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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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갸.
작품등록일 :
2024.08.22 21:22
최근연재일 :
2024.09.1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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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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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윤(7)

DUMMY


얼마 뛰지도 못하고 넘어져 다시 전준웅에게 업혀 집에 간다.


“그러게 내가 뛰지 말라고 했잖아.”

“넌 누나의 큰 뜻을 몰라.”


전준웅의 설정 놀이에 적응 돼 “누나”라는 단어가 익숙해졌다.


그리고 말을 막 뱉어도 대화가 잘 통하는 게 꼭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자. 그럼 다음 문제. 누나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마라탕!”

“맞긴 한데···, 너! 딱 걸렸어! 유치원 때 마라탕이 있었겠냐!”

“아니! 진짜야! 누나가 미래에 유명해질 음식이라면서 설명해줬어! 양고기 넣어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양고기는커녕 내 돈으로는 사먹어 본 적 없는 마라탕을 내 최애 음식이라며 말하는 전준웅.


토순이를 알고 있는 걸 보면 진짜 같으면서도 참.


전준웅은 내가 다닌 유치원도 알고 있었고 내 최애 인형도 맞혔다.


진짜 유치원 동창 같긴 한데···,


이상한 부분이 한 둘이 아니라 말이야.


허공에 발을 동동 구르며 몸을 흔든다.


“야! 그게 말이 되냐! 믿어 주니까 밑도 끝도 없이 거짓말 치네!”

“아니! 나도 말하면서 말이 되나 싶지만 누나가 진짜 그렇게 말했다니까!”

“이게 끝까지 거짓말을!”

“누나! 그만! 그러다 떨어져!”


가로등 없는 달빛 아래의 달동네를 계속 걸어 나간다.


업혀 있는 사이에 누가 보면 연인으로 볼까.


한쪽의 일방적인 추억이라지만 계속 듣다보니 나 또한 전준웅에게 호감을 느꼈다.


“다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근데 10년도 더 된 일을 넌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는 거야?”

“내가 이런 말하긴 좀 부끄러운데···”

“뭔데, 빨리 말해봐.”


지금까지 말한 설정 놀이는 안 부끄러웠는지 귀가 빨개지며 대답에 뜸을 들였다.


“···웃으면 안 돼?”

“알았으니까 빨리 얘기해.”

“내가 천재라서 그래.”

“풉! 푸하하하!”

“아! 웃지 말라니까!!!”


나를 업은 채 방방 뛰며 부끄러움을 숨기려 하는 전준웅.


자신도 자기가 한 말이 웃긴지 얼른 부연설명을 말한다.


“이래 보여도 영재 발굴 프로젝트도 나가고 티비도 나오고 했었어. 기억 안나? 유치원에 큰 카메라가 여러 대 왔었잖아.”

“난 누구처럼 천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 하하!”

“아 진짜! 누나!”


전준웅의 말이 사실인지 설정인지 중요치 않았다.


그저 남 눈치 안 보고 대화하는 게 좋았다.


평소엔 달동네의 오르막길이 힘 빠지고 지루한 길이었는데,


오늘은 달빛이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


“간만에 웃었다. 자. 이제 됐어. 저기가 우리 집이야.”

“기왕 올라온 거 끝까지 업어 줄게.”

“야. 여기 올라 온 것도 힘든데, 됐다니까.”

“끄떡없거든!”


높은 계단 앞에 내려달라 몸을 흔들지만 전준웅은 날 업은 채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간다.


“이야아아아!!!”

“야! 조심해!”


기합소리 한 번에 쉬지 않고 계단을 끝까지 올라 집 앞에 도착했다.


“허억! 헉! 헉! 봐봐! 끄떡없다 했지!”


바닥에 철퍼덕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는,


“진짜. 웃겨.”

“히히.”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배시시 웃는 전준웅.


한 편으로는 잘해줘서 고맙고 미안하지만 내 곁에 있으면 결국 얘도···,


아니. 이제 불행에 맞서기로 했잖아.


평소와 같이 ‘밀어내야 한다.’고 여긴 찰나, 다짐이 생각났다.


더 이상 내 불행에 잃는 사람은 없게 만들 거야.


어디서 솟아난 용기인지, 반나절 사이에 불행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자신에게 위화감이 들면서도···,


그래도 긍정적인 변화잖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 웅아. 오늘은 정말 고마워.”

“별 말씀을! 나도 보고 싶던 누나를 봐서 너무 좋았어!”


구김살 없는 미소에 살짝 설렜을까.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아 얼른 전준웅의 패딩을 벗어 준다.


“패딩도 따뜻하게 잘 입었어.”

“에이. 누나, 입어!”

“야! 땀 식으면 추워! 빨리 입어!”

“그럼, 땀이 안 식으면 되겠네!”


벌떡 일어나 제자리에서 방방 뛴다.


“집에 패딩 많으니까. 누나가 내일도 입어!”


어느새 내게 패딩을 다시 덮어주고 지퍼를 올려준다.


다시 돌려주기 위해 낑낑 되던 중 전준웅은 계단을 재빨리 내려간다.


“야, 웅아!”

“누나! 내일 아침 8시까지 데리러 올 테니까 학교 같이 가자! 내일 봐!”

“야! 뛰지 마! 넘어져!”


자기 할 말만 하고 멀어져 가는 전준웅.


멀어져 안 보일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내일이라.


내일을 기약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이 기쁜 일을 아빠에게도 전하고 싶은 참에,


아. 맞다.


폐기 음식이 든 검은 봉지가 떠올랐다.


“아이 씨. 아까워라.”


평소와 달리 반지하의 계단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간다.


“아이고. 다리야. 으음···, 어?”


집에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건 항상 그래왔었는데,


잠겨 있어야 할 현관문이 잠겨있지 않았다.


끼이익.


“아빠?”


집에 들어서자마자 평소와 다름을 느꼈다.


항상 어둡고 칙칙한 집이었지만 불 킬 생각도 못한 채 집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또 다시 드는 위화감.


이번엔 매우 불쾌하고 소름이 끼친다.


“아빠. 장난치지 말고 나와 봐.”


두 눈이 어둠에 서서히 익숙해져 앞이 보일 때 쯤,


아빠가 누워 있어야 할 자리에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닭살이 돋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달빛이 새어나오는 화장실문이 꼭 여기로 안내하는 것만 같았고,


끼이익.


화장실문을 천천히 열었다.


작은 창문으로 달빛이 비친 화장실.


그 바닥엔 아빠가 쓰러져 있었다.


“아빠···, 아빠! 아빠!!!”


피 범벅인 채로.


“아빠!!! 일어나봐!!!”


쓰러진 아빠를 끌어안아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아빠를 불러본다.


살아있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갑고 딱딱한 아빠.


연거푸 흔들어 깨워도 일어날 기미는 없었다.


아빠의 손목에 있는 큰 상처가 화장실을 피범벅으로 만들었단 걸 알 수 있었고,


아무리 목 놓아 소리 지르고 울어도 아빠는 일어나지 못한 단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끄으아악!!! 아빠!!! 아빠!!!”


하지만 터져 나오는 괴성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야 내일이 오기를 바랐는데···,


난생 처음 보는 참혹한 현장이 내게 어림도 없다고 으름장을 지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죽자.』


머릿속에 오로지 죽음만이 가득 했기에,


꼭 죽음만이 모든 것의 해결책 같았다.


바닥에 눌러 붙은 식칼을 잡았다.


나도 아빠랑 같은 고통으로 죽기 위해.


식칼엔 웬 종이도 한 장 끈적하게 붙어있었다.


피에 젖어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맨 끝 문장 ‘미안하다’라는 딱 4글자만이 선명히 보였다.


“끄으아악!!!”


괴성에 가까운 비명과 함께 식칼을 내 목에 꽂아 넣으려는 순간,


거울 속 몹시 일그러진 내 모습이 눈에 담겼다.


전준웅의 패딩을 입고 피범벅인 채 서 있는 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땡그랑.


손을 발발 떨어 들고 있던 식칼을 떨어뜨렸다.


막상 죽으려니 무서워하는 자신이 한심했고,


일평생 불행한 내 인생이 억울했다.


다시 일어날 일 없는 아빠를 감싸 안고 손목을 어루만진다.


생각지도 못할 고통이었을 손목의 상처는 족히 한 뼘이 넘어 갔고,


목이 졸린 자국은 움푹 파여 있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천장엔 끊어진 밧줄과 온전한 밧줄이 매달려 있었고,


난 망설임 없이 수도꼭지를 밟아 밧줄에 목을 맨다.


“크헉! 끄으윽!”


어쩌면 더 빨리 선택했어야 할 현실이었다.


내 불행에 그 누구도 잡아먹히기 전에 선택해야 했었다.


숨이 막히다 못해 생명을 조여 오는 극심한 고통은 잠깐 정점을 찍고는 금세 사그라졌다.


달빛에 비친 현실이 어두워져 가고 온 몸의 감각도 사그라지다 느껴지지 않는다.


······.


우당탕!


“아, 안 돼! 혀, 형님! 어떡하죠! 소윤이가···”


마지막 남은 미세한 청각을 끝으로 난 죽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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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초롱(1) 24.08.30 9 0 10쪽
9 내일은 없다. 24.08.29 6 0 20쪽
» 김소윤(7) 24.08.28 7 0 8쪽
7 김소윤(6) 24.08.27 12 0 11쪽
6 김소윤(5) 24.08.26 7 0 15쪽
5 김소윤(4) 24.08.25 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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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소윤(2) 24.08.23 10 0 12쪽
2 김소윤(1) 24.08.22 14 0 15쪽
1 프롤로그 24.08.22 15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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