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인펑크의 총잡이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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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간
작품등록일 :
2024.07.21 13:33
최근연재일 :
2024.08.0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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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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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DUMMY

루나스 연구소의 마법사를 쓰러트리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미리 기절 주문을 준비해놓은 상태로 연구실에 들어가 그냥 주문을 날린 게 전부였다.

마나 회로의 흐름을 가속한 것만으로 그는 마법사보다 속도에서 훨씬 우위를 가질 수 있었다.


웨인은 탁상 위에 정신을 잃고 엎드린 여자를 내려다봤다.


‘이 연구소가, 이 여자가, 내 몸에 마나 회로를 새겨 나를 하나의 생체 장치로 만들었다.’


이제 그 마나 회로에 어떤 개입도 없이 몸을 움직이고 세상을 느끼는 건 원래와 같지 않았다.

그의 의지대로 팔을 드는 것보다 마나 회로에 신호를 발생시켜 팔을 들어 올리는 게 더 자연스러운 느낌.

그게 그리 달가운 기분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 소득은 있었다.


‘이 마나 회로를 활용해 순간적으로 세상을 느리게 감지할 수 있다는 것.’


물론, 마나 회로를 가속한 상태로 계속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마나와 정신력 소모가 컸다.

그래도 잠깐씩은 그의 세상을 느리게 만들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활용할 여지가 많은 능력이었다.


웨인은 여자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갈색 약병을 꺼내 들었다.

마나가 찰랑이는 게 느껴져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약병 바닥에 새겨진 칠각성.

이전에 이미 본 적 있는 물건이었다.


‘아니스가 보여줬던 마나 보충제.’


흑마법사나 하운드만 그걸 쓰는 게 아니라 이 마법사도 마나 보충제를 평소에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루나스 연구소가 이걸 만든 흑마법사들과 관계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웨인은 탁상에 널브러진 주사기를 집어 갈색 약병 안에 넣었다.

탁한 색깔의 점성을 띠는 액체가 주사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람의 피를 농축해 만든다고 했었나.’


팔뚝에 주사기를 꽂았다.

액체가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마나 부족을 걱정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마나를 다루는 그의 마법을 쓰고 있었다.


웨인은 습관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뻗었다.

원래라면 그의 총을 중심으로 행동했겠지만, 아직 총이 어디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리볼버를 찾아서 이곳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연구실 내부를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러 수납장을 열어보았지만, 쓸모없는 물건들만 있었다.


‘내 소지품을 이곳에 보관해놓지는 않은 모양인데.’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마나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뒤를 돌며 웨인은 그의 마나 회로를 가속했다.

순간적으로 느려진 세상 속에서 새로운 주문을 만들어내는 마법사가 보였다.

그는 마나가 형성하는 그 구조를 순식간에 무너트렸다.

속도의 우위가 있는 입장에서 어떤 마법 주문을 만들어내든 다 무효화시킬 자신이 있었다.


마법사 여자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웨인을 노려봤다.

웨인은 그녀를 바로 기절시키지 않고 차분하게 마주 보았다. 깨어난 김에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다.


“내 마법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제 몸에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건지 제가 묻고 싶습니다만.”


여자가 이를 바득 갈며 새로운 주문을 또 만들어내려 했다.

웨인은 여유롭게 그 주문 구조를 부쉈다.


“넌 나를 건드린 게 아니라, 루나스 연구소 전체를 건드린 거야. 곱게 죽지는 못할 거다.”

“저는 누군가를 건드린 적이 없습니다.”


여자가 웨인을 가늠하듯 눈가를 좁혔다.


“···너. 분명 아까 환혹계 마법을 썼어. 어디 가문에서 보낸 사람이야? 누가 나를 공격하라고 지시한 것이냐?”

“···.”

“환혹계열 마법사라면 더욱 로시 가문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잘 알 텐데? 누가 너 따위 잡종 마법사를 보낸 거지, 감히?”


환혹계니 가문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웨인에게 낯설었다.


“당신은 그럼 당신 가문의 보호를 받아서 마법사임을 그렇게 드러내고 다니는 건가요?”

“뭐?”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 여자.

웨인의 눈에 저 마법사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알기로 압도적으로 강함 힘을 가지지 않은 이상 정체를 밝힌 마법사는 혼자 살아남기 힘들었다.


“지금 나와 로시 가문을 욕보이는 것이냐?”


여자가 지치지도 않는지 또 새로운 마법 주문을 만들려 했다.

물론, 주문이 완성되는 일은 없었다.

여자가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비열한 마도구 따위는 버리고 정정당당하게 마법 실력으로 승부해라!”


웨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웨인이 여자의 마법 구조를 무너트리는 것도 전부 그의 마법이었다.

그런데 왜 마도구를 쓴다고 생각하는 걸까.


“저는 지금까지 제 마법만을 써왔습니다.”


웨인 입장에서는 정직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여자, 마리아 로시는 그 대답에 당황했다.

그녀는 저 자가 분명 풋내기 마법사라 확신하고 있었다.


아까 저 남자가 그녀를 기습할 때 쓴 기절 마법은 엉성했고, 완성도가 떨어졌다.

환혹계 마법 중 가장 기본적인 주문도 서툰 걸로 보아 옅은 재능을 타고난 잡종이라 판단한 건 그녀 나름의 합리적인 추론을 한 결과였다.

그래서 마법에 서툰 대신 이상한 마도구로 그녀의 마법 주문을 자꾸 파훼한다고밖에 생각이 안 되었다.

애초에 환혹계 주문 중에는 남의 마법을 파훼하는 주문 같은 건 없었으니.


“그딴 거짓말로 속여봤자 아무 의미 없어. 지금이라도 누가 너를 보낸 건지 밝힌다면 죽이지까지는 않겠다!”

웨인은 아직도 자기가 우위에 있다 믿으며 소리만 지르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쓸모있는 정보는 하나도 못 얻은 상태였다.


‘시간 낭비가 심하다.’


그 순간, 공기의 마나가 압축되었다.

무형의 마나가 여자의 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갑자기 그녀를 공격하는 물리적인 힘에 꺽꺽대기 시작했다.

웨인이 지금까지 늘 써오던 그만의 마법.

이 마법은 환혹계 주문에 속하지 않은, 아니 어떤 다른 계열의 마법에도 속하지 않은 마법이었다.


“저도 시간이 많지는 않아서요. 제 물건들은 어디에 두셨죠?”


여자가 공포에 질린 눈동자로 자신의 목 주위를 긁어댔다.

웨인이 살짝 힘을 풀자, 여자가 헉헉대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 마법. 이건, 이건··· 마법이 아니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대답이었다.


웨인은 조금 전에 여자가 완성하려다 만 마법 주문의 구조를 떠올렸다.

그 효과를 완전히 읽어내진 못했지만, 정신을 흩트리는 종류인 것 정도는 파악한 상태였다.

기절 마법 주문보다 좀 더 복잡한 형태였지만, 못 따라 할 정도는 아니기도 했고.


섬세한 구조의 마나가 쌓여 주문이 완성되었다.

웨인은 망설임 없이 그 주문을 여자에게 사용했다.


“끄흑, 끅. 끄흐윽!”


여자가 전신을 바들거리며 발작을 일으켰다.

정신적 고통을 주는 주문인 모양이었다.

주문을 거둬들인 웨인은 다시 물었다.


“제 물건들은 어디에 두셨죠?”


여자가 헛구역질하며 겨우 고개를 들었다.


“···내 사무실. 옆, 옆 방.”


드디어 원하던 질문을 얻은 웨인은 여자를 다시 기절시켰다.

그리고 들고 왔던 메스로 그녀의 목숨을 끊었다.


여자의 말대로 웨인의 리볼버는 마리아 로시라는 명패가 걸린 사무실 서랍에 들어 있었다. 탄환을 넣는 실린더는 비어 있었다.

그 외의 다른 소지품들은 중요치 않았다.

벽에 걸려있는 아무 코트 하나를 환자복 위에 걸친 채로 웨인은 다시 1층으로 향했다.


복도는 조용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아까까지 사방에서 천천히 일렁이던 마나의 흔적이 더는 그 자리에 없었다.

마나 회로를 잠깐 가속시켜서 다시 마나 흐름에 집중해봤지만, 똑같았다.


‘그 많던 마나 흐름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루나스 연구소 건물은 매우 컸다.

이 큰 건물에서 갑자기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느낌이 안 좋다.’


웨인은 조심스럽게 복도를 나아갔다.

저 멀리 문이 보였다.

문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까지 어떤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웨인이 문을 여는 바로 그때.


밖에서 엄청난 마나의 흐름이 들끓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마나 흐름이 갑자기 웨인의 감각을 건드렸다.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와중에 순식간에 나타난 변화였다.


문밖에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평범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일반적인 마나 흐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전부 나와 같이 마나 회로를 전신에 달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생체 장치들.

그들의 몸을 통제하는 전원이 켜진 것.

그들 모두 웨인과 같은 시술을 받고 몸을 조종받는 이들이었다.


루나스 연구소도 꼭두각시 하나가 탈출한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자신들 소유의 꼭두각시들을 투입한 것.


그들에게 연결된 마나 회로가 일렁이더니 전부 동시에 기계적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쿵쿵 땅이 울렸다.

저들이 태엽 장치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란 걸 생각했을 때 매우 기이한 장면이었다.


흑마법사 여덟 명을 상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두 무장한 상태였고, 심지어 웨인의 리볼버에는 탄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총이란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답은 한 가지.

마법.

웨인은 그를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생체 장치로 만든 마나 회로들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집중했다.


척추의 마나 회로를 따라 흐르는 마나가 가속되기 시작했다.

눈을 뜨지 않아도 순간적으로 세상이 느려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찰나 동안 웨인은 그의 마법을 사방으로 뻗었다.


생체 장치가 된 이들의 마나 회로를 침투하는 그의 마법.

웨인을 조종하던 마나 회로의 근원이 심장에 있었던 것처럼 저들 모두 심장에 전해지는 신호로 통제받고 있었다.


‘그 통제권을 전부 내가 끊어낸다.’


그게 유일한 돌파구였다.

웨인 몸속을 흐르는 마나가 점점 빨라졌다.

휘몰아치는 그의 마법.

그리고 그에게 다가오는 이들에게도 앞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루나스 연구소의 손아귀에서 꼭두각시가 되었던 이들.


그들의 전신을 제멋대로 움직이던 실들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에 새겨져 있는 마나 회로는 그들의 정신까지 통제하지는 못했다.

몸을 통제하던 불가항력의 힘이 멈추자, 멍한 상태로 반쯤 잠들어 있던 그들의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웨인은 계속 그의 마법을 퍼트리는 데 집중했다.

가속화된 그의 마나 회로는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고 있었다.

모든 마나 회로를 전부 끊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마나가 사람들의 심장 속 회로를 비틀었다.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전진하라는 명령은 더는 그들을 나아가라 강제하지 못했다.

그 변화는 빠르게 뒷줄까지 퍼져나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자유.’


자유가 생긴 걸 깨달은 이들은 그들이 전진하던 방향에 서 있는 남자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눈을 감고 있는 새까만 머리의 남자.

괴로운 표정으로 전신을 떨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 남자가 자유를 주었다.’


그들을 아무것도 못 하게 고정하던 끈들을 끊어낸 남자.

지금까지 아무도 해주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저 남자를 공격하기 위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


사람들은 조금 어색한 몸짓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들을 멀리서 조종하던 루나스 연구소 사람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조종 장치들을 만지고 있었다.


루나스 연구소가 꼭두각시로 만든 이들은 모두 나름의 실력을 갖춘 용병들.

자유를 얻을 기회가 생겼을 때 쉽게 놓칠 이들이 아니었다.

선두에 있던 남자 하나가 소리쳤다.


“저것들을 죽여라!”


그 외침에 옆의 여자가 동조했다.


“죽여라! 우리를 산 송장으로 만든 놈들을 전부 죽여!”

“죽여라, 죽여라!”


용병들이 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몇 년 만에 입 밖으로 내는 목소리.

그들이 되찾은 자유의 증거기도 했다.


웨인 역시 그 울분이 섞인 합창을 들었다.

수많은 이들을 상대로 일일이 마법을 쓰며 몸의 마나를 거의 전부 소모한 상태.

이렇게 극한으로 마법을 쓴 건 그도 처음이었다. 애초에 그의 몸속 마나 회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기도 했다.

꼭두각시로 쓰이기 위해 새겨진 마나 회로가 있었기에 저 다른 꼭두각시들을 풀어줄 수 있었다니.

참으로 역설적이었다.


웨인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눈을 천천히 떴다.


마나 회로를 지금은 가속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게 느리게 보이는 기분.

수십의 무장한 용병들이 돌진하고 있었다.

웨인을 향해서가 아니라, 루나스 연구소 사람들을 향해서.

저들이 그를 공격할 일은 더 없어 보였다.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마법을 썼다.’


그가 마법사라는 걸 숨기는 건 이제 정말 물 건너갔다는 뜻.


하지만, 적어도 웨인은 오늘도 살아남았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깊은 잠이 그를 덮쳤다.


작가의말

1부 마무리입니다. 공지 참고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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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 24.08.02 19 3 13쪽
15 루나스 연구소 24.08.02 19 4 14쪽
14 흑마법사 24.08.02 24 4 13쪽
13 흑마법사 +1 24.08.01 28 4 13쪽
12 섀도우스엔드 24.07.31 33 2 12쪽
11 크리처 24.07.30 33 2 14쪽
10 크리처 24.07.29 28 2 14쪽
9 중개인 사무소 24.07.28 41 2 13쪽
8 뒷골목 24.07.27 38 2 15쪽
7 아니스의 의뢰 24.07.26 43 4 14쪽
6 약물 실험 24.07.25 48 4 15쪽
5 거터게이트 24.07.24 49 3 14쪽
4 호송 의뢰 24.07.23 50 2 13쪽
3 벨크로프트를 떠나다 24.07.22 68 4 13쪽
2 침입자 24.07.21 76 3 15쪽
1 총과 마법 24.07.21 124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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