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속 야만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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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8.14 16:14
최근연재일 :
2024.08.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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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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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

DUMMY

“살인귀라면, 레손 공을 말하나?”

“레손? 본명까지 밝혔다고? 하!!”


사내인지 여인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란돌은 확신했다.


‘여자다.’


여자에게서만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와 표정.

확실했다.

이 사람은 여자다.


란돌은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바람둥이였다.

본인은 낭만과 사랑을 쫓았을 뿐이라 주장하지만,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 때 제일 씹새끼 중에 하나였다.

잘생기고 돈 많고 매너까지 있는 젊은사내를 싫어할 여인이 몇이나 될까.

하물며 왕위가 보장된 첫번째 왕자를.

그렇게 수많은 여자들을 만났기에, 눈앞의 이 사내가 남장하고 있는 여자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업적도 지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런 여인은 유혹할 수 없다.

자신을 여자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몇번 보았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랑이 아니라 다른 것에 목숨을 바친 여인이다.


‘큰일이군.’


말하는 걸로 보아 레손 공과 악연이 있는 듯한데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 판국이었다.


“공. 죄송하지만 저희는 레손 공과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제가 저분께 보답을 약조하고 도움을 구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살려달라?”

“예. 살려만 주시면 무슨 수를 써서든 보답하겠습니다. 안 되면 제 몸이라도!”

“필요없어.”

“아닙니다. 제 정조,”

“꺼지라고.”


주먹을 꽉 말아쥔 여인이 란돌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바닥에 널브러진 란돌을 레이나가 한심하게 내려다봤다.

하지만 란돌은 안심했다.


‘살았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인간적으로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이건 그녀가 그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별 것 아닌 잡기술.

란돌이 살아남으며 익힌 간단한 처세술 중 하나였다.

방금 만난 누구와도 친밀감을 쌓을 수 있게 훈련한 성과가 나오고 있었다.


“한심해.”


물론, 어린 레이나는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이 오빠가 지금 무엇을 했는지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했지만 말이다.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란돌이 뚱한 표정으로 돌아누웠다.

처음에는 움직일 수도 없던 몸이 제자리에서 뒤집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녀가 혈도 중 일부를 풀어준 것이다.

방금 전의 그 꿀밤으로.


‘이럴 줄 알았으면 레이나도 억지로 배우게 하는건데.’


하나뿐인 여동생은 아버지와 형제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덕분에 저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로 커버렸다.


제왕학과 왕족의 처세술을 익혔다면 도주생활도 나름 순탄했을 터였다.

사람을 상대함에 있어 모자람이 없을 터이니, 지금처럼 계속 꼬리가 잡히지도 않았을 것이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여동생이 왕위쟁탈전에 참가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싶어하셨는데.

하나뿐인 딸이 자식들 간의 항쟁으로 목숨을 잃는 걸 원치 않으신 탓이다.


‘아버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아버지의 따듯한 배려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자식들을 생각하신 분이 마족과 계약하셨다고?

이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레손 공의 말을 듣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새끼.”


괴한이 이를 갈았다.

단검을 으스러져라 움켜쥐던 손가락이 천천히 풀렸다.

분노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가다듬는 것이다.


“역시 봐줬구나.”


괴한의 눈이 레손과 격돌하고 있는 고수를 향했다.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지형이 변하고 있었다.

나무뿌리가 하늘로 치솟고 땅이 뒤집혀 비처럼 쏟아졌다.

그 사이로 두 사람의 몸이 붙었다 떨어졌다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잠깐 살핀 것만으로도 일흔번 이상 격돌했음에도 두 사람은 전혀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그 충돌이 계속해서, 그리고 몇곱절이나 빨라지며 이어졌다.


“오늘 안에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흐음, 좋아.”


괴한이 란돌을 내려다봤다.


“너만 데려가도록 할까.”

“···.”


그건 참 고마운 제안이었다.

레이나까지 끌려간다면 자칫 둘 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유는 궁금했다. 왜 하필 그를?


괴한이 뚱한 표정으로 레이나의 혈도를 건드렸다.

당장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혈도를 막고 있던 내공이 자연스럽게 흩어지도록 조치한 것이다.

보통 일다경, 그러니까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면 풀어지도록 조치하니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예상할 뿐이었다.


“왜, 왜 오빠를!?”


레이나가 소리치자 괴한이 당연한 걸 묻는다는 얼굴로 답했다.


“그야 나는 남자니까. 여자는 불편하다고. 잘못하면 몇달은 가둬야하는데 그럼 내가 너를 씻기리? 이놈을 씻기는게 낫지!”

“···?”


뭔 개소리지.


란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닥을 구르다가 급히 소리쳤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맞았다.


“옳은 말씀이오!”

“이 변태 오빠가!”

“그게 아니다, 레이나. 내 다 너를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겍!”

“벌써 움직이다니. 기운이 넘치는군.”


입술을 삐죽거리던 괴한이 란돌을 들어서 어깨에 걸쳤다.

얇은 쇄골. 분명 여자였다.


‘운이 좋군.’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하지 않던가.

하지만 란돌은 정반대였다.

괴한에게 인질로 잡혔지만, 원한이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레손이다.

그를 끌어내기 위해 잡혀가는 것일 뿐이며, 상대는 엄청난 미인 아니던가.

이 참에 인질 생활을 좀 길게 하면서, 살림도 차릴···.


“왜 나를 보면서 침을 흘리지?”

“추릅. 아무것도 아닙니다.”

“입을 막아야겠군.”


괴한이 란돌의 입에 천을 쑤셔넣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보니 밥을 먹으면 똥도 싸겠군?”

“읍.”


그야 인간이면 당연한 일이었다.


“네가 내 개도 아니고, 일일히 치워주기 귀찮으니 지금처럼 막아버리면 되겠구나.”

“으읍? 읍!?”

“가는 길에 대장간부터 들려야겠군. ···흠, 쇠로 만들면 되겠지.”


미친년이었다.

란돌이 급히 고개를 비틀며 반항했지만, 손아귀가 하도 억세서 아무 소용도 없었다.

끌려가는 오빠를 한심하게 보던 레이나가 몸을 비틀었다.


무섭게 격돌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그러고보니 오빠가 끌려가고 있음에도 이리 태평하다니, 방금 전까지 목숨을 포기하고 있던 덕분일까?

아니면, 저 엄청난 고수가 그들의 편이라는 생각 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바로 사과해야지.’


전투는 밤까지 이어졌다.

그토록 길게 이어진 이유는 두 사람의 경지가 비슷한 탓도 있었지만, 누구 하나 살수를 쓰지 않은 탓이 더 컸다.


그건 경지가 한참 부족한 레이나가 보기에도 분명했다.

둘은 서로를 죽일 생각이 없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면 노인, 그를 노인이라 부르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말투가 너무 고풍스러웠다.

아무튼 저 노인이 굳이 자기 검을 빌려줄 까닭도 없으며, 레손이 그 무기를 받아쓸 이유도 없다.

그게 진짜 제대로 된 무기인지 어찌 알고?

손잡이에 독이라도 발라뒀다면?

대단한 독까지 갈 것도 없이, 잠시 신경을 흐트러트리는 정도만 되어도 고수들 간의 싸움에서는 차고 넘치는 빈틈이었다.

그걸 레손 같은 고수가 모를까?


‘인사 같은 건가?’


레이나가 멋대로 두 사람의 의중을 짐작하고 있을 때, 퀘이삭과 레손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퀘이삭이 몸을 비틀자 연검이 그를 따라 휘돌며 대기를 말아올렸다.

용트림하듯 솟구친 돌개바람이 레손을 덮쳤다.


콰드득.

단순히 빠르고 거센 바람이 아니었다.

바람결 하나하나에 검기를 실어 날렸으니, 몸이 닿기만 해도 도토리처럼 쪼개질 위험한 공격이었다.


레손 또한 가만히 있지 않고 다리를 땅에 박아넣었다.

우드득.

정강이까지 파고들어간 발이 나무뿌리처럼 굳건하게 몸을 지탱했다.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몸을 고정한 레손이 돌개바람에 몸을 맡겼다.

무시무시한 검기다발을 육신으로 받아냈다. 어차피 칠관에 오른 순간부터 검기는 피륙을 해할 수 없는 잡기에 불과하다.


모든 고수들이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칠관에 오른 이들 중에서도 검술에 조예가 깊은 자들이 보이는 기예였다.

레손은 그걸 어렵지 않게 해냈다. 아직 칠관의 초입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훌륭한 성취였다.


“허어!”


퀘이삭이 기껍다는 듯 웃었다.


“그게 자네 무공인가? 과연 동방의 검술은 신묘하구나. 몸으로 펼치는 검술이라. 애초부터 검도 필요없었겠군!”


노인을 놀리다니 아주 못된 청년이라며 웃던 퀘이삭이 팔을 축 늘어트렸다.

하늘거리며 늘어진 연검이 꼬리를 살랑거리자 레손의 눈이 쭉 찢어졌다.


“영감님. 절 진짜 죽이시려는 겁니까?”

“엄살은.”


피식 웃은 퀘이삭이 검을 가슴께까지 들어올렸다.

연검 끝에 반짝이는 별무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검강.”


레손이 신음을 내뱉자 퀘이삭이 활짝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뱀처럼 휘어지는 연검이 제 몸놀림을 따라 검강을 흩뿌렸다.


콰드득.

바닥이 찢어졌다. 안 그래도 몸살을 앓고 있던 대기가 한 번 더 요동쳤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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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유 없는 24.08.19 19 0 10쪽
7 당랑 24.08.18 32 0 12쪽
6 검귀 24.08.18 23 0 10쪽
5 청성문 24.08.18 24 0 11쪽
4 바지 24.08.17 25 0 11쪽
3 사과 24.08.16 31 0 14쪽
2 무사 24.08.15 41 0 11쪽
1 계정삭제 24.08.14 4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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