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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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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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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사자와 오즈의 마법사

DUMMY

51화











“건우. 너의 투구를 지켜본 후로 오늘 너클볼이 가장 좋았다.”

“니크로 선생님의 조언 덕분입니다.”


개막전이 끝나고 나는 필 니크로 옹과 근처 남부식 요리 식당에 밥을 먹으러 왔다.

이 양반은 경기가 끝나고도 조언을 멈추지 않았다.


“... 하지만. 너는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어. 공을 한 번 잡아볼래?”

“여기서요?”

“뭐가 어때서? 우리 너클볼러는 언제 어디서든 연구를 멈추면 안 돼. 아이디어가 생기면 바로 실험해봐야 한단다.”

“... 알겠습니다.”


우리는 식당에서 공을 이리저리 잡고 던지는 시늉을 하며 너클볼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이 니크로 옹을 발견하고는 사인과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그는 흔쾌히 청을 들어주면서도 나를 향한 너클볼 강의를 멈추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오냐~ 내일도 야구장에 놀러 오거라~”


니크로 옹이 브레이브스 모자를 쓴 금발의 꼬마에게 사인을 해주고는 껄껄 웃었다.

그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야구가 왜 미국의 국기로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미국인에게 야구는 매일 숨을 쉬는 공기와도 같았다.


“허허. 나는 이 동네가 정말 좋아.”

“저도요.”

“나는 오하이오 탄광촌 출신이거든. 그곳 사람들은 참 거칠고 억셌지. 그래서 나는 여기 남부가 좋아. 사람들이 푸근하고 순하잖아. 나에게는 이곳이 진짜 고향이야.”

“그렇군요.”


필 니크로는 은퇴 후에도 남부를 떠나지 않고 애틀랜타 인근에 살며 브레이브스 구단과 인연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이 녀석은 참 잘 먹는구나...”

“예?”


지금까지 누가 떠들건 말건 내 옆에서 열심히 고기를 먹어대던 호세가 그때 서야 고개를 들었다.

니크로 옹이 밥을 사준다고 데려온 터라 내가 민망했다.


“아니다. 많이 먹어라. 건우. 우리 너클볼 투수들은 자고로 포수를 잘 대해줘야 해. 너클볼을 잡는 일은 정말 더럽게 짜증 나고 어렵거든.”

“아니에요. 저는 마스. 아니 건우의 너클볼을 잡는 게 재밌습니다.”

“건우. 포수가 저렇게 느낀다면 너의 너클볼의 위력이 별로라는 뜻이야. 포수도 받기 힘든 궤적이야말로 우리 너클볼러가 추구해야 할 궁극의 경지란다. 역시 너의 너클볼은 앞으로 더 개선할 여지가 있어. 내가 알려준 그립을 한 번 잡아보겠니...”

“...”


나는 호세 녀석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니크로 옹의 끝나지 않는 너클볼 강의를 들었다.


***


[그린빌 브레이브스의 슈퍼 에이스 백건우. 더블A 서던리그에서 연일 호투. 9경기 8연승 질주. 평균자책은 0.65]


백건우는 개막전 승리를 날렸지만 내리 8연승을 거두며 서던리그 최다승 투수에 올랐다.

백건우의 호투와 함께 팀도 상승세를 달리며 동부 지구 2위에 올랐다.

1위는 그린빌에게 개막전 패배를 안겨준 잭슨빌 선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원투수 존 로커 부상에서 복귀. 더욱 강력해진 브레이브스 불펜. 빈틈이 없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이번 월드시리즈 우승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역대급 초반 성적으로 동부 지구 1위.]


백건우가 마이너리그에서 놀라운 투구를 했지만 그린빌 사람들이나 좋아했을 뿐 애틀랜타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90년대 최고의 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마지막 99년 시즌을 한풀이하듯 압도적 성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한때 승률이 8할에 육박하며 양대리그 30개 팀 중 최고 승률 팀이 되었다.

(승률 2위는 뉴욕 양키스)

여기에 주전 마무리 존 로커까지 복귀했으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단 셈이었다.

1군이 이렇게 잘나가는데 팬들이 겨우 지구 2위 하는 산하 더블A 팀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오히려 잘 됐어.”


만약 1군이 부진했다면 애틀랜타 언론에서 연일 팀을 흔들며 유망주를 올려야 한다고 부추겼을 거다.

그럼 나는 또 논란의 중심에 서서 언론에 오르내리며 피곤한 일을 겪었을 거다.


뻐어어어엉- !

“좋았어!”


나는 지금 생활에 매우 만족하며 선발 투수 수업을 쌓고 있었다.

마이클 투수 코치는 내가 무릎 관절 보호를 위해 러닝 대신 아쿠아 워킹을 하는 걸 이해해줬고 일주일에 한 번 필 니크로 옹에게 너클볼 과외를 받는 것도 허락해줬다.

5선발 로테이션에 맞춰 날짜별로 컨디션을 조절하고 몸을 올리는 요령을 익혔고 경기에 등판해서는 타순이 돌 때마다 투구 패턴을 바꿔 타자를 상대하는 경험을 쌓았다.


“내가 에인절스에서 브레이브스로 이적한 건 엄청난 럭키였어.”


브레이브스는 투수 왕국답게 마이너에서부터 투수를 길러내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었다.

거기에 매덕스에게 투심 패스트볼을 전수받고 필 니크로 옹에게 너클볼 과외를 받았으니...

이런 경험은 1000만 달러를 주고도 살 수 없었다.


더블A 서던리그는 팀당 한 시즌에 139개임을 치렀는데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는다면 나는 대략 28번 선발로 출전할 수 있었다.

나는 28개의 경험치를 맛있게 먹고 AAA로 승격해서 또 30개 정도 경험치를 먹으면 그때 빅리그 욕심을 내기로 했다.


“건우. 너도 아쉽겠다. 다른 팀이었으면 벌써 빅리그에서 콜업 해서 한번은 써봤을 텐데.”

“그리곤 바로 내려보냈겠지.”

“그래도 그게 어디야. 나는 마이너에 5년 있는 동안 단 하루도 빅리그에 올라가 보지 못했어. 다시 내려보내도 좋으니까 내 인생에 딱 하루만이라도 빅리거가 되고 싶어.”


나와 수다를 떠는 건장한 백인 남자의 이름은 마이크 글래빈.

성에서 알 수 있듯이 ‘그’ 톰 글래빈의 친동생이다.

올해 26살로 지금까지 빅리그 콜업 경험 제로.

마이크는 톰 글래빈의 동생이 아니었다면 벌써 방출되었을 거라는 비웃음을 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언제나 허허실실 느긋했다.


“이봐. 마이크. 그런 사고방식은 곤란해. 단 하루하고 내려가도 좋다니.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지 마. 빅리그에 일단 올라가면 다시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야구를 해야지.”

“쳇. 루키에게도 잔소리를 듣는 내 신세야~ 너는 좋겠다. 야구 잘해서~”

“마이크. 빅리그에서 너를 왜 안 불러준다고 생각해? 너는 우리 팀의 4번 타자고 홈런도 많이 쳤잖아.”

“나도 모르지. 아마도 변화구에 약해서일까?”


마이크 글래빈의 포지션은 1루수.

호세와 3, 4번을 치며 팀의 중심타자로 나름 활약했다.

더블A에서 2할 중반 타율에 홈런 숫자는 10개로 호세 다음으로 많았다.

그러나.

경기에서 실제 타격하는 걸 보면 26살의 마이크를 빅리그에서 불러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블A에서도 약점이 명확한 타자였기 때문이다.


뻐어어어엉- !

[삼진 아웃! 마이크 글래빈. 바깥쪽 코스에 허리가 빠져서 스윙했어요.]

[초구에 몸쪽 위협구가 들어오자 겁을 먹은 겁니다. 마이크의 부드러운 스윙은 좋아요. 파워도 있구요. 하지만 저런 타자는 절대로 빅리그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빨리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게 좋아요.]


녹스빌 스모키스와의 3연전 원정경기 중 2차전.


[그린빌 5 대 6 녹스빌]


1점 차로 추격 중인 8회 2사 1, 2루.

녹스빌 배터리는 호세를 포볼로 내보내서 만루를 만들고 4번 타자 마이크를 상대했다.

마이크는 진루타를 때리지 못하고 허무한 삼진으로 물러났다.

결국 우리가 5대6으로 패배했다.


“문제가 심각하군.”


다음 날 선발로 예정된 나는 더그아웃에서 녹스빌 타자들을 분석하며 동시에 우리 팀 타자들도 지켜보았다.

우리 팀이 리그 1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타격 응집력이 약해서였는데 그중 가장 큰 문제가 4번 공갈포 마이크 글래빈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마이크를 수정시키기로 했다.


“내가 나서야겠군. 빳따를 쳐서라도 마이크를 고쳐놓겠어.”


나는 톰 글래빈 각하께서 하사하신 사인 배트를 움켜쥐며 다짐했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구단 원정 숙소로 쓰고 있는 구질구질한 녹스빌의 모텔에서 마이크 글래빈 방을 찾아갔다.

더블A 선수들은 2인 1실을 썼다.


끼익-

“윽. 냄새~”


객실로 들어가니 찌그러진 맥주캔과 담배꽁초, 양놈들의 역겨운 구린내가 코를 찔렀다.

전형적인 내일이 없는 만년 마이너리거의 모텔방이었다.

나는 마이크를 흔들어 깨웠다.


“이봐. 일어나. 마이크.”

“으으응~ 더 자게 해줘~ 어제 잔뜩 마셨단 말이야~”

“마이크. 톰 형이 너를 찾아왔어. 빨리 일어나. 밖에 있는데 화가 많이 났어.”

“뭐야!?”


마이크가 팬티 바람에 벌떡 일어나더니 주섬주섬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내가 그 모습을 보며 낄낄거리자 마이크가 물었다.


“형이 왔다더니... 너! 감히 나를 속였어!? 루키 주제에 야구 좀 한다고 선배를 무시해!?”

“마이크. 여기 왔잖아. 너네 형~”

톡- 톡-


내가 톰 글래빈의 사인이 적힌 배트를 내밀자 마이크가 멈춰 섰다.

마이크의 형 톰은 무려 7살 연상이었다.

한 마디로 몹시 어려운 형님이라는 뜻이다.


“아침부터 배트를 들고 뭐 하는 거야? 너는 투수잖아.”

“오늘 내가 선발이라서 말이야. 팀의 4번 타자와 함께 타격 훈련을 하고 싶어.”

“아침부터 타격 훈련!? 아니 됐어. 나는 지금 몹시 피로해. 더 자야겠어.”

“아니. 아니. 이건 부탁이 아니야. 마이크. 명령이야. 당장 밖으로 나와. 너 때문에 내 승리가 날아가면 안 되니까. 이봐. 호세.”

“예! 마스터!”

스윽-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배트를 들고서.

마이크도 고릴라왕 호세까지 등장하자 기가 죽었다.


“마이크. 밖으로 나가자. 좋은 말 할 때.”

“... 알겠어.”


우리는 모텔 뒤 주차장으로 갔다.

마이크는 계속 투덜거렸다.


“동양인들은 예의가 바르다더니 다 거짓말이었구나. 나는 너희들보다 한참 나이가 많다구.”

“마이크. 이건 너의 형 톰 글래빈의 부탁을 받고 하는 일이야. 그러니까 좀 닥쳐줄래? 그 나이에도 더블A에 있는 게 자랑은 아니잖아. 내가 준비한 특훈으로 너의 타격이 좋아질 거야. 기대해.”


나는 톰 글래빈이 하사한 배트를 흔들었다.

그러자 마이크도 입을 다물었다.

역시 이것은 요술 방망이다.


“대충 이쯤이 좋겠다. 여기 서봐. 타격 자세 잡고.”

“여기서 뭘 하려고?”

“내가 너를 진짜 4번 타자로 만들어줄게.”


나는 준비한 야구공을 들고 씨익 웃었다.


마이크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형보다 못한 동생을 논할 때 항상 1순위로 뽑히던 인물이다.

내 전생의 기억에 의하면 마이크 글래빈은 30살에 빅리그에 올라가서 단 1안타를 기록하고 방출된다.

형 톰 글래빈이 빅리그에서 305승을 거뒀는데 동생은 1안타라니 너무 비참했다.


내가 지켜본 마이크는 재능이 있는 타자였다.

1루수로 수비도 안정적이었고 좌타자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스윙을 했다.

백인 켄 그리피 주니어라고나 할까.

문제는 심장이었다.


“마이크.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아니 기분 나빠도 들어. 내가 볼 때 너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겁쟁이 사자야.”

“뭐!?”

“누구보다 멋진 스윙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써먹지를 못해. 겁쟁이 심장 때문에.”


마이크가 움찔했다.

누구보다 본인이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오즈의 마법사에게 두려움을 없애주는 물약을 구해왔어. 너는 그걸 빨아 먹기만 하면 돼. 우리와 같이 빅리그로 올라가자. 마이크.”

“내가... 빅리그로...”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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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겁쟁이 사자와 오즈의 마법사 NEW +10 19시간 전 3,656 160 12쪽
50 땅콩 더 줘 +8 24.09.18 5,523 216 11쪽
49 남부의 환대 +11 24.09.17 6,433 220 12쪽
48 타격이 +10 상승했습니다 +11 24.09.16 7,071 244 12쪽
47 좋은 리듬이야 +7 24.09.15 7,945 250 12쪽
46 여기는 너의 놀이터가 아니야 +18 24.09.14 8,330 242 11쪽
45 로켓맨이 로켓 쏘는 소리 +9 24.09.13 8,878 248 12쪽
44 정말 끝내주는 너클볼 +16 24.09.12 9,392 315 12쪽
43 로페즈만 아니면 돼 +23 24.09.11 9,482 336 11쪽
42 이것이 강철 멘탈의 비결 +9 24.09.10 9,970 293 12쪽
41 배트보이까지 그를 따르더군요 +9 24.09.09 10,326 318 12쪽
40 왜 이름이 낯익지? +12 24.09.08 10,646 292 11쪽
39 건방진 뉴요커 녀석 +9 24.09.07 10,668 285 11쪽
38 매덕스와 하이킥을 +15 24.09.06 10,790 301 11쪽
37 로커와 세탁소 +10 24.09.05 10,774 308 12쪽
36 메이저리그 최악의 남자 +7 24.09.04 11,031 292 12쪽
35 마이너리그의 법칙 #3 +6 24.09.03 10,993 293 12쪽
34 종이 한 장의 공포 +9 24.09.02 11,177 287 12쪽
33 플로리다의 3월 하늘 +9 24.09.01 11,414 290 12쪽
32 언더핸드 투수의 평범한 패스트볼 +12 24.08.31 11,608 300 12쪽
31 마이너리그의 법칙 #2 +5 24.08.30 11,429 288 12쪽
30 기다려라. 내가 간다. 투수 왕국. +7 24.08.29 11,732 282 12쪽
29 이것이 대약물 시대 +9 24.08.28 11,682 282 12쪽
28 소금은 어디 있지? +14 24.08.27 11,514 304 11쪽
27 술탄 오브 스윙 +12 24.08.26 11,656 290 12쪽
26 불맛 콘치즈 +6 24.08.25 11,701 28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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