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레이트의 미친놈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새글

량주
작품등록일 :
2024.08.23 12:18
최근연재일 :
2024.09.19 08:2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00,620
추천수 :
2,722
글자수 :
137,240

작성
24.09.17 08:20
조회
2,574
추천
106
글자
12쪽

주전 포수 (4)

DUMMY

“코치님.”

“왜.”

“라이언, 더 던지고 싶대요.”

“···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코치님.


“인센티브?”

“아뇨.”

“···불펜이 미덥잖대?”

“그것도 아니에요.”

“그럼.”


나는 솔직히 말했다.


“그냥 더 던지고 싶대요.”

“···라이언이? 그런 말을 했다고?”


이해된다.

라이언이 어떤 말을 듣는지 아니까.


실력은 나무랄 데 없어서 올해도 계약했으나 투구 수 90개만 되면 철저히 선을 그었다.


‘아무리 포장해봐야 나는 용병이다. 용병. 무리하다가 다치면 누가 책임지나? 엉?’


성격 더럽고 90개만 던지면 칼같이 내려가는 고슴도치.

그래도··· 지금 마음에 거짓은 없었다.


“네. 불 제대로 붙었어요. 몸도 괜찮고, 포심도 살아있습니다. 가능합니다.”

“······알았다. 감독님께 말하마.”


보고 받은 감독님은 통역과 나를 부르더니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OK 하셨다.


-아, 맷 라이언이! 맷 라이언이 8회도 올라옵니다! 투구 수가 91개인데 올라오네요! 이건 처음 아닌가요?!


“···웬일이래.”

“감독이 갈궜나?”

“지랄. 그런다고 들을 놈이냐?”


팬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가운데 마운드로 향했다.

남은 타자와 주의해야 할 점을 다시 짚는데 라이언이 물었다.


“······야.”

“?”

“안 묻냐? 괜찮냐고?”


무슨 소린가 했더니.


“천하의 라이온이 왜 그래. 포수인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쫄리면 내려가던가.”

“···미친 새끼. 격려는 안 하고.”

“그럼 평소에 잘하던가. 위닝샷은 알지? 포심이다.”


자리로 돌아가 숨을 골랐다.


라이언이 91개 넘게 던지는 건 이번이 처음. 그러니까 상대도 나도, 지금부터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래서일까.

상대 타자는 초구는 지켜봤다.


뻥!!


-149.2! 초구는 스트라이크입니다!!

-구위는 여전히 좋네요. 8회에 올린 이유를 알겠습니다.


구속은 살짝 떨어졌으나 여전히 묵직했고 끝 움직임도 좋았다.

계속 가도 된다.


따악!

딱!!


우리 의도를 알아챘는지 연거푸 대응하는 타자. 3구 연속 포심에 2구 연속 파울이라 변화구로 하나 뺄 법도 하나 나는 밀어붙였다.


부웅!!


-헛스윙! 삼진!! 높은 포심에 방망이가 헛돕니다!!

-이야··· 공 좋네요. 공 좋아요. 무엇보다 방금은 리드가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가요?

-네! 라이언 하면 커브와 슬라이더 아닙니까. 게다가 지금은 8회고요. 투 스트라이크라 하나 정도는 뺄 법한데 여기서 하이패스트볼··· 흐름 좋습니다. 좋아요!


“후···.”


검지를 까딱거리는 라이언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


라이언이 8회를 세 타자로 끝내자 팬들의 응원은 뜨거워졌다.


“그래! 새끼야!! 할 수 있으면서 왜 안 했어?!”

“지금까지 욕해서 미안하다!!! 유니폼 하나 살게!!!”

“개새끼야!! 사랑한다!!!”


90개만 던지면 칼같이 내려간다고, 저러니까 용병 소리 듣는다며 욕먹던 투수의 혼신의 피칭.


피닉스 팬들 가슴은 뜨거워졌고 고척돔엔 라이언의 이름이 크게 울려 퍼졌다.


-라이언 선수 응원콜은··· 처음 아닌가요?

-······.


현재까지 8이닝 2실점 102개.

이 정도만 해도 100% 제 몫을 다 했으나 라이언은 무려 9회에도 올라왔다.


-맷 라이언!! 9회에도 올라옵니다! 102개를 던진 맷 라이언이 9회에도 올라옵니다!!!


“······미친. 진짜?”

“저 새끼··· 아니 라이언 뭐 잘못 먹음?”

“포수? 감독? 진짜 뭐지.”


당혹스러운 건 파이터즈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마무리 마종수가 나올 줄 알았는데 라이언이라니.


“감독님.”

“흠. 기회다. 수는 다 써보자고.”


파이터즈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타로 나온 첫 타자는 땅볼 아웃이나 파이터즈는 1번 임상원도 빼고 대타를 내세웠다.


-연속 대타네요? 그것도 임상원을 뺍니다!

-수는 다 써야죠. 전부 다.


대타로 나온 한윤구는 텍사스성 안타로 기어코 살아나갔고, 2번 김민관은 6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나갔다.


-1사 1, 2루입니다. 1사 1, 2루.

-바꿔줘야겠네요. 다음은 마이크 디포트 아닙니까? 넘어가면 동점입니다.


강마루는 타임을 요청했고 감독도 마운드로 향했다.


“맷. 괜찮나?”

“······.”


말이 없는 라이언.

강마루는 대신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라이언.


“흠. 그래? 근거는?”

“없습니다.”

“···없다고?”

“네. 감입니다. 지금은 더 던지는 게 맞다고 봅니다.”


투수와 포수를 번갈아 보던 감독은 고개를 끄덕인 뒤 내려갔다.


“너 미쳤냐? 네가 뭔데 멋대로···.”

“그럼 도망칠래?”

“뭐?”

“도망칠 거냐고.”


강마루는 거칠게 답했다.


“핑계 대지 말고 가자. 한 점도 아니고 석 점 차잖아.”

“···홈런 맞으면.”

“그래봤자 동점 아냐? 아웃 카운트 두 개만 더 쌓자. 내가 9회 말에 끝내기 칠게. 그럼 완투승 맞지?”

“······.”


자리로 돌아가는 강마루를 보며 맷 라이언은 속으로 욕했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지.

홈런 맞아봐야 동점이라고? 자기가 끝내기 칠 테니 그냥 가자고?


마이너리그, NPB에서 뛰었으나 저딴 식으로 말하는 포수는 아무도 없었다.


무모하고 정신 나간 말이나··· 왠지 모르게 속은 후련했다.


‘그래. 씨발. 가보자. 가보자고. 큰 거 맞아도 동점 아냐!’


라이언은 숨을 고른 뒤 자세를 잡았다.

상대는 3번 타자 마이크 디포트.


좌투좌타에 발 느리고 타율은 낮으나 대신 타격 시 힘을 넣을 줄 알았다.

타구 분포 비율은 좌측보단 우측. 즉 당겨치기에 능했다.


-그대로 가네요. 그대로 갑니다. 마종수가 안 올라오고 라이언이 계속 던집니다.

-도박이네요. 3점 차라 해도 위험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넘어갈 수 있어요.


더그아웃 사인을 받은 강마루는 야수 위치를 조절했다.

중견수 도규철은 우익수 쪽으로.

우익수 백성균은 더 깊은 곳으로.

2루수 문유식은 더 뒤로.


-시프트는 당연합니다. 타구 분포도가 극단적이니까요.


파이터즈는 작전도 고민했으나 자제했다.

1점이라면 몰라 지금은 위험했다.


만약 더블 스틸에 성공해서 1사 2, 3루가 됐다 치자. 그럼 필연적으로 1루를 채울 거고 병살 위험 또한 커진다.


마이크 디포트는 발이 느리니까.


‘···외야수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


남은 야수를 보며 혀를 찼다.

외야는 없고 내야만 있었다.


여기선 디포트를 믿을 수밖에 없다.

타자의 타구가 시프트를 뚫던가 담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피닉스 배터리였다.

당연히 교체 타이밍인데 왜 그대로 갔을까? 마종수가 못 던지는 것도 아닌데 왜?


더 이상한 건 투수와 감독의 반응이었다.

당연히 키는 두 사람이 가졌을 텐데 어째 강마루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거 같았다.


그 정도로 신임을 받나?

고작 데뷔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신인 포수인데?


뻐엉!!


-초구!! 들어갔습니다!!!

-과감하네요! 정말 과감합니다! 초구부터 재지 않고 존에 집어넣네요!!


좌타자 디포트 몸쪽에 꽂힌 포심.

생각지도 못한 초구에 디포트는 혀를 찼다.


실투? 아니다. 목적성을 가졌다.

저놈들, 정면으로 덤빌 생각이다.


파이터즈 감독 이웅천은 히팅 사인을 보냈고, 디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따악!!

딱!!


이어지는 파울.

타구들이 날카롭게 뻗었으나 맷 라이언도, 강마루도 물러서지 않았다.


‘뭐지? 왜 계속 포심? 변화구 빌드업?’


맷 라이언의 투구 수는 이미 120개를 넘겼다. 최고 150 중반을 찍던 포심은 140 중후반으로 떨어졌고 숨도 거칠어졌다.


그런데도 라이언은 포심만 던졌다.


“뭐 하냐고!! 씨발 지금 뭐 하냐고!! 그걸 못 쳐?!!”

“구속도 떨어졌는데 왜? 커브도 안 던지잖아!!!”


답답했는지 외치는 파이터즈 팬들.

반면 피닉스 팬들은 목을 쥐어짜며 외쳤다.


“삼진!! 삼진!!! 삼진!!!!”

“삼진!! 삼진!!! 삼진!!!!”


비 오듯 땀 흘리던 라이언은 대충 소매로 닦은 뒤 강마루의 사인을 기다렸다.

단박에 고갤 끄덕이는 투수와 자세를 잡는 포수.


“흡!!!”


기합과 함께 팔을 휘두르는 라이언.

몸쪽 깊은 포심에 배트를 휘두르는 디포트.


쩍!


묘한 소리와 함께 배트는 두 동강 났고, 타구는 포수 바로 앞에 떨어졌다.


-타구! 포수 정면으로! 강마루가 2루를 향해 던집니다!! 유격수 황금민!! 잡아서 1루로!! 병살!! 경기 끝!! 서울 피닉스가 이겼습니다!!! 맷 라이언이! 커리어 첫 완투승을 기록합니다!!!


“됐다!!!!”

“으아아아!!”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는 피닉스 팬들.

그 순간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졌다.


모자를 벗은 라이언은 글러브를 힘껏 던진 뒤 강마루에게 달려가 껴안았다.


“보고 있냐 개새끼야!! 보고 있냐고!!!”


그러더니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욕하는 라이언. 무슨 짓인가 싶으면서도 말릴 수 없었다.


정말 기분 좋아 보였으니까.


***


1사 1, 2루에서 극적인 병살로 승리.

8위와의 맞대결인 만큼 더 뜻깊었다.


0.5게임이 아니라 1게임이나 줄었으니까.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중요한 3연전 첫 경기에서 정말 뜻깊은 승리를 거두었는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에헴! 어흠. 그럼···.”


품에서 메모를 꺼내는 조덕출과 빵 터진 기자들. 이젠 익숙해졌는지 다들 웃으며 기다려줬다.


“첫 번째는 역시 라이언이죠. 힘들 법한데도 정말 잘 던져줬습니다. 123구 던졌죠? 다른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봅니다.”

“감독님!”

“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뭐든지 물어보셔도 됩니다. 로또 번호 빼고요.”


웃는 사람들. 기자는 용기를 냈다.


“마지막에 마운드 올라가셨을 때, 강마루 선수가 리드하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사실인가요?”

“우리 팀 포수니까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기자들을 둘러본 조덕출은 덧붙였다.


“답변이 재미없나 보네요.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말씀드리면 될까요?”

“···어떤.”

“저는 마루한테 맡겨도 된다고 봅니다. 주장처럼.”

“······네?”

“말 그대로입니다. 용범이가 전적으로 리드하지 않습니까? 마루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마루 잘하는 거 모르는 사람 없다.

누군가는 미래의 국대 포수라 외쳤고

또 누군가는 미래의 MVP라 외쳤다.


전반기가 슬슬 끝을 향해가는 현재, 피닉스의 최대 히트 상품이 강마루인 거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리드는 별개였다.

카이저스의 윤정호나 피닉스의 하용범.

넓게 쳐도 슬러거즈의 이진환에게만 허락되는 단독 리드를 신인 포수가?


“물론 부족한 거 많죠. 많습니다. 아직 단독 권한을 주기엔 이르죠. 근데 기자님들도 보셨죠? 우리 팀 투수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


기자들은 선수 동향에 누구보다 민감하다.

기사 하나라도 더 올리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운다.


그리고 최근 피닉스 담당 기자들은 같은 말을 들었다.

점점 강마루를 선호하는 투수들이 늘고 있다고.


“마음 같아선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은데··· 안 되겠죠? 기자님들도 퇴근하셔야 하니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휴. 저야말로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고생 많으신데. 빨리 마무리하고 퇴근해서 소주 한잔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


그 시각 서울 카이저스 감독 황동진은 고민 중이었다.


오늘 경기 복기, 내일 라인업도 있었으나 가장 큰 건 올스타전 추천 선수였다.


작년 정규시즌 1위였던 만큼 감독 추천 선수를 선발해야 했는데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짓도 못 해 먹겠구먼. 우리 팀이면 몰라도.”


그건 그렇다.

상대 팀 선수를 뽑는 만큼 사전 교감은 필수였고 숫자 분배도 신경 써야 했다.


부상 여부 파악, 포지션 배려, 팀별 숫자 배려.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렸으나···.


“음. 이건 쉽지. 이건 쉬워.”


황동진은 간만에 미소를 띠었다.

바로 포수 자리였다.


“우리 팀이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펜을 움직이는 황동진.

강마루의 올스타전 출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홈플레이트의 미친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했습니다. 24.08.27 258 0 -
공지 연재 시간은 매일 오전 8시 20분입니다. 24.08.23 2,368 0 -
26 8위를 향해 (2) NEW +8 23시간 전 1,762 103 12쪽
25 8위를 향해 (1) +6 24.09.18 2,313 102 12쪽
» 주전 포수 (4) +5 24.09.17 2,575 106 12쪽
23 주전 포수 (3) +7 24.09.16 2,813 98 12쪽
22 주전 포수 (2) +4 24.09.15 2,815 87 12쪽
21 주전 포수 (1) +4 24.09.14 2,923 90 12쪽
20 달라진 위상 (4) +5 24.09.13 2,956 105 12쪽
19 달라진 위상 (3) +7 24.09.12 3,139 98 11쪽
18 달라진 위상 (2) +4 24.09.11 3,274 105 13쪽
17 달라진 위상 (1) +5 24.09.10 3,376 103 12쪽
16 탈꼴찌를 향해 (3) +6 24.09.09 3,375 104 12쪽
15 탈꼴찌를 향해 (2) +7 24.09.08 3,505 105 11쪽
14 탈꼴찌를 향해 (1) +3 24.09.07 3,550 99 12쪽
13 늘어나는 기회 (3) +7 24.09.06 3,556 100 12쪽
12 늘어나는 기회 (2) +5 24.09.05 3,706 94 12쪽
11 늘어나는 기회 (1) +7 24.09.04 3,815 109 12쪽
10 첫 선발 출장 (3) +4 24.09.03 4,024 103 12쪽
9 첫 선발 출장 (2) +6 24.09.02 4,149 107 12쪽
8 첫 선발 출장 (1) +3 24.09.01 4,311 98 12쪽
7 갑작스러운 데뷔 (3) +4 24.08.31 4,616 101 13쪽
6 갑작스러운 데뷔 (2) +8 24.08.30 4,785 113 12쪽
5 갑작스러운 데뷔 (1) +4 24.08.29 4,867 112 12쪽
4 1군으로 (3) +3 24.08.28 5,091 115 11쪽
3 1군으로 (2) +9 24.08.27 5,444 115 12쪽
2 1군으로 (1) +5 24.08.26 6,356 123 12쪽
1 프롤로그 +7 24.08.26 7,505 127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