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레이트의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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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주
작품등록일 :
2024.08.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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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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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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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선발 출장 (1)

DUMMY

경기 끝나자마자 통보받았다.


‘내일 선발은 너다. 잘 부탁하마.’


1군 온 지 2주도 안 돼서 첫 선발 출장.


기분이 묘했다.

즉 처음부터 내가 마스크를 쓴단 뜻이었다. 선발 투수와 함께.


지금 뭐 해야 할까.

상대 분석? 볼 배합 연구?


다 좋으나 첫 번째는 역시.


-나 : 내일 선발 확정ㅇㅇㅇㅇ!!

-나 : 칭찬 안 해도 됨

-나 : 나도 내가 천재인 거 아니까


별이는 뭐라 반응할까.

일단 진짜냐고 되물은 뒤 잔소리하겠지.


뭐라 해도 좋았다.

어떤 말도 좋았다.

그저··· 별이랑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위잉.

위이잉.


기다렸다는 듯이 울리는 휴대폰.


“···진짜 귀엽다.”


창원으로 가는 버스 안.

나는 웃으며 별이와 카톡을 주고받았다.


***


창원 드래곤즈는 신흥 강호.

카이저스와 더불어 리그 최강을 자랑하는 선발진이 가장 큰 무기였다.


선발에 비해 언급은 덜 되나 신구 조화가 잘 된 타선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라커룸에 없었다.


“주환이? 지금 어디 짱 박혀서 자고 있을걸?”

“루틴인가요?”

“루틴? 루틴이라··· 글쎄. 그건 너무 포장 같은데.”


다들 답변이 비슷했다.

주환이 그놈은 원래 그렇다.

그 형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상대하기 영 까다롭다고.


그냥 철부지 형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아우··· 왜 이렇게 귀가 가렵나 싶더니.”


소주환 선배였다.

몇 년째 우리 팀 에이스로 활약 중인.


“선배님! 오셨습니까!”

“오··· 역시 신입은 좋구먼. 근데 그놈의 선배 소리는 안 하면 안 되냐. 징그럽게. 형이라 불러.”

“주환이 형.”

“태세 전환 빨라서 좋고.”

“그럼 형 볼 배합은···.”


하지만 소 선배··· 아니 주환이 형은 고갤 저었다.


“볼 배합? 됐어.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돼. 그냥 쉬어. 긴장될 텐데.”


그러자 지켜보던 배 선배가 끼어들었다.


“얀마. 처음이니까 그래도 얘긴 해야지.”

“아우··· 형도 진짜. 너무 뭐라 하지 마. 이런 투수도 겪어보고, 저런 투수도 겪어보고 그래야지. 어쨌든 5이닝 막으면 되는 거 아냐? 아까 저쪽 애들 배트 돌리는 거 봤는데, 3점 안으로 막을 수 있겠더라.”


단숨에 뱉어낸 주환이 형은 설렁설렁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하, 진짜. 어쨌든 봤지. 저런 놈이니까 너도 너무 힘줄 필요 없어. 열 낼 필요도 없고.”


아마추어 때, TV 너머로 본 주환이 형은 늘 피곤해 보였다.


언제나 대충대충.

언제나 설렁설렁.


열정보단 무기력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얼굴로 타자들을 요리하고 제압했다.


정말 신기했다.

저렇게 의욕 없어 보이는데 시즌 끝나면 두 자릿수 승수에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머린 정말 좋은 놈인데··· 됐다. 너희도 구경 그만하고 준비해!”


***


경기가 시작됐다.

원정인 만큼 1회 초 공격은 우리부터.


선두 타자로 나선 애드리언 킹은 초구부터 깨끗한 안타를 뽑아냈다.


“역시!”

“킹! 킹! 킹!”


킹의 세레머니에 우리도 환호로 답했다.


-최근 타격감 좋네요.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킹 선수는 발이 느리지 않습니까? 힘없는 땅볼은 절대 안 됩니다.


“규철아 제발···.”

“참자. 참아. 초구는 제발.”


간절히 외치는 선배들.

2번 타자 도규철 선배는 배트 나오는 타이밍이 빨랐다.


오죽했으면 초구철이라며 뭐라 할까.


선배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저놈은 3구 이내에 휘두르면 벌금 내야 한다고 했다.


팡!


1구는 참아냈다.

2구도 간신히 참아서 원 볼 원 스트라이크.


마의 3구는···.


딱!


참을 수 없었다.


3루로 향하는 땅볼.

깊은 타구였으나 베테랑 3루수 권상열은 침착하게 잡은 뒤 2루로 던졌다.


5-4-3의 병살타였다.


“···아.”

“아쉽다···.”


3구 이내에 쳤으나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솔직히 방금은 수비가 좋았으니까.


“흐음. 의도했네.”


그 말에 난 고개를 돌렸다.

소주환 선배는 몸풀기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옆에서 구경 중이었다.


“소 선배 아니 형.”

“왜 그랬는지 알려달라고? 간단해. 규철이 타격 템포 빠른 거 모른 사람 없잖아. 성향도 공격적이고. 근데 상대 투수 메인은?”

“써클 체인지업입니다.”

“그렇지. 그래서 보란 듯이 바깥쪽으로 던진 거야. 자신 있으니까. 또 3루는 권상열이잖아. 쟤 수비 잘하거든.”


주환이 형에게 야구란 예측 가능한 게임일까.


“돼. 100%는 아니지만. 그래서 나 같은 놈도 에이스 소리 들으면서 살잖아?”


그러는 사이 1회 초가 끝났고, 우리는 마운드로 향했다.


팡!

파앙!


등판 전 불펜 피칭도 몇 구 던지지 않았다. 긴장감도 없어 보였다.


“됐어. 시작하자고.”


다 됐다는 신호를 보내는 주환이 형.

자세를 취하고 집중하자 숫자가 보였다.


55|55|50|70|65


역시··· 다른 투수들과는 달랐다.


모든 구종이 리그 평균 이상.

특히 제구는 70으로, 리그를 대표할 정도였다.


팔색조 같은 구종에 뛰어난 제구력.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팀 에이스는 맞았다.


팡!


초구는 가볍게 바깥쪽으로.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라서 옛날처럼 심판 존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타자는 똑같습니다. 어떻게 반응하는지 체크 해야죠.


팡!

딱!

파앙!


연거푸 바깥에 형성되는 공.

원 볼 투 스트라이크.


타자는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예리한 포크볼이 들어왔다.


딱!


힘없이 2루로 향하는 볼.

주심은 아웃을 선언했고, 주환이 형은 손가락 하나를 흔들었다.


“우선 하나.”


-참 좋은 투수입니다. 투 스트라이크에서 어떤 타자가 저 공을 참을까요.


2번 타자도, 3번 타자도.

2회도, 3회도.


주환이 형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타자들을 요리했다.


물론 형 말대로 모든 걸 알 수는 없었다.

야구란 예측 불가능한 종목이니까.


딱!


빗맞은 안타도 나왔고, 손에서 살짝 빠진 커브가 타자 엉덩이를 맞추는 일도 있었다.


드래곤즈 타자가 잘 친 것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환이 형은 5이닝을 5피안타 2실점으로 막고 내려왔다.


“아이고 힘들다. 온몸이 쑤시네.”

“고생하셨어요.”

“그래. 너도 고생했다. 공 잘 받던데?”


주환이 형이 던진 공은 총 73개.

이 정도면 6회도 가능해 보였다.


“6회? 됐어. 오늘은 이걸로 끝.”

“······아프신가요?”

“설마. 선발이 5이닝 막았으면 됐지 무슨. 경기 끝나고 술이나 한잔하자.”


깜짝 놀랐다.

포수 하면서 다양한 투수들을 만났으나···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픈 것도 아니고, 투구수도 충분한데 그만 던지겠다니.


물론 시키는 대로 해도 된다.

신인이니까 여기서 그냥 고개 끄덕이고 넘어가면 된다.


누가 뭐라 할 것인가.

5이닝을 2실점으로 막았고, 주환이 형은 우리 팀 에이스니까.


하지만 아까 라커룸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주환이 형은 원래 그래. 원래.’

‘괜히 열 내지 마. 너만 힘 빠져. 알았지?’


동료가 아니었다.

그냥··· 모르는 아저씨처럼 대했다.


“주환이 형.”

“오. 표정 좋고. 왜? 훈계라도 하게?”

“아뇨. 대선배한테 어찌 감히.”

“구라치기는. 뭐, 됐어. 말해봐.”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에이스? 투수의 자긍심?


아니다. 이 형에겐 알량한 감성 따윈 먹히지 않았다.


“···확인하고 싶지 않으세요?”

“확인? 뭘?”


나는 숫자를 떠올렸다.


“오늘, 체인지업 좋았잖아요. 형도 즐겨 던졌고.”

“그래? 몇 개 던지지도 않았는데?”


심드렁해하는 주환이 형.

하지만 왠지 알 수 있었다.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해하는걸.


“6회 말, 선두 타자가 권상열이잖아요. 근데 권상열은 체인지업 상대 타율이 4할 1푼이고요.”

“체인지업 귀신한테 그것만 던지자고?”

“그건 아니고요. 위닝 샷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땀을 훔친 형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근거는?”

“제 분석과 감입니다.”

“분석과 감이라··· 강마루.”

“네.”

“너 나보다 잘 알아?”


화난 표정은 아니었으나 물러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소주환은 머리 하나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만약 안타 맞으면.”

“맞으면.”

“2차든 3차든 따라갈게요. 제가 사겠습니다.”

“네가? 너 술 쌔?”

“아뇨. 맥주 한 잔이면 취합니다.”

“···이거 웃기는 놈 아냐.”


주환이 형은 중얼거리더니 일어섰다.


“약속 지켜라. 알았지?”


***


소주환은 6회 말에도 올라왔다.


1구 141.2 포심 파울

2구 130.7 슬라이더 볼

3구 138.5 투심 파울


원 볼 투 스트라이크.

투수 카운트가 되자 중계진은 말했다.


-권상열 상대로는 확실하게 던져야 합니다. 애매한 코스면 안타예요. 안타.

-뭐가 좋을까요? 체인지업일까요?

-아뇨. 안 됩니다. 체인지업 상대 타율만 4할이 넘으니까요.


하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휙!


포심처럼 날아가던 공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완만하게 떨어졌다.

오늘 몇 구 던지지 않은, 체인지업이었다.


딱!


자세가 흐트러졌으나 권상열은 권상열.

애매하게 날아간 타구는··· 1루수, 우익수, 2루수 사이에 떨어졌다.


텍사스성 안타였다.


-행운의 안타! 아, 아쉽네요! 정말 잘 던졌는데··· 역시 권상열입니다!


피닉스 팬들은 아쉬워했으나 소주환은 왠지 기분 좋아 보였다.

반면 타자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투수와 타자 표정이 반대네요.

-투수는 후회 없이 던졌고, 타자는 마음에 안 든단 거죠.

-안타인데도 그렇습니까?

-네. 자신 있는 구종인데도 타구질이 안 좋았으니까요. 권상열이니까 쳤지, 다른 타자였다면 삼진이었습니다.


더그아웃은 신호를 보냈으나 투수는 괜찮다고 답했고, 소주환은 세 타자를 모두 땅볼로 잡아내고 내려갔다.


“우와··· 역시.”

“저게 투수지. 투수. 힘만 좋으면 뭐 하냐.”


최종 성적 6이닝 6피안타 2실점.

동점이라 승리 투수 요건은 못 갖췄으나 소주환은 본인 몫을 100% 다했다.


그리고 경기는 9회 초에 요동쳤다.


7, 8번 타자의 연속 안타.

무사 1, 2루.


피닉스로선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무사 1, 2루! 무사 1, 2루입니다! 그리고 타석엔··· 9번 타자 강마루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감독에게 쏠렸다.

강마루는 오늘 4타석 3타수 무안타 1볼넷


그전 경기까지 합하면 8타석 무안타로 타율은 제로였다.


당연히 번트를 떠올렸다.

아니, 중요성을 고려하면 교체 확률도 높았다.


-지금 상황은 말이죠. 번트 하나만을 고려한 교체도 필요하다 봅니다. 신인에겐 부담감이 너무 커요.


하지만.


“강공.”

“······네?”

“그대로 가라고. 타구질 좋았잖아. 삼진도 없었고.”


그건 그랬다.

비록 안타는 없었으나 타구질은 좋았다.

타구에 힘이 느껴졌다.


“난 번트 싫어하거든. 책임은 내가 진다. 그대로 가.”


사인을 받은 강마루는 정상적인 타격 자세를 취했고, 경기장은 금방 시끄러워졌다.


“······감독 미쳤냐? 강공?”

“조퇴출 저 새끼 왜 저러는데. 사인 미스 아니지? 강공 맞아? 9회 초인데?”


현장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욕이 쏟아졌다.

저 새끼 명장병 걸렸다고, 족보 없는 놈은 저래서 안 된다고 노골적으로 욕했다.


‘작전이라도 있나? 그렇다고 보기엔.’


드래곤즈 마무리 현대경도 의아해했다.


무사 1, 2루에서 시즌 8타수 무안타 신인에게 강공이라니.

아무리 미국물 먹은 감독이라 해도 이건 좀 오버 아닌가?


팡!


카운트는 아깝지만 하나 뺐다.

혹시나 했으나··· 타자는 아무 반응 없었다.


‘진짜? 진짜로 강공?’


뜻을 알아챈 현대경은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였다.


148.1 포심 파울.

135.7 포크볼 파울

149.2 포심 파울

136.4 포크볼 파울


확인차 던진 1구 말고는 모두 파울.


타자는 쫓아가기 급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안타는 힘들어 보였다.


하이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

아니다. 이럴 땐 확실하게 던져야 했다.


신인이 왜 신인일까.

위닝샷으로 깔끔하게 잡아야 했다.

아니면 범타를 노려 병살을 유도하거나.


미래가 그려졌다.

삼진 아니면 힘없는 땅볼로 병살.

그리고 많은 비난을 받겠지.


‘···네 감독을 원망해라.’


현대경은 포크볼을 던졌다.

존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좋은 코스.


하지만.

강마루의 배트는 불을 뿜었다.


따아악!!


우중간으로 날아가는 타구.

모두 일어선 가운데 더그아웃의 소주환이 외쳤다.


“뛰어! 강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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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달라진 위상 (3) +7 24.09.12 3,094 98 11쪽
18 달라진 위상 (2) +4 24.09.11 3,227 104 13쪽
17 달라진 위상 (1) +5 24.09.10 3,336 102 12쪽
16 탈꼴찌를 향해 (3) +6 24.09.09 3,337 103 12쪽
15 탈꼴찌를 향해 (2) +7 24.09.08 3,465 104 11쪽
14 탈꼴찌를 향해 (1) +3 24.09.07 3,508 97 12쪽
13 늘어나는 기회 (3) +7 24.09.06 3,509 98 12쪽
12 늘어나는 기회 (2) +5 24.09.05 3,664 92 12쪽
11 늘어나는 기회 (1) +7 24.09.04 3,776 107 12쪽
10 첫 선발 출장 (3) +4 24.09.03 3,982 101 12쪽
9 첫 선발 출장 (2) +6 24.09.02 4,108 105 12쪽
» 첫 선발 출장 (1) +3 24.09.01 4,270 96 12쪽
7 갑작스러운 데뷔 (3) +4 24.08.31 4,573 99 13쪽
6 갑작스러운 데뷔 (2) +8 24.08.30 4,745 111 12쪽
5 갑작스러운 데뷔 (1) +4 24.08.29 4,827 110 12쪽
4 1군으로 (3) +3 24.08.28 5,047 113 11쪽
3 1군으로 (2) +9 24.08.27 5,398 113 12쪽
2 1군으로 (1) +5 24.08.26 6,310 121 12쪽
1 프롤로그 +7 24.08.26 7,456 12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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