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속 야만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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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8.14 16:14
최근연재일 :
2024.08.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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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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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귀

DUMMY

***


“이히히!”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 너머로 몸을 일으키는 사내.

자신을 청성문의 강소라고 밝힌 검사가 실성한 사람처럼 낄낄거렸다.


‘아, 젠장.’


하필 걸려도 청성문이라니.

그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야 속세를 등진 진짜 검사들이라며 치켜세우지만, 속내를 아는 이들은 그러지 않는다.

되려 더러운 것을 본 것처럼 피해다니지.


‘검에 미친 놈들.’


평생을 자신의 경지를 드높일 적수를 찾아 세상을 떠도는 검귀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검에 미친 것들만 들어찬 문파가 청성문이다.


잘못 엮이면, 끔찍한 꼴을 당하게 된다.


“으, 으하하, 커헉! ···흐흐흐. 운도 좋지.”


저봐라.

피 토하면서도 좋다고 웃어대는 꼴이라니.

저런 놈들 수십수백 명이 대련하자고 달려들 걸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튀자.’


기절시키고 튄다.

여기서 잘못 엮이면 진짜 좆된다.

내 남은 인생, 거금을 땡긴 다음 한적한 시골에서 미인과 함께 은거하겠다는 내 인생계획이 박살나고 말 터.


당장 튀어야한다.


‘그냥 죽일까?’


순간 훅 튀어나온 살의를 급히 삼켰다.

사람 죽이는 게 겁이 나서 그런 건 아니다. 죄책감도 없다.

방금 전까지 내 목을 노리던 놈이다.

이유야 어쨌든 내가 아니었다면 목이 날아갔을 터.

살검을 휘두르는 놈에게 자비를 베풀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아, 그 기만자 놈은 예외다.

그건 인류의 보배다. 그 훌륭한 유전자를 후세에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절대 아는 집단이라서 사정을 봐주고 그런 게 아니다.


“다시 가겠소!”


강소가 몸을 비틀었다.

꽈배기처럼 비틀린 기묘한 자세.

청성문에서 가르치는 정식 검술이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대나무처럼 꼿꼿한 기상은 여실히 느껴진다.

청성문의 가르침을 재해석해 자신만의 검술로 체득한 것이다.


‘사관의 끝자락. 오관에 오르기 직전이군.’


벌써 경지에 오르다니.

역시 청성문의 제자답다.


“와라.”


오른손만 뒷짐을 지고 왼손을 까딱였다.

방만한 자세에도 방심하지 않고 강소가 전력을 다해 달려들었다.

무섭게 몰아치는 보법이 사방을 휩쓸자 순간 강소의 신형이 수십 개로 불어났다.

스슥. 슥.

분신술이라도 쓴 것처럼 내부를 휩쓸던 몸뚱이가 한순간 하나로 합쳐지며 내 목을 후려쳤다.


“너무 뻔해.”


모든 검사는 상대의 약점을 노린다.

인간의 약점은 머리와 목이다.

거길 뚫리면 단번에 죽는다.

그렇기에 제대로 교육받은 검사들의 목표도 언제나 그 두 곳이다.


다른 곳을 노리는 건 전부 기만, 혹은 목과 머리를 치기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할 뿐.

그렇기에 긴장하면 긴장할수록, 무의식적으로 목과 머리를 노리는 것이다.


까드득.

곧게 뻗은 왼손에 칼날이 잡혀들었다.

강소가 순간 푸른 검기를 뿜어 내 손바닥을 가르려 했지만 통하지 않는다.

검기로는 내 피륙을 뚫을 수 없다. 최소 검강은 되어야한다.


“역시!!"


전력을 다해 찍어 눌러오는 검날 너머로 번뜩이는 강소의 눈이 보였다.

호승심과 더 높은 경지를 향한 열망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었다.

솔직히 좀 무섭다.

완전 미친놈의 눈 아닌가.


"맨손으로 검기를 잡아채다니 칠관이 맞았군! 여기서 당신 같은 고수를 만날 줄이야! 하늘에 감사드리오!!!”

“죽을 줄도 모르고 좋아하기는.”

“죽어도 좋소! 그대와 같은 고수를 어디서 만나겠소!”


내 눈이 바닥에 널브러진 사내를 향했다.

그 건방진 여자애의 오빠로 추정되는 자.


“음? 아, 저 자를 왜 추격했는지 묻는 것이오?”

“···.”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너 무슨 독심술 익혔니?


"거래요! 당연히 돈 때문이 아니외다!!"


하지만 강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냥 두었다.

어차피 조금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왜 청성문의 검사가 사람 쫓는 일을 하고 있는지.

그것도 몰락한 왕족을 쫓는 귀찮고 더러운 일에 엮였는지 말이다.


“으으음!!”


전력을 다해 찍어눌러오던 강소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몸을 비틀며 칼날을 빼냈다.

적당히 놓아줬다.

허공을 부드럽게 수놓던 칼날이 이번에는 좌상단에서 우하단으로, 정확히 사선으로 내 몸통을 베어왔다.

우직하고 정직한 공격.

하지만 방금 전의 난잡하고 어지럽기만 하던 공격보다는 더 위협적이었다.


카득.

그래도 내 손에 간단히 잡힐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뿌드득.

눈물을 흘리며 부스러지는 칼을 보자 죄책감이 들었다.

조금 살살 잡아야겠다.


“이들을, 잡으며언!!”


다시 힘겨루기를 시작한 강소가 다시 입을 놀렸다.


“정식으로 대련해주겠다고 약속했소이다! 그래서 쫓고 있던 거요!!”

“누가?”

“황숙 유한의 대제자 이령 공이오!!”


이령이면.


아, 그 철부지를 말하나.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게임을 플레이 할 때 내 캐릭터로 몇번이고 마주쳤던 인물이다.

자기 실력에 비해 자신감이 과한 멍청이 중 하나.

하지만 훌륭한 스승 덕분에 그 실력만큼은 진짜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강소 정도로는 그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는 강자다.


“그럼 이령에게 가지 왜 나한테 이러나.”


검이 부서지지 않게 적당히 힘조절을 했다.

그걸 느꼈는지 강소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와중에도 전력으로 상대해주기를 바라다니, 과연 검에 미친놈답다.


“이령 공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대만 하겠소? 그 스승인 황숙조차 당신에게 비할 수는 없을 것이오!!!”

“칭찬이 과하군.”

“칭찬이라, 닛! 진심이오!!”


고함과 함께 발길질이 날아왔다.

호오. 이걸 노렸나? 마뜩찮은 척 눈살을 찌푸린 것도 전부 연기였고?


“마음에 드는군.”


발길질에 채여 허공을 휙 날았다.

그대로 품에 손을 넣은 뒤 단검 세 자루를 집어서 뿌렸다.

놈들에게 빼앗은 단검. 맹독이 발려져 있을 게 분명한 녀석이다.


“이런!”


강소가 대경하며 몸을 피했다.

계속 맨손만 쓰던 내가 처음으로 날붙이를 썼으니 크게 놀랄만 하다.


“크윽! 이, 이제야 제대로 상대르을!? 어디 가는 거요오!!!”

”다음에 보세.”


발을 재게 놀려 자리를 이탈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깔끔하게 탈주하는 모습을 누가 봤다면 물찬 제비 같다고 칭찬했을테지?

과연 나야.

이렇게 위험한 자리에는 남는 게 아니지.


청성문의 제자와 드잡이질을 했다가 어떤 더러운 꼴을 보려고?


‘장문인이 직접 움직일지도 몰라.’


제자의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그런 의도가 조금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자리에 남은 흔적을 보고 내 경지를 추측한 뒤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달려들 게 뻔하다.

잘못 엮이면 진짜 피곤해진다.

청성문은 싫다.


예전에 방랑검사로 플레이 했을 때, 그것도 모르고 괜히 멋대로 시비 걸었다가 죽을 때까지 쫓겨 다니지 않았던가.

이번 생은 게임 플레이가 아니라 진짜 삶이니, 절대로 그런 과오를 되풀이할 수 없다. 난 오래 살고 싶다고.


“으아아! 이름!! 이름이라도 말해주시오!!!!”


고함소리와 함께 강소가 뒤를 추적해왔다.

하지만 내가 던진 세 개의 단검 중 하나가 정확히 정강이를 꿰뚫은 탓에 추격은 지지부진했다.


아, 그렇게 지독한 놈들인데 강소 저 놈은 왜 살려두냐고?

그야 청성문의 검사니까.

저런 미친놈이 자기 경지를 드높일 수 있는 탐스러운 먹잇감을 사문에 알릴까?

절대 그럴 리가 없지.

욕망에 찌든 놈이 자기 보물을 다른 이와 나눌 수 있겠나?


그러니 어차피 추격자가 따라붙는다면 저놈 하나만 붙는 게 그나마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악 대신 차악인 셈이다.


“이, 이르음!”


뭐, 저 정도 경지면 적당히 상대해주기에 알맞기도 하고.


‘다칠 일은 없겠군.’


사관의 끝자락에 도달했지만, 아직 오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어제, 아, 아니구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가물가물하다. 크흠, 오늘 상대한 그 암살자와 비슷한 경지다.

자다가 습격당해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을 수준에 불과하니 조금 귀찮은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고보니 둘 다 사관이네.’


공교롭게도 경지가 똑같다.

둘 다 벽을 넘기 직전이라는 점까지 동일하다.


‘그러고보니 저 새끼도 잘생겼잖아?’


기만자 새끼를 둘이나 만나다니.

참으로 운수가 더럽구만.


‘캐릭터 얼굴 좀 제대로 만들걸. 내가 왜 야만인 컨셉에 충실했을까. 미쳤지, 미쳤어.’


툴툴거리며 시가지를 빠르게 벗어났다.

항구를 지나 도시를 감싼 성벽을 뛰어넘은 뒤 길게 뻗은 길을 쭉 통과했다.


'여기서 꺾는다.'


순식간에 숲을 관통한 뒤 경로를 직각으로 뒤틀어서 성벽을 따라 이동했다.

당연히 이번에는 천천히, 그것도 빠르지 않게 움직였다.

흔적이 남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삽시간에 원래 있던 도시로 되돌아왔다.


‘숲을 관통했다고 생각하겠지?’


저 숲길은 옆도시인 물령으로 이어진다.

물령은 어촌을 품은 이 도시, 헨손과 나라가 다르다.

숲과 바다가 두 나라를 가르는 국경인 셈이다.


아무리 청성문의 제자라 해도 멋대로 국경을 넘을 수는 없을 터. 황실의 인증이 필요하다.

당연히 골치깨나 썩을 거다.


그 사이에 나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생각이다.


적어도 이 대륙에는 못 남아있겠다.

물론 청성문의 힘을 다 쓴다면 다른 대륙까지도 쫓아오고 남겠지만, 그때는 이미 내가 몇개의 대륙을 건넌 뒤일 것이다.

애초에 저놈이 자기 사문에 내 정체를 밝힐 것 같지도 않고.


“흐아암. 뭐, 재미난 일 없나? 누구 하나 안 쳐들어오나?”

“개소리 하지마. 말이 씨 될라.”

“아니, 심심해서 그러지. 며칠째 조용하잖아. 취객들 패싸움이라도 구경하고 싶네.”

“또 헛소리.”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경비들을 피해 다시 성벽을 넘었다.

그런 뒤 마당에 빨래를 널어놓은 초가집 뒤에 몸을 숨겼다.

대로가 잘 보이는 위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제기랄!!”


거친 고함과 함께 강소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대로를 달려왔다.


“머, 멈춰라!”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강소가 칼을 들고 성문으로 돌격하자, 놀란 경비들이 급히 막아세웠다.


“비켜! 꺼지란 말이닷!”


‘저런 미친놈.’


기어코 경비들을 무력으로 뚫은 강소가 성문을 통과해 숲길을 달려가는 걸 마지막으로 몸을 돌렸다.


‘내 돈.’


다른 이유가 아니라, 내 돈을 두고 왔다.

여관 방에.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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