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힙투비: 마지막 하이크란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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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aray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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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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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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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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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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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시녀 일레이네 (1)

DUMMY

“...후우...”

새벽별이 여전히 총총한 시간, 축사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카이난은 하얀 입김을 흘러 내었다.

이제 9월의 두 번째 주에 (한 주는 10일: 저자 주) 접어들었을 뿐인데 이 북쪽의 대지는 벌써 혹독한 겨울을 그리워하는 듯, 아침저녁으로 푸른 초목에 서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며칠 내로 첫 눈이 내리겠지. 그렇게 되면 본격적으로 월동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자, 밥 먹을 시간이다.”

그는 자신을 발견하자 금세 반응을 보이는 돼지들을 향해 먹이통을 들어 올리며 마음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죽을 시간이지.

그는 눈에 띄게 살이 오르고 털이 자라난 (이것도 겨울이 다가온다는 증거였다.) 수퇘지들을 눈여겨보며 먹이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오늘은 목장에서 젖소를 세 마리 도축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다. 5백 명의 일주일 식량에 더해 별관 손님들의 몫으로 한 마리를 더 잡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숫자를 감안한다고 해도 왕비의 일행이 저번처럼 5일을 머무를 경우, 돼지를 최소 네 마리는 더 잡아야 할 것이다. 양과 염소는 그 두 배를 소모하게 되겠지.

그는 8월에 새로 태어난 돼지와 양의 숫자를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왕비의 잉태라는 나라의 경사와는 별도로, 두 달마다 찾아드는 그녀의 요양 행차로 인해서 정령원의 월동 준비에는 비상이 걸린 셈이다.

맥주도, 소금에 절여 겨우내 먹을 고기도, 치즈와 버터도 모두 부족할 것이 자명한 것이다.

물론 왕비 일행이 보답으로 금화를 내놓고야 가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가까운 시일 내에 대량의 가축과 곡식을 확보하지 못하면 월동 준비 기간에 맞출 수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유감스럽게도 조리장을 맡고 있는 요리장 콘타오른은 도축을 질색하는 것만큼이나 숫자 셈에 약해서 이러한 상황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정령원의 살림을 맡고 있는 행무 사제의 호통이 떨어지기 전에 귀띔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그는 배불리 먹이를 즐기고 제 자리로 돌아가는 수퇘지를 한 마리씩 축사 밖으로 끌어내었다.

사실, 도축을 할 짐승을 배불리 먹이는 일은 그야말로 자원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하룻밤 정도를 굶기지 않으면 위와 직장의 배설물을 별도로 긁어내야만 하는 성가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일 전임 요리장 사제가 살아있어서 도축할 돼지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도 그의 등짝이 찢어져라 가시 몽둥이를 휘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콘타오른은 참으로 그다운 발언으로 카이난을 놀라게 만들었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최후의 만찬을 즐길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 배부른 풍요로움의 자비가 인간한테만 주어지는 것이냐고?>

도축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까운 먹이 낭비에다 일거리만 늘리는 무지한 발언인 것이 분명하지만 카이난은 그의 말이 거슬리지가 않았다. 아무렴. 어차피 인간의 입에 들어갈 운명이라면 그들도 배불리 먹을 행복을 누려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도나 인카르-세 도네. 온도르고 쿤세남 히토로토 아쿠님.”

그는 이제 곧 운명을 마칠 돼지의 생명을 짧은 기도로 위로하고는 주먹을 들어 단숨에 짐승의 머리를 내리쳤다.

이미 수천 번을 되풀이해온, 그래서 주먹 끝에 와 닿는 육중하고 둔탁한 파열음만으로도 덩치만 컸지 미력한 이 짐승의 두개골이 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준비되어진 도르래의 밧줄을 이용해서 돼지를 거꾸로 매달았다.

그리고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짐승의 목을 칼로 베어 낸 다음, 커다란 물통을 아래에다 대어 놓았다. 이렇게 모아진 피들은 소시지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한 방울도 헛되이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작업을 나머지 돼지 두 마리에게 되풀이한 다음, 카이난이 축사로 돌아왔을 때에도 세상은 고요했고 새벽별은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북쪽 하늘의 중심별인 마검(魔劍)자리의 기울기를 보아 이제 곧 어둠이 물러갈 시간이다.

-그럼 이제 뭘 한다?

작업 시간을 단축할 생각이 없었음에도 평소보다 꽤 시간이 남아버린 카이난은 잠시 어린 돼지들의 작은 귀를 만지작거리며 망설였다.

사실, 일은 넘치고도 남는다. 조리장으로 돌아가서 요리장 사제가 깨어나기 전에 아침 준비를 위한 재료의 밑 손질 작업도 해야 하고 야채밭과 약초밭에 줄 거름도 준비해 놔야한다. 언제나 해야 하는 이 작업들이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죽은 가축을 매달아 숙성시키느라 눈에 띄게 닳아버린 저장고의 대들보 보수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축사 옆, 도축장을 겸한 우물가도 바닥의 돌이 깨어져서 손질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다는 사실이지.

그는 마음까지도 부드럽게 만드는 돼지들의 온기와 피부가 얇은 귀의 말랑거리는 감촉에 변명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산딸기 잼을 만들어도 좋고, 버섯을 따도 좋고... 너희들도 게으름뱅이 풀 먹은 지 오래됐지?”

...부끄럽다, 부끄럽지만 그냥 솔직하게 인정을 하자.

돼지들이 좋아하는 야생초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가축에게 말을 거는 자신의 모습에 급기야 카이난은 자조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음에도 서둘러 도축 작업을 마친 것도, 산딸기나 돼지 먹이를 핑계 삼는 것도 목적은 단 한 가지. - 폭포 아래의 냇가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도 잠을 자고 있을 거야. 아직 어둠도 가시지 않았잖아?

그렇지만 일찍 가서 풀을 모으고 버섯까지 따 놓으면 충분히 그녀를 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지.

자신의 대담한 충동에 이성이 변명으로 제지하고, 설득에 굴하지 않는 본능이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고집을 부린다.

“후우...”

그의 집요한 손길이 귀찮아진 듯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리는 돼지를 놓아주며 카이난은 한숨으로 백기를 흔들었다.

이미 마음은 정해져있는데 그것을 억지로 ‘안 돼.’라고 말하는 이성이 무력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는 동안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아깝게 느껴졌다.

결심을 굳히고 축사를 나와 가래나무로 짠 커다란 바구니를 등에 짊어지고서 카이난은 주위를 신중하게 둘러보았다.

이제 두어 시간 남짓이면 아침을 알리는 풍금(風琴) 티오라의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그 전에 그녀를 볼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그는 빠른 걸음으로 절벽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울라한 폭포의 아래로 내려가려면 어떤 경로의 길보다 이 방법이 빠르기 때문이다.

-음유시인들의 노래는 정확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감정은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이며, 그 독은 같은 감정의 보답이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한 존재였다.

죽어서 이 삶이 끝나지 않는 한 끊어낼 수도 없는 무서운 존재,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시인들은 노래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황금보다 귀한 것이라고.

-그러니 어쩌겠어? 사랑이라는 감정에 중독이 된 환자는 이런 짓도 하는 거야.

카이난은 절벽을 내려갈수록 쏟아져 내리는 물세례를 맞으며 쓴 웃음을 흘렸다.

어둠 속에서 장대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폭포로 인해 금세 회색의 수도복이 차갑게 젖어든다. 서리가 내린 날씨에 물에 흠뻑 젖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는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다행이도 추위에 있어서 카이난은 최강의 강인함을 자랑하는 종족이었다.

오직 책 속에서만 접했지만 과거, 하이크란트라고 불리던 자신의 종족은 영구빙원의 땅을 호령하며 얼음과 돌의 문화를 꽃피웠다지 않은가?

그는 바닥에 도착하자마자, 젖은 수도복을 짜서 물기를 털어낸 다음 하얀 자갈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강가를 달리기 시작했다.

맑디맑은 주홍빛의 물은 흐르고 흘러 3트리언(약 6.9km)을 내려가서 자작나무 마을로 흐르는 작은 냇가와 합쳐진 다음 거대한 강 실차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실차 강은 다시 동쪽으로, 동쪽으로 흘러 바다와 만난다고 들었다.

바다. 그리고 보면 바다는 참으로 상상 하기가 어려운 단어중의 하나였다.

한달음에 달려서 도착한 냇가를 둘러보며 - 역시나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의 냇가는 고요함 속에 흘러가는 물소리만이 들리고 있다. -카이난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령원 근방 20티아르(약 20헥타르)를 벗어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나 커다란 강조차 본 일이 없는 (듣기에 실차 강은 이 냇가 폭의 30배는 거뜬히 넘는다고 한다) 그로서는 끝도 없이 수평선이 펼쳐져 있는 바다라는 것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두터운 양피지의 책에 푸른색의 안료로 채색이 되어있던 <바다>라는 존재는 언제나 막연한, 하지만 어딘가 그리운 향기를 지닌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쩌면 바다를 알고 있는 종족의 기억이 자신 피 속에 남아 흐르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녀는 오지 않을지도 몰라.

그러할 것이라고 짐작을 했음에도 막상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어둠에 목구멍으로 솟아오르는 실망감을 누르며 카이난은 낫을 들고 냇가의 수풀로 들어갔다.

이곳은 누군가가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속칭 <게으름뱅이 풀>이라고 부르는 잡초가 언제나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양이나 돼지의 먹이로 곧잘 쓰이곤 하는 이 약초에는 이름에 어울리는 전설이 함께 내려왔는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근방은 고대로부터 각종 버섯과 야생의 산딸기가 지천으로 깔려있는 풍요로운 숲이었고 그것들을 먹어치우는 야생의 돼지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한 게으름뱅이가 겨우내 먹을 건조용 물고기를 잡으러 왔다가 일하기가 싫어서 꾀를 내었는데 유독 돼지들이 좋아하는 풀을 잔뜩 뜯어서 먹고는 본인도 돼지로 변신한 것이다. 그렇게 동료들을 피해 숲으로 들어가 낮잠을 실컷 자고 일어난 게으름뱅이는 자신이 시간이 지나도 주술이 풀리지 않고서 진짜 돼지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놀라 절망을 하며 울었다는....

“.........?!”

전승되어지는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되새김을 하며 부지런히 손을 놀리던 카이난은 순간, 본능적으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짐승의 누릿한 냄새, 그리고 남달리 발달한 청각을 통해 전달되는 숨소리.

카이난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앞의 어둠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다지 키가 크지 않은 잡목의 어둠 사이에서 낮게 웅크리고 있는 짐승의 눈동자를 발견하는 순간 더욱 천천히 낫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경계의 기운을 감지한 것일까? 탄력 있는 몸을 튕겨 훌떡 튀어 오른 물체가 긴 그림자가 되어 그를 덮쳤다. 동시에 침착하고도 빠르게 몸을 날려 공격을 옆으로 피한 카이난이 손에 든 낫을 휘두르자 날붙이의 끝에 깊숙이 박혀 찢겨나가는 근육의 감각이 전해져 온다.

-갈수록 태산이군.

그는 고통의 펄떡거림으로 하얀 자갈밭을 뒹구는 짐승의 정체를 확인하고서 나직하게 혀를 찼다. 그것은 이 근방에서는 여간해서는 볼 수가 없는, ‘울라’라고 사냥꾼들이 부르는 거뭇한 털이 난 큰 뱀이었다. 문제는 뱀의 커다란 통나무 같은 몸통을 감싸고 있는 회색의 흐릿한 안개 덩어리였다.

-케라론.

불행과 절망에 이끌리는 저 불길한 사령(邪靈)은 처음에는 저렇게 미약한 안개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힘이 강해져서 이목구비와 손발의 형태가 생겨나기 전에는 이렇게 살아있는 짐승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러가라, 삿된 이름아 - 신성한 대(大) 이그리의 불꽃이 너를 태울 것이다. 이그리의 창은 충성스러운 나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는 법이 없다.”

카이난은 낫에 의해 길게 찢겨진 상처에서 걸쭉한 청회색의 선혈을 뿜으며 꿈틀거리는 뱀의 목을 단숨에 잘라내면서 주문을 외웠다.

새벽의 공기 속을 흘러나온 공용어로 번역된 주문이 곧장 붉은 불꽃의 창이 되어 뱀의 잘려진 몸을 불태워버린다.

<끼루르르륵---!>

소름이 끼치는 비명을 남긴 채 기생했던 뱀의 몸과 함께 불에 타서 소멸하는 사령을 내려다보며 카이난은 거칠게 낫에 묻은 피를 닦아 내었다.

밀려드는 불길함으로 뱀과 눈이 맞았을 때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심장이 급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감히 울라한의 신성한 물이 흐르는 이곳까지 케라론이 접근하다니... 이런 불길함이 또 있을까? 그것은 미래 - 가까운 미래에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세상>인 이 대지에 불행이 닥친다는 피할 수 없는 경고이자 예언이었다.

전쟁, 기아, 천재지변, 비지성족(非知性族)들의 침입 - 이 세상에 정령들과 국신교의 신들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위협해 왔던 존재들은 지금도 대륙 곳곳에서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유년기로 부터의 모든 기억이 이곳, 에루나크 정령원에 속해 있는 카이난으로서는 그러한 불행을 겪어 본 일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자신이 처한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행운아>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또한 그러한 행운이 누구도 아닌 히가.레이온이라는 노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뼈저리게 느껴진다.

-그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는 커다란 통나무와도 같은 굵기에 길이가 3디트(3.3m)는 족히 될 법한 뱀의 불타는 몸뚱이를 내려다보며 (그것은 불길 속에서도 여전히 사납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곳이 더 이상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바심이 났다.

아직 티오라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점차로 물러나는 어둠이 이제 곧 정령원에서 흘러나올 풍금 소리가 산과 계곡으로 울려 퍼질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서둘러 돌아가자. 돌아가서 이 사실을 행무 사제님에게 보고하면 분명히 냇가에 접근하지 말라고 그녀에게 주의를 줄 것...?

풀을 담은 바구니와 낫을 챙겨서 냇가를 벗어나려던 카이난은 그러나 자갈을 밝는 미세한 발걸음 소리에 놀라 재빨리 잡목 속으로 몸을 숨겼다.

발달한 청각을 통해 가벼운 발걸음이 가까워지더니 냇가의 건너편, 마을과 정령원으로 난 작은 숲길을 통해서 날씬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난다.

한발 늦었다. - 카이난은 낭패감으로 이맛살을 구기면서도 그녀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서 몸을 더욱 웅크렸다.

커다란 후드가 달린 짙은 녹색의 망토를 두른 그녀가 냇가에 이르더니 한참을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하얀 입김을 흘려내는 입술과 냇가에 손을 담그는 동시에 부르르 떠는 동작으로 보아, 예상 이상으로 차가운 물의 온도에 망설임이 생겨난 모양이다.

“세상에! 얼음장이 따로 없네! 어제만 해도 그렇게 시원했는데...”

들고 온 작은 바구니를 떨어뜨릴 정도로 놀란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에 그는 저도 모르게 동정의 미소를 입가에 올리고 말았다.

가여운 그녀. 태양의 부드러운 입김을 받지 못하는 울라한 폭포의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그녀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낮과 밤의 엄청난 수온차이로 인해서 그녀가 원하는 붉은 말조개의 육질이 더욱 쫄깃하고 맛이 뛰어나다는 사실도 모르겠지.

-그녀가 포기를 하고 돌아가 주었으면 좋겠는데.

카이난은 그렇게 마음으로 희망을 품었으나 아무래도 그가 남몰래 연모를 하는 처녀는 활달한 목소리만큼이나 성격도 씩씩한 모양인지 망토를 벗더니 신발까지 벗어 던지고 있다.

“거기 누구 있어요?”

“..........!”

긴 치맛자락을 무릎까지 끌어 올려 띠로 단단히 두르며 조개를 캘 준비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던 카이난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

순간, 본능적으로 숲속 깊이 달아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던 카이난은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자신이 숨어있는 장소가 아니라 채 수그러들지 않은 불길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그러한 깨달음이 위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녀가 용감하게도 냇가를 건너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누구 있어요? 사냥꾼님? 아니면 벌목꾼이에요?”

냇가를 건너와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는 장소로 다가가면서도 불안한 경계의 빛을 띠고 있는 처녀의 표정에 카이난의 심장도 오그라든다.

분명 이 젊고 아리따운 여인은 홀로 있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인적이 없는 외딴 장소에서 낯선 인간과 -특히 남자와-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보다 훨씬 말이다.

“모닥불만 피워놓고 어디를 간...어, 어머나!”

“...........!”

카이난은 저도 모르게 반쯤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경계의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문제의 장소로 다가간 그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버린 것이다.

“아...아야아... 세상에! 뱀이야! 뱀이야! 싫어-!”

발을 헛짚어 자갈밭에 험하게 넘어졌음에도, 그래서 고통의 비명을 지르면서도 흉물스럽게 거죽이 오그라들고 있는 거대한 뱀의 시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자비로운 여신님! 친절한 정령들이여 - 제발 도와주세요! 아...! 아파.... 흑....”

아픔과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애써 일어나려고 시도하던 그녀가 다시 한 번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못 걷겠어요! 제발.... 누구 없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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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 – 공격(1) 24.09.18 2 0 20쪽
27 26화 - 귀신의 자식(3) 24.09.17 3 0 26쪽
26 25화 - 귀신의 자식(2) 24.09.16 4 0 21쪽
25 24화 - 귀신의 자식(1) 24.09.13 7 0 25쪽
24 23화 - 여기사, 소녀를 만나다 (4) 24.09.12 6 0 22쪽
23 22화 - 여기사, 소녀를 만나다 (3) 24.09.11 6 0 23쪽
22 21화 - 여기사, 소녀를 만나다 (2) 24.09.10 6 0 25쪽
21 20화 - 여기사, 소녀를 만나다 (1) 24.09.09 8 0 23쪽
20 19화 - 샴.베스타의 학살 (3) 24.09.06 6 0 23쪽
19 18화 - 샴.베스타의 학살 (2) 24.09.05 6 0 21쪽
18 17화 - 샴.베스타의 학살 (1) 24.09.04 5 0 25쪽
17 16화 – 전조(前兆) (3) 24.09.03 5 0 23쪽
16 15화 – 전조(前兆) (2) 24.09.02 5 0 23쪽
15 14화 – 전조(前兆) (1) 24.08.30 5 0 28쪽
14 13화 - 축복의 시간(5) 24.08.29 7 0 20쪽
13 12화 - 축복의 시간(4) 24.08.28 6 0 26쪽
12 11화 - 축복의 시간(3) 24.08.27 7 0 20쪽
11 10화 - 축복의 시간(2) 24.08.26 6 0 24쪽
10 9화 - 축복의 시간(1) 24.08.23 5 0 25쪽
9 8화 - 시녀 일레이네 (4) 24.08.22 5 0 24쪽
8 7화 - 시녀 일레이네 (3) 24.08.21 7 0 16쪽
7 6화 - 시녀 일레이네 (2) 24.08.20 6 0 17쪽
» 5화 - 시녀 일레이네 (1) 24.08.19 9 0 18쪽
5 4화 - 정령원의 비밀사제 (4) 24.08.16 6 0 23쪽
4 3화 - 정령원의 비밀사제 (3) 24.08.15 6 0 22쪽
3 2화 - 정령원의 비밀사제 (2) 24.08.14 5 0 19쪽
2 1화- 정령원의 비밀사제 (1) 24.08.13 8 0 18쪽
1 프롤로그 24.08.13 8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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