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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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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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크마르의 각성

DUMMY

성직자들에 비해 결코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팔켄베르크 2세는 도무지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경전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은 기도 관련 교리가 이런 식으로 결정난 것에 대해 분개했다. 자신의 신학적 지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팔켄베르크 2세는 꿈에서 성모 모니카를 만나 '지금의 성모정교는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대가 앞장서 신의 가르침을 행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예삿꿈이 아님을 직감한 팔켄베르크 2세는 그리피오엔 대주교에게는 이 꿈에 대해 함구했다. 대신 재판 과정에서 자신에게 많은 조언을 해줬던 레오폴트 주교를 불러 꿈에 대해 상의했다.




선제후의 신앙심을 잘 알고 있던 레오폴트 주교였지만 이 꿈의 진위는 의심스러웠다. 자신도 아직 한 번도 성모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성직자도 아닌 제후가 성모의 음성을 들었다는 게 미심쩍었다.




이런 마음과 상관없이 자신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팔켄베르크 2세를 거역할 맘은 전혀 없었다. 그는 성호를 그리며 국왕의 꿈이 틀림없는 신의 계시이며 이를 따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팔켄베르크 2세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준 것이었다. 이로써 자신의 사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됐다. 즉각 레오폴트 주교에게 자신의 계시를 프리슬란트 왕국 전역에 알리고, 재야의 신학자들을 프리슬란트로 모을 것을 지시했다.




레오폴트는 일이 커지자 당황했다.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었는데 팔켄베르크 2세는 진지하게 받아 들였다. 심지어 로텐부르크 교황청과 분리된 새로운 교단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레오폴트는 경악했다. 새로운 교단까지 만든다면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할 위험이 컸다. 국왕이야 괜찮겠지만 이에 동조한 자들은 화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레오폴트는 새로운 교단 설립은 너무 과한 조치라고 팔켄베르크 2세를 설득했다. 하지만 이미 신의 명령을 수행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는 그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결국 레오폴트는 재야 성직자들과 함께 새로운 교단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교단의 교황에는 팔켄베르크 2세가 스스로 올랐다.




그리피오엔 대주교는 팔켄베르크 2세를 찾아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국왕은 콧방귀를 뀌며 그리피오엔을 프리슬란트에서 추방해 로텐부르크로 돌려보냈다. 팔켄베르크 2세는 자신의 교단만이 진실한 성모정교라는 뜻으로 발하이트(Wahrheit)정교라 명명했다.




그리피오엔 대주교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교황 테오도란트 4세는 격노했다. 일개 선제후가 신의 대리자인 교황에게 대적한다는 것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달려가 팔켄베르크 2세의 목을 따고 싶었다. 그러나 일의 순서상 일단 서신을 보내 팔켄베르크 2세에게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것을 권고했다.




두달 여 지나 돌아온 답신은 교황이 가진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팔켄베르크 2세는 답신에서 현재의 교황은 '거짓 목자'이며 자신이야말로 '진실한 교단 수호자'라고 주장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망동이자 교권에 대한 도전이었다. 교황은 추기경 회의를 소집할 새도 없이 즉각 팔켄베르크 2세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파문장을 날려보냈다. 그러자 팔켄베르크 2세는 문구만 약간 수정한 교황에 대한 파문장을 답신으로 보내왔다.




교황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치솟았고, 팔켄베르크 2세에게 피의 교훈을 내려줘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교황청이 자체적으로 무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교황은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속세 권력을 상대로 한 가장 강력한 징계가 파문장이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한다면 그 이상의 방법은 없었다.




고민하던 교황은 카이젤부르크의 황제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마음이 급했던 교황은 서신을 보내는 대신 황제 마인츠바흐 1세를 만나기 위해 직접 카이젤부르크를 찾아갔다.




교황은 팔켄베르크 2세의 무도함을 마인츠바흐 1세에게 자세히 설명한 뒤 신앙수호의 이름으로 프리슬란트에 천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팔켄베르크 2세를 저대로 둘 경우 교권은 무너지고 성모정교를 중심으로 뭉쳐있는 제국 또한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며 황제를 부추겼다.




하지만 마인츠바흐 1세는 쉽사리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았다. 제국 내 군소 제후국 카젤슈타트 제후였던 자신을 적극 지지해 제국의 황제로 오르게 해준 팔켄베르크 2세를 대적한다는 건 도덕적으로도 꺼림칙했다.




사실 황제는 제국의 직속 군대만 가지고는 프리슬란트와 싸울 엄두도 나지 않았다. 게다가 용병을 대규모로 끌어모으기에는 최근 황실의 재정도 넉넉치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교황은 포기하지 않고 프리슬란트를 제외한 나머지 4대 열강의 제후들을 설득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황제를 부추겼다.




황제가 비록 군소제후국 출신이지만 야심은 크다는 걸 교황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황제의 이름으로 군대를 끌어모은다면 향후 황제의 권위가 살아날 것이라고 설득했다.




실제로 역대 황제는 5대 열강이라 불리는 강력한 제후국들의 위세에 눌려 제대로 된 황제 역할을 해본 적 없었다. 교황의 말이 아니더라도 마인츠바흐 1세는 프리슬란트 침공이 황제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4대 열강의 군대를 통솔한다면 제국의 신민들에게 자신이 진짜 이 땅의 주인임을 알릴 수 있었다. 즉 황제와 제후간의 명확한 군신관계를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다만 자신이 다른 제후들을 설득하기 어려우니 교황이 직접 나서 설득해달라는 뜻을 넌지시 내비쳤다. 급한 쪽은 교황이었다. 교황은 즉각 수락했다.




황제는 혹시 일이 잘못된다면 모든 책임을 교황에게 떠넘길 요량이었다. 교황의 요청으로 카이젤부르크에 도착한 4개 열강 제후들을 설득하는 일은 전적으로 교황의 몫으로 돌렸다.




마인츠바흐 1세는 끝까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며 혹여 생길지 모를 책임문제를 회피하려 애썼다.




당시 프리슬란트는 니텐하임 제국을 지탱하는 5대 열강 중 하나로 군사력이나 경제력, 인구, 영토 크기 등 모든 지표에서 수위를 다투는 제후국이었다.




그러다보니 4개국이 연합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고, 제후들은 의사를 유보한 채 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특히 제국의 가장 서쪽에 있는 발렌슈타트 왕국은 군사들의 장거리 원정에 난색을 표명했다.




그러자 테오도란트 4세는 머뭇거리는 제후들 앞에서 프리슬란트를 병탄한 후 그 영지를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신의 이름으로 이를 보증하겠다고 공언했다.




제국에서 가장 광활한 프리슬란트 왕국을 나눌 수 있다는 말에 제후들은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기름진 고기를 보고 달려드는 승냥이떼처럼 제후들은 교황의미끼를 덥썩 물었다.




이들의 야합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동맹군 결성이 공식화되자 마침내 마인츠바흐는 포크 하나를 얹기 위해 전면에 나섰다.




마침내 604년 10월 4개 열강은 신앙수호라는 이름 아래 신성동맹을 체결하고 30만 명의 병사들을 동원해 프리슬란트의 국경을 넘기로 했다.




발렌슈타트를 제외한 3개국이 각각 병력 10만 명씩 차출하기로 했다. 발렌슈타트는 군대 동원 대신 전쟁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봤다. 이 합의는 후일 발렌슈타트를 쇠락시키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팔켄베르크 2세도 가만 있지 않았다. 열강들이 신성동맹을 체결했다는 소식은 재빨리 프리슬란트로 전해졌다. 팔켄베르크 2세는 어전회의를 열어 성전을 선포하는 것과 동시에 전국 영주들에게 동원령을 내렸다.




신성동맹 30만 대군을 맞아 프리슬란트 군대는 용감하게 맞섰다. 하지만 전세는 금세 프리슬란트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프리슬란트가 제국 내 최강국이었지만 욕심에 눈이 먼 신성동맹의 대군을 막기에는 중과부적이었다.




전란은 8년이나 계속 이어졌고 프리슬란트 국토 80%가 피해를 입었으며 백성들 중 3분의 1 이상이 죽거나 난민이 되어 나라를 떠났다. 그럼에도 팔켄베르크 2세는 결코 굴복하지 않고 더욱 전의를 불태웠다.




프리슬란트의 저항이 만만찮게 8년이나 이어지자 신성동맹 측도 무작정 전쟁을 계속하기에는 군사적 피해뿐 아니라 재정적 부담이 너무 컸다.




제후들 사이에서도 피로감을 호소하며 이 전쟁을 계속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해졌다. 이들은 서서히 출구전략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프리슬란트도 마찬가지였다. 전란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다시피한 상황에서 전쟁을 더 끌고갈 여력은 사실 없었다. 국왕은 계속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지만 대신들 사이에서는 휴전협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쟁이 8년째 접어들었을 무렵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기 위해 양측은 서로 밀사를 보내 휴전협상을 시작했다.




교황은 이 기회에 프리슬란트를 완전히 지도에서 지워버려야 한다고 악을 썼지만 제후들은 이를 거부했다.




동맹군의 수장으로 대장놀이에 심취했던 마인츠바흐 1세는 뭔가 아쉬웠지만 전쟁 지속 여부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얻을 수 있는 건 많이 얻어냈다는 판단에서였다.




2년 동안 이어진 지리한 협상 끝에 양측은 팔켄베르크 2세가 교황에게 사죄하는 것으로 마무리짓고, 왕을 잘못 이끈 죄로 레오폴트 주교를 화형에 처하기로 합의하면서 10년간의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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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반혁명동맹 결성 24.08.03 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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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신들의 돌 24.08.02 11 0 10쪽
62 신들의 돌 24.08.02 11 0 10쪽
61 신들의 돌 24.08.02 8 0 10쪽
60 신들의 돌 24.08.02 10 0 10쪽
59 신들의 돌 24.08.02 9 0 12쪽
58 신들의 돌 24.08.02 12 0 9쪽
57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10 0 11쪽
56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9 0 12쪽
55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9 0 11쪽
54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7 0 9쪽
53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9 0 9쪽
52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6 0 10쪽
51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9 0 11쪽
50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6 0 9쪽
49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5 0 9쪽
»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7 0 10쪽
47 알크마르의 각성 24.08.01 7 0 10쪽
46 교종과 대상 24.07.31 13 0 13쪽
45 교종과 대상 24.07.31 8 0 10쪽
44 교종과 대상 24.07.31 9 0 9쪽
43 교종과 대상 24.07.31 9 0 9쪽
42 교종과 대상 24.07.30 11 0 11쪽
41 교종과 대상 24.07.30 11 0 13쪽
40 교종과 대상 24.07.30 14 0 9쪽
39 교종과 대상 24.07.30 15 0 10쪽
38 로젠테미온 참사 24.07.29 20 0 12쪽
37 로젠테미온 참사 24.07.28 1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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