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인펑크의 총잡이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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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간
작품등록일 :
2024.07.2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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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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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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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크로프트를 떠나다

DUMMY

웨인은 여자의 눈에 갑작스러운 경악이 들이차는 순간을 지켜봤다.

여자의 몸에 숨겨진 술수를 눈치챈 게 저렇게 놀랄 만한 일일지는 몰랐다.


‘자기를 죽이는 사람 하나만은 꼭 같이 데려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폭탄.’


만약 웨인이 저 마나 회로를 읽어낼 수 없었다면, 정말 그 의도대로 됐을 뻔했다.


그 순간, 여자가 자신의 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웨인도 바로 손을 움직였다.

무형의 기운이 뻗어나가 여자의 양손을 결박했다.

이 저택에는 이제 이 여자밖에 안 남았으니 마법을 써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정말, 정말로···.”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리더니, 별안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소리쳤다.


“라프워스 박사가 괴물을 만들어냈구나!”


웨인은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을 곱씹었다.

역시 피에르의 과거와 관련 있는 이들이었다.


“제 아버지와 아시는 사이십니까?”


차분한 질문에 여자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배신자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긴 했나?”

“제게는 좋은 아버지였다고 생각합니다만.”

“하, 라프워스가 좋은 아버지였다고?”


비꼬는 듯한 말투였지만, 웨인은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적어도 저를 초면에 괴물이라 부르는 당신보다는 훨씬 나은 분이셨죠.”

“···.”


여자가 웨인을 쳐다보며 침묵하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오신 건진 안 말씀해주시겠죠?”


웨인이 여자를 가늠하며 물었다.


“이제 더 할 말 없어.”


단호한 대답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웨인은 여자를 그 자리에 마법으로 묶어놓은 상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옆방.

피에르가 연금술 실험을 하던 공간이었다.

유리 진열장 속 플라스크 하나를 꺼냈다. 플라스크 안의 투명한 액체가 찰랑였다.


‘진실의 물약.’


그 이름과 달리 무조건 모든 진실을 술술 불게 만들지는 못했다.

복용자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진실을 말하도록 유도하는 정도의 효과만 있을 뿐.

그리고 이건 피에르가 개량한 물약.

효과가 극대화된 대신, 물약이 투여된 이의 정신이 다시는 원래대로 못 돌아오는 부작용이 있었다.


주사기를 챙긴 웨인은 여자에게로 돌아갔다.

여자는 웨인이 들고 온 플라스크와 주사기를 보는 순간, 큰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차라리 지금 나를 죽여!”

“폭탄을 자기 손으로 터트리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담담하게 대답하며 웨인은 주사기의 끝을 플라스크 안에 담갔다.

여자가 갑자기 자기 혀를 깨물려 했지만, 웨인이 통제하는 마나가 턱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면 폭탄도 터지지 않아서 저야 좋지만,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몇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웨인은 여자의 팔뚝을 붙잡고 정맥에 주사기를 꽂아 넣었다.

투명한 액체가 투여된 여자는 곧 눈을 멍하게 깜박이기 시작했다.


“먼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웨인이 여자의 턱을 고정한 마나를 거두며 질문했다.


“···마르타.”

“좋아요, 마르타. 소속은요?”

“바, 바이오포지.”


낯선 이름이었다.


“아버지, 피에르 라프워스와 원래 알던 사이였습니까?”

“라프워스? 배신자···. 배신하고 도망가버렸다, 감히!”

“이곳의 위치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보··· 누군가 제보했어. 벨크로프트.”


대답이 다 두루뭉술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물약을 통해 강제로 얻어내는 진실의 한계였다.


“그럼 이 집을 찾아오신 이유는 뭐죠?”

“목표물을 생포··· 아니, 사살하기 위해.”

“그 목표물이 저입니까?”

“괴, 괴물. 죽여야 해. 오늘 죽여야 해.”


마르타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휘저었다.


“저를 죽여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죽여, 죽여! 괴물을 죽여라!”


중얼거리며 몸을 발작적으로 떠는 마르타.

그녀의 정신은 더는 이곳에 있지 않은 듯했다.


‘더 대답을 얻기는 어려워 보이네.’


웨인은 자신의 리볼버를 쥐고, 실린더를 열었다.


달그락.


그의 손끝을 따라 실린더가 돌아갔다. 지금 필요한 건 꿰뚫는 룬이 새겨진 탄환이 아니었다.

아까 딱 하나만 장전해놓았던 그 탄환을 쓸 때가 온 것.

그가 피스톨보다 리볼버를 선호하는 이유도 이렇게 탄환의 순서를 바꾸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실린더를 닫은 웨인은 리볼버를 마르타에게 겨눴다.


“평안히 잠드시길.”


탕!


특별한 룬이 새겨진 탄환이 마르타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리고 그녀의 심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생체 마나 회로는 그녀가 죽었음에도 발동되지 않았다.

방금 쏜 탄환의 룬 덕분이었다.


‘마법 무력화의 룬.’


웨인이 직접 새긴 룬이기도 했다. 평범한 마탄에 특별한 룬을 새겨넣는 과정은 귀찮기는 했으나, 이런 상황에서 쓸모가 있었다.

결국 이러한 룬들이 총기를 빠르고 편한 원거리 무기 이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었으니.


그때, 웨인의 뒤에 있던 기사 갑옷이 절그럭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도련님,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기계적인 목소리가 텅 빈 갑옷투구 안을 울렸다.

이 골렘은 피에르의 발명품 중 하나였다.

오늘 침입자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웨인이 작동시킨 것.


“괜찮아, 버나드.”

“배고프시거나, 졸리시거나, 혹은 화장실이 가고 싶으시다면,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딱딱한 기사 갑옷의 외형과 달리 버나드는 육아를 돕는 기능을 가진 골렘이었다.

웨인이 더는 보모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된 이후로는 한 번도 작동시킨 적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버나드의 목소리를 들으니 새삼스러웠다.


“아니면 주인님을 불러드릴까요?”


결국 아무 의미 없는 울림이나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저 말들은 모두 피에르가 설정해놓은 문장들.

버나드는 오로지 태엽 장치에 저장된 선택지들만을 읊을 줄 알았다.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도 좋아, 버나드.”

“네, 알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실 때 불러주십시오. 저는 주인님의 뜻에 따라 언제나 도련님을 위할 것입니다.”


절그럭거리는 기사 갑옷이 방을 떠났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웨인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나 당신의 아들을 우선시했던 피에르.

피에르가 도대체 무슨 과거를 가지고 있기에 마르타는 그를 배신자라 불렀을까.

그리고 웨인을 괴물이라 부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르타는 웨인이 마법사라는 사실 자체에 놀란 눈치가 아니었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바이오포지···.”


웨인은 여자의 입에서 나왔던 이름을 중얼거렸다.

피에르가 아니라 웨인을 노리는 이들.

그 정확한 목적은 몰라도, 그가 이 저택에 머무르는 한 원치 않는 손님들이 또 찾아올 게 분명했다.


임종의 순간, 피에르는 큰일이 없는 한 벨크로프트에 남아있으라 웨인에게 말했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이곳을 떠날 만한 큰일.’


피에르와 십수 년을 보낸 이 저택과 이 도시를 떠날 때가 온 것이다.


*


웨인이 전화기 다이얼을 돌렸다.

평소에는 그나 피에르나 이 전화기를 쓸 일이 없었지만, 피에르가 종종 연락하던 사람이 딱 하나 있었다.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신호음을 들으며 웨인은 기다렸다.

곧, 신호음이 멈추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프랭크 박사님.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웨인의 목소리를 들은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 ···웨인?

“네.”

- 아, 그래···. 피에르의 장례는 잘 치렀느냐? 내가 직접 가지 못해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사실 지금 제가 박사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비록 한 번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웨인의 기억 속 프랭크 박사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의 아버지가 가끔 도움을 요청할 때면 늘 흔쾌히 도움을 주었던 인물.

그랬기에 웨인에게도 프랭크 박사는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 무슨 도움 말이냐?

“혹시 바이오포지라는 곳을 아십니까?”

- 바이오포지? 으음, 그곳이라면 헥싱턴에서 가장 큰 연구소로 알고 있는데. 그 이름은 갑자기 왜?


헥싱턴의 연구소라.

웨인은 피에르가 남겼던 유언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헥싱턴으로 가서는 안 된다, 웨인. 절대로.’


그 바이오포지란 연구소가 있다는 이유로 헥싱턴에 가지 말라 했던 것일까.


“아버지가 그 연구소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박사님은 아십니까?”

- 피에르가 그 연구소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것밖에 모른다. 설마 그 연구소 사람들이 너를 찾아온 게냐?

“네. 아주 불친절하더군요. 아무래도 빨리 벨크로프트를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웨인은 내일, 아니면 늦어도 모레 떠날 생각이었다.


- 그곳을 떠난다고?

“네. 아시다시피 제가 이 도시 밖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잖아요. 어떤 도시로 어떻게 가는 게 좋을지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에르는 언제나 아들을 위해주는 좋은 아버지였지만, 딱 한 부분에서는 엄격했다.

웨인에게 벨크로프트 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으려 했던 것.

웨인은 낡은 책들에서 읽은 얼마 안 되는 정보들 외에는 세상에 대해 잘 몰랐다.

가끔 프랭크 박사에게 그런 부분을 전화로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 아, 그렇지. 너는 아직 바깥 세상에 무지하지. 무지는 큰 약점이 되곤 한단다. 그런데도 벨크로프트를 떠나겠다는 게냐?

“이곳이 더는 제게 안전하지 않으니까요. 아버지도 이해하실 거예요.”

- 어디로 갈지는 아직 안 정했다는 거고?

“네. 헥싱턴만 아니면 어디든 상관없어요.”


벨크로프트를 떠나긴 하더라도, 헥싱턴으로 절대 가지 말라는 피에르의 유언은 따를 생각이었다.


- 헥싱턴만 빼면 다 된다라, 흠. 벨크로프트는 기찻길이 아직 안 연결된 상태지?

“네.”

- 공용 마차를 타면 네 목적지가 다 기록될 테고···. 아, 좋은 생각이 났다. 벨크로프트 근처의 호송 의뢰를 맡는 게 어떻겠느냐?

“호송 의뢰요?”


웨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 그래.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까지 이동하는 운송물을 호위하는 일이야. 그게 화물이든, 사람이든.

“그 의뢰를 활용해 다른 도시로 갈 수 있단 말씀이시군요.”

- 그런 개인 의뢰들은 보통 엄청난 자격을 요구하지도 않고, 나중에 추적하기도 쉽지 않거든. 내가 아는 사람을 통해 적당한 의뢰를 알아봐 주마.


프랭크 박사는 피에르에게 그랬듯 웨인에게도 선뜻 호의를 베풀어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 ···아니다. 피에르 가는 길도 배웅 못 해줬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내일 다시 연락하도록 하마.

“네, 알겠습니다.”


뚝 하고 그대로 전화가 끊겼다.

웨인은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생각에 잠겼다.


‘벨크로프트 바깥으로 나간다.’


그게 이제서야 실감이 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건 웨인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


프랭크 박사는 다음날 연락을 해왔다.


- 내일 정오에 벨크로프트에 도착하는 차량 하나를 더스크타운까지 호송하는 일이야. 위험한 화물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안전이 걱정돼서 무장한 사람의 동행을 구한다는군.


바로 하루 만에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장점이 컸기에 웨인은 그 의뢰를 받아들였다.

어쨌든 그도 무장한 사람이라 할 수는 있었으니까.


그렇게 웨인은 하루 동안 저택을 마지막으로 깨끗이 청소하고, 다음날 저택을 나왔다.

짐이라고 할 건 미리 룬을 새겨놓은 탄약, 간단한 마도구와 물약 몇 가지, 그리고 옷 몇 벌이 전부.

피에르의 유품을 따로 챙기지는 않았다.

웨인의 허리춤에 꽂힌 리볼버야말로 진정한 그의 유품이라 할 수 있었으니.


짐가방을 어깨에 걸친 웨인은 도시의 차량 정류장 쪽으로 향했다.

시끌벅적한 차량 정류장은 말똥 냄새로 가득했다.

아직 철도가 안 연결된 벨크로프트를 찾는 마차나 자동차가 보통 도착하는 장소였다.


‘붉은색 바퀴가 달린 초록색 자동차를 타고 온다 했지.’


프랭크 박사가 전해준 바에 의하면, 크리스라는 사람이 이번 호송 의뢰를 맡겼다고 했다.

차량 정류장의 시계를 확인하자, 시침과 분침이 마침 정확히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빵빵!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웨인의 뒤에서 경적이 울렸다. 뒤를 돌아보니 붉은색 바퀴와 초록색 차체가 보였다.

벨크로프트 밖으로 그를 떠나게 해줄 수단이 도착한 것.


바깥에서 그는 무엇을 마주하게 될 것인가.

무엇을 마주하든 리볼버 하나로 해결할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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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탈출 24.08.02 19 3 13쪽
15 루나스 연구소 24.08.02 20 4 14쪽
14 흑마법사 24.08.02 24 4 13쪽
13 흑마법사 +1 24.08.01 29 4 13쪽
12 섀도우스엔드 24.07.31 33 2 12쪽
11 크리처 24.07.30 34 2 14쪽
10 크리처 24.07.29 29 2 14쪽
9 중개인 사무소 24.07.28 42 2 13쪽
8 뒷골목 24.07.27 39 2 15쪽
7 아니스의 의뢰 24.07.26 44 4 14쪽
6 약물 실험 24.07.25 49 4 15쪽
5 거터게이트 24.07.24 50 3 14쪽
4 호송 의뢰 24.07.23 51 2 13쪽
» 벨크로프트를 떠나다 24.07.22 69 4 13쪽
2 침입자 24.07.21 77 3 15쪽
1 총과 마법 24.07.21 126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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