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속 야만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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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8.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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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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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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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DUMMY

***


‘배고픈데.’


호떡 하나로는 배가 차지 않는다.

역시 다 큰 성인남성이라면 소 한 마리 정도는 너끈히 먹어줘야지.

그 정도 식욕도 없이 식사 때마다 깨작거리기만 하는 것들은 남자가 아니다.

절대 내가 돼지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음.”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여관이 있었다.

주류를 함께 판매하는지 안에는 이미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은 일을 마치고 돌아온 마을사람들이었지만, 몇 테이블은 아니었다.

농사꾼이나 어부가 아니라 색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다.


‘선원이군.’


이곳은 총 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섬이라 불렀지만 실상 그 크기는 하나하나가 대륙급으로 왜 섬이라 칭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덩치를 자랑한다.

하지만 뭐, 게임 만든 개발자가 섬이라니까 그렇겠지.


대충 납득하며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미리 선객이 있었지만, 이런 곳에서 모르는 사람과 합석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물론 상대는 꽤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좆같네.”


20대 초반쯤 되었을 여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붉은머리에 주근깨가 가득한 뺨이 딱 서부영화에 나오는 시골처녀 같은 외향이다.

그에 걸맞게 입에서 나오는 말도 거칠었다.


“왜 이런 야만인이랑.”


말없이 수프를 떠먹고 있던 동행인이 콧잔등을 찌푸렸다.


“레이나. 조용히 먹어라.”

“오빠, 이 새끼 카이렌에서 넘어온 것 같은데 지금 밥이 넘어가? 여관주인이 미쳤나? 이런 새끼를 우리랑 합석시킨다고?”

“너.”

“퉷. 더러운 새끼.”


여자가 내 쪽으로 침을 퉤 뱉었다. 다행히 내 몸에는 맞지 않았다.

거칠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여자가 윗층으로 올라갔다.

여기 숙박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 저녁에도 또 만나겠는데? ···지금 패둬야 하나.’


쾌적한 저녁식사를 위해 미리 한 대 쥐어박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여동생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오빠가 고개를 꾸벅 숙여왔다.


이제 20대 중반쯤 되었을 나이.

내 액면가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한 나이다.

물론 나는 겉모습만 늙은 것이고 진짜 나이는 매우 젊다. 10대 소년이지.


“미안하군.”


말이 짧다.

사과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런 태도.

하지만 이 정도면 사실 엄청나게 정중한 셈이다.

사과를 하는 시점에서 이미 굉장한 인격자라는 증명인 셈이니까.


내가, 정확히는 레손이 적을 둔 유파인 대상청령(臺上聽令)은 카이렌 군도에 묶여있다.

그리고 카이렌 군도는 세계에서 가장 험하고 외진 땅.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기괴한 암초와 폭풍 때문에 군함이 접근하기 힘든 곳이다.


그런 특성을 눈여겨 본 범죄자들이 하나둘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군도는 더욱 끔찍한 인외마경이 되었다.

나라 단위로 추적받는 범죄자들이다.

인성이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놈들이 서로 뭉치거나 견제하며 지금 군도를 장악한 12개의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중 하나가 대상청령이다.

이 몸뚱이가 적을 두고 있는 유파.

방금 전 찾아온 암살자도 분명 그곳에서 보냈겠지.

뭐, 아닐 수도 있다.

내가 거길 탈출하면서 깨버린 대가리가 한둘이 아니니까.


“괜찮소.”


나도 적당히 사과를 받은 뒤 음식을 주문했다.

상대는 생각보다 더 상식인인지 내 음식값까지 계산하려고 했지만, 주머니가 두둑한 이 몸이 그런 적선을 받아줄 이유는 없지.

무엇보다 그런 식으로 돈을 받으면 쓸데없이 신경이 쓰인다고.


“···.”


나와 마주보는 위치에 자리한 테이블.

여관 구석에 자리잡은 어두침침한 그곳에 로브를 눌러쓴 일행 다섯이 보였다.

딱 봐도 수상한 놈들이라고 광고하는 듯한 꼬락서니다.

그리고 그 수상한 놈들의 시선이 정확히 내 앞에 앉은 사내의 뒤통수를 향해 꽂혀있다.


‘살기.’


나를 향한 살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피부가 따끔거린다.

참 좋은 스킬이지만, 이럴 때는 너무 불편하다. 내 쪽으로 튀는 것만 감지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리가 없지.’


이 빌어먹을 세계가 내게 친절했던 적이 있기나 한가.

그렇게 형편 좋은 일이 있을 리가.


마침 내 앞에 도착한 수프를 한술 떠먹었다.

소고기라도 넣었는지 향긋하고 기름지다. 맛있게 떠먹은 뒤 그대로 계산을 마치고 위층에 방 하나를 얻었다.


내가 원한 건 가장 구석자리였지만, 운이 나쁘게도 그곳은 이미 선객이 있었다.

그래서 가장 받기 싫은 중간 자리.

그것도 양옆은 물론이고 앞도 막힌 더럽게 답답한 방을 받았다.


‘냄새.’


피냄새가 난다.

이건 괜찮다.

값도 싸고 오가는 손님도 많은 여관이다.

위생적인 부분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주사기와 침대 끄트머리에 묻은 하얀가루만큼은 못 참겠다.


‘약쟁이 새끼들.’


카이렌 출신이 안 좋은 대접을 받는 이유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마약 때문이다.

카이렌 군도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마약 카르텔이니까.

생산도 유통도, 심지어 섬 내부에 손님들을 위한 시음장소가 따로 갖춰져 있을 정도로 법과는 동떨어진 장소다.


물론 지금은 없다.

꼴보기 싫어서 태우고 왔거든.


“더럽게.”


그래서 이런 하얀가루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매우 더럽다.

바닷가에 위치한 술집이니 예상은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로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


발로 슥슥 밀어서 주사기를 치운 다음 바닥에 정좌했다.

침대에는 앉기 싫다.

이불이나 매트리스 속에 뭐가 들었을 줄 알고. 쓰다만 주사기 바늘이라도 있으면 위험하다.

내 몸뚱이를 침범할 수 없는 건 살기에 가득찬 칼붙이뿐이다.

내가 가서 박는 건 뚫리더라.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좌상전에서 우하단으로.’


눈을 감고 내면 속으로 침잠했다.

스승님이 매일 하시던 잔소리를 주문처럼 외우며 내 안을 살폈다.

경지에 오른 이들은 자신만의 심상세계를 얻는다.

정확히는 찾는다.

평생에 걸쳐 그 인격을 형성하게 된 기억과 경험, 지식의 총체가 하나로 묶인 내면의 세상에는 무인이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무조건 찾아야한다.

그러지 못하면 다음 경지로 나아갈 수 없다.

평생 동안.


“음.”


거칠어진 숨을 다시 진정시켰다.


나는 내 심상세계를 찾지 못했다.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3년이나 흐른 지금도, 이 세계에 떨어지고 6년이나 흐른 아직까지도 심상세계의 입구는 요원하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헤매도 입구조차 보이지 않는 곳을 어찌 찾을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황량한 사막과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는 물건들뿐이다.

그것들은 전부 지구의 물건들이었다.

내 욕망.

이제는 갈 수 없는 고향은 이렇게 미련이 되어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드높은 빌딩과 조그마한 큐브. 허허로운 벌판에 꽂힌 간판과 신호등.

전부 내 기억 속에 자리한 풍경이다.


내 몸뚱이는 이미 죽었겠지?

이 세계에 끌려오기 전에도 이미 다 죽어가던 몸이었다.

6년이나 흘렀으니 다시 돌아갈 몸뚱이도 이미 죽어버렸겠지.

설령 죽기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오래 걸리지 않아 숨이 끊어질거다.

이미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였으니까.


그럼에도 옛 기억들은 미련이 되어 뿌리깊이 박혀 있다.

서글픈 일이다.


“꺄악!”


어떤 씨발놈들이?

지금 이 몸께서 옛 추억에 잠겨 한창 회상씬을 진행중이신데 그걸 방해해?


벌떡 일어나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나가서 누구인지 살펴볼 생각이냐고?

그럴 리가.

그랬으면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겠지.


난 지금 도망치는 중이다.


‘내가 왜 잡것들한테 엮여야 해.’


인연도 없는 것들에게 휘말려서 살계를 열고 싶지는 않다.

나와 관련도 없는 치들이 죽던지 살던지 알게 뭐란 말인가?

하물며 이 땅에 사는 것들은 전부, 아니지 대부분 내 출신만 보고 하대부터 하는 것들인데.


“읏차!”


창문을 넘어 바닥에 안착하자 등뒤에서 진한 피냄새가 풍겨왔다.

안에서 이미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 살려줘!”

“당장 영주님한테 연락해야, 꺼으으.”


활짝 열린 문으로 달려나오던 이의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시뻘건 내장을 밟고 서 있던 괴한이 나를 노려봤다.


“약삭 빠른 놈이군.”

“쯧.”


괴한이 칼을 들었다.

두꺼운 로브로 온몸을 감싼 모습.

나와 합석한 남자를 노리던 이들 중 하나다.


할 수 없지.

비기를 쓰자.


“저기 그냥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오늘 일은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어디 가서 말하지도 않을게요. 제발 살려주십시오.”


손바닥을 비비며 부탁하자 괴한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이자 뒷목이 따끔거렸다.

그럼 그렇지.

정확히 후두부를 노리고 날아온 칼끝이 살갗을 미끄러지듯 스치고 지나갔다.


“에휴.”

”뭣?”


눈을 동그랗게 뜬 괴한이 급히 칼을 당기더니 다시 휘둘렀다.

허공을 자른 반월이 이번에는 내 목에 닿는다.

어김없이 툭하고 미끄러졌다.


“야.”

”이놈! 주술사였나!? 이런 사특한 놈이 있나!!”


사특은 씨발아. 백주대낮에 마을사람 썰고 있는 네가 사특한거고.

난 그냥 수프 먹고 한숨 땡기려던 가련한 이방인이라고.

그리고 사술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주술사라도 한계는 명확하다!!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


대사만 들으면 네가 주인공인 줄 알겠다.


휙. 휙. 쉬익!

찌를듯 말듯 허공을 휘돌기만 하던 칼끝이 단숨에 수십개로 분열해 전신의 요혈을 노려왔다.

깜찍한 새끼.


몸으로 맞아도 되지만 귀찮아서 손으로 칼끝을 붙잡았다.

궤적이 다 보이니 어렵지 않았다.

가볍게 잡아서 쑥 잡아당겨 검을 빼앗은 다음 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빠각.

얼굴이 일그러진 괴한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귀찮게.”


묶어두고 가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또 풀어버리겠지?

마침 밧줄도 없으니 묶을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바지를 벗겼다.

오해하지 마라. 도망칠 수 없게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뿐이다.


‘제정신인 새끼라면 백주대낮에 이 꼴로 거리를 뛰어다닐 수는 없겠지.’


겸사겸사 주머니도 털어주고, 품에 들어있던 단검도 몇 개 챙긴 다음 여관으로 들어갔다.


입구는 바로 앞이었다.


“흐음.”


안은 꽤 복잡했다.

여관주인은 어디갔는지 안 보이고, 이미 죽은 마을사람들의 시체가 수십이었다.

그 와중에 끝까지 살아남은 두 남매가 괴한들에게 둘러싸여 공격 받고 있었다.


괴한들 너머로 말없이 스프를 떠먹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괴한들과 똑같은 복장. 아마도 우두머리겠지.


그가 나를 쳐다봤다.


“···흐음.”


인상 깊다는 듯 입매가 올라간다.

무표정한 눈에 생기가 깃드는 게 보인다.


내가 손을 썼으니 원하는 걸 이뤄도 내 뒤를 쫓을 터.

그렇게 되기 전에 여기서 한 번 마무리를 하고 가야겠다.


어차피 나를 쫓는 새끼가 워낙 많아서 한둘 정도 더해져도 상관은 없지만, 방심하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휘말리기에 어쩔 수 없다.


“레이나! 너라도 도망쳐라! 어서!!”

“오빠!”


지금 저 멍청이들처럼 말이다.


“살수집단에 쫓기는 새끼들이 여관에서 식사를 쳐하고 있네.”


저것들도 미친년놈들이다.

안 되겠다.

괴한이랑 저것들이랑 한세트로 묶어서 둘 다 패야겠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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