화했지만 뭔가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놓인 것 같았다. 조직 개편으로 사무국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사이몬트의 심기가 편치 않을 것이라는 건 예상가능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교종 성하의 어지에 따라 포교국이 신설됐는데 이에 대한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대사형을 찾아왔습니다."




"예산에 관련된 일이라면 예산담당관 켈투와 이야기하면 될 것인데..."




사이몬트는 짐짓 모른 채 하며 페이노르트의 표정을 살폈다.




"켈투는 이미 만나봤습니다. 사무국 차원에서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즉 대사형께서 예산집행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거지요."




페이노르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사이몬트는 갑자기 정색을 했다.




"그렇네. 내 직권으로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어."




"왜 그러셨죠? 교종 성하의 뜻을 어기시려는 것입니까?"




사이몬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자신이 예산배정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이몬트의 주장은 당초 포교국 설립부터가 교리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발라스쿠스가 솔라멘테교를 창업한 정신은 비대한 관료화로 부패해진 성모정교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다.




솔라멘테교 교단이 급속히 커진 후 중앙 차원의 컨트롤 타워로서 사무국이 불가피하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산하 조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포교국 설립은 교단의 정신에 반하는 행위이며 이에 대한 예산 배정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교단의 정신이 그러하다는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포교국 창설은 교종 성하께서 직접 지시하신 사항입니다. 대사형께서는 교종 성하를 먼저 설득하셨어야지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는 게 교단에 무슨 도움이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기회가 없어 말씀드리지 못했을 뿐이네. 조만간 직접 교종 성하를 뵙고 이에 대해 말씀드릴 참이야."




교종에게 직접 말한다고 하니 더 이상 사이몬트를 추궁할 방법이 없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먼저 교종 성하를 알현해 대사형의 월권에 대해 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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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신들의 돌 24.08.02 10 0 10쪽
59 신들의 돌 24.08.02 9 0 12쪽
58 신들의 돌 24.08.02 12 0 9쪽
57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10 0 11쪽
56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10 0 12쪽
55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9 0 11쪽
54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7 0 9쪽
53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9 0 9쪽
»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7 0 10쪽
51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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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5 0 9쪽
48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7 0 10쪽
47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8 0 10쪽
46 교종과 대상 24.07.31 13 0 13쪽
45 교종과 대상 24.07.31 8 0 10쪽
44 교종과 대상 24.07.31 9 0 9쪽
43 교종과 대상 24.07.31 10 0 9쪽
42 교종과 대상 24.07.30 12 0 11쪽
41 교종과 대상 24.07.30 11 0 13쪽
40 교종과 대상 24.07.30 15 0 9쪽
39 교종과 대상 24.07.30 15 0 10쪽
38 로젠테미온 참사 24.07.29 21 0 12쪽
37 로젠테미온 참사 24.07.28 1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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