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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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갸.
작품등록일 :
2024.08.22 21:22
최근연재일 :
2024.09.1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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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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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윤(6)

DUMMY


다행스럽게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준웅이 음식물쓰레기를 일반쓰레기에 버려 손이 두 번 가게 만든 일 빼고는 조용히 흘러간다.


“누나. 미안. 도와주려고 했던 건데···”

“아니···, 에요. 근데 우리 동갑인데 왜 누나라고 해···, 요?”

“누나가 앞으로 누나라고 하라 했었잖아. 꼬맹이한테 이름으로 불리니까 이상하다고.”

“아. 그래···, 요?”


더러운 테이블을 치우며 얘기를 해보니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기억도 나지 않는 유치원 때의 일을 어제 일처럼 얘기하는 전준웅.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린 유치원 때 동창이고 내가 누나행세를 하면서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어줬다고 한다.


지금도 알 턱이 없는 미적분이든 기하와 백터든 척척 알려줬다고 하는데.


좀 모자란 사람이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현실과 구분 못하는 부류인 거 같았다.


중2병이 좀 늦게 온 건 불쌍해 보이지만···,


전학 오자마자 나랑 엮인 건 최악의 악수다.


온갖 설정을 갖다 붙여 불쌍해 보이는 나를 구한다.

-> 학교에 미담이 퍼진다.

-> 학교에 온 관심을 받는다.

-> 웹툰 속 정의로운 주인공 같은 삶을 산다.


- 해피엔딩 -


을 바랐으면 노선을 잘못 잡았다.


왜 나대는 이세라를 아무도 못 건드리는 줄 알아?

걔 뒤에 빵빵한 빽이 무서운 거라고!

부모가 대기업 총수에다가 한태갑이 친구···, 됐다. 됐어. ㅈ됐어.


···라고 입 밖으로 꺼내고 싶었지만,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다가 피투성이 얼굴에 말 할 수 없었다.


아까 몸엔 흉터투성이라 더 무섭다고.


“···그래서 옛정에 학교에서도 구해주고 학교 끝나고도 이세라랑 싸워 준거야···, 에요?”

“웅! 누나는 더 어렸을 때부터 날 구해주고 싸워 줬는걸!”

“아하···, 그래요···.”


음료를 홀짝이며 싱글벙글 날 주시한다.


저 호불호 강한 음료도 내가 어렸을 때 억지로 먹였다고 했었지.


“하아.”

“누나 왜 그래?”


너 때문에 그래.


내일 학교 갈 생각에 골치가 아팠다.


지금이라도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해야하나···.


띵동.


“안녕하세요.”

“어. 안녕. 밖에 뭔 일이래. 소방차하고 구급차가 계속 지나다니네.”


출입문이 닫혀 있음에도 작게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공장에서 불이 났나 봐요.”

“와. 그럼 그 연기, 미세먼지가 아니라 불난 거였구나.”

“예? 여기 공장하고 꽤 먼데, 연기가 보였어요?”

“아니. 집에서 이제 출발 하려 하는데 멀리서 보이는 거야.”

“아. 네.”


잘못 걸렸다.


오늘 대화할 에너지는 이미 바닥인데, 하필이면 질문을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사람에게 질문해버렸다.


“···근데 난 미세먼지가 오는 줄 알고 다시 집에 들어가서 창문 닫고 마스크 챙겨서 나왔다니까. 괜히 시간만 날렸네.”

“하하. 네.”

“아니 근데 진짜 생각해보니까 연기도 몸에 안 좋나? 나 아까 집에서 고기 먹을 때···”


대화가 길어질 거 같아 적당히 웃으며 맞장구 쳐준다.


살짝 4차원에 말은 많지만 사람은 착하다.


“···그래서 오는 길에 붕어빵 좀 사왔어.”

“오빠. 고마워요.”


먹을 거주는 사람이면 다 착하지.


아.


순순히 붕어빵을 받고 오늘 아침 이성재가 준 빵은 바닥에 내팽겨 친 게 떠올랐다.


내일은 꼭 사과해야지.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이성재, 정초롱, 전준웅의 만남에 나도 조금 달라졌을까.


내 불행을 점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친구도 있었···, 어! 얘 얼굴이 왜 이래! 어! 잠깐 소윤이도!”

“하하. 그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전준웅과 함께 조금 긴 대화를 이어나갔다.


===


띵동.


“그럼 수고하세요! 먼저 들어가 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너희들도 조심히 들어가!”


전준웅과 함께 편의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기지개를 펴 어지러운 오늘도 막이 났음을 알렸다.


“으윽, 아휴. 길었던 오늘도 드디어 끝이다.”

“누나. 고생했어.”

“어? 음. 그래. 그, 준웅님? 도 고생했어···, 요.”

“아니. 옛날처럼 웅이라고 불러달라니까.”

“어···, 네. 웅이님.”

“존댓말도 말고!”


다짜고짜 자기 설정에 어울려 달라고 떼쓰는데···,


얼굴은 다 터져 있어도 덩치에 안 맞게 귀여워 보였다.


“어, 그래. 웅아···?”

“웅! 편하게 불러줘!”


진짜 유치원 때부터 알던 사이마냥 내 곁에 바짝 붙어 걷는다.


한 발짝 떨어져 걸으면 두 발짝 붙어 와 치근덕댔고,


“누나. 발목 괜찮아? 업어줄까?”

“아니···, 야. 이거 패딩도 너 다시 입어.”

“괜찮 테도!”


외관상으론 내 옆에 걸을 게 아니라 병원으로 가야할 녀석이 오히려 날 걱정해줬다.


저거 떨어지겠네.


이마에 붙은 반창고가 떨어질 거 같아 무심결에 손이 나갔다.


반창고를 다시 붙여주자 또 한 번 배시시 웃는 전준웅.


그의 미소가 어색해 말을 꺼낸다.


“얼굴 흉질 거 같네. 집에서 걱정하시겠다.”

“괜찮아. 어차피 집에 아무도 없어.”


아차.


오지랖 안 부리기로 했었는데···,


내 옆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니 나또한 동조된 것일까.


나도 딱히 집에 반겨줄 사람 없으면서···, 잘못 짚었네.


자식한테 미안해 얼굴을 잘 비추지 않는 아빠가 떠올랐다.


반지하로 이사 온 첫날,


나 몰래 울음을 삼키던 그 뒷모습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살짝 분위기가 다운되자 전준웅이 다급히 말을 꺼낸다.


“맞다! 이럴 때가 아니지! 누나! 큰일이야!”

“어, 뭐가?”


아직도 뭐가 남았어?


그의 배시시 웃던 얼굴도 사뭇 진지해져 마른 침을 삼켰다.


“누나를 노리는 나쁜 아저씨가 있어.”

“어?”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생각지도 못한 말에 얼빠진 표정을 짓자 전준웅이 자세히 말해준다.


“이 얼굴 상처가 학교에 있던 쓰레기들이랑 교문에 있던 쓰레기들 치우다가 그런 게 아니라···,”


마른 침을 꼴깍 삼킨다.


“누나를 노리는 아저씨랑 싸우다가 다쳤어.”

“흐음.”


가뜩이나 절뚝거려 느렸던 발걸음이 더욱 느려졌다.


그는 느려진 발걸음에 맞춰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이세라 까지 치우고 학교 쪽으로 가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부르더라고 누구냐고 하면서.”

“어. 계속 말해봐.”

“낌새가 이상해서 경계하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누나 이름을 불렀어. 그래서 일단 주먹을···”


전준웅이 말한 “나쁜 아저씨”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본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세라가 사주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도 밖에서도 내가 어디에 있든 이세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이세라, 이 미친년은 이제 깡패라도 써서 날 죽이겠단 거야?


이세라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못살게 구는 걸 넘어 왜 죽이려고까지 하는 걸까.


정말 이 눈 때문에 그러는 거야? 이 눈깔이라도 파내야지 끝나는 거야?


전준웅이 말한 나쁜 아저씨의 정보를 들을수록 패닉이 왔다.


하늘에서 보고 있는 엄마도 지금까지 버텨 온 걸 장하다 여기시지 않을까.


이제 내일이든 뭐든 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다.


전준웅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절주절 계속 떠든다.


“···죽일 기세로 날 쓰러뜨리더니 전화 받고 어디로 가는 거야. 다행히 주변사람이 하나 둘 구경하고 있어서 도망친 거 같은데···, 누나?”


자포자기식으로 벽에 기대어 주저앉으려고 할 때 전준웅이 나의 양 어깨를 잡아준다.


“누나! 역시 아직 아픈 거지? 업혀! 일단 병원부터 가자!”


내 앞에 무릎 꿇어 자신의 등짝을 보여준다.


에라이. 모르겠다.


내준 등짝에 업혔다.


“누나! 조금만 참아봐!”


툭.


땅바닥에 떨어진 검은 봉지를 뒤로 그는 전속력으로 뛰었다.


전준웅, 얘도 내 불행에 잡아먹히겠지.


어차피 죽을 목숨, 이제 다른 사람이 다치든 말든 신경 안 쓸래.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흐르다 끝을 마주하고 싶었다.


축 쳐져 그의 등에 얼굴을 맞대고 눈을 감자 숨을 헐떡이며 그가 말한다.


“누나! 이제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하.”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가 있을까.


싶은 상황에 멋모르고 말하는 게 이성재와 닮았다.


그래. 들어나 보자.


대답 없이 전준웅의 말을 계속 듣는다.


“비록 이번엔 내가 나쁜 아저씨한테 졌지만, 다음에 만나면 꼭 이겨서 지켜줄게!”

“하. 무슨 수로.”


방법이 없단 걸 알지만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까.


대화를 계속 이어나간다.


“누나! 지금은 어렸을 때의 내가 아니야. 난 누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강하니까 걱정하지 마!”


또 내게 없는 기억을 들먹이자 조금 입 꼬리가 올라갔다.


“오늘 쓰레기들 청소하느라 힘이 빠져서 진거야. 다음엔 절대 안 져. 학교에서도 밖에서도 내가 꼭 지켜줄게.”

“하하. 웃기시네.”

“진짜라니까?”


전준웅의 허세에 감았던 눈을 떴다.


눈을 감기 전, 눈을 감지 않아도 어두웠던 현실이었던 거 같은데,


그의 허세를 듣자 가로등의 불빛이 더 밝게 보였다.


그래. 살아보자.


내일 이성재한테 사과도 하고, 내일 초롱이한테 체육복도 돌려줘야지.


오늘만 살던 내가 내일을 기약한다.


이게 얼마 만에 느끼는 감정인지, 다시 한 번 혼자가 아니라 생각하게 됐다.


“주···, 웅아. 이제 내려줘. 괜찮아.”

“안 돼! 누나, 병원가야 해! 학교에서도 병원 못 가게 한 걸 지금이라도···”

“괜찮다니까! 나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맷집 강하거든? 이 정도는 끄떡없어!”

“아! 누나! 위험해!”


내려주지 않자 업힌 채 발버둥 쳤다.


“아하! 신난다! 로데오 같고 재밌네!”

“누나! 떨어진다니까!”


빨간불로 바뀐 신호등 앞에서 서로 웃으며 시간을 보낸다.


덤벼 볼 테면 덤벼보라고.


처음으로 내 불행에 맞서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이성재, 정초롱, 전준웅.


이번엔 그 누구도 잃지 않을 거다.


초록불로 바뀌자 뚜벅이던 난 횡단보도를 뛰어나간다.


“누나! 넘어져!”

“너도 빨리 건너!”


신호등 아래, 달빛도 더 밝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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