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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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갸.
작품등록일 :
2024.08.22 21:22
최근연재일 :
2024.09.1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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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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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윤(2)

DUMMY


“야. 피씨방 뒤 골목에 애들 쓰러져 있는 거 봤냐?”

“어디?”

“그 있잖아. 편의점 뒤에.”

“야. 그게 한 둘이냐.”


어느새 조용했던 교실이 시장 바닥마냥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


시계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엎드린 채 가만히 시간을 죽인다.


저번처럼 일어났더니 갑자기 조용해져 어색해지는 건 사양이야.


억지로 눈을 감아본다.


한 번 깬 잠은 다시 오지 않고,


가만히 있자니 심심해 주위의 대화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뭘 어떻게 해. 그냥 다른 길로 갔지.”

“풉. 쫄았냐?”

“야. 씨. 당연히 쫄지. 자세히는 못 봤어도 붉은 뱃지 달고 있던 애도 있던데.”

“걔들이 당했다고?”

“그 정도면 그 망나니 새끼들일 수도 있고. 윽.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들어 보니 내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 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는 골목이라 자주 패싸움이 일어나고 경찰이 매번 ‘순찰’만 하는 곳이기도 했다.


내가 편의점에 있었을 때 일어났나?


다행이다. 그 쪽으로 가지도 않겠지만 괜히 엮이지 않아가지고.


남자애들의 대화는 한두 명씩 더 거들면서 더욱 시끄러워졌다.


“···개 쫄보 새끼. 나 같았으면 팍! 해가지고 와사바리, 싸커 킥! 해서 마무리 했을 텐데. 그럼 한태갑한테 잘 보여서 스카웃도 되고, 뱃지 달고 인생 피는 거지.”


“풉. 말이 쉽지. 그리고 한태갑이 네 같은 좆밥을 왜 뽑냐.”


“뭐? 좆밥? 넌 평생 그렇게 찐따 마냥 살 거냐?”


“그래! 좆밥이 평생 한태갑 똥꼬나 빠는 것 보다 찐따가 낫겠다!”


“야! 야! 그만! 뒤. 뒤.”


조금 흥미가 생겨 주의 깊게 듣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소리를 낮추더니 조용해졌다.


“왜 그래. 재밌었는데. 나 신경 쓰지 말고 더 씨부려 봐. 한태갑 똥꼬 빠는 얘기.”


등장만으로도 급격히 조용해진 교실.


눈을 감고 있어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바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단 걸.


촤아악!


“으아악!!! 미안해! 세라야!”


나의 머리채를 붙잡고 흔드는 사람은 이세라.


나를 1학년 내내 괴롭히고 있는 년이다.


“하아. 허공에다가 손 흔드는 사람 처음 봐? 아니면 이 년이 보여?”


내 머리채를 잡고 적장의 목을 따 온 것 마냥 주위 애들에게 보여줬다.


“아, 아니. 아니야. 안 보여.”


적막이 흐르는 교실에서 모두가 헝클어진 머리를 한 나를 바라봤고 몇 초의 관심 후 외면했다.


“구경 다 했으면 꺼져.”

“어, 응.”


떠들었던 남자 애들이 하나 둘 주위를 떠나 교실까지 나가는 애도 있었다.


“후우. 이 년, 존나 재밌어. 얼마나 몸을 팔아 댔으면 이성재도 그렇고, 어제 일도 무사할 수가 있었을까?”

“아아앗!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금발의 머리를 쓸어 올려 자신의 분함을 표출하고 있는 이세라.


‘어제 있었던 일.’


그게 뭔데.


이유는 모르지만 난 조건반사적으로 용서를 구했다.


이성재, 이게 다 걔 때문이야.


이세라의 심심풀이 같던 괴롭힘은 어느 정도 참을 만했었다.


하지만 이성재가 껴든 때부터 괴롭힘은 고약해졌다.


아마 뺨을 맞고 있던 나를 막아섰을 때부터 시작해서,


썩은 우유를 뒤집어 써 그가 체육복을 빌려줬을 때, 죽은 매미를 먹어야 했을 때, 선배들 여럿이 몰려 왔을 때 모두 이성재가 막아 줬었다.


그런데도 이성재를 원망한다.


나 너무 쓰레기네.


원망의 대상이 애꿎은 이성재로 향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시발. 집중 안 해?”

“으악!!!”

“머릿결은 또 존나게 좋아요. 시발. 어디 미용사한테도 몸 대주나봐?”

“미, 미안해. 잘못했어. 제발 놔, 놔주세요. 윽. 흐윽.”

“또. 또. 시발. 나만 나쁜 년 만들지? 연쇄살인마 딸년 주제에, 이제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하네?”


살인마 자식.


어릴 때부터 내게 꼬리표같이 따라 붙는 수식어다.


어딜 가나 꼬리표 때문에 피해를 받아야했고,


소문은 돌고 돌아 부풀어져, 나도 사람을 죽였다고 믿는 녀석도 있었다.


아빠는 무죄라고, 법이 무죄라고 하는데.


왜···.


옛날부터 무죄를 알리고 또 알렸지만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저들에겐 추악한 변명으로 들릴 뿐, 저들은 그저 가십거리가 필요할 뿐이었다.


“네 년 애비 때문에 지금도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초등학교 때부터 매번 벌벌 떨면서 등하교를 한다고!”


더욱 거세게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 흔든다.


“그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네 장애인 애비를 탓하거나, 네 애비를 깜빵에 못 쳐 넣는 솜방망이 법이나 탓해.”


“······.”


“이게 또! 좆같은 눈깔을 부라려! 네 년은 그 눈깔 때문에 더 쳐 맞는 거야!”


그 더러운 입으로 아빠를 욕보일 때 주먹이 불끈 쥐어졌지만,


‘믿고 있는 내일만 없었다면 저 년을 콱 죽여 버렸을 텐데.’


끝내 주먹은 내지르지 못하고 속으로 삭혀야 했다.


“눈깔아!”


치켜든 그녀의 손끝이 살짝 빛나 보였다.


네일아트에 박혀 있는 보석이었다.


하도 맞다 보니 이세라의 네일아트가 뭐인지에 따라 묘하게 아픔도 다르단 걸 깨달았다.


오늘은 더 아프겠네.


“윽.”


맞기 전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렸고 고통이 없자 이상함에 서서히 눈을 떴다.


설마 또 이성재?


이성재를 원망하면서도 무의식에 이성재를 찾았다.


“누가 맞을 준비하래."


짝!


이성재는 없었고 무방비한 상태에서 때리기 위한 시간차 공격이었다.


얼얼함을 넘어 뇌까지 울리는 진동에 평소보다 더한 고통을 느꼈다.


작은 신음조차 낼 시간 없이 후속타가 오는 이세라의 손끝이 보인다.


윽.


“멈춰.”


탁!


“씨발. 뭐야?”


흔들리는 초점 속, 이세라의 손목을 잡아챈 이성재가 서 있었다.


어? 환상인가?


뇌가 만들어낸 환상인가 싶어 멍하니 이성재를 바라봤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괜찮아?”라고 물었고,


그의 물음에는 살짝 기뻐 보이는 듯, 오묘한 표정이 섞여 있었다.


“으, 어?”


언어능력을 상실한 듯 제대로 된 대답을 못하고 있자 이세라가 소리친다.


“씨발! 이거 안 놔?!”


잠깐의 침묵.


딩디리 딩딩딩.


묘한 긴장감이 감돌던 교실에 아침 조회 시간을 알리는 활기찬 종소리가 울렸다.


평소 같았으면 종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들어오는 담임인데 오늘만은 안 보였다.


“씨발년놈들이 쌍으로 지랄이야!”


종소리가 울리던 말 던 이세라는 이성재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이성재는 놓지 않았고 이세라는 강하게 저항하며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끄야악! 아아아악!!! 놔! 놓으라고!!!”


몇 번을 소리쳤지만 끝끝내 이성재는 놓지 않았다.


“먼저 소윤이 머리 놔줘.”

“씨발! 씨발! 씨발!”


이세라는 반항하며 더 강하게 내 머리채를 휘어잡았고 갑작스런 고통에 신음이 새어 나간다.


“꺄악!”


그 모습을 보고 이성재는 이세라의 양 손목을 붙잡아 강하게 움켜쥐는데.


“끄악! 씨발! 개새끼야!”


이세라는 돌고래 같이 빽빽 소리를 지르곤 내 머리채를 놓았다.


자신의 손목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세라.


“그러면 저 씨발년이 더한 것도 해준데?! 왜 지랄인건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뺨을 후리고 있던 이세라가 빽빽 소리를 질러대는 게 조금 우스워 보였다.


다른 이들도 똑같았을까.


정신 차리고 보니 복도까지 구경꾼들이 모여 있었고 저 멀리서 호통 치는 담임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기 뭐야! 빨리 교실로 안 들어가!”


이세라도 자신이 구경거리가 된 걸 깨닫고 서둘러 이 자리를 떠나려 한다.


“카악! 퉷! 이성재 너 실수한 거야.”

“저, 저! 야! 이세라!”


이세라는 내 얼굴에 침을 뱉고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 나간다.


“이 씨발! 구경났어?! 꺼져! 꺼지라고!”


이세라의 욕하는 소리가 멀어져 가는 걸 따라가려는 이성재.


그의 소매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연다.


“제, 제발. 이제 그만. 너 때문에···”


또 도와준다는 이성재를 밀어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푸념, 원망, 질타 등 내 감정을 쓰레기통 마냥 이성재에게 내뱉는데.


“···찐따 하나 잘 해줘서 어떻게 한번 해 보려고···”


아 이게 아닌데.


주위의 따가운 시선들이 피부로도 느껴졌다.


수치스럽고 나불대는 주둥아리를 닥쳐야 한단 걸 알지만 어렵게 열린 주둥아리는 쉽게 닫히지 않았다.


“···착한 아이 코스프레라도 하는 거야? 그러면 좀 우월감이 느껴져?”


좀 닥쳐. 고맙다 말하지는 못할망정.


이제 똑같은 찐따 동료인데 선배로서 잘해줘야지.


속마음과 반대되는 말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냥 한두 대 더 맞고 끝 날 일을···, 왜 책임지지도 못하는 걸, 일만 더 크게 키우고 지랄인건데.”


묵묵히 듣고만 있던 이성재가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지더니 날 지그시 바라봤다.


그렇게 나불대던 입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더 이상 할 말이 있어도 내뱉지 못했다.


“조용! 오늘따라 왜 더 지랄이니. 각자 교실로 안 들어가!”


담임이 교실로 들어오자 우리를 구경하던 시선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이성재는 말없이 내게 천천히 손을 뻗었고 얼굴에 묻은 이세라의 침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침묵을 유지하던 이성재가 말을 하는데.


“책임질게. 걱정하지 마.”

“하?”


엥?


생각지도 못한 이성재의 대답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듣는 이는 아까보다 줄었어도 우리 주변에 사람들은 이성재의 말을 똑똑히 들었을 터.


손발이 오그라들고 낯간지러운 말이지만 평소 모범생 이미지 덕분인지 딴지 거는 이는 없었다.


탁! 탁!


“야이 씨. 반장이 서 있으면 어떻게 해! 빨리 자리에 가서 앉아!”

“네.”


탁상을 출석부로 내리쳐 담임이 존재를 알렸고,


담임 뒤로 용지 더미를 들고 있던 김민지가 날 노려본다.


좋아하는 거 아니다?


소꿉친구 사이에 낀 눈치 없는 빌런이라 생각하는 걸까.


김민지의 매서운 눈초리를 애써 외면했다.


그 후 자리에 앉아 출석을 불리는 걸 기다렸고, 이윽고 내 이름이 호명 된다.


“···김소윤.”


대답을 해야 하는데 넋 놓고 있다 대답이 늦어진다.


“네.”

“김소, 하아. 김현동.”

“네.”


출석 호명은 이어졌고 그 이후 전달 사항을 말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책상에 또 엎어져 존재감을 지울 뿐이었다.


“받아.”


앞자리에서 용지가 넘어와 용지를 받고 담임이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오늘부터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 기간이니까. 받은 설문지에 없음으로 다 체크하고 맨 밑에 학년, 반, 이름 쓰고 앞으로 넘겨.”

“하.”


맞다. 이게 현실이지.


이성재, 찐따 친구 하나 생겼다고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담임은 알고 있었다.


담임뿐만 아니라 이 학교 모든 이가 다 알고 있었다.


이세라의 만행들을, 내가 당했던 모든 일들을 다 알고 있었다.


학교에 경찰이 왔을 때가 생각나네.


그때 담임이 나한테 쓰라했던 반성문, 뭐라고 썼더라.


내가 백날 천 날 떠들어도 바뀌는 건 없다.


더욱 괴롭힘이 심해질 뿐이었다.


설문지에 쓸 내용을 정한다.


좆 까.


욕설로 도배 후 이름은 ‘이세라’로 쓰고 설문지를 앞으로 넘겼다.


그때도 욕이나 한바가지 쓸걸.


책상에 얼굴을 다시 한 번 파묻었다.


답 없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자 스르르 잠에 빠진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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