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속 야만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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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8.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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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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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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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DUMMY

“그래, 누가 왔는지 볼까.”


기운을 감춘 것으로 보아 분명 얼굴도 감추었을 터이나, 정면으로 보고도 못 알아볼 리는 없다.

이 정도 고수는 흔하지 않다.

몇명을 제외하면 전부 일면식이 있는 사이들이니,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터였다.


‘동방 쪽인가.’


속도가 괴이하다.

빨랐다 느려졌다 제멋대로인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동방에서 건너온 고수 같았다.

하긴 이 어린 아해도 쓰는 검술의 특징으로 보아 동방의 여식일 터이니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천령공은 죽었고. 흐음, 그러고보니 천령공의 냄새가 나는군.’


고지식하고 우직한 남자를 잠시 추억하던 그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 급히 달려오는 두 명의 인영이 보였다.


”레이나!!!”


한명은 정말 전력을 다해서 오고 있지만, 다른 하나는 마뜩치 않은 듯 갑자기 속도를 늦추었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그도 이 거리에서 도망칠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사십 중반의 외모.

허나 그 안에 들어찬 것은 90이 넘은 노인인 퀘이삭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허, 허허허.”


너무 어이가 없으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늘도 무심하시구나. 아니지. 참으로 잔인하시구나.”


퀘이삭은 황제의 신임과 총애를 한몸에 받는 귀족 가문의 장자였다.

타고난 혈통과 보장된 성공에도 그는 자신을 함부로 망가트리지 않았다.


‘하늘에 닿을 기회다.’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살아갈 걱정 중 무엇하나 하지 않을 수 있는 훌륭한 가문.

부모님께 물려받은 압도적인 육신과 오성은 그를 무(武)의 길로 이끌었다.


처음 검을 잡은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 높이 올라갈 기회라 생각했다.


천민으로 태어나 구걸로 연명하고 혈도가 뒤틀린 망가진 육신으로도 종국에는 무의 정점에 오른 천하제일의 검사 오순.

그를 넘을 기회.


당대에 그를 넘을 자가 있다면, 퀘이삭 자신이라 확신했다.

동문 중 누구도 그를 넘지 못했고, 바다 건너에 있다는 수많은 문파의 신성들도 퀘이삭의 성취에는 미치지 못했다.

엄청난 속도로 끝없이 성장하던 그의 무공은 덜컥, 벽에 부딪혔다.


영원할 것만 같던 깨달음이 한순간에 끊어졌다.

하늘에 닿을 기회를 놓친 순간, 처음 느낀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여유였다.

잠시 쉬어가자는 생각. 지금껏 고생했으니 조금쯤 어떻겠냐는 생각이 몸을 지배했다.


그건 오만이 아니었다.

열두살부터 쉬지 않고 달린 끝에 삼십에 오관, 오십에는 육관에 올랐으며, 일흔에는 칠관의 벽을 넘었다.

그렇게 오른 칠관은 너무나 광대무비하여 다음 벽을 찾을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십여년을 허무하게 날렸다.


어느새 90에 가까워진 나이는 그를 조금쯤은 지치게 만들었다.


해서 쉬고자 했다.

제국의 모든 관리와 주변의 친인척들도 그런 퀘이삭의 뜻에 찬성했다.

무엇보다 부인과 아이들이 가장 기뻐하니, 퀘이삭 또한 마음이 동했다.

거기다 황제가 직접 자신이 아끼는 장원까지 내어주며 휴식을 권유하니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물령으로 가고 있었다.


물령에는 황제가 가장 아끼는 온천이 있으니, 그곳에서 몇년 푹 쉬며 경지를 가다담고 다시 팔관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그때 거절했어야 하는데.’


그랬다면, 지금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되었을까.


“젊군.”


이제 서른초반쯤 되었을까.

물론 무공을 익힌 고수는 그 외모로 나이를 논할 수 없다.

경지에 오르는 과정에서 늙고 노쇠해진 육신은 벽을 넘는 순간 재구성되며 전성기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른처럼 보이는 저 외모만으로는 실상 그의 나이를 단언할 수 없다.


저 젊은이 대신 이 자리에 올 것으로 예상했던 칠관의 고수 중 전성기의 육신을 되찾지 못한 이는 손에 꼽는다.

그러니 외모로는 고수의 나이를 논할 수 없다.

상식이었다.

그럼에도 퀘이삭이 그를 젊다 평한 것은 그 눈 때문이었다.


“아직 어려.”


세월의 풍파에 허물어진 영혼은 그 태를 감출 수 없는 법이다.


사내는 젊었다.

지나칠 정도로.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칠관에 올랐는가.”

”···칠관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요.”

“그래, 완벽하게 넘지는 못했지. 허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퀘이삭이 들고 있던 연검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건 분노에 찬 울림이었다.

하지만 손을 흔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가라앉았다.

팔랑팔랑 흔들리는 매미날개 너머로 얼굴을 굳힌 야만인이 보였다.


“자네가 원하면 언제든 칠관에 완벽히 안착할 수 있는 것을.”

“너무 과한 평가십니다.”

“과하지 않아. ···문을 열지 않은 자는 방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 자기가 서 있는 자리가 문앞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네. 허나 자네는 어떠한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매미날개가 꼿꼿하게 펴졌다.

기(氣)를 이용해서 강제로 편 것이 아니었다.

그건 연검(軟劍)의 특징을 모르는 머저리들이나 하는 바보짓이니, 그로써는 평생 이해할 수도 할 일도 없는 짓거리였다.


이건 연검을 개처럼 질질 끄잡고 제멋대로 다루는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이 아니었다.

연검의 움직임에 스스로를 맞춘 것이다.

쉽지는 않으나 반복하다보면 종국에는 검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세간에서 소위 신검합일이라 부르는 경지였다.


허나 퀘이삭은 이걸 검사의 기본이라 평했다.


예상대로, 저 젊은 야만인은 놀라지 않았다.

그저 콧잔등만 찌푸렸을 뿐이었다.


“자세를 잡게.”

“노공과는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늙은이를 공경해주니 참으로 기쁘군. 허나 정말 나를 존중한다면 검을 들어주게.”

“보시다시피, 저는 칼이 없습니다만.”

“빌려주지.”


퀘이삭이 소매를 떨쳤다.

길고 하늘하늘한 소매, 그럼에도 겨우 30cm밖에 되지 않을 짧은 길이였다.

허나 그 안에서 불쑥 튀어나온 칼은 날의 길이만 1m 50cm에 육박하는 거검이었다.

손잡이까지 합치면 거의 2m에 가까운 검을 부드럽게 잡아서 휙 던져주자, 야만인이 가볍게 받아 허공에 휘둘렀다.

칼집이 쑥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레이나.”


그 사이 야만인과 함께 온 일행이 바닥에 쓰러진 아해를 데리고 물러났다.

퀘이삭은 말리지 않았다.

손을 쓸 것이었다면 구태여 구하지 않았다.

제 발로 살아보겠다는 것을 쫓을 이유도 막을 이유도 없지 않는가.


“멀리 물러나거라. 그래야 우리가 마음껏 노닐 수 있지 않겠느냐.”


정답게 말하자 레이나라는 아이와 그를 감싼 아이가 다급히 숲을 뛰쳐나갔다.

멀어지는 그 등을 말없이 보고 있던 야만인이 그제야 퀘이삭을 돌아봤다.


“그러고보니 자네 이름이 무언가?”

“레손입니다.”

“레손. 레손이라.”


고개를 주억거리던 퀘이삭이 기수식을 취했다.


“선공을 양보할 필요는 없겠지?”

“보통은 양보해주지 않습니까?”

“그건 고수가 하수에게 하는 것이니 우리 사이에는 당연히 필요없지 않겠는가?”

“거, 인심이 아주 박하십니다.”

“자주 듣는 말일세.”


껄껄 웃은 퀘이삭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던 레손이 그에 맞춰 칼을 휘둘렀다.

두 개의 검이 부딪히자 빛이 번뜩였다.


***


“오빠. 저 사람 뭐야?”

“누구. 레손 씨? 네가 놀리던 야만인이지 누구겠어?”

“아, 아니. 그게.”


입술을 짓씹던 레이나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참에 큰 교훈을 주기 위해 일부러 비꼰 것이지만, 막상 동생이 이러니 더 뭐라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이러니 버릇이 잘못 들었지.’


이를 꽉 깨문 란돌이 아주 제대로 혼을 내려는 순간 빛이 번뜩였다.

뒤이어 땅거죽이 뒤집히는 듯한 굉음과 함께 폭풍이 몰아쳤다.

숲밖에서 안쪽으로 무섭게 몰아치던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그들을 확 밀어냈다.


“커헉!”


튕겨나간 란돌이 급히 뒤를 돌아봤다.

분명 삼백장은 멀어졌다.

거의 1km에 가까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수천그루의 나무들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깔끔하게 날아간 공터 속에서 두 사람이 격돌하고 있었다.


‘사람 맞나?’


두 개의 실선이 길게 늘어지며 부딪혔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격돌의 순간마다 불빛이 번뜩인다. 충격파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바닥에 상흔을 남겼다.


애초부터 저 자리에 두 사람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난 속도와 위력이었다.


“와.”


레이나가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헤벌리고 있었다.

흙먼지에 온몸이 엉망이었지만, 그런 제 꼴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중에 돌아오시거든 제대로 사과해.”

“그, 그래야지.”


레이나의 눈이 멀리 떨어진 레손을 향했다.

하지만 누가 레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빨라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길게 늘어진 실선뿐이었으니까.


꾸득.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란돌이 급히 몸을 날렸다.

레이나를 안고 바닥을 나뒹구는데 어느새 목에 칼이 닿아 있었다.


“누구냐.”

“그건 내가 물을 말이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시퍼런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멀쩡한 눈알을 제외하면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외형이었다.

축 늘어진 볼살과 찌그러진 이마, 물에 불린 것처럼 이리저리 늘어지고 일그러진 얼굴은 마치 산송장 같았다.


“히, 히익!”


레이나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리자 괴한이 빈손으로 얼굴을 슥슥 문댔다.


“역시 미완성인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찬 괴한이 란돌과 레이나를 급습했다.


‘고수!’


멀쩡한 몸이었어도 반응할 수 없는 속도였다.

이미 다친 란돌은 물론이고, 원래도 경지가 낮았던 레이나는 순식간에 제압 당해 바닥을 뒹굴었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은 두 사람을 내려다보던 괴한이 쓰고있던 인피를 벗었다.


어여쁜 얼굴이 드러났다.


“너희가 대체 누구기에 저 살인귀가 저토록 열심히 돕는 것이냐.”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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