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속 야만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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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8.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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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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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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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DUMMY

흔히 검의 경지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바로 검에 내력을 실을 수 있는지 여부였다.

물론 쉽지 않다.

그러니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력을 실어 검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되려 부수고 터트려 먹는 놈이 대다수다.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경지가 낮아서가 아니다.


애초부터 힘든 일인 까닭이다.

몸에 담긴 내공을 다루는 것도 어렵다. 다섯살 아해처럼 제멋대로 떠들고 아무곳에서나 멈춰섰다 다시 뛰기를 반복한다.

기운은 얼마나 드세고 힘도 좋은지 따라잡기도 벅차다.


그런 제멋대로인 내공을 내 몸이 아닌 외부.

심지어 살아있는 인체도 아닌 생명 없는 무기질에 불어넣는 것은 고되고 힘든, 매우 지난한 일이었다.

석공이 불상을 깍듯 지난한 인고의 세월을 버틴 뒤에야, 운 좋게 성공하는 법이다.


그래, 운이다.

하늘이 내린 재능도 세상을 뒤덮을 뛰어난 오성도, 그 무재를 갈고 닦을 선천적인 환경조차도 전부 운이었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그들의 노력을 어찌 깔아볼 수 있을까.


재능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경지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 위를 노린다면, 타고난 재능에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져야만 한다.

그래야 하늘에 닿을 수 있다.


‘나는 그럴 수 없지.’


특히나 아무 노력도 없이 덜컥 경지에 오르고 시작한 레손은 더욱 그럴 수 없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더 엄청난 운을 타고 났으니까.


평범한 이는 평생을 노력해도 닿지 못할 경지, 아니, 그런 경지가 있다는 것조차 알 수 없는,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경지에 발을 들이고 시작했으니까.


콰드드득.

그렇기에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는 검강 다발을 보고도 겁이 나지는 않았다.

만(卍) 자를 그리며 폭풍치듯 날아오는 검강을 부드럽게 받아냈다.


“···.”


스스로를 퀘이삭이라 밝힌 노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얼마든지 후속타를 쏟아부을 여력이 남았을 터임에도, 그는 어디 어찌하는지 보자는 듯 검을 내렸다.


하늘거리는 연검처럼 제멋대로 휘돌며 날아온 검강의 중심에 거검을 찔러넣었다.


뿌드득.

검강으로 검강을 찢는다. 흔하고 단순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퀘이삭의 눈에 실망감이 어렸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무섭게 치떠지며 일그러졌다가 이내 환희로 가득 차올랐다.


레손의 검강이 퀘이삭의 검강을 흡수했다.

거대한 욕조의 물을 빼듯 회전하며 한점으로 모여든 검강이 그 중심에 위치한 레손의 검끝에 맺혔다.

둥글고 납작하게, 어떨 때는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타원형으로 터질 듯 부풀었지만 레손이 타이르듯 손잡이를 다독이자 검강다발이 다시 잠잠해졌다.


뿌드득.

동그란 구. 검강으로 이루어진 그것은 이제 검강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강기의 구가 되어 제자리에서 회전했다.


“흐하하.”


퀘이삭이 하늘을 보며 웃었다.

그 눈이 이내 사방을 훑기 시작했다.

하늘 땅, 이어서 전후좌우를 살피더니 레손을 노려봤다.


“여섯 방위의 정을 하나로 모았구나!! 그걸로 내 공격을 묶은게야! 검술만으로 극한에 이른겐가?”


퀘이삭이 몸을 피했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 거검이 꽂혔다.

아니, 거검에 맺혀있던 별무리가 내려앉은 것이다.

소리는 없었다.

소리를 전달해줘야할 매질이 전부 짖이기고 찢겨나간 덕분에 완벽히 차단된 무음속 세상에서 오직 눈에 보이는 현상만이 드러났다.

눈이 멀 것 같은 빛 속에서 땅이 녹아내리고 뒤집힌다.

별무리가 걷히자 30m 깊이의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다.

후욱.

뒤이어 멀리서부터 몰려온 바람들이 크레이터를 따라 하늘로 솟구쳤다.

그 위, 허공에 몸을 띄우고 있던 퀘이삭이 기껍게 웃었다.

소맷단이 미친듯 흔들렸다.


“자네를 모욕해서 미안하네.”

“영감님.”

“언제든 칠관에 오를 수 있다고? 하하, 이런 옹이구멍 같은 눈을 달고 있으니 여지껏 경지에 오르지 못했지.”


한탄하듯 내뱉던 퀘이삭이 바닥에 턱하고 착지했다.

발끝을 톡톡거리던 그가 연검을 추스르다말고 아하며 감탄사를 뱉었다.


“그러고보니 내 검이 아니었구나. 이건 자네가 구하려던 아이 것이니 놓고 가겠네.”

“마음에 차셨습니까.”

“차고말고. 자네가 오늘 보여준 호의에 감사드리네.”


‘끝났나?’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만족한 것 같으니 얼른 튀어야겠다는 생각이 레손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가 거검에 내력을 실어 퀘이삭에게 던졌다.

빠르지 않게 천천히 유영하듯 허공을 날아간 검이 퀘이삭의 소매 속으로 쏙 사라졌다.

레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건.”

“아공간 주머니일세. 황상께서 하사하신 것이니 그리 탐내도 줄 수는 없네. 별로 비싼 것은 아니네만, 그분께서 주신 선물을 다른 이에게 넘길 수는 없지 않겠나.”


역대 모든 황제 중 두번째로 팔군 전체의 충성을 받아낸 현황제의 선물을 노리는 건,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과 같았다.

청성문 따위는 애교로 보일 무서운 추격을 받을지도 몰랐다.


“아깝군요.”

“다음에 정식으로 찾아오게. 이것만 아니면 무엇이든 내어줄 터이니.”

“그래도 되겠습니까?”

“자네가 보여준 호의가 있는데 어찌 모른척 하겠는가? 정말 감사드리네.”


두 손을 마주잡고 정중하게 읍한 퀘이삭이 몸을 돌렸다.


“난 수도로 돌아가겠네. 혹 시간이 나거든 꼭 찾아주게나. 제국의 도움이 필요하거든 이 퀘이삭의 이름을 대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내가 더 감사하지.”


히죽 웃은 퀘이삭이 무서운 속도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레손이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마지막의 한 수.

퀘이삭의 검강을 모조리 빨아들여 한점에 집중한 것은 생각하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묘한 확신을 따랐을 뿐이다.

겨우 그 정도 감정에 목숨을 맡기다니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검술이라는 것이 그러했다.


거기다 애초부터 제대로 된 검술을 익힌 적이 없는 레손에게는 그 정도 확신이면 차고 넘쳤다.

그가 얻은 검술이라는 스킬은 이제는 몸과 완전히 융합되어 기술의 한계를 벗어난 상태였으니까.


‘도움이라.’


전부 퀘이삭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청성문보다 더 심한 미친노인에게 걸렸다고 한숨만 쉬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지금껏 동떨어져서 따로 놀던 검술이 드디어 기술의 한계를 벗어나 한몸이 되었으니까.


이로써 더 높은 경지를 넘볼 수 있게 되었다.

칠관의 입구에서만 얼쩡거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히, 그리고 높이 도달할 기반을 닦은 셈이었다.


‘좀 더 노력해봐야 할까.’


지금껏 칠관을 무서워해 입구에서만 얼쩡거린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더 이상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도적집단 같은 무뢰배들을 말함이 아니었다.

진짜 사람.

주변에 머무는 동료와 친구.

혈육이 없는 레손에게 가족과 같은 그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포기하자.’


레손이 주먹을 풀었다.

다음 경지에는 도전하지 않는다.

여기서 안주할 것이다.

비단 오늘 찾아온 기회가 아니었어도, 레손은 언제든 칠관의 입구를 넘을 수 있었다.

퀘이삭의 말처럼, 그는 이미 칠관이 어떤 경지인지 알고 있었다.

직접 겪었으니까. 이미 올라봤으니까.


허나 급히 오른 칠관의 경지는 주화입마를 불렀다.

그리고 입마에 든 그의 육신은 누구보다 소중했던 이들을 도륙하는 살인기계로 변모했고.


그 꼴을 또 겪고 싶지는 않았다.

칠관의 입구를 벗어나 더 깊숙히 도달하는 일도, 팔관에 도전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대로 안주하며 돈이나 모으다 은퇴할 것이다.


마침 봐둔 적당한 부지가 있다.

옆도시 물령처럼 온천도 있고, 멋진 바다에 고즈넉한 절벽도 자리한 훌륭한 풍광을 자랑하는 외진 섬이다.


그곳이라면 평생을 보내도 썩기보다는 잘 살았다고 평할 수 있는 낙원 같은 곳이다.


“그러니 어서 돈을 모아서, ···뭐야. 어디 갔어! 내 돈줄!!”


레손의 눈이 급히 주변을 훑었다.

레이나라는 건방진 여자애가 졸도할 것 같은 표정으로 바닥에 엎어져 있었지만, 그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저건 돈이 안 된다.

아니, 그게 아니고 돈이 되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진짜배기는 란돌이었다.

레이나를 구하려던 것도 전부 란돌의 자발적인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레이나!”

“아, 이제야 끝나셨습니까. 레손 공. 그때의 무례를 사과드리고 싶,”

“네 오빠 어디갔어!”

“예? 아, 오라버니는 괴한에게 끌려갔습니다.”

“괴한?”

“이걸 놓고 갔습니다.”

”···인피.”

“아, 이게 인피면구입니까? 그런데 소문보다는 훨씬 못 만든 것 같습니다.”


사람 가죽으로 만든 가면.

인피면구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도 그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물건이다.

사람가죽으로 만들었기에 일반적인 가면과 달리 진짜 얼굴처럼 보이는 특별한 가면.

하지만 이건 인피면구 측에도 못 들 실패작이다.


“배우다 말았군.”


그러게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라니까.

이 꼬맹이가 어른 말은 죽어라 안 듣더니, 기어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이 참에 교육을 좀 시켜줘야겠어. 그리고 란돌에게 정보를 뜯어낸 다음 바로 튀자.’


마족에 대한 정보, 정확히는 마족을 소환하기 위해 모셨을 흑마술사에 대한 정보만 받아내면 된다.


흑마술사는 돈이 많다.

몸에 걸친 옷가지부터 발을 감싼 신발과 밥 처먹는 숟가락까지 전부 명품덩어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숨만 쉬어도 주변을 부식시키는 저주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야 축복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저주다.

그 저주를 견디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축성 받은 유물.

신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물은 더럽게 비싸다.

하나만 팔아도 평생 호의호식 할 수 있을 정도로 값비싼 명품이다.


“기다려라. 내 돈줄.”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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