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레이트의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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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주
작품등록일 :
2024.08.23 12:18
최근연재일 :
20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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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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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주전 포수 (1)

DUMMY

경기가 끝난 늦은 밤.

가볍게 대화를 나눈 전력강화위원들은 각자 차에 올라탔다.


다만 위원장 손기웅은 예외였다.

선수 때 얻은 왼쪽 눈 부상이 점점 심해져 운전면허를 반납한 탓이다.


그래서 위원들이 돌아가며 손기웅을 모셨으나.


“···오늘 자네 차례 아니지 않나?”


그 말에 장규식은 웃었다.


“위원장님이 보고 싶어서요.”

“······그렇게도 강마루가 좋나?”

“그럼요. 위원장님도 보셨잖습니까.”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리그 최강팀 서울 카이저스를 상대로 접전 끝 2 : 0 승리.


빅터 르위키 대 불펜 데이라 대진도 불리했으나 강마루는 버티고 또 버텨냈다.


“게다가.”

“?”

“7회 말 1사··· 누가 거기서 3루를 던집니까. 3루를. 안 그래요?”


7회 말 1사 3루.

스트라이크 낫아웃 상황에서 강마루는 1루가 아니라 3루로 던졌다.


결과는 아웃.

1사 3루는 단숨에 2사 1루가 됐고, 경기는 피닉스 쪽으로 넘어갔다.


순간적인 판단과 강한 어깨, 정확도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아무리 봐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1루 던져도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는데. 실패하면 경기 터지고 욕먹었을 텐데 거기서···.”

“······.”


손기웅은 강마루와 대화해서 안다.


실은 처음부터 3루를 노렸다고.

말도 안 되는 도박이었으나 결국 성공했고, 경기는 피닉스로 넘어왔다.


순간 혹했으나 손기웅은 참았다.

지금 그 말을 했다간 흥분한 장규식이 밤새 끌고 다닐 테니까.


“그래서 위원장님은.”

“······아직 부족하네. 하지만.”


손기웅은 강마루를 떠올렸다.

수많은 포수와 만나고 가르쳤으나 강마루는 궤가 달랐다.


그냥, 계속 지켜보고 싶었다.


“적어도 자네가 왜 그런지는 알겠네.”


***


2차전은 2 : 3으로 아쉽게 졌다.


맷 라이언은 5.2이닝 2실점으로 버텼고 불펜도 잘 버텼으나 카이저스 주전 포수 윤정호는 4안타를 때려내며 경기를 뒤집었다.


한 점 차 아쉬운 패배.

우리는 더그아웃에서 소회를 풀어냈다.


“아, 아깝다. 아까워.”

“그니까. 근데 포수가 저렇게 잘 쳐도 돼? 반칙 아냐?”


포수는 타격보단 수비가 먼저다.

3할 치는데 포구도 못 하고 블로킹 엉망에 리드도 개판이다?


그럼 지명타자나 1루를 권하지 포수 자리에 앉히지 않는다. 포수가 무너지면 팀이 무너지니까.


하지만 윤정호는 둘 다 완벽했다.

수비는 물론이고 배트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이라 불릴 만큼 잘 쳤다.


그러니 현 KBO 최고 포수라 불리겠지만.


“흠. 그래도.”


배쌤, 배 선배는 내 등을 툭툭 쳤다.


“우리 포수도 잘 치잖아.”

“또 편애한다. 편애.”

“시꺼 인마. 억울하면 너도 잘 치던가.”

“형보다 내가 타율 더 높은데?”

“야 고작 3리 높잖아 3리!”


다들 웃고, 분위기도 좋았다.

우리는 9위밖에 안 되지만··· 라커룸 분위기는 어째 상위권 같았다.


원래 이랬나. 피닉스는.


“음. 아니. 전혀.”


황도윤 선배였다.


“나도 붙박이가 아니라서 확답은 못 하지만, 작년엔 안 이랬어.”

“천재 포수인 제가 와서 그런가요?”

“흐. 그래 맞아. 네가 와서 그래.”

“잘해야겠네요.”

“어느 정도?”

“3할 40홈런. 감독님이 선물 주시기로 했거든요.”


황 선배는 웃으며 나라면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줬다.

선배 같은 사람만 있으면 세상엔 전쟁도 없을 텐데.


어쨌든.

우리는 푹 쉬고 3차전에 나섰다.


우리는 주환이 형이 선발.

카이저스는 영건 조민혁이 선발이었다.


-조민혁 선수는 카이저스의 미래죠?

-그렇습니다. 1라운드에 지명됐으나 2년간 방황하다 올해부터 1군에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11경기 54.1이닝 6승 3패 ERA 4.41

부산 돌핀스의 원숭이, 라 뭐시기 보단 성적이 낮았으나 엄연히 신인왕 후보였다.


파앙!

딱!!

팡!


킹에게 안타를 맞았으나 3번 1루수 공정태 선배를 병살로 처리.

조민혁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신인왕 후보는 맞네. 너보단 아니지만.”


나는 주환이 형을 타박했다.


“또 술 마시러 가자고요?”

“물론. 너 인기 많아서 예약 안 걸면 힘들잖아.”

“···무슨 물건도 아니고. 사람 취급해주세요. 사람 취급.”


형은 슬쩍 웃으며 마운드로 향했다.


55|55|55|70|65

처음 봤을 때와 숫자는 같았다.

리그 평균 이상의 포심과 슬라이더, 포크볼 그리고 리그를 대표하는 제구도.


다만 하나.


‘······잠깐 체인지업이?’


전에 본 체인지업은 분명히 50이었다.

별로 던지진 않았으나 선배는 은근히 던지고 싶어 했던 그 구종.


근데 오늘은··· 55였다.


착각했나?

아니다. 숫자들 볼 때마다 매번 기록해놓는다. 혹시라도 바뀌나 싶어서.


게다가 다른 선수도 아니고 주환이 형을 착각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단순히 컨디션이 좋아서?

남몰래 연습해서?

아니면··· 자신감이 붙어서?


뭐가 됐든 호재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팡!

파앙!


둘 다 볼이었으나 아슬아슬하게 ABS에게 버림받은 공들.

카운트는 밀리지만 주환이 형 컨디션은 오늘도 좋았다.


투 볼 노 스트라이크.

오히려 지금이니까 실험할 수 있었다.


휙!


공이 포심처럼 날아오다 살짝 가라앉았다.

바깥쪽 제일 먼 곳, 절묘한 코스의 체인지업.


1번 타자 한승호는 배트를 내밀었으나 밑에 맞고 힘없이 굴러갔다.


1루 땅볼 아웃이었다.


“자, 하나다. 하나.”


설렁설렁 손가락을 흔드는 주환이 형.


내 예감이 맞았다.

형의 체인지업은 저번보다 더 좋아졌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좋아진 건 확실했다.


2번 타자 송정우가 들어왔다.

헥터 루이스, 윤정호와 함께 카이저스 타선을 책임지는 핵심 타자.


타석에 들어온 송정우는 대뜸 물었다.


“주환이 형, 요새도 그러냐.”

“무슨 의미죠?”

“아. 질문이 너무 뜬구름인가.”


스파이크에 묻은 흙을 툭툭 털은 송정우는 조심스레 말했다.


“요새도 오해받냐고.”


오해?

그렇다는 건··· 송정우는 안단 뜻이다.

주환이 형 이미지와 본심을.


신경 쓰이니까 물어본 걸까.


“제가 있어서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됐고.”


경기에 집중했다.

송정우는 우투좌타.


몸쪽 포심이나 슬라, 커브는 위험했고 바깥쪽 낮은 코스의 투심, 포크볼, 체인지업을 활용해야 했다.


보통 투수라면 바깥쪽 일변도로 가겠지만 주환이 형은 달랐다.


파앙!

딱!

팡!!


원 볼 투 스트라이크.

계속 파울이 나왔으나 형이 못 던졌다기보단, 송정우가 잘 커트했다.


-팔색조네요. 팔색조.

-그렇습니다. 참 신기하지 않나요? 힘 빼고 던지는 거 같은데 볼 끝이 살아 있어요!


송정우 상대로만 7구째.

더 길어지면 안 된다.


‘그럼 여기선···.’


나는 바깥쪽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하지만 형은 거절했다.


‘몸쪽 낮은 체인지업? 위험하지 않나?’


순간 의심했으나 바로 수긍했다.

형이 날 믿듯이, 나도 형을 믿어야 하니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주환이 형은 좌타자 상대로도 몸쪽 체인지업을 넣을 수 있다.


휙!


포심처럼 날아오던 공은, 물 흐르듯이 아래로 살짝 가라앉았다.


부우웅!


-헛스윙! 삼진!! 8구 승부 끝에 소주환이 송정우를 이깁니다!!

-이야··· 방금 몸쪽 체인지업은 정말 예술이네요. 예술. 구종 선택도 좋았고 투수도 잘 던졌어요.


어찌나 강하게 돌렸는지 자세가 무너진 송정우는 흙을 털며 물었다.


“···방금 공 누가 골랐어?”


다른 사람이었으면 적당히 넘겼을 거다.

영업 비밀이라며 대충 넘겼겠지.


하지만 송정우는 내게 물었다.

주환이 형, 요새도 오해받냐고.


그래서 답했다.


“함께 정했습니다.”

“······함께?”

“네.”

“······음. 알았다.”


송정우는 나와 형을 번갈아 보더니 돌아갔다.


***


5회가 끝난 현재.

양 팀 선발 모두 5이닝 1실점으로 호투 중이었다.


주환이 형은 4피안타였으나 볼넷이 없었고 반면 조민혁은 볼넷은 3개에 3피안타.


출루는 많았으나 실점은 억제 중이었다.


-괜히 신인왕 후보로 손꼽히는 게 아니에요.

-그렇습니다. 진작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데··· 위기 순간 집중력이 좋네요.


6회 초 2사.

타석엔 배선호 선배.


단숨에 투 스트라이크까지 몰린 선배는 집중력을 발휘해 풀 카운트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퍽!


-아 맞았습니다! 몸에 맞는 볼! 배선호가 1루로 나갑니다!

-써클체인지업이 손에서 빠졌네요.


바로 모자를 벗어 사과하는 조민혁.

배 선배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나이스 사구!!”

“계속 그렇게 나가자!!!”

“그 형은 괜찮아! 그 형은!!”


선배들이 뭐라 하자 배 선배는 두고 보자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자··· 다음은 강마루입니다. 강마루.


타석에 들어서자 감독, 포수 모두 마운드로 향했다. 옛날엔 내가 오든 말든 신경도 안 썼는데 이젠 아니다.


특히 6회 이후 박빙인데 내가 나온다?

그럼 포수든 코치든 꼭 누군가가 마운드로 향했다.


그럴 때마다 기분 좋았다.

왠지 인정받는 느낌이라.


-교체해야 할까요.

-선택에 달렸습니다. 아직 구위는 살아있거든요.


주심이 시계를 가리킬 정도로 대화는 오래 이어졌고, 결국 조민혁은 마운드에 남았다.


-아직 1 대 1 아닙니까. 가자는 거죠.

-네. 감독이 투수 어깨 두드리는 거 보셨죠? 믿고 있단 뜻입니다.


조민혁 구종은 포심, 슬라이더, 써클 체인지업. 써클 체인지업도 나쁘진 않으나 아직 컨트롤은 미숙했다.


-결국 슬라이더 싸움입니다. 강마루가 참느냐, 못 참느냐 싸움이에요.


부웅!


초구부터 힘차게 휘둘렀으나 헛스윙.

포심이 아니라 초구부터 슬라이더였다.


-의식하는 거죠. 장타를.


2구도, 3구도 모두 슬라이더였다.

투 볼 원 스트라이크가 되자 관중석은 뜨거워졌다.


“야!! 쫄지 말라고!!”

“2할이다! 2할!! 2할이 그렇게 무섭냐?!”


쏟아지는 비난 속 자세를 잡았다.

3구 연속 바깥쪽 슬라이더.


나도 포수를 보지 않고 포수도 나를 보지 않았으나 서로 의식하는 건 알았다.


“······.”

“······.”


윤정호는 무슨 공을 고를까.

KBO 최고 포수는 뭘 선택할까.


휘릭!


포심처럼 날아오는 공.

여기서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면 슬라이더고 그대로 들어오면 포심이다.


하지만 내 본능은 다른 걸 가리켰다.

나는 무릎을 살짝 굽히며 아무 생각 없이 퍼 올렸다.


“흐압!!”


따아아악!!!!


엄청난 타구 소리와 함께 공이 저 멀리 사라졌다. 잠실 상단에 꽂히는, 대형 홈런이었다.


***


믿어지지 않았다.

미친 거 같았다.


실투? 아니다.

조민혁이 던진 서클체인지업은 존 아래에서 잘 꺾였다.


서클체인지업 특성상 역회전으로 타자 발 쪽을 향해 잘 들어갔다.


하지만 강마루는 외마디 기합과 함께 그걸 넘겨버렸다.

그것도 잠실 외야 상단에.


-역저어어언! 투러어언!!! 강마루! 또 강마루입니다!! 강마루의 홈런 퍼레이드는! 오늘도 이어집니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웃는 조민혁.

투수 코치가 올라왔으나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이해한다. 나라도.”

“쟤 뭐냐 진짜. 무슨 힘이.”

“······.”


카이저스는 리그 최강팀이다.

지난 3년, 통합 우승을 이룩하며 KBO 최강을 자처했다.


그런 팀인 만큼 수많은 팀을 만났고 수많은 선수를 만났으나··· 강마루 같은 신인은 없었다.


“조금만 타율이랑 출루율 올리면.”

“풀타임이면 30개. 아니 40개도 까겠다.”


그러는 가운데 에이스 임찬솔은 송정우한테 물었다.


“형, 어때?”

“···좋아 죽으려 하는군. 민혁이 안 불쌍하냐?”

“형도 진짜. 민혁이 살찌우고 서클 심어준 게 누군데?”

“뭐, 그건 그렇지만.”


강마루가 1군에 올라오자 임찬솔은 은근히 자랑했다. 꼭 지켜보라고.


아는 동생이라서 그렇다기보단, 야구 선수로서 순수하게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포수는 그렇다 치고.”

“타자한 적 없냐고? 어 없어.”


의아했다.

정말 투수만 쭉 하다 포수로 변경했나.

에이스라도 타자 병행은 할 법한데.


“···뭐,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어른들 욕심이 많았어.”


단박에 이해한 송정우는 질문을 멈췄다.


“신인왕 따려면, 노력 많이 해야겠다.”

“민혁이?”

“돌핀스의 라지훈도 포함해서. 전부 다.”


조금 달라진 소주환과 밝아진 더그아웃까지. 송정우는 나지막이 말했다.


“강마루, 쟤가 조만간 주전 먹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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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전 포수 (1) +4 24.09.14 2,877 90 12쪽
20 달라진 위상 (4) +5 24.09.13 2,909 105 12쪽
19 달라진 위상 (3) +7 24.09.12 3,096 98 11쪽
18 달라진 위상 (2) +4 24.09.11 3,228 104 13쪽
17 달라진 위상 (1) +5 24.09.10 3,336 102 12쪽
16 탈꼴찌를 향해 (3) +6 24.09.09 3,339 103 12쪽
15 탈꼴찌를 향해 (2) +7 24.09.08 3,467 104 11쪽
14 탈꼴찌를 향해 (1) +3 24.09.07 3,509 97 12쪽
13 늘어나는 기회 (3) +7 24.09.06 3,510 98 12쪽
12 늘어나는 기회 (2) +5 24.09.05 3,665 92 12쪽
11 늘어나는 기회 (1) +7 24.09.04 3,778 107 12쪽
10 첫 선발 출장 (3) +4 24.09.03 3,983 101 12쪽
9 첫 선발 출장 (2) +6 24.09.02 4,110 105 12쪽
8 첫 선발 출장 (1) +3 24.09.01 4,272 96 12쪽
7 갑작스러운 데뷔 (3) +4 24.08.31 4,575 99 13쪽
6 갑작스러운 데뷔 (2) +8 24.08.30 4,746 111 12쪽
5 갑작스러운 데뷔 (1) +4 24.08.29 4,827 110 12쪽
4 1군으로 (3) +3 24.08.28 5,048 113 11쪽
3 1군으로 (2) +9 24.08.27 5,399 113 12쪽
2 1군으로 (1) +5 24.08.26 6,312 121 12쪽
1 프롤로그 +7 24.08.26 7,457 12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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