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속 야만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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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8.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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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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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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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DUMMY

우드득.

남자가 주먹을 그러모으자 철근이 우그러졌다.

뿌득. 턱.

찌그러진 철근을 바닥에 툭 던진 남자가 이번에는 주먹을 휘둘렀다.

단단한 차돌이 박살났다.

계란 껍질처럼 산산이 부서진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오오오!!”

”진짜 오러 유저야!”


사방에서 터지는 탄성에 남자가 턱을 치켜들었다.

두꺼운 목과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대흉근이 자랑스레 흔들렸다.


“이제 믿을 수 있소?”

“물론입니다.”


일행 중 가장 높은 책임자가 얼른 달려나와 입바른 소리를 늘어놓았다.

공 같은 훌륭한 무사가 저희와 함께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에 남자가 더욱더 턱을 쳐들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오. 우리 유파에는 황실에서 인증 받으신 고류겐 님도 계신···.”


눈을 반짝거리며 무사를 구경하던 아이가 옆을 슥 돌아봤다.

수십 명의 일행이 전부 무사를 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하늘만 보고 있는 남자 때문이었다.


“삼촌.”

“형.”

“아저씨.”

“···삼촌이라고 불러라.”

“아저씨는 안 봐요? 저 무사 아저씨가 철근을 그냥 우그러트렸잖아요.”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제 다섯살 쯤 되었을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히죽 웃었다.

웃음이 어딘가 이상했다.

마치 최근에 큰일을 겪은 탓에 정신이 나가버리기라도 한 사람 같았다.


‘미친사람인가 봐.’


아이가 어깨를 움츠렸다.

마을에도 저런 아줌마가 한 명 있었다.

매일 비만 오면 마을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던 사람.

오크에게 남편과 아이를 모두 잃은 뒤로 항상 비만 오면 그런다고 했었다.


‘엄마가 미친사람한테는 다가가지 말라 그랬는데.’


아이가 불안한 눈으로 슬쩍 엉덩이를 빼는데,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넌 저게 신기하니? 저 차력쇼가?”


어딘가 깔보는 듯한 말투.

실제로 그런 의미가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에게는 분명 그렇게 느껴졌다.

발끈한 아이가 달려들었다.


“그야 당연히 신기하죠! 아저씨는 할 수 있어요? 철근도 막 우그러트리고 돌도 부수는데?”

“철근이야 도구를 쓰면 그만이지. 돌은 곡괭이가 있고. 뭣하러 힘으로 저런 걸 해?”


뚱한 표정에 아이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저씨는 못하나 보내요. 괜히 다른 사람을 내리까는 건 좋은 게 아니라 그랬어요. 그렇게 살면 평생 남들 밑에서만 빌어먹다가 죽는다고 우리 아빠가 그랬다고요.”

“···거, 굉장하신 분이구나. 다섯살 아이한테 인생의 참조언을 주시다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남자가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허리춤에 찬 칼집이 그제야 아이의 눈에 들어왔다.

빛이 바랜 가죽칼집을 헝겊으로 덧대고, 손잡이는 얼마나 오래 썼는지 낡고 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풍스러운 멋이 느껴지는 장검이었다.


“아저씨도 무사예요?”

“아니.”

“그럼 칼은 왜 찼어요?”

“그냥. 처음부터 달려 있었어.”

“피. 거짓말!”


대답하기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둘러대는 것이라 생각한 아이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 모습이 정면의 남자와 똑같았다.

남자가 피식 웃고 있는 사이 상행이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럼 보수는···.”

“되었소! 우리 유파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돈을 받는 이들이 아니오.”


말은 단호했지만, 눈이 상행의 총책임자의 허리춤에 향해 있다.

두툼한 가죽주머니가 짤랑거리고 있었다.

알아차린 총책임자가 두 손바닥을 비비며 웃었다.


“그래도 어찌 그러겠습니까?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

“어허, 되었다고 해도.”


한참을 실랑이하던 두 사람이 적당한 가격에 합의를 봤다.

말은 겸양과 겸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서로 적게 주고 많이 받으려는 것이니 그 꼴이 매우 우스웠다.


등받이에 기댄 채 그 꼴을 감상하던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귀찮네.’


시선이 무사를 향했다.

정확히는 무사의 허리춤에 달린 칼을 향해서.


“···불쌍한 녀석.”


칼을 훑던 남자가 다시 눈을 감았다.

특별한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면 굳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저기 끼어들 정도로 오지랖이 넓지 못했다.

제 코가 석자였으니까.


하지만 남자의 생각과 달리 사건은 바로 일어났다.

마차가 멈춰섰다.


“산적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눈으로 보았다.

마차를 끌던 소의 목에 조잡한 화살 한 대가 박힌 채 꼬리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이런 씨발!”


산길 양옆에서 뛰쳐나온 산적 중 하나가 주먹을 휘둘렀다.

바로 옆에서 빈 활을 들고 있던 산적이 주먹을 피해 납작 엎드렸다.


“두, 두목. 죄송합니다.”

”내가 사람을 맞추라고 했지 소를 맞추라 그랬냐! 저게 얼마짜리인 줄 알고!!”


고함을 버럭 내지른 산적두목이 씨근덕거리다 말고 무사를 노려봤다.

무사 또한 말없이 산적 두목을 바라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상행의 총책임자가 얼른 무사에게 다가갔다.


“무사님. 저희를 보호해주시면 아까 약속드린 금액의 3배, 아니 7배를 지불하겠습니다!”


하는 짓을 보아하니 전부 죽이고 빼앗을 심산이다.

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이 무사를 설득해야만 했다.

물론 상행의 총책임자도 바보가 아니라, 아무리 무사가 대단해도 수십명의 도적을 혼자 상대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명 정도는 살 수 있다.

방금 전 보여준 이 무사의 실력이라면 혼자서 도망치는 건 어렵지 않을 터이고, 거기에 자신 같은 돈줄도 한 명 딸려가는 건 꽤 고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산적들도 바쁠거다!’


마차 안에는 젋은 여자와 아이가 많다.

전부 돈을 받고 일행에 합류시킨 이들로, 산적들도 저런 싱싱한 이들을 원하지 늙은 자신을 쫓지는 않을거다.

하물며 실력 좋은 무사가 보호까지 한다면 더욱 귀찮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순식간에 그런 계산을 끝낸 총책임자의 말에 무사가 피식 웃었다.

그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열 배.”

“드, 드리겠습니다!”

“음. ···스무 배.”

“예? 아니, 왜 갑자기! 조, 좋습니다. 절 생채기 하나 없이 지켜주신다면! 스무 배를 드리겠습니다!”

“단주님! 저희는요?”


그제야 상행에 속한 이들이 소리쳤다.

이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단주라 불린 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사람이야 다시 모으면 그만이다. 일단은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히죽거리며 웃던 무사가 허리춤을 툭툭 두드렸다.

아름다운 명검, 고급스러운 외양의 장검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오십 배.”

“···예?”

“아니, 그걸로도 부족하겠군. 전부 다 내놔.”

”야!!”


산적두목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루한! 장난치지 말고 빨리 처리해!”

“아, 알았어. 형. 하여튼 성격은 급해 가지고.”


뚱한 표정을 지은 무사가 칼을 휘둘렀다.

퍽!

상단주의 목이 날아갔다.

끝까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의문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쯧쯧. 그러게 처음 보는 사람을 그리 믿으면 쓰나.”


바닥을 나뒹구는 머리를 발끝으로 톡톡 건드리던 무사가 히죽 웃었다.

입술을 비집고 나온 혓바닥이 뺨에 달라붙은 핏물을 핥았다.

그 모습이 꼭 뱀 같았다.


“여자는 죽이지 마! 특히 저년! 저건 내가 점 찍어놨어!”

“어휴, 저 색정광 새끼.”


산적두목의 투덜거림을 뒤로 한 채 무사가 돌격해왔다.

산적들이 아니라 일행을 향해서.


“헤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그 꼴을 구경하던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 어떻게 다 죽을거야.”

”괜찮아, 아들. 이리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되바라지게 굴던 아이가 엄마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루한이라는 무사가 노리던 여인이었다.


“그래, 넌 무사할거다! 오늘부터 내 아들이 될 테니까!”


껄껄 웃으며 달려온 이루한이 장검을 치켜들었다.

검끝은 여인이 아니라 그 앞에 앉아있던 남자를 향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간 검이 남자의 목을 후려쳤다.


“이 새끼 아까 전부터 거슬렸, ···어?”


머리만 흔들어서 장검을 피한 남자가 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야.”

“어? 이게 왜 빗나갔지?”

”야.”

”이 새끼! 사술을 썼구나! 이런 사특한 새끼가 감히 사술로 내 검기를 흘려? 고류겐 유파의 22대 제자 중 가장 촉망받던 후기지수인 이 이루한님의 검을?”

“···미친새끼.”


나지막히 꿍얼거린 남자가 팔을 휘둘렀다.

어느새 뽑힌 장검이 고류겐 유파의 22대 제자라는 이루한의 목을 날렸다.


“꺼, 꺼헉!”


당연히 그도 막으려고 검을 들었지만, 초승달처럼 휘어든 칼날이 그걸 가볍게 피해내며 정확히 목젖만 베고 지나갔다.

피가 많이 튀지도 않았다.

이루한의 앞섶을 적실 정도.


“어, 어떠케?”

“차력이나 하는 놈이 검술은 무슨.”


뚱한 표정으로 답한 뒤 남자가 장검을 거두어들였다.

그러고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이루한이 들고 있던 검을 집어들었다.


“불쌍한 녀석. 이런 잡스러운 놈에게 들려서 고생이 많았구나. 그래, 그래. 이제 내가 돌봐주마.”


놀라운 검술에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던 아이가, 질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엄마. 저 아저씨 미친 사람인가 봐. 검이랑 대화 해.”

“···조, 조용히 하렴.”

“그래, 조용히 해. 쪽팔리니까. 그리고 아저씨 아니야, 형이라고 부르라고!”


남자가 검을 들고 마차를 내려갔다.

검끝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방금 전과 똑같은 초승달이 허공에 그려지자 수십 명의 도적떼가 삽시간에 전멸했다.


“그래그래. 원수들의 피냄새라 향긋하지?”


칼끝에 묻은 핏물과 기름기를 헝겊으로 정성스레 닦고 있는 남자에게 상인 중 하나가 다가왔다.

총책임자가 죽은 뒤 바로 다음 총책임자로 진급한 상인이었다.


“무, 무사님. 저희를 도와주셔서 감사합···.”

“됐소. 어서 출발이나 합시다. 시체 때문에 짐승들이 몰려올지도 모르니.”

“예, 예!”


비단 짐승뿐 아니라, 다른 산적이나 도적떼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한 산에 여러 세력이 있는 경우야 물론 드물지만, 이곳은 제국에서도 유명한 가도 중 하나이니 충분히 가능했다.

오가는 사람은 많지만, 그에 반해 경비는 허술한 곳이었으니까.


“귀찮네.”


남자가 뚱한 표정으로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과 똑같은 표정과 자세로 등받이에 몸을 구기고 있자, 아이가 눈을 깜빡이며 옆에 달라붙었다.


“아저씨.”

”형.”

“삼촌, 무사였어요?”

“아니.”

”엥? 그렇게 잘 싸웠는데 무사가 아니라고요? 아저씨 정도여도 약한거에요? 그럼 진짜 무사는 얼마나 강해요?”

“그게 아니고, ···됐다.”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설명하려면 복잡했다.

그는 검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방금 전 칼을 휘두른 것도 전부 스킬 덕분이다.


정확히는 1등급의 최하급 스킬인 검술(劍術).

칼을 잘 쓰는 수법이라는 단순한 설명이 전부인 그런 스킬이다.

너무나 단촐한 이름과 설명이지만, 최고등급 스킬을 두 개나 잡아먹고 태어난 녀석이었다.


이 게임 속 세상에서도 유일한, 누구도 가지지 못한 하나뿐인 특별한 스킬이었다.


‘다음 생이라.’


남자가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지구와 똑같은 파란색의 하늘. 하지만 분명 그곳과는 다른 대지였다.

게임 속 세상이었으니까.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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