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레이트의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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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주
작품등록일 :
2024.08.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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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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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포수 (2)

DUMMY

그 시각, 족저근막염 부상으로 재활 중인 하용범도 경기 관람 중이었다.


-양 팀 선발 모두 호투 중이네요!

-그렇습니다! 나란히 5이닝 1실점! 카이저스의 조민혁도, 피닉스의 소주환 선수도 잘 던지고 있습니다!


리그 최강 카이저스를 상대로 1승 1패.

게다가 오늘 3차전도 박빙 승부.


꼴찌 팀도 1위를 잡는 게 야구의 변수이자 매력이지만, 최근의 피닉스는 옛날과 달랐다.


-교체 아닙니다. 교체 아니에요. 조민혁 선수가 계속 던집니다!


스코어 1 대 1에 6회 초 2사 1루.

타석에 들어선 강마루는 조민혁의 서클체인지업을 그대로 걷어 올렸다.


-역저어어언! 투러어언!!! 강마루! 또 강마루입니다!! 강마루의 홈런 퍼레이드는! 오늘도 이어집니다!!!


미친 듯이 환호하는 피닉스 더그아웃과 환한 얼굴로 루를 도는 강마루.

그러자 아내 차현주가 다가왔다.


“또 쳤어? 그럼 지금···.”

“8개.”

“시즌 끝날 땐 20개 치는 거 아냐?”

“전제조건이 있다.”


하용범은 담담하게 말했다.


“변화구 타이밍이 여전히 늦다. 실전에서 몸 풀리는 타입이라 초반엔 힘들어.”

“방금 공도 변화구 아냐?”

“손해 보고 있단 뜻이다. 힘과 감각은 확실히 좋으니까. 조금만 개선하면 30개도 가능하다.”

“······.”


차현주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남편이 다른 선수를 칭찬하다니.


메이저리거나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선수들 칭찬은 있었으나 신인한테는 이러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남편은 분명히 말했다.


조금만 더 개선하면 30개도 된다고.

그 숫자를 달성하려면 강마루는 시즌 끝날 때까지 계속 선발로 나와야 한다.


즉 피닉스의 주전 포수는 하용범이 아니라 강마루란 뜻이 된다.


“당신, 아쉽지 않아?”

“어떤 점이.”

“이대로면 새파란 신인이 당신 자리를 빼앗아 가는데?”


하용범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은 틀렸다.”

“···틀렸다고?”

“이름값 높다고 팀이 이기나? 제일 중요한 건 실력이다. 게다가.”

“?”

“강마루가 못 하면 내가 그 자리에 가면 된다. 그뿐이다.”


하용범은 그런 사람이었다.

엄격했으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름값보단 팀 승리를 중요시했다.


“···만약에 강마루가 계속 잘하면.”

“환영해야지. 재능은 확실한 놈이니까.”


평생 주전이었던 남편이 백업.

그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나 차현주는 토로하지 않았다.


그만큼 하용범은 야구와 피닉스를 사랑했으니까.


***


역전됐으나 카이저스는 카이저스였다.

6회 말, 한 점 따라붙은 카이저스는 기어코 8회 말에 동점을 만들었다.


-송정우!! 동점 적시타! 송정우가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2사 2루에서 바깥쪽 슬라이더를 툭 밀어쳐서 3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


존에서 한참 벗어난 공을 외야로 보내자 다들 탄식했다.


“미친 새끼.”

“와··· 저걸 쳐? 저걸?”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나 강마루는 재빨리 투수를 다독였다.


-강마루 선수가 웃으며 마운드로 향하네요.

-실투가 아니다 이거죠. 근데 말이죠. 몇 번이고 말씀드렸는데 강마루 선수 참 잘합니다. 정말, 신인답지 않아요.

-자세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를 들면 말이죠. 맞출 줄 알아요.


해설위원은 정리했다.


누군가에겐 웃고

누군가에겐 묵묵히 듣기만 하고

또 누군가에겐 엄격히 따졌다.


-투수 성격에 맞춰 리드하는 거죠. 다 다르니까요.

-저러면 투수로서는.

-당연히 좋죠. 당연히. 경기 중 투수가 제일 의지하는 게 누굽니까? 대화는요? 결국 포수거든요.


9회 초 2사.

피닉스의 정규 이닝 마지막 찬스가 찾아왔다.


-2, 3루입니다. 2, 3루! 그리고 타석엔··· 애드리언 킹입니다!


“안타!! 안타!! 안타!!”

“삼진!!! 삼진!!! 삼진!!!!”


따악!!


외야로 멀리 뻗어가는 타구.

피닉스 팬들은 손을 번쩍 들었으나 카이저스의 중견수는 KBO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왕대현이었다.


팡!


-잡았습니다!! 왕대현이 미끄러지면서 잡았어요!! 카이저스! 위기에서 탈출합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수비였다.

높은 확률로 빠졌을 공을 슬라이딩 캐치로 포구.


왕대현의 모자가 허공에 날리자 카이저스 팬들은 미친 듯이 소리쳤고 피닉스 선수들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저 새끼 모자 또 큰 거 썼네.”

“왕재수.”

“밥맛 없는 놈.”

“···근데 잘하긴 진짜 잘한다.”


경기는 연장으로 돌입했고 11회 초, 안타로 출루한 강마루는 대주자로 교체됐다.


“마루야 고생했다.”

“고생했어.”

“···고생 많았다 진짜.”


강마루를 다독이는 선배들.

선발로 나와 멀티 히트에 홈런 하나.

그리고 10회까지 포수 마스크.


오늘 강마루는 1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는 강마루를 보며 도규철이 물었다.


“야, 괜찮냐.”

“아뇨. 힘드네요.”

“······그래?”

“네. 하늘 같은 선배님이 사주시는 커피 한잔이면 바로 나을 거 같은데.”

“···걱정한 내가 바보지. 바보.”


11회 말 포수 마스크는 양창훈이 썼다.

선두 타자는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준 왕대현.


“안타 하나 쳐주세요! 왕!대!현!!”

“카이저스 날쌘돌이 왕대현!! 안타! 안타!!”


어찌나 응원이 큰지 귀가 먹먹한 가운데, 왕대현은 초구 기습번트를 시도했다.


딱.


3루로 구르는 타구와 미친 듯이 뛰는 왕대현. 포수 양창훈이 재빨리 마스크를 벗고 달려들었으나 대형 사고가 터졌다.


-아!! 송구가 벗어났어요! 송구가 벗어났습니다!!! 그 틈에 왕대현! 2루로! 2루로 들어갑니다!! 세잎! 왕대현이 2루에 들어갑니다!!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투 볼 원 스트라이크. 땅에 떨어진 포크볼은 포수 무릎에 맞고 옆으로 튀었다.


-왕대현! 3루로 들어갑니다! 세잎!! 무사 3루!! 서울 카이저스가 끝내기 찬스를 잡습니다!!!


“야이 개좆같은 새끼야!!!!”

“씨발놈아! 니가 포수냐?! 포수냐고!! 허수아비를 세워도 너보단 낫겠다!!!”


쏟아지는 욕.

반면 카이저스 팬들은 환호했다.


“나이스 블로킹!! 창훈아 고맙다!!”

“훈아! 다음에 우리 가게 와라! 형이 크게 한턱 쏜다!!!”


결국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피닉스는 아쉽게 위닝 시리즈를 놓쳤고, 카이저스는 한숨 돌리며 1위 자리를 굳혔다.


아쉬운 귀갓길.

어떤 피닉스 팬이 중얼거렸다.


“···아까 했던 말 취소.”

“강마루 홈런 빨이라고 했던 거?”

“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말했잖아. 수비도 좋다고.”

“그러니까. 무슨 1이닝 만에 게임 터지냐.”


이날 경기 이후로 양창훈 주전 포수론은 쏙 들어갔다.


***


경기가 끝난 카이저스 선수들은 웃으며 퇴근 준비했다.


리그 9위 피닉스 상대로 2승 1패.

스윕이 아닌 건 아쉬웠으나 루징보다는 훨씬 나았다.


루징은 마이너스 1이고 위닝은 플러스 1이니까. 나이츠와 호크스가 언제 올라올지 모르는 만큼 최대한 게임 차는 벌려야 했다.


그런 와중에 감독 황동진은 인터뷰에 나섰다. 기자들과 친한데다 이긴 만큼 분위기는 좋았다.


“오늘 승부처는 어디라고 보십니까?”

“역시 9회 초 2사죠. 왕대현 선수가 팀을 구해냈습니다.”

“그 와중에 모자도···.”

“아 그거요. 몇 번 말했는데 더럽게 말 안 듣습니다. 루틴이라나 뭐라나. 저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황동진은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커 감독이라 불릴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는 황동진은 어디서든 믹스커피를 애용했다.


“윤정호 선수도 대단하지 않았나요? 3안타에 2타점. 마지막 끝내기 안타도 쳤고요.”


그건 그렇다.

KBO 넘버 원 포수 윤정호는 공수 양면 모두 완벽한 활약을 펼쳤다.


“잘했죠. 우리 팀 전력의 절반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인터뷰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혹시.”

“하하하. 아뇨. 부상은 아닙니다. 전력분석실에 가 있거든요.”


전력분석실?

진 경기도 아니고 이긴 경기에?


“열 받았다고 하더군요.”

“···어떤 점이.”

“오늘 경기 유일한 홈런, 기억하시죠?”


강마루가 때린 대형 투런이었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당장 달려가더군요. 뭐 더 말씀드리고 싶은데··· 감독이 다른 팀 선수 칭찬하면 되겠습니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차라리 이럴 거면 말을 하지 말던가.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는 황동진을 보며 아쉬워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웃으며 일어난 황동진.

퇴근 준비를 끝내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윤정호가 나타났다.


“왜. 밥 사달라고?”

“아뇨. 말씀하셨더군요.”

“말해? 내가? 강마루의 기역도 안 꺼냈는데?”

“기자들이 바보인 줄 아십니까.”


그 말에 황동진은 웃었다.


“정호야.”

“네 감독님.”

“아까 민혁이가 던진 공 있지?”

“써클 체인지업 말씀이십니까?”

“그래. 넌 몇 점짜리라 보냐?”


윤정호는 상황을 복기했다.


6회 초 2사 1루.

조민혁은 3구 연속 슬라이더를 던졌고 카운트는 투 볼 원 스트라이크.


강마루는 조민혁의 잘 떨어진 서클 체인지업을 걷어 올려 잠실 담장을 넘겼다.

홈런 맞았으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100점입니다.”

“그래? 그럼 다음 질문. KBO 타자 중에 그 공을 넘길 사람, 몇 명이나 있을까.”


몰린 공도 아니었고 덜 꺾이지도 않았다.

우타자 발 쪽으로 꺾인 역회전 공.

그런 공을 안타가 아니라 홈런? 그것도 잠실 상단에?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몇 명 없겠지. 우연? 웃기는 소리. 가운데 몰린 포심도 아니고. 게다가 알지? 강마루 홈런 페이스.”


그렇다.

지금 페이스면 20개는 당연하고 30개도 노릴 수 있었다.


아니, 그걸 떠나 11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강마루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적어도 피닉스는 어이없게 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왜 강마루 얘기를 했을까? 그것도 널 끌고 와서. 그냥 잘했다고 하면 끝날 일인데.”


황동진은 캔 커피를 홀짝였다.


“···저를 통해 경고하신 거 아닙니까?”

“정답. 난 욕심이 많거든. 2승 1패? 위닝시리즈라고? 자칫했다간 우리가 질뻔했는데?”


그건 그렇다.

1차전 0 : 2 패배

2차전 3 : 2 승리

3차전 4 : 3 승리


통합 우승 3연패를 자랑하는 서울 카이저스는 19살 포수가 주전인 9위 팀에게 간신히 이겼다.


“속이 쓰리다. 쓰려. 우리 카이저스가 고작 신인 포수에게 애먹을 줄은. 내가 뭐라 했지만 너는 우리 팀 전력의 반이다. 그것만 알아줬으면 한다.”

“······감사합니다. 다만 하나.”

“?”

“커피만 줄이셨으면 합니다.”

“···마누라도 안 하는 잔소리를.”

“사모님 몫만큼 제가 더 하겠습니다.”


황동진은 질색하며 자리를 떠났다.


***


며칠 뒤.

카이저스전에서 아쉽게 루징시리즈를 기록했으나 피닉스도 좋은 소식이 있었다.


[서울 피닉스, 새 외국인 투수 로날드 덕 영입!]

[좌투좌타에 빠른 포심과 다양한 변화구를 자랑! 다음 주부터 출전!]

[선발진에 숨통 트여··· 조덕출 ‘큰 힘이 될 거라 믿는다. 정확한 등판 일정은 입국 후 결정.’]


또 소식이 있었다.


[국대 포수 하용범 1군 복귀!]

[하용범 ‘뛰는데 문제없다. 팀 승리를 위해 힘쓸 것.’]


그런 가운데 고척돔.

파이터즈와의 홈 3연전을 앞두고 감독을 비롯해 프런트, 코칭 스태프가 모였다.


이런저런 안건이 있었으나 가장 큰 건 포수 자리였다.


이대로 강마루에게 선발 자리를 맡길 것인가. 아니면 복귀한 하용범에게 돌려줄 것인가.


만약 한 달 반 전이면 당연히 후자였으나 지금은 조금 사정이 달라졌다.


강마루는 어느샌가 팀 중심으로 거듭났고, 족저근막염의 특성상 계속 관리해줘야 하니까.


그렇다고 하용범의 커리어와 경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만약 하용범이 백업으로 물러나면··· 주장으로서 자리도 애매할 테니까.


회의가 시작되자 조덕출은 하용범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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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탈꼴찌를 향해 (1) +3 24.09.07 3,508 97 12쪽
13 늘어나는 기회 (3) +7 24.09.06 3,510 98 12쪽
12 늘어나는 기회 (2) +5 24.09.05 3,664 92 12쪽
11 늘어나는 기회 (1) +7 24.09.04 3,777 107 12쪽
10 첫 선발 출장 (3) +4 24.09.03 3,982 101 12쪽
9 첫 선발 출장 (2) +6 24.09.02 4,108 105 12쪽
8 첫 선발 출장 (1) +3 24.09.01 4,271 96 12쪽
7 갑작스러운 데뷔 (3) +4 24.08.31 4,574 99 13쪽
6 갑작스러운 데뷔 (2) +8 24.08.30 4,746 111 12쪽
5 갑작스러운 데뷔 (1) +4 24.08.29 4,827 110 12쪽
4 1군으로 (3) +3 24.08.28 5,047 113 11쪽
3 1군으로 (2) +9 24.08.27 5,398 113 12쪽
2 1군으로 (1) +5 24.08.26 6,311 1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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