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속 야만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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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8.14 16:14
최근연재일 :
2024.08.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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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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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문

DUMMY

***


“죽어라!!”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날아온 일격을 란돌이 급히 회피했다.

그들을 노리는 이들은 전부 훈련받은 정예들.

칼을 휘두를 때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일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행동한 것은 전부 란돌의 시선을 끌기 위한 수작이었다.


“레이나!!”

“알아.”


여동생 레이나가 몸을 뒤틀며 후방에서 날아온 단검을 부드럽게 흘려냈다.


‘알기는 뭘!’


아직 어린 동생을 탓하며 란돌이 급히 몸을 날렸다.

정면에서 시선을 끌던 습격자가 그 뒤를 따라붙었지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어느새 지척까지 도달한 단검이 레이나의 관자놀이에 꽂히기 직전이었다.


“큽!”


칼을 휘두를 새도 없이 몸으로 레이나를 밀어냈다.


“뭐하는 짓!?”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란돌을 돌아보던 레이나의 얼굴에 경악이 스쳐지나갔다.

푹!

그녀를 노리던 칼날이 정확히 란돌의 어깨를 파고들어갔다. 뒤이어 등뒤를 따라붙은 길쭉한 칼이 허벅지를 스쳤다.

피가 튀었다.

쓰러진 혈육을 보며 그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오빠!”


하지만 다가갈 겨를이 없었다.

어느새 사방에서 몰아친 검격이 그녀의 머리와 요혈을 노려왔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칼날 너머로 숨이 끊기기 직전인 오빠가 보였다.


“도망, 쳐.”


입술을 달싹거리는 란돌의 눈은 그녀가 아니라 멀리 떨어진 테이블을 향해 있었다.


“···.”


말없이 혼자 술을 마시는 사내.

허름한 옷과 그와 대비되는 차분하고 공허한 눈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청성문.’


독특한 규율로 유명한 청성문의 검사였다.

문파가 제시하는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 자는 절대 문밖을 나갈 수 없다.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은 바로 사관(四觀).


웬만한 검사들은 평생을 노력해도 구경도 할 수 없는 아득한 경지였다.

그런 드높은 경지인 사관에 도달하지 못하면 문파 밖으로 외출도 할 수 없는 청성문의 검사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덤벼도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는 괴물이었다.

저 자 때문에 지금껏 지독할 정도로 도망만 치고 있었다.


으득.

이를 악문 란돌이 동생을 노리는 검사들의 뒤를 쳤다.

설마 맹독이 묻은 검에 복부를 꿰뚫리고도 달려들 줄은 몰랐는지, 그들이 형성한 검진이 순간 흐트러졌다.

허나 그조차 잠시였다.


‘됐다!’


하지만 그게 란돌이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

소매에서 튀어나온 연막탄이 여관 바닥을 강타했다.

푸확!

섬뜩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연기에 검사들이 급히 몸을 빼냈다.


"피해!!"

"숨을 멈춰라!"


저들은 이게 단순한 연막탄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 못한다.

맹독이 섞인 독안개인지 아니면 더 끔찍한 산공독이 섞인 것인지 어찌 알겠는가.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훈련받은 정예들답게 사방으로 흩어지는 검사들 사이를 재빨리 뚫고 들어간 란돌이 레이나를 몸으로 밀쳤다.

이번에는 정말 전력으로 후려쳤다.


물론 동생을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남은 내력 전부를 활용해 동생의 몸을 감싼 뒤 포탄처럼 쏘아내 여관 벽을 뚫고 도망치게 한 것이다.


뒤늦게 알아차렸는지 레이나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이라 뒷일이 걱정되었지만, 그 걱정도 살아있어야 할 수 있는 법.


‘너라도 살아라.’


“오빠!!”


비명과 함께 동생의 모습이 사라졌다.

20년의 내공을 전부 쏟아냈으니 못해도 백장은 날아갔을 터.

적의 추격을 피하기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괜찮다.

그것도 다 방도가 있었다.


“···덤벼라.”


란돌이 칼을 들고 정면을 노려봤다.

어느새 가라앉은 연막 너머로 그를 포위한 적들이 보였다.


그때 여지껏 꿈쩍도 하지 않던 청성문의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없이 이쪽을 보던 그가 들고있던 잔을 내려놓더니 천천히 걸어왔다.


“···.”


그가 움직이자 눈치를 살피던 검사들이 재빨리 여관을 뛰쳐나갔다.

목표는 입구가 아니라, 레이나가 사라진 뚫린 벽 쪽이었다.


“제기랄!!”


고함과 함께 란돌이 그들의 뒤를 덮쳤다.

하지만 청성문의 검사가 더 빨랐다.

휙!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검사가 칼을 내리쳤다.

검기는 없었다.

경지에 오른 이답지 않게 단조로운 검격.

하지만 란돌은 방심하지 않았다.


‘온다!’


검과 검이 닿기 직전.

눈을 치뜨고 노려본 덕분일까.

찰나의 순간 코팅하듯 날을 감싸는 푸른 검기를 볼 수 있었다.


“흡!”


급히 경로를 틀어 상대의 칼날을 피해 손목을 노렸다.

청성문의 검사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놀란 눈빛과 달리 손은 빠르고 정확했다. 중력의 영향을 무시하듯 부드럽게 회전한 검이 란돌의 검면을 후려쳤다.


챙강!

깨진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란돌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으압!!”


고함과 함께 돌격한 란돌의 손에 단검이 들려 있었다.

그가 쓰러트린 적에게서 빼앗은 맹독이 발린 검이었다.


“산공독인가.”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청성문의 검사가 칼을 휘둘렀다.

검날이 단검을 튕겨내더니 뒤이어 란돌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팔꿈치까지 통째로 잘려나간 팔이 핏물과 함께 허공을 비산했다.


“커흑!”


천천히 다가온 검사가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이름을 말하라.”

“꺼, 져.”


격통 때문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몸이 저절로 앞으로 기울었다.

다 익은 벼처럼 숙여진 머리 위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이름을 말하라.”


청성문의 검사 다웠다.

아니, 제대로 교육 받은, 그렇기에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자부심으로 가득 찬 이들 특유의 여유가 느껴졌다.


“내, 이, 이름은···.”


숙이고 있던 몸을 확 피며 손목을 휘둘렀다.

잘린 팔목에서 핏물이 확 튀어올라 청성문의 검사를 덮쳤다.

얼굴을 덮치는 핏물에 놀란 그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후퇴하면서도 부드럽게 이어지는 방어동작.

얼마나 고된 훈련을 받았는지 여실히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문파에서 받은 교육에는 이런 기습은 없었을 터. 누가 잘린 팔을 휘둘러 얼굴에 피를 끼얹는 짓을 할까.


“죽어라!!”


반드시 죽여야 할 자였다.

그게 힘들다면, 적어도 이 자리에 잠시라도 묶어둬야 한다.

그래야 여동생이 도망칠 수 있었다.


육탄돌격으로 청성문의 검사를 덮쳤지만, 돌아온 건 배를 꿰뚫는 칼날이었다.

시리도록 짙푸른 검기가 복부를 꿰뚫고 내장을 해집었다.

푸른 검기는 예상과 달리 뜨거웠다.


“···공의 분전을 기억하겠다. 그 희생에 경의를 표하며 1분간 이 자리에서 대기하겠다.”

“그거, 참 더, 더럽게 고마운 일이군.”


몸만 멀쩡했다면 같잖은 짓거리 하지 말라고 비웃었겠지만, 웃기게도 지금은 그 자비가 너무나도 감사했다.

잠시라도 좋으니 발을 묶어둘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게 자비든 아니면 그를 향한 존중이든 상관없었다.


“꺼허, 컥.”


목을 통해 핏물이 역류했다.

검이 부드럽게 복부를 빠져나갔다. 마치 그를 더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생했다.”


잠시 말이 없던 청성문의 검사가 갑자기 눈을 치뜨더니 뒤를 돌아봤다.

란돌 또한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입구를 가득 채운 그림자가 그들의 발치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것 참.”


쑥쓰럽다는 듯 뺨을 긁적이는 사내.

분명 방금 전까지 란돌과 합석했던 카이렌의 야만인이었다.


“나도 모르게 구경하고 있었네. 좋은 구경, 아, 이게 아니지. ···커흠. 일 보쇼.”


어깨를 으쓱인 야만인이 몸을 돌렸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청성문의 검사가 그 등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 이런 벽지에서!? 흐, 흐하하!! 천지신명이시여 감사드립니다!”


갑자기 미친놈처럼 하늘을 보며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란돌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좋은 일이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그가 한눈이 팔린 순간 여동생은 더 멀리 도망칠 수 있을테니까.


‘누군지 몰라도 고맙소!’


그때 청성문의 검사가 비명처럼 내뱉은 말이 귓가를 울렸다.


“육과안!!”


그 거친 비명에 야만인이 제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뒷머리를 벅벅 긁던 그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청성문의 검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제멋대로 마구 소리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공허하던 눈에 뜻모를 열기가 가득했다.


“쭉정이인 줄 알았는데 진짜 카이렌의 무사였군!! ···당신에게 정식으로 대련을 요청하겠소! 나는 청성문의 강소요!!! 목숨을 걸고 나와 대련해주시오!”

“미쳤소? 내가 왜? 그리고 육관이 뭐야? 먹는거요? ···아무래도 사람 잘못 본 것 같소이다.”


란돌이 듣기에도 어설픈 변명이었다.

실성한 듯 몸을 덜덜 떨던 강소가 미친듯이 돌격했다.

란돌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속도였다.

계속 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가 움직였다는 사실도 몰랐을 정도로 경이로운 보법.


“아, 청성문은 싫은데.”


한숨을 푹 내쉰 야만인이 그제야 몸을 돌렸다.

얼굴에 짜증이 가득 서려 있었다.


“정식으로 대련을 요청하오!!!”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과 함께 푸른 검기가 야만인을 덮쳤다.

인상을 찌푸린 그가 짓씹듯 내뱉었다.


“지랄하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기가 목을 후려쳤다.

피바람이 불 것을 예상한 란돌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여동생이 중하다한들 죄없는 이가 휘말려 죽는 걸 보며 기뻐할 정도로 인성이 썩지는 않았다.

하지만 몸이 이러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속으로 명복을 빌어주는 수밖에.


‘미안하오. 괜히 우리 때문에.’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를 잃은 육신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도, 피가 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여,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구나! 아아! 아! 아니지 틀렸구나!”


환희에 찬 강소의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육관이 아니었어!?”

“그래.”


나직한 답변과 함께 파육음이 들렸다.

그건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치는 소리였다.

끔찍한 타격음과 함께 강소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날아 여관 벽을 뚫고 튕겨나갔다.


뻥 뚫린 벽을 보던 란돌이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생채기 하나 없는 야만인이 이리저리 목을 비틀고 있었다.


“쯧. 하필 엮여도 청성문이.”


그 눈에 담긴 건 방금 전까지 목이 떨어질 뻔한 이가 응당 가져야 할 공포나 두려움, 분노 등이 아니었다.

그건 귀찮은 날파리를 상대하는 사자와 같은 눈빛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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