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레이트의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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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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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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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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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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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기회 (3)

DUMMY

-네 오늘부터 주전 포수는 강마루입니다. 너무 빠르지 않냐고요? 기자님 또 그러신다. 우리 다 같이 봤잖아요. 큰 실수 없고 타석에서도 한 번씩 날리고. 솔직히 19살에 이만큼 하는 포수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조덕출은 폰을 놓으며 물었다.


“어때? 내 인터뷰.”


그러자 오늘부터 임시 주장을 맡게 된 배선호가 되물었다.


“사석으로 할까요 공석으로 할까요.”

“전자.”

“처음엔 좋았고 마지막은 별로였습니다.”

“왜 인마. 어필 좋았잖아.”


조덕출은 말했다.

이대로면 올해 11월에 열리는 APBC에 강마루 데려가도 되지 않겠냐고.


“아직 반년이나 남았는데요.”

“얀마. 예비 엔트리는 얼마 안 남았잖아. 감독이 어필 안 하면 누가 하냐.”

“형님. 그게 문젭니까. 애가 헛물 들이킬까 봐 그러죠.”

“지랄. 마루가 그럴 애냐? 어?”


그 말엔 배선호도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이니까.


“뭐, 어쨌든. 기분은 어때. 임시 주장.”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데요.”

“하 이 새끼. 빠지기는. 내가 그렇게 가리켰냐?”


투덜거렸으나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KBO 주장은 할 일이 많았으니까.

경기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체력적으로도 힘든 터라 최고참보단 그 아래 기수들이 맡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다.


“이러다 쓰러지면 사유에 꼭 감독님이라 적어놓겠습니다.”

“오냐. 나도 화병 나면 네 이름 부르마. 비싼 변호사 고용해라 알았지?”


두 사람은 본론에 들어갔다.

배선호가 임시 주장이 된 이상 이야기 나눌 것들이 많아졌으니까.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으나 핵심은 역시.


“마루는 어때? 말했어?”

“네.”

“뭐라던데.”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언론용 말고 인마.”

“절대 안 놓치겠답니다.”


조덕출은 마음에 들어 했다.


“역시. 프로는 그래야지.”

“음. 형님.”

“왜.”

“어제 용범이가 뭐라 했습니까.”

“안 그래도 말 잘했다.”


조덕출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자기한테 없는 걸 가지고 있다고요? 다른 사람도 아닌 용범이가?”

“그래 인마. 대질 심문해줘?”


암만 그래도 충격적이었다.

칭찬보단 채찍을 드는 그 하용범이.


두 사람은 펜을 들었다.


경력 : 말할 것도 없다.

수비 : 강마루도 잘하나 하용범이 앞선다.

어깨 : 둘 다 좋다.

타격 : 강마루의 장타툴은 엄청나나 하용범도 똑딱이는 아니었다. 전성기때 두 자릿수 홈런은 무조건 때렸다.


“리드?”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은.”

“그럼 뭔데. 네가 가까이서 봤을 거 아냐.”


배선호는 강마루를 떠올렸다.

그가 했던 말들, 주위 반응까지.


“효자손입니다.”

“······효자손?”

“네. 투수가 가려운 곳을 긁어줍니다.”


배선호는 말을 이었다.

무슨 족집게도 아니고 투수가 부족한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다고.


“본인 약점 모르는 투수가 어딨는데.”

“아뇨. 형님. 그게 아니에요.”

“그럼.”

“접근 방식이 달라요. 예를 들면··· 도윤이 있잖아요.”


황도윤.

좌타자 전용 원 포인트 릴리프.

2군을 오가던 황도윤은 1군 콜업 뒤 쏠쏠하게 써먹고 있었다.


“포심 늘린 건 알죠? 잘 먹히는 것도.”

“어.”

“그거, 마루가 조언했답니다.”

“······언제?”

“2군에서요.”


배선호는 신나게 말을 이었다.


“마루가 하자는 대로 하면 신기하게 잘 들어맞아요. 믿는 투수도 조금씩 늘고 있고.”

“세세하게 가르쳐?”

“아뇨. 지나가듯이 던져요. 본인 선을 지킬 줄 압니다.”

“영리하네.”

“제 생각도요.”


월권행위로 안 보이는 정도까지만 터치.

그 덕에 별다른 말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엔 주환이가 그랬어요. 마루는 공 볼 줄 안다. 시키는 대로 하라고.”

“······정말?”

“네.”

“······.”


소주환은 감독으로서도 다루기 어려운 존재였다.


분명 야구 잘하고 똑똑했으나 공 개수가 넉넉해도 6이닝이 한계였다.

항명? 아니다. 일단 지시하면 묵묵히 이행했다. 묘하게 어긋나서 문제지.


비유하자면 생활비 잘 벌어오는, 말 안 듣는 장남 같았다.


“주환이가 그렇게 말하는 포수는···.”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도.”


마무리 마종수도 친동생처럼 데리고 다니고 그 소주환마저 아끼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과연. 그래서 용범이가.”

“네. 친화력도 좋고 애도 싹싹한데··· 그냥 잘해요. 시야도 넓고.”


칭찬 일색에 조덕출은 중얼거렸다.


“···투수들 복 받았군.”

“네? 뭐라고요?”

“아니. 혼잣말. 됐다.”


조덕출은 아닌 척 넘겼다.


***


대구 슬러거즈와의 2차전.

나는 6번으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기분은 어때?”


배 선배였다.


“가을야구도 아닌데요. 같아요.”

“그래?”

“네. 게다가.”

“?”

“제가 실수했다간 주장님이 병원에서 탈출하실 테니까.”

“크크. 그건 그렇지. 사회면에 나오기 싫으면 잘해라. 알았지?”


덕담 아닌 덕담을 던진 뒤 사라지는 배 선배.

오늘 우리 팀 투수는··· 맷 라이언이었다.


주환이 형에 이은 2선발이자 외국인 투수.

그리고 자기 에고가 누구보다 강한 투수.


아니나 다를까.


‘어이. 꼬맹이. 고개 흔들지 마라. 내가 정한다 알았지?’


라이언은 일찌감치 선언했다.

볼 배합은 본인이 정하겠다고.


뭐, 예상 못 했던 건 아니다.

라이언은 주장님과도 대놓고 싸웠으니까.


나는 경력 없는 신인이고 맷 라이언은 KBO 2년 차의 외국인 선발.

당연히 추는 저쪽에 쏠려 있으나 끌려갈 생각 따윈 없었다.


저쪽이 맞으면 당연히 고갤 끄덕이겠으나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게 포수니까.


-1회 초 피닉스 공격이 무위로 끝난 가운데··· 이제 1회 말이 이어집니다. 오늘 포수는 강마루 선수죠?

-그렇습니다. 부상으로 이탈한 하용범 선수를 대신해 강마루 선수가 나섰습니다. 눈도장 확실히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들었다. 당분간 선발이라고? 일단 축하한다. 네 나이에 그러기 쉽지 않은데.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라. 그래야 용범이 형도 마음 편하게···.”


귀마개를 꾹 누르자 숫자가 떴다.

55|60|50|55|60


과연.

주환이 형보다 제구만 살짝 떨어질 뿐, 모든 게 리그 평균 이상이었다.


특히 커브 60은 처음 보는 숫자였다.

60이면 언제 어디서든 믿고 던질 수 있는 숫자. 또 눈에 띄는 게 있었는데··· 일단은 경기에 집중했다.


팡!

딱!

파앙!


초구는 들어왔고 2구는 파울.

3구는 살짝 빠지는 볼.

모두 포심이었다.


-셋업이죠. 셋업. 이제 슬슬 던질 겁니다.


팡!


커브가 날아와 미트에 꽂혔다.

루킹 삼진이었다.


-들어왔습니다!! 루킹 삼진! 맷 라이언이 깔끔하게 선두 타자를 처리합니다!!

-이야··· 방금 커브는 정말 좋았어요. 역시 맷 라이언입니다.


역시 라이언의 커브는 달랐다.

다른 투수들처럼 살짝 뜨는 느낌 없이 쭉 가라앉는 느낌.


좋은 커브는 지금 같은 ABS 시대에 유리하다. 끝에 걸치기만 해도 스트라이크니까.


‘문제는··· 유지력이지만.’


나는 라이언을 예의주시하며 자세를 잡았다.


***


“흠. 잘하는데요?”

“그러니까요. 좀··· 싸울 줄 알았는데.”


그 말에 웃는 조덕출 감독.


“무슨 강마루가 망나니야?”

“아뇨. 그건 아니죠. 근데 걱정했던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라이언 성격 더러운 거 모르는 사람 없다.

강마루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스타일.


지금까지는 괜찮아 보였다.

성적 좋았고, 다툼도 없었다.


5회가 끝난 현재 5이닝 5피안타 1실점.

첫 호흡인 걸 고려하면 대성공이었다.


“이대로만 갔으면 좋겠는데.”

“그러니까요.”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 맷 라이언은 6회부터 얻어맞기 시작했다.


딱!

따악!

딱!!


1사 이후 연속 3안타에 1실점.

3 : 1의 스코어는 순식간에 3 : 2가 되었다.


“······또 시작이네.”

“······.”


맷 라이언은 분명 좋은 투수이나 일본 진출이나 메이저리그 재입성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한계가 명확했으니까.


-유지력이 약해요. 유지력이. 8, 9회는 아니더라도 6회까지는 버텨줘야죠. 외국인 선발이면.


그런 가운데 강마루와 통역이 마운드로 향했다. 투포수 모두 입을 가렸으나 분위기가 심각해 보였다.


-교체 타이밍일까요.

-저는 조금 이르다고 봅니다. 아직 80개도 안 던졌어요. 게다가 맷 라이언입니다. 본인이 좋아하겠습니까?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계속 말하는 강마루와 묵묵히 듣던 라이언은, 이내 통역을 보며 뭐라 하기 시작했다.


-···의견이 엇갈리나요?

-안 좋아 보입니다.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나갈까요?”

“아니. 내가 나간다.”


감독은 마운드로 향했다.

시계를 가리키는 주심과 양해를 구하는 조덕출.


숨을 고른 조덕출은 일부러 웃었다.


“왜 그래? 뭐 싸우기라도 했어?”


그러자 강마루가 고갤 끄덕였다.


“네 싸웠습니다.”

“···뭐?”

“하지만 잘 해결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이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무슨 애들 싸움도 아니고.

통역에게 물었으나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괜찮답니다. 더는 묻지 말라고 하네요.”

“···이놈이고 저놈이고 진짜. 한 점만 더 주면 교체다. 알았지?!”


모두 우려하는 가운데 경기는 진행됐다.

1사 1, 3루.

외야 플라이 하나면 동점.


타자를 노려본 라이언은 연거푸 커브만 던졌다. 4구 연속 커브에 4구 연속 볼.


-···아 볼넷입니다 볼넷. 1사 만루. 루가 가득 찹니다.


욕이 쏟아졌다.


-저 개새끼가 진짜! 또 똥고집 부린다!

-라이언?! 지랄하네! 우리 집 개만도 못한 놈이! 내려가라고!!

-이름이 아깝다 씨벌놈아!!!


“···교체할까요?”

“기다려. 약속했잖아. 점수 주면 바꾸기로.”


가장 큰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강마루였다.


‘이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묘하게 기대하고 싶었다.

불과 19살의 신인 포수에게.


팡!

파앙!


1, 2구 모두 포심에 볼.

타자는 노릴 카운트였고 순식간에 슬러거즈 파크는 시끄러워졌다.


“안타! 안타!! 안타!!”

“역전! 역전!! 역전!!”


빠지면 쓰리볼

섣불리 들어갔다간 역전 적시타.


다들 어쩔 줄 모르는 가운데···.


딱.


힘없는 타구가 내야에 떴다.


-타구가 떴습니다! 인필드 플라이! 주심이 바로 인필드 플라이를 선언합니다! 아웃! 주자 모두 꼼짝 못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딱!


-또 한 번! 또 한 번 타구가 떴습니다!! 아웃!! 서울 피닉스가 1사 만루 위기에서 탈출합니다!!!


커터였다.

1사에서도 2사에서도.


강마루는 오늘 몇 개 던지지 않은 커터를 요구했고 라이언은 그대로 던졌다.


“나이스!!”

“잘했다! 잘했어!!!”

“라이언 굿! 라이언 굿 피칭!!!”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투포수.

조덕출은 재빨리 강마루에게 다가갔다.


“마루야.”

“네! 감독님!”

“마운드에서 뭐라 했지?”


그러자 강마루는 씩씩하게 답했다.


“내기했습니다.”

“······내기?”

“네. 커브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다음 타자한테 실컷 던지라고 했죠. 대신 주자 못 잡으면 제 말대로 하기로.”

“그러다 맞으면?”

“어쩔 수 없죠. 같이 혼나야죠.”


웃긴 놈이었다. 어쩔 수 없다니.

게다가 같이?


“정말입니다. 그래도 다음 등판 고려하면 괜찮은 생각이었다고 봅니다.”


다음 등판?

그 상황에서 그걸 생각해?

동점··· 아니 역전될 수도 있는데?


“네. 시즌은 기니까요.”


오싹.


조덕출은 순간 소름 돋았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강마루는 투수의 신뢰를 얻고자 했다.

어떻게든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신인이··· 무슨 놈의 신인이···.


“강마루.”

“네!”

“라이언은 뭐라 하던데.”


그러자 강마루는 웃었다.


“저 같은 놈 처음 본대요. 그래서 너도 마찬가지라고 했죠.”


조덕출은 알았다.

왜 하용범이 강마루를 콕 집었는지.


이런 포수는 본 적 없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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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탈꼴찌를 향해 (2) +7 24.09.08 3,470 104 11쪽
14 탈꼴찌를 향해 (1) +3 24.09.07 3,512 97 12쪽
» 늘어나는 기회 (3) +7 24.09.06 3,513 98 12쪽
12 늘어나는 기회 (2) +5 24.09.05 3,668 92 12쪽
11 늘어나는 기회 (1) +7 24.09.04 3,780 107 12쪽
10 첫 선발 출장 (3) +4 24.09.03 3,988 101 12쪽
9 첫 선발 출장 (2) +6 24.09.02 4,114 105 12쪽
8 첫 선발 출장 (1) +3 24.09.01 4,275 96 12쪽
7 갑작스러운 데뷔 (3) +4 24.08.31 4,577 99 13쪽
6 갑작스러운 데뷔 (2) +8 24.08.30 4,749 1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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