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힙투비: 마지막 하이크란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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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aray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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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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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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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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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 샴.베스타의 학살 (1)

DUMMY

평소라면 네 번째 식사이후 부른 배를 두드리며 하루의 마감을 느긋하게 맞이하고 있을 시간, 도시는 왕성을 둘러싼 거대한 화톳불로 인하여 생겨난 그림자처럼 불길한 기운을 품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왕궁의 4방향의 문은 굳게 닫혀있고 한 떼의 군사무리가 띠처럼 성벽을 둘러싸고 있다. 그들이 어둠을 밝히기 위해 피워 올린 화톳불은 그들의 군세를 더욱 무시무시한 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 몰려든 인파들이 그 많은 군사들을 앞에 두고서 각각의 목소리로 수군거리고 있었다.

“왕도의 성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모조리 체포를 당했데.”

“왕이 직접 나섰다는구먼. 그...무시무시한 괴승도 함께 말이야.”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야? 해산달이 얼마 남지도 않아 배가 달처럼 부풀어 오른 왕비가 무슨 반역을 저지른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하고 있네.”

“그러니 사술(邪術)을 썼다는 거 아닌가? 그 에루나크 정령원의 늙은 사제랑 못된 사술을 썼다고 하잖아. 반역을 꾀하려고 말이야.”

“사술은 무슨.... 저 왕의 옆에 있는 시투람 샤먼인지 뭔지야 말로 기괴한 사술이나 부리는 요승이잖어.”

“쉿. 쉿! 이 사람아 – 목숨이 두 개가 아니면 함부로 혀를 놀리지 말아!”


-들어가야 해. 저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의 안전을 확인해야만 해.

같은 시간, 인파에 둘러싸여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하얀 성벽을 올려다보며 카이난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세속의 일은 잘 알지 못하지만 일국의 왕비가 반역죄로 끌려갔다면 그녀의 시녀들이 안전할 리가 없다. 무엇보다 왕비의 곁에서 시중을 들어온 일레이네가 가담여부를 의심받아 고문이라도 받게 된다면....

“도와주십시오, 위대하신 정령신들이여. ...알레카르삼. 엘샤.크라타페...알레카르삼. 에스투람....”

저도 모르게 움직이는 입술로 끊임없이 4대 정령신과 자신의 수호신의 도움을 청하며 그는 필사적으로 링크레들을 찾아 정신을 집중했다.

정령들의 홀씨에 해당하는 링크레들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를 하고 있다. 이렇게나 떠들썩하고 사람들의 정기로 넘쳐나는 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의 간절한 기도에 적은 수이나마 사방에서 링크레들이 모여든다.

그는 링크레의 빛을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도록 인파에서 벗어나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며 자신의 곁으로 모여든 링크레들에게 말을 건넸다.

“부디 제 옷 속으로 몸을 숨겨 주십시오. 오늘 밤 제가 당신들을 무리하게 사용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말에 언제나 그러하듯이 정령사에게 전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는 링크레들이 그의 옷깃을 파고든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가능한 상태의 링크레들의 힘을 빌리면 자신의 정령술은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든 저 군사들의 눈을 속이고서 성벽을 넘어 왕궁 안으로 들어가야만....

“..........?”

가능한 넓은 범위의 수면마법을 펼치기 위해 머릿속으로 주문을 정리하던 카이난의 눈에 어두운 건물의 그림자 사이로 한 떼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서른 명...아니, 마흔 명 정도의 남자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건물의 그림자에 자신처럼 몸을 숨기고 눈을 빛내며 상대적으로 늘어선 군사의 숫자가 적은 동쪽 성문의 모서리를 노려보는 자들... 모두가 하나같이 몸이 날래고 전투에 익숙한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들을 따라가야 해.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선두의 선 이의 손가락 지시만으로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남자들의 무리에 카이난은 본능적으로 숨을 죽이고서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카이난이 눈여겨 두었던 동쪽 성문을 따라 북쪽으로 돌아가는 가두리 탑 아래에 모여든 군사들을 향해 일시에 화살과 단검을 날리더니 곧장 돌격을 해 들어갔다.

“누구냐! 적이다!”

-라고 재빠르게 외친 눈치 빠른 병사의 목이 다음순간 단숨에 날아든 화살에 의해 뚫려 버린다. 그리고 한 명의 백인장이 지키는 부대인 듯, 백여 명 정도 되는 군사들을 향해 서슴없이 몸을 던진 검사들은 지원을 청하는 뿔피리와 북을 들고 있는 병사들을 가장 먼저 해치워 버리고서 말에 타고 있는 백인장의 목까지 단숨에 그어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죽이고 싸운다고 해도 곧 들통이 나고 말거야.

카이난은 난생처음 보는 피가 낭자한 전투 속에서도 자신의 발달한 청각을 어지럽히는 창과 검 날이 부딪치는 소리에 곧장 결심을 굳히고서 주문을 외웠다.

“침잠(沈潛)하라, 침잠하라 – 밤의 손길에 몸을 내 맡긴 방랑자여. 어깨를 짓누르는 고된 운명의 짐을 벗고서 대지의 품으로 가라앉아 꿈의 길을 거닐어라...”

그의 입에서 벗어난 주문과 함께 짙은 회색의 옷깃 속에 숨어있던 링크레의 빛이 떠오른다. 그리고 주문과 함께 피어오른 링크레의 빛은 순식간에 힘과 능력이 되어 살아남아 목청껏 지원을 요청하는 병사들을 단숨에 덮쳐눌렀다.

“....이것은!”

“마법인가? 마법사가 있다!”

난데없이 날아들어 왕도의 병사들만을 깊은 잠으로 빠지게 만드는 힘에 검사들이 날카롭게 경계의 날을 세운다. 카이난은 때를 놓칠세라 한달음에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두 팔을 내밀었다.

“진정하십시오, 이것은 간단한 정령술일 뿐입니다. 저 역시 여러분과 뜻이 같기 때문에.....!”

말이 끝이 나기도 전에 그의 턱 아래로 선혈이 뚜렷이 묻어있는 칼날이 들이밀어진다. 카이난은 금방이라도 그의 목 줄기를 뚫을 듯이 피부에 와 닿는 그 차갑고 선뜩한 묵직함에 고개를 들고서 저항 없이 두 팔을 벌렸다.

“우리와 뜻이 같다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데 함부로 지껄이는가? 마법사?”

무리를 이끌던 남자가 다가와 활처럼 매서운 눈동자로 카이난을 향해 다그치듯이 물음을 던졌다. 카이난은 고개를 든 채로 쓰러진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자세한 정체는 알 수가 없지만 일개 병사들을 일일이 상대할 만큼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분들이라는 사실만은 알겠더군요. 당신들의 목표가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제 짐작대로 쿠드론의 전사들이든 다른 누구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 성벽을 넘어 왕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면 저도 함께 데리고 가 주십시오. 저는 반드시 안전하게 구해 내야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속내를 정확하게 듣기 전에는 위험한 마법사를 뒤통수에 달고 가지 않겠다.”

“마법사가 아니라 정령사제입니다. 저는 왕비님의.... 시녀 한 분을 구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것을 위해 당신들이 성안 침입을 쉽게 하도록 전투를 도운 것입니다.”

“...시녀라고?”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는지 대장의 날카로운 눈매가 조금 누그러졌다.

“별난 대답이로군. 정령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사제들은 가정을 이루지 않는 것이 원칙 아닌가? 대답하게. 그 시녀와는 무슨 관계지? 혈육인가? 연인인가?”

“...무엇이든 제 목숨보다도 소중한 사람입니다.”

“부끄럼이 많군. 연인이라고 말을 하기가 쑥스러운가 보지?”

싱긋 – 웃음기라고는 없는 대장의 얇은 입술이 미소로 기묘하게 말려올라가더니 그는 칼을 겨눈 부하에게 검을 거두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웃음기를 거두어들이며 말을 이었다.

“그대의 짐작대로 우리는 쿠드론의 전사들이다. 아인로테님을 구출해서 쿠드론의 땅으로 모시는 것이 임무지. ...놈들이 어떻게 눈치를 채었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지만 어떻게든 아인로테님과 뱃속의 왕을 구해내야만 해. 그러자면 자네의 소중한 시녀도 발견할 수 있겠지. -따르게.”

“감사합니다.”

성탑에 밧줄을 걸고 날랜 몸짓으로 벽을 오르기 시작하는 전사들의 뒤를 따르며 카이난은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막연한 제 추측입니다만... 어쩌면 우리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상대측... 정확하게 말하면 상대의 마법사는 눈치를 채었을 지도 모릅니다. 왕비님과 제 스승님의 정령술을 간파한 인물이니까요.”

“상대의 마법사라면 그 괴승 시투람 놈 말인가? 그 음흉한 놈이라면 짐작하고도 남겠지.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한다는 것은 그대도 아인로테님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인가? 스승이라고? 지금 그대가 히가.레이온의 제자라고 말을 하는 것인가?”

벽을 타고 오르는 대장의 놀란 반문에 카이난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 정령술을 도왔습니다. 이제 와서 추측하는 것이지만...그 시투람이라는 샤먼은 처음부터 왕비님을 의심하고서 그 분에게 사술을 걸어둔 것 같습니다. 추격마법일 수도 있고 정탐술을 붙였을 수도 있겠지요. 만일 그가 그렇게까지 의심을 넘어서는 확신을 두고 왕비님을 염탐했다면 저희들의 정령술은 들통 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왕도에 도착하자마자 왕비님의 일행이 모조리 붙잡히는 일은 있을 수가 없지요.”

...히가 역시 자신들의 음모가 처음부터 간파당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만일 조금이라도 그 사실을 의심했다면 정령술을 시전하지도, 왕비 일행을 따라서 왕도로 오지도 않았을테니까.

“보이나? 저기 – 저 안쪽의 푸른색 대리석이 내궁이다. 아인로테님은 분명 아직 왕의 면전에 있을 거야.”

“..........!”

다른 전사들보다 큰 덩치임에도 그들 보다 가벼운 몸짓으로 카이난이 성탑위에 올라서자 한눈에도 넓은 정원과 화려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저녁임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왕궁은 궁전 특유의 흥겨움이나 여유로운 빛이 아닌 불길함과 두려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인로테님의 안위가 걱정입니다. 저 집요한 크세투스 놈이 어떤 보복을 할지...”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한 전사의 중얼거림에 대장의 얼굴에도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크세투스 놈이 아인로테님의 배를 갈아 우리의 왕을 끄집어 내지 않기만을 바래야겠지.”

“그런... 아기님은 왕의 자식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육체만 그렇지 영혼은 오래전에 놈이 죽여 없앤 우리의 왕이라는 사실을 그대도 잘 알지 않는가? -이 나라의 왕은 잔인하네.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잔혹한 예측에 놀라 반문을 하는 카이난을 향해 지극히 회의적인 시선으로 대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이난은 그 냉정한 지적에 입술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라가 멸망당하고, 일족이 멸종을 당한 그로서는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이 나라 왕의 잔혹함에 대해서는 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연약한 여인의 배를 가르다니... 그런 끔찍한 짓을 어떻게....

-하지만 그 연약한 여인이 먼저 왕의 목을 치려고 들었잖아.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떨리는 잔혹함에 덧대어 아인로테 – 지금은 페테브란트의 왕비이지만 멸망한 쿠드론의 왕비이기도 했던 여인의 복수심에 불타던 목소리가 떠오른다.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동시에 지금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는 왕에 대한 저주의 말을 흘려내던 그 냉혹한 목소리가.

그리고 그 냉혹한 여인은 복수를 위해 아무런 죄도 없는 태중의 아기를 죽여 버렸다.

어리석은 짓이야... 이런 식으로 가여운 생명을 죽여 가며 복수를 시도했으니 그 결과가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카이난은 예정되어 있는 비극에 조여드는 심장을 부여잡고서 푸른 대리석의 내궁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좋아, 나는 정치니 암투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 지금 내 목표는 오로지 일레이네를 무사히 구출해서 이 나라를 빨리 벗어나.....

-히가는? 히가는 내버려둔 채 너 자신의 안위만 챙길 작정인거야?

뜨끔 – 머릿속에 떠오르는 매서운 질책에 심장이 불타는 가시나무에 찔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워진다.

히가.... 지금 이 순간 카이난은 그 노인을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그도 무사하지는 못하겠지. 이 반역음모의 중심에 선 그가 왕의 노여움을 피해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를 구하지 못하면 노인에게 남은 것은 절대적인 죽음뿐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존재는 카이난이 애써 고개를 돌려 무시하고 싶은 모든 것 –조국, 동포, 옛 고향의 부흥, 그 모든 것에 대한 무거운 짐을 상징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에서 고개를 돌린 채 일레이네와 단 둘이 살아가고 싶은 소박한 미래에 대한 소망은 그의 존재 앞에서는 너무도 순진하기 짝이 없는 희망에 불과하다.

“최단거리를 통해서 내궁으로 향해야 합니다. 근위병의 숫자가 만만치 않을 것이니 저 정령사제의 수면 마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들었지, 사제? 일일이 죽이고 지나가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활약을 기대하지.”

...그거야 죽이는 것이 가능한 숫자라도 된다면 말이지요.

카이난은 여유가 느껴지는 대장의 말에 성벽을 따라 내려와 정원을 가로지르며 두려움이 섞인 중얼거림을 흘려 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을 발견하고 달려드는 근위병의 무리는...맙소사, 이 건물 어디에 저런 숫자가 배치되어 있었단 말인가? 라고 경악을 하리만치 많은 숫자였다.

“기도에 답하소서, 불운함의 데아그라 – 적들의 머리에 운명의 수레바퀴를 짓눌러 그들의 육신을 속박하고 눈물 흘리게 하소서”

사방에서 몰려드는 근위병들의 번쩍거리는 창검과 갑주를 향해 수면마법을 뿌려댐과 동시에 카이난은 적은 수의 아군을 지원하기 위해 불운함의 정령신을 소환해 내었다.

아름다운 대리석의 열주와 향긋한 겨울 꽃들이 피어난 정원 위를 검은 베일을 드리운 늙은 과부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불길한 모습을 발견한 근위병들의 사기가 눈에 띄게 흐트러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쿠드론 검사들의 검이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일직선으로 내궁으로 향해라. 시간낭비하지 마라, 최대한 집중해서.....!”

선두를 지키며 명령을 내리던 대장의 한쪽 귀가 허공으로 날아간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적들의 날이 달린 창에 귀가 잘려나간 것이다.

“대장님!”

“바보 같으니! 겨우 귀 한 짝이다. 신경 쓰지 말고 한 놈의 적이라도 더 재우라고!”

카이난이 재빨리 회복술을 펼치기 위해 주문을 외우자 그것을 노성으로 가로막으며 대장이 창으로 벽을 만드는 근위대를 향해 돌격을 한다. 카이난은 찰나적인 망설임을 거두며 이를 악물고서 주문을 바꾸었다.

“이그리 피아-! 이그리 노테카르시아 –불의 이그리여, 와서 당신의 화염으로 승리를 이끄소서, 불꽃의 전차여, 앞으로 전진하라!”

“으악! 마법사가 있다! 공격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가 있다!”

카이난의 입에서 흘러나온 주문과 함께 거대한 불꽃의 8두 마차가 소환되어 창으로 벽을 두른 근위대의 방어진을 단숨에 뚫는다. 비명과 함께 근위병의 무리가 복도의 양쪽으로 흩어지는 것과 동시에 날아드는 강력한 바람의 칼날에 카이난은 바닥으로 몸을 던지며 외쳤다.

“조심하세요, 상대에게도 마법사가 있습니다!”

“자신의 몸 걱정이나 하라고, 사제! 우리는 모두 마법에 대한 보호부적을 두르고 있으니까 말이야!”

“으아아악-!”

카이난이 소환한 불꽃의 전차가 복도를 치고 지나가는 사이에 몸을 앞으로 던진 쿠드론의 전사가 복도 너머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마법사의 몸을 두 동강 내어 버린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왕을 지키기 위해 내궁 깊숙한 곳에 몰려 있는 모양으로 일선에 배치되어진 숫자는 적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인로테님의 말대로군. 괴승 시투람 놈.... 자신과 경쟁이 될 법한 마법사나 신성사제들을 대거 왕궁에서 쫒아내었다고 하더니 실제로 마법사의 숫자가 적어. 왕의 마음을 독차지하기 위해 한 행동이 이렇게 자기의 목을 죄게 만들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

“하지만 적다고 하더라도 마법사의 위력은 무시하지 못합니다. 이 정도 마법을 쓰는 인물이 3,4명만 나와도 우리의 전력으로는......?”

“누구냐, 서라!”

겨우 확보된 통로를 통과하며 마법사의 존재를 걱정을 하던 카이난은 순간 위태롭게 다가오는 발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동시에 잔뜩 날이 선 검사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돌아오는 것은 죽어가는 생명의 신음 소리뿐이다.

“당신은...!”

카이난은 복도 너머에서 비틀거리며 기다시피 걸어오고 있는, 그리고 급기야는 쓰러져버리는 여인의 피투성이의 모습에 재빨리 다가가 그 여린 몸을 안아 올렸다.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녀는 언젠가, 정령원의 별궁 정원에서 일레이네와 함께 대화를 나누던 시녀 중 한명이 틀림이 없다.

“여보세요... 정신 차려요! 어떻게 된 겁니까?”

처참하게 잘려나가 선혈을 토해내고 있는 가슴의 상처를 누르며 다급하게 시전한 카이난의 정령 회복술에 반응하여 링크레가 떠오른다. 그 색색으로 환하게 피어오르는 링크레의 빛을 초점을 잃은 시선으로 멍하니 바라보던 시녀가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

“아.... 아기님.....을.....”

“아기님! 우리의 왕! 어떻게 된 것인가!”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단어에 전사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선 대장이 다그치자 시녀는 피거품이 새어나오는 입술로 필사적으로 단어들을 발음해 문장을 만들어 나갔다.

“아...기님.... 옮겼어....히가.레이온...왕비님의 아기를.....체포되어 끌려오는 도중에....다른 민간의 아기의 몸에....헉헉.... 일...레이네가...”

“일레이네! 일레이네가 어떻다고요?”

“....아...를....데리고...도망..... 모두... 그 애를 쫓고 있.....”

시녀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여린 목숨이 세상과의 끈을 놓은 것이다.

“숨이 끊어졌는가....”

눈을 뜬 채로 모든 움직임이 멎어버린 시녀를 내려다보며 쿠드론의 전사대장은 쓰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힘없이 시녀의 몸을 바닥에 내려놓고 애도의 의미로 두 손을 가슴에 모아주는 카이난을 향해서 말을 이었다.

“사제, 그대가 찾는 시녀가 일레이네라는 시녀인가? 그녀가 아기를 데리고 도망을 갔다고 했다. 아기는 우리의 왕이라는 뜻인가? 아인로테님 뱃속의 우리의 왕을 다른 아기의 육체에 심었다고 내가 이해를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런 일이 가능한가?”

“히가의 능력이라면...”

카이난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혼탁한 머릿속을 억지로 정리하며 쓰디쓰게 대답을 했다.

한 여인의 뱃속에 있는 인간의 영혼을 뽑아내어 다시 다른 인간의 육체에 심는다... 그런 고위 정령술을 노인이 단독으로 해내었다면... 이미 노인의 몸과 영혼은 정상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목숨과 바꾸는 행위. 아니, 그랬다고 할지라도 그 정령술이 제대로 성공했을까? 정말 일레이네가 데리고 도망친 아기의 몸속에 죽은 쿠드론 왕의 영혼이 심어진 것이 확실할까? 이 모든 시도가 그저 개죽음에 불과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아인로테님과 우리의 왕... 두 사람의 목숨이 갈라졌다면 우리도 선택을 해야 한다. 왕비님의 목숨인가 우리 왕의 목숨인가.... 잔혹하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군.”

대장은 피를 흘리고 있는 잘려져 나간 귀를 고통스러운 듯 만지작거리며 쓰게 중얼거렸다.

“아인로테님의 의지는 확고하시다. 우리 쿠드론에게는 왕이 필요해... 우리는 왕을 위해 존재한다. 복수는 반드시 이루어지고 말테니까 – 일어서라, 사제. 그대의 시녀를 찾아서 왕의 목숨을 보존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가 데리고 있는 아기의 영혼이 진짜 쿠드론의 왕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라는 말이 혀끝으로 밀려왔지만 카이난은 말을 삼키고서 몸을 일으켰다. 지금 당장은 이 말을 전한다고 해도 그들이 믿지를 않을 것이다. 사실 자신조차도 결과를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 않은가? 게다가 무엇보다 지금은 일레이네를 찾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마침 잘됐군. 녀석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날아드는 화살과 투창의 세례에 재빨리 벽으로 붙으며 전사 대장이 중얼거리자 곧장 카이난은 다시금 불의 전차를 소환해 냈다. 주문과 함께 그의 옷깃사이로 링크레들이 빛과 함께 떠올라 정령술의 힘이 되어 사라진다.

...이 모든 일이 끝을 맺을 무렵에는 이 근방의 링크레들은 모두 소멸이 되겠지.

그는 자신의 힘이 되어 사라지는 링크레들의 소멸이 헛된 행위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비명과 함께 무너지는 근위병의 대열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대장의 검이 근위대 장교의 어깨를 꿰뚫으며 멱살을 쥐고 있다.

“말해라! 아기를 데리고 도망친 시녀를 쫓고 있지? 그녀는 어디로 갔는가?”

“말할 것 같은가? 비열한 반역자 놈들!”

“말해! 다이레테 이그리 피아....”

“아아아아악--!”

어디서 그런 잔혹함이 고개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카이난은 고집스럽게 자신들을 노려보며 입을 다무는 장교를 향해 단호한 주문을 흘려 내었다. 그의 주문과 함께 두 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장교의 단발마의 비명이 터져 나온다.

“눈알이 모조리 타버리기 전에 말해줘! 그녀는 어디에 있나?”

“그리고 말해라, 왕비는 어떻게 되었는가? 아직 왕의 앞에 있는가?”

“모른다! 모른다 – 아아악-! 왕비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끄집어내었지만 영혼이 없는 죽은 육체뿐이었다. 왕비는 끝이다! 으아아 – 시녀 계집은... 으아아... 모른다! 우리도 추격중이다!”

“빌어먹을!”

타들어가는 동공의 고통에 혼절을 해버리는 장교의 몸뚱이를 내던지다시피 밀어내며 대장이 비통의 욕설을 내뱉는 동시에 커다란 폭음과 함께 복도가 무너져 내린다.

“마법사입니다! 일단 물러서야 합니다!”

“퇴각! 아인로테님은 포기한다, 시녀를 찾아.....”

카이난의 외침에 대장이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그 명령이 끝을 맺기도 전에 날아드는 폭음과 불꽃의 화살 속에 전사들의 몸뚱이가 불에 타기 시작했다.

“물러나서 임시 지점에서 다시 모인다. 흩어져라, 전사들!”

“잠깐... 나는 임시 지점이 어디인지 몰...”

복도너머에서 날아드는 불꽃의 마법을 가까스로 막으며 정원으로 퇴각한 대장의 명령에 전사들이 일사분란하게 흩어진다. 카이난은 순식간에 흩어지는 전사들을 따라 움직이려다 적의 마법이 전사들을 중심으로 따라다닌다는 사실에 한발 물러섰다.

그는 전사들의 모이기로 약속한 임시 지점이 어디인지도 모르는데다 일레이네의 행방은 누구도 알 수가 없는 상태다. 이대로라면 각자 흩어져서 그녀를 찾는 편이...

“게다가 히가.....”

그는 빠르게 움직여 정원의 그림자로 숨어들며 쓰게 중얼거렸다.

적들은 왕비의 배를 갈라 영혼이 없는 텅 빈 아기의 육체를 빼내었다고 했다. 그렇다는 것은 왕비의 목숨은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전사들도 왕비의 구하겠다는 목표를 변경한 것이다.

그렇다면 히가는? 노인은 아직 이 세상의 목숨일까?

“...큭!”

정원을 모조리 불태울 기세로 날아드는 화염 마법에 그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어디인지 구조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궁전의 정원을 달리고 달려 그는 상당히 외진 목재 건물로 뛰어 들었다.

“.............!”

커다란 왕궁의 마굿간이라고 생각하고 뛰어든 장소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마굿간이 아니었다. 아니, 크게 다른 것은 아니지. 가축을 수용하는 장소이기는 하니까.

그곳에는 각각의 가로대마다 서른 여 남짓의 크페스터스 – 동족인 하이크란트들이 서서 낯선 존재인 카이난을 꿈벅거리는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이게 누구신가?”

마침 자신의 크페스터스 –곰탱이라고 불렀던가? -의 목에 쇠사슬을 걸고 있다가 난입해 들어온 카이난의 존재를 발견한 사내가 커다랗게 반색을 해온다.

“............”

마치 행운을 만났다는 듯이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리며 손뼉을 마주치는 상대에게 카이난은 밀려오는 낭패의 심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불과 몇 주 전, 자신의 손에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았던 (이름이... 로카라고 했던가?) 백인대장(百人大將)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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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힙투비: 마지막 하이크란트 이야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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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화 – 공격(2) NEW 19시간 전 1 0 21쪽
28 27화 – 공격(1) 24.09.18 3 0 20쪽
27 26화 - 귀신의 자식(3) 24.09.17 3 0 26쪽
26 25화 - 귀신의 자식(2) 24.09.16 4 0 21쪽
25 24화 - 귀신의 자식(1) 24.09.13 7 0 25쪽
24 23화 - 여기사, 소녀를 만나다 (4) 24.09.12 6 0 22쪽
23 22화 - 여기사, 소녀를 만나다 (3) 24.09.11 6 0 23쪽
22 21화 - 여기사, 소녀를 만나다 (2) 24.09.10 6 0 25쪽
21 20화 - 여기사, 소녀를 만나다 (1) 24.09.09 8 0 23쪽
20 19화 - 샴.베스타의 학살 (3) 24.09.06 6 0 23쪽
19 18화 - 샴.베스타의 학살 (2) 24.09.05 6 0 21쪽
» 17화 - 샴.베스타의 학살 (1) 24.09.04 6 0 25쪽
17 16화 – 전조(前兆) (3) 24.09.03 5 0 23쪽
16 15화 – 전조(前兆) (2) 24.09.02 5 0 23쪽
15 14화 – 전조(前兆) (1) 24.08.30 5 0 28쪽
14 13화 - 축복의 시간(5) 24.08.29 7 0 20쪽
13 12화 - 축복의 시간(4) 24.08.28 6 0 26쪽
12 11화 - 축복의 시간(3) 24.08.27 7 0 20쪽
11 10화 - 축복의 시간(2) 24.08.26 6 0 24쪽
10 9화 - 축복의 시간(1) 24.08.23 5 0 25쪽
9 8화 - 시녀 일레이네 (4) 24.08.22 5 0 24쪽
8 7화 - 시녀 일레이네 (3) 24.08.21 7 0 16쪽
7 6화 - 시녀 일레이네 (2) 24.08.20 6 0 17쪽
6 5화 - 시녀 일레이네 (1) 24.08.19 9 0 18쪽
5 4화 - 정령원의 비밀사제 (4) 24.08.16 6 0 23쪽
4 3화 - 정령원의 비밀사제 (3) 24.08.15 6 0 22쪽
3 2화 - 정령원의 비밀사제 (2) 24.08.14 5 0 19쪽
2 1화- 정령원의 비밀사제 (1) 24.08.13 8 0 18쪽
1 프롤로그 24.08.13 8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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