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급(1)
16화 승급(1)
“준비하신 자료 여기에 담아두었습니다.”
“고맙군.”
떡두꺼비를 닮은 사내, 신명준은 등선자 센터의 직원이 건네는 USB를 받아 들었다.
“최근 한 달간, S~B구역 출신들. 전부 담은 거 맞나?”
“예. 맞습니다. 한 명의 누락도 없이 빠짐없이 담았습니다.”
지금 신명준한테 매수된 센터의 직원은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좋아. 늘 고생이 많아.”
“흐흐.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전부 은사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센터 직원의 말에 신명준이 픽 웃으며 앞에 놓인 커피를 한잔 들이켰다.
틀린 말은 아니지.
눈앞의 사내를 지금 이 자리까지 올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었으니까.
‘혹시 몰라 B구역까지 조사해달라고 했다. 최근에 각성 신고를 했다면 이 명단 안에 들어 있을 터.’
이 모든 것은 언노운.
놈을 찾기 위해서였다.
혹시 각성 신고를 안 하고 등선자 활동을 이어 나가는 중이라 해도 괜찮다.
언젠가는 등록을 해야 할 터이니.
“1주일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자료도 바로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좋군. 아주 좋아.
점점 언노운의 실체가 손에 잡혀가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대계를 위해. 순순히 붙잡혀 주길 바라마.’
신명준이 언노운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을 때.
- 이거, 정말 위험한 놈들이었잖아?
그 모든 상황을 엘라온이 지켜보고 있었다.
***
“뭐? 근래 각성한 등선자들의 신상정보를 주고받고 있었다고?”
- 그래.
“그거 설마···.”
나는 왠지 모르게 그 떡두꺼비가 찾고 있는 게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설마가 아니라 확실하다. 놈은 언노운을 찾고 있었어. 문제는 놈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거다.
불법적으로 자료를 건네받는 것 같아서 조금 더 놈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드러나는 놈의 정체.
- 티아무트라고 하는 빌런 집단의 소속이더군.
“티, 티아무트?”
맙소사! 그 미치광이 테러단체가 나를 왜?
‘이거 정체를 들키면 좆될거 같은데?’
명문 클랜이라는 방패막이가 있어도 놈들의 타깃이 되면 늘 불안함을 달고 살아야 할 것인데.
나는 혈혈단신.
놈들에게 내 정체를 들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와. 진짜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지.’
이걸 모르고 있었다면 어쩔뻔했어?
지금까지 정체가 노출될만한 일을 크게 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앞으로 더 신중해야겠어.’
던전을 도는 것도 더 조심하면서 돌아야겠다.
- 당분간 정체가 들키진 않을 거다. 놈들은 언노운이 S~B구역 출신자일 거라 단정짓더 군.
이것 또한 다행스러운 부분.
일단 놈들의 시야 밖에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지.’
S~B에서 흔적을 찾지 못하면 그 아래 지역을 훑어볼 수도 있었다.
- 2층에 올라서자마자 현자의 로브부터 확보하는 쪽으로 가야겠구나.
“현자의 로브를?”
- 그래. <현자의 로브>는 여러 안전에 관한 이능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현자의 로브>를 얻게 되면 여러 위험에서 안전해질 수 있을 거다.
오. 그래?
그렇다면 현자의 로브는 빨리 얻어야겠어.
‘이러고 있을 틈이 없네.’
오늘은 조금 쉴까 했는데.
지금 내 레벨에 쉴 틈이 어딨나.
조금이라도 더 던전을 돌아 두자고.
***
9레벨 던전.
이 던전은 홉 고블린들의 부락이었다.
울창한 수풀과 나무들.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끼룩, 끼루룩!”
“끼이이익!”
세 마리의 홉고블린이었다.
놈들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돌팔매질을 시전한다.
후우우웅!
후우우우웅!
콰직, 콰지지직!
“···와우.”
일반 고블린들이 던지던 돌멩이와는 파괴력이 다르다.
쉭, 쉭-!
쐐애애액!
돌멩이 뿐만 아니라 독침과 독주머니까지 날아들었다.
‘방어구가 필요하긴 하네.’
지금까지 근거리의 존재들만 상대하다가, 제대로 된 원거리 공격을 당해보니 방어구의 부재를 여실히 느꼈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 필요한 건 아니지만.’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만으로도 놈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다.
다행히 놈들의 공격 범위가 그리 넓지는 않았다.
반면 내 마법은?
“물폭탄.”
콰앙!! 푸슈슈슈슈슉!!
충분히 닿고도 남았다.
상대의 공격은 닿지 않고, 내 공격은 닿는 것.
이게 바로 일방적인 딜교의 묘리가 아니겠는가.
음하하하.
어쨌든 그렇게 물폭탄 한 번으로 세 마리의 홉고블린들을 가뿐히 쓸어주었고.
길을 따라 숲 한복판으로 들어섰더니 거대한 고블린 부락이 나타났다.
“끼이익!”
“끼루루룩”
“끼익, 끼이이익!”
“까르륵!”
수십이 넘는 홉고블린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포효를 지르는 광경은 소름 그 자체였다.
쐐애애애액!
쉬이이익-
쐐애애애애액!
마찬가지로 수많은 원거리 공격들이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파바바밧!
내가 뒤로 물러선 자리에 돌을 비롯해 화살, 독침 등 수많은 흉기들이 내려꽂혔다.
이건 좀 위험했는걸.
시간을 길게 끌어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 섰다.
즉시 손을 들어 올렸고.
우우우웅!
내 몸을 휘감는 황금빛 아우라.
곧이어 방출되는 에메랄드빛의 뇌전.
콰르르르르릉!
푸스스스스-!
썬더볼트 한 번에 2/3에 다다르는 홉고블린들이 절멸했다.
역시. 썬더볼트.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끼, 끼루룩.”
“끼, 끼에에엑!”
운 좋게 멀리 떨어져 있다 살아남은 홉고블린들은 그 광경에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마나 볼트와 물폭탄으로 나머지들을 정리하자.
부락 한가운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BOSS가 출현합니다.]
“카오오오오오-!”
홉 고블린 부락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집채만 한 크기의 고블린이 눈앞에 등장했다.
[Lv 10]
[Boss]
[광기에 휩싸인 홉 고블린 대전사]
*정체불명의 존재에 의해 전투력이 크게 상승했다.
오. 엊그제 <현자의 시야> 숙련도가 올라간 효과인가.
이제는 간단한 설명도 보인다.
헌데···.
‘홉 고블린이라고는 해도 덩치가 왜 이렇게 커?’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인 크기.
저게 오크도 아니고. 홉 고블린이 저런 체격인 건 선 넘었지.
저런 체격이 된 건 아무래도 정체불명의 존재와 연관이 있는 모양인데.
‘아무렴 어떠리오.’
나는 콧김을 뿜으며 달려오는 보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썬더볼트.”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짓-!
에메랄드빛의 뇌전이 시야를 뒤덮었고.
이내.
쿠우우우웅!
녀석이 새까맣게 탄 채로 뒤로 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끝.”
지금까지의 다른 던전들과 별다를 게 없는 상황.
이제 출구 포탈이 나오고 밖으로 나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축하합니다. <보석 카드함(1성★)>이 나타났습니다.]
“어?”
- 호오.
보석 카드함이라고?
말로만 들어보던 거였다.
가끔.
보스 몬스터나 엘리트 몬스터를 처치하면 등장한다는 보상.
“이야. 이걸 실제로 보네.”
영롱한 빛을 흩뿌리는 보석함 앞에 섰다.
작은 보물상자와 비슷하게 생긴 보석함.
[<보석 카드함(1성★)>을 개봉하시겠습니까?]
“그래.”
내 말과 함께 <보석 카드함>의 뚜껑이 뒤로 젖히더니.
파아아아아앗!!
무지개 빛과 함께 수백 장의 카드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와.”
퍽이나 아름다운 광경이다.
[보석 카드를 한 장 선택하세요.]
보석 카드에서는 스킬, 금화, 아이템 등 하늘성에 존재하는 대다수 것들을 뽑을 수가 있었다.
허나 높은 등급의 재화를 뽑기란 쉽지가 않았다.
대다수가 일반 등급이었기 때문.
누군가가 자신이 <보석 카드함>을 뽑을 때마다 기록했었는데.
‘일반 등급이 90%가 넘는다고 했지.’
일반 바로 윗등급인 희귀 등급조차 확률이 10%가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혹자는 말한다.
이건 로또를 뽑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대다수가 꽝일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하지만 나는 다르거든.’
- 꽝을 피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더냐.
엘라온의 말에 씩 웃었다.
그래.
내게는 이런 상황에서 고등급을 확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스킬이 있었으니.
‘현자의 시야. 발동!’
스스슷!
내 두 눈에서 청량한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현자의 시야가 발동되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펼쳐진 수백 장의 카드 중, 극소수의 몇 장이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
“후···.”
내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난 혹시 전생에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었을까?”
- 똥을 싸는구나.
“흐하하. 그래. 전생에서 내 똥은 색깔도 금색이었을지 몰라.”
광기에 차 있는 내 웃음소리.
뭐가 그렇게 즐겁냐고?
즐거울 수밖에.
<보석 카드함>에서 전설급 장비를 뽑는 데 성공했으니까.
‘흐흐.’
내가 인벤토리에서 아까 얻었던 ‘탈’을 꺼내 들었다.
착용 시 하관만 드러나게 생긴 새하얀 하회탈.
언뜻 보면 흔하디흔한 탈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정보 확인.’
[전대미문의 하회탈]
*등급: 전설(1성★)
*체력+2
*마력+1
*기척감소+30
*간파 스킬 면역
*마나 회복력 +10%
*마법 저항력 +30%
*은신(5성★★★★★) 내장. 5성급 이하의 탐지에 발각당하지 않는다.
무려 스탯을 3개나 올려주는 장비!
심지어 가장 가려운 곳인 마력 스탯을 1이나 올려주었다.
이 덕분에 나는 마력 스탯 총합이 드디어 10을 찍게 되었다.
마력 스탯이 두 자릿수가 되자 한 자릿수 일 때보다 증가 폭이 훨씬 커졌다.
정말 드디어 이제 1성급 등선자다운 마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뿐만이랴?
마나 회복력과 마력 저항력까지.
부족한 마력을 채워주고 방어력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고.
나를 위한 장비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있냐고.’
심지어 하회탈에 붙어있는 옵션 중 백미는 기척 감소와 은신 스킬이었다.
안 그래도 그 티아무트 집단에서 내 정체를 추적하는 게 못내 찝찝했는데.
두 옵션 덕에 정체가 들통날 걱정이 줄어든 것이다.
‘레벨도 10까지 올렸고.’
오늘이 딱 2주가 되기 하루 전.
내일 승탑 시험에 통과한다면?
한 달 컷도 아닌 2주 컷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2층에 올라서는 것이다.
“흠.”
하지만 고민되는 부분은 있다.
단지 그냥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라면 문제 될 건 없었지만.
‘이왕 올라서는 거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올라서는 게 좋잖아?’
2층으로 향하는 승탑 시험의 최단 시간 기록은 제임스가 세운 이래로 현재까지 그 누구도 넘어설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는 괴물 중의 괴물이니까.’
칠선자가 다들 괴물이라곤 하지만.
초기부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성장한 이는 제임스가 유일했다.
미국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강대국.
그 영향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정부 차원에서 제임스를 밀어주었고.
수많은 전설급 장비들로 도배를 할 수 있게 된 제임스는 승탑 시험에서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장비 제한이 있던 갓 트리의 명예의 전당과는 격차가 엄청났다.
‘제임스 본인조차도 엄청난 재능충으로 알려져 있으니.’
그런 기록을 넘어서는 것.
과연 가능할까?
아마 가능하겠지만. 압도적으로 넘어서는 건 글쎄?
물음표가 생긴다.
‘하필 1층 승탑 시험의 내용이 나랑 상성이 맞지 않단 말이지.’
1층의 승탑 시험은 보스 몬스터 섬멸 타입이었다.
10레벨의 히든 보스가 등장하는데.
[타락한 절망의 엔트리]라는 나무 속성의 몬스터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닌 가장 강력한 스킬인 썬더볼트와 물폭탄이 속성적으로 지고 들어가 그 위력이 급감하게 될 상황이었다.
‘그냥 도전해 봐야 하나?’
내가 그런 고민을 할 때.
엘라온이 불쑥 입을 열었다.
- 오늘 <현자의 서> 승급에 도전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
어? 현자의 서를 승급하라고?
- 그래. 2성급이 되면 속성력 하나를 강화할 수 있을 거다. 뇌 속성을 강화하면 아무리 상성적으로 밀린다고 해다 이전보다는 월등한 파괴력을 선보일 수 있을 게다.
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망설일 게 뭐가 있나.
“콜.”
하자고.
그 승급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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