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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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갸.
작품등록일 :
2024.08.22 21:22
최근연재일 :
2024.09.1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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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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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윤(4)

DUMMY


미지근한 라디에이터에 바짝 붙어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정초롱과 나.


“이제 진정이 좀 됐어?”

“히끅. 응.”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우리를 보고 화장실을 들어 올려다 나가는 사람이 서너 명은 됐던 것 같다.


“이제 너 입어. 너도 춥잖아.”

“히끅. 아니야. 괘, 에취!”


내 물기에 정초롱도 꽤 젖어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정초롱이 덮어준 교복 자켓도 젖어 입나 안 입나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돌려주며 정초롱 덕분에 붉은 기가 돌아온 입술로 말한다.


“이러다 둘 다 감기 걸리겠다. 제일 덜 젖은 네가 입어.”

“아니야. 소윤이가 입어.”

“아니. 네가 입어.”

“괜찮테두, 에취!”

“거봐. 네가 입어.”

“싫어!”

“입어!”


콧물이 튀어나와 코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걸 보고 웃음이 나온다.


““풉! 푸하하핫!””


짧은 대화였지만 오랜만에 느껴본 따뜻한 대화였다.


맘 터놓고 말한 게 손꼽을 정도로 내게 경사였지만 옛날 일이 떠올라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뭐해.


잊으려 해도 계속 생각나는 옛 기억.


정초롱하고 겹쳐 보였다.


“이럴 시간에 반으로 돌아가서 옷 갈아입자.”

“···취! 그래! 내가 부축해줄게.”

“아, 앗!”


온 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발목통증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으쌰!”


정초롱이 작은 체구로 힘겹게 날 일으켜 세우는데.


“꺄악!”


결국 내 몸무게에 짓눌려 넘어졌다.


“ㅋㅋㅋ."

“ㅋㅋㅋㅋㅋ.”

“그냥 여기 있을까?”

“그래!”


라디에이터에 기대 서로 웃고 떠들고를 반복했다.


계속 옛날 행복했던 일과 겹쳐 보여 불안했지만,


뭐, 어때.


어차피 ······아닌 걸.


“내가 뭐라고 한 거지.”

“응? 소윤아, 왜?”

“어? 아무것도 아니야.”


됐다. 지금 즐거우면 됐지.


“내 얘기를 들어보라니까. 그래서 이세라가 말이야···”


오늘 처음 봤음에도 급속도로 서로를 알아갔고 친해져갔다.


이세라에게 당했던 일들 또한 공유하며 한풀이를 하는데.


맞고 찢기고 데이고 잘리고···,


입에 담지도 못할 비윤리적인 괴롭힘을, 아픔을 나누니 뜨거웠던 속마저 편해졌다.


초롱이가 속으로만 담아왔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서슴없이 자신의 모든 걸 얘기해줬다.


다소 꺼릴 수 있는 가정사까지 말하며 나를 신뢰하는 게 느껴진다.


울고 웃고를 떠나 나의 과거도 궁금할 법한데 내가 꺼려한단 걸 알고 그녀는 캐묻지 않았다.


초롱이의 배려에 대화는 더욱 즐거웠다.


우리는 더 이상 학교 수업 따윈 안중에도 없었고 시간은 계속 흘러 젖었던 와이셔츠가 말라갔다.


“웃긴다. 와이셔츠가 벌써 다 말랐어.”

“그러게. 소윤아. 일어날 수 있겠어?”

“응. 이제 조금은 걸을 수, 아, 아얏!”


초롱이의 부축을 받고 힘겹게 일어나 보지만 확실히 혼자 걷기에는 힘들 것 같았다.


“어, 어! 괜찮아? 안 되겠다. 양호실 먼저 가자.”

“어, 응. 그래. 고마워.”

“잠깐! 치마는 아직 젖었잖아.”


치마의 원단이 겨울용으로 두꺼워 젖어 있는 게 확실히 눈에 띄었다.


“꼭 오줌 싼 거 같잖아. 하하.”

“지는? 넌 똥 싼 거 같거든?”

“어? 뭐야?!”


초롱이가 자신의 엉덩이를 보려고 빙빙 도는 게 꼭 시골 강아지 마냥 귀여웠다.


선명한 짙은 회색 자국을 확인하고 실실 웃는 초롱이가 내게 말한다.


“힝. 이대로는 못 나가겠다. 소윤아. 잠깐만 기다려. 내가 반에 가가지고 네 꺼 까지 체육복 좀 가져 올게.”

“자, 잠깐! 이걸로···”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자신의 젖은 치마는 신경도 안 쓰고 허겁지겁 화장실을 나갔다.


다시금 조용해진 화장실.


지수야. 왜 네가 떠오를까.


윤지수.


초롱이처럼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줬던 첫 친구였다.


지수는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기에, 그것도 나 때문에 지수가 죽었기에,


양심이 있으면 내가 멀어져야 한다.


괜히 또 내 불행에 초롱이 마저 잡아먹힐 거야.


초롱이에게 말하지 못했던 옛 기억에 사로잡힌다.


초롱이까지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어.


초롱이를 밀어내기로 결심해 힘겹게 일어난다.


초롱이가 오기 전에 화장실을 나가려 하는데.


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발목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발이 바닥에 얼어붙은 것 마냥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닥의 냉기가 발끝에서부터 무릎, 허벅지, 허리를 지나 온 전신을 얼렸다.


더 이상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화장실 거울에 시선이 갔다.


붉었던 입술이 파래지며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죽은 사람과 같았고 화장실 내부가 냉동 창고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기현상에 공포를 느꼈고 성대가 얼어붙어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 순간 누군가 들어온다.


“혹시 이제 화장실 좀 써도 될까?”


우리 학교 교복을 입었지만 발끝부터 머리까지 새하얀 그녀.


마치 일본 설화에 나올법한 설녀의 모습과 같았다.


현재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질문에 살려 달라 소리칠 수도 없었다.


“진짜 너무 급해서 그런데 대답 좀 해줘.”


배를 부여잡고 잔뜩 몸을 웅크려 간신히 참고 있단 게 느껴졌다.


‘나도 말하고 싶어요! 저 좀 살려주.’

“세요! 어, 어!”


안 나오던 목소리가 새어나오듯 소리를 냈다.


“거봐! 말할 수 있잖아! 화장실 좀 써도 될까?”

“네, 네! 쓰세요! 그것보다 중요한 게 저···”

“아. 맞아. 화장실보다 중요한 게 있었지.”


웅크려 있던 그녀가 한 순간 박차고 일어나 머리를 내 이마에 박았다.


“꿈 깨!!!”


온 몸이 얼음 부서지듯 "쩌걱!" 큰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내 신체는 잘게 산산조각 나 바닥에 나뒹굴었고 어느새 이세라의 얼굴을 한 미지의 존재가 날 내려다본다.


“이 눈깔은 내가 가져갈게.”


소름끼치는 소리를 듣고 시야가 어두워졌다.


===


“히끅. 흐윽.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히끅. 내가 선생님 모셔 올 테니까.”

“으드흐윽. 으흑.”


겁에 질린 초롱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대답하듯 추위와 고통에 흐느낌 소리를 냈다. 그리고 초롱이가 덮어준 교복 자켓의 소매를 붙잡는다.


어? 꿈, 꿈 인거지.


초롱이의 서두르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


현실과 꿈이 분간이 안됐다.


온 몸에 전해지는 한기는 분명 현실이었다.


발목통증과 찢어진 상처의 쓰라림, 복부통증, 호흡곤란.


이 모든 게 현실임을 알렸다.


하지만 초롱이와의 대화가 그저 내 환생이었단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내 창의력으론 만들 수 없는 대화인데.


생각해보니 이상 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꿈속에선 무척 가깝고, 친한 사이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만 같았다.


혼란만이 머릿속을 감돌 때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 내게 말한다.


그런 초롱이를 기다릴 셈이야?


꿈에서 본 초롱이는 정말 착하고 좋은 친구였다.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고 전부 내 환상에, 꿈일 뿐이었지만 좋은 친구였던 초롱이를 ‘지수’처럼 잃고 싶지 않았다.


“으윽. 끄으윽!”


천근만근 같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니 짐승 같은 소리를 내지른다.


짐승마냥 바닥을 짚고 걸어야했고,


거울을 보니 갓 태어난 기린처럼 휘청대고 벽에 몸을 박고 있었다.


잘 입었어.


안간힘으로 초롱이의 자켓을 수건걸이에 걸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 학교에 ‘도와줄 사람은 없다’ 생각하면서도 이성재가 떠올라 교실로 향한다.


벽을 짚고 바닥을 짚으며 기어가다시피 화장실을 빠져 나와 텅 빈 복도를 걸었다.


고요한 복도는 추위에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지나온 자리에 선명한 물 자국을 남겼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구르다시피 내려가도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고 억겁의 시간 속에서 계속 발을 내딛었다.


한발 한발 내딛으면서 몽롱해져가는 정신은 신체의 끝부터 서서히 감각을 차단시켰다.


걷는다는 느낌보단 심해 깊은 곳의 바닥을 기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오를 대로 오른 체온은 심장을 더욱 펌프질 해 위험을 알리는데.


덜컥덜컥.


끝을 알 수 없던 긴 복도를 지나 도착한 교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교실만을 바라보고 왔는데 눈앞의 굳은 자물쇠가 보인다.


“하.”


드득.


“하하하.”


드드득.


이빨 부딪히는 소리 사이사이로 웃음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목표가 사라지자 이대로 죽는 건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시야가 어두워져 갔다.


그리고 돌고 도는 뜨거운 혈액이 온 몸을 불태운다.


차가운 복도가 달궈진 몸을 식혀줄 것만 같아 쓰러지고 싶었지만.


『소윤아. 살아야 돼.』


누군가 내게 간절히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워진 시야 속에서 날 부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소윤아! 도망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내 귀에서 계속 울렸다.


『살려주세요. 제발 소윤이 좀 살려주세요.』


익숙한 듯 누군지 모를 불특정 다수의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소윤아. 이쪽이야! 이쪽으로 와!』


캄캄한 앞 길, 알 수 없는 소리만을 힘겹게 따라갔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내!』


머릿속에 울리는 절박한 소리는 반복되었고,


풀썩.


엎어진 곳은 딱딱한 바닥이 아닌 푹신한 무언가였다.


또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았지만 무거운 눈꺼풀에 확인 할 수 없었다.


그저 살아달라는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기 위해 온기가 느껴지는 품속으로 들어간다.


안간힘을 다해 더욱 안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삐용! 삐용! 삐용!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


쾅!


“누나!”


쾅! 쾅!


“소윤이 누나!”


강한 충격음을 듣고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나 살아있는 건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정신을 잃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돌아온 손끝의 감각으로는 알 수 없었다.


쾅! 쾅! 쾅!


흐음. 죽은 건가.


포근함만이 전신을 감싸 있었고 빛 한 점 들지 않았기에 ‘천국인가’ 싶었는데,


포근함이 곧 찌는 듯한 더위로 느껴져 ‘지옥이구나.’ 싶었다.


콰지직! 쾅!


하지만 어두웠던 공간에 한 줄기 빛이 천국도 지옥도 아닌 현실이란 걸 알렸다.


이성재···?


“누, 누나!”


날 향한 목소리는 이성재가 아니었다.


“소윤이 누나!”


익숙한 듯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연거푸 나를 불렀고, 내 위를 파헤쳐 날 끌어안았다.


“흐윽. 누나!”

“으, 으윽.”

“아! 괜찮아?! 누나! 정신 좀 차려봐!”

“으, 으으윽.”


몇 초간 끌어안은 후, 내가 숨이 붙어 있는지, 정신은 있는지 확인하며 날 흔들어 깨웠다.


모두 의문투성이지만 입을 열 힘도 없었고,


그가 껴안아 흔들 때마다 살짝 신음할 뿐이었다.


“조금만 버텨봐!”


날 들쳐 업고 환한 빛줄기 속으로 달려 나간다.


“으흐윽. 소윤아! 으으앙.”


울먹거리는 초롱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한 빛에 초롱이는 안 보였지만 그녀의 심성이 얼마나 착한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꿈이랑 착한 건 똑같네.


걱정에 의해 감정이 격해진 초롱이의 목소리를 뒤로, 따뜻하고 넓은 등판은 안정감을 줬다.


흐음. 좋은 냄새.


희미한 향수 냄새가 어디서 맡아 본 것 같아 긴가민가했지만,


다시 또 희미해지는 정신에 알아차릴 수 없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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