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알아주는 투수 유망주였다.
흔히 말하는 전국구 유망주로서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미래 국가대표 에이스라며 여기저기서 치켜세웠고 기대도 엄청났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나는 포수가 더 좋은데.’
그렇다.
투수도 좋았지만 난 포수가 더 좋았다.
투수는 고독하나 포수는 아니다.
선발과 다르게 포수는 자주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풍경이 좋았다.
투수를 포함해서 모두 날 본다.
나만이 모두의 표정을 볼 수 있다.
팀 최후의 수비수, 그라운드의 사령관이라는 표현도 너무너무 좋았다.
그래서 몇 차례 말씀드렸다.
혹시 포수 해도 되냐고.
하지만
-그래. 잠깐 바람 쐬는 건 괜찮겠지. 너도 힘들 테니까.
-기자들이 난리 쳐서 힘들지? 우리 에이스님 안 그래도 피곤한데.
그 누구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그저 에이스의 투정이라며 가볍게 받아들였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런 말, 스스로 하긴 그런데 나는 잘 던졌으니까. 어떤 야구 감독이 전국구 에이스를 포수로 바꿀까.
아픈 곳도 없는데.
파앙!
뻐어엉!!
이기면 이길수록, 역설적으로 포수에 대한 갈증만 늘어났다.
땅볼 아웃도, 플라이도, 위기 탈출도.
심지어 투수의 꽃이라는 삼진도 내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힘들고 괴로우나 마스크를 쓰고 바닥을 구르고 싶었다.
공이 미트에 박힌 그 순간이 너무너무 좋았다.
그렇게 고민하다··· 더는 못 참고 임샛별에게 털어놓았다. 소꿉친구인 동갑내기 여자아이에게.
‘투수, 하기 싫다.’
‘그럼 하지 마. 안 하면 되지.’
‘···그게 쉬우면 진작 그만했지.’
나는 털어놓았다.
동기, 선배, 감독 모두 반대한다고.
그러자 별이는 무슨 소리냐면서 웃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무슨 상관이냐니. 주위 기대···.’
‘야. 강마루.’
‘?’
‘너 남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야구 시작했어?’
아니다.
나는 그저 야구가 좋았을 뿐이었다.
‘그래. 나한테도 그랬잖아. 메이저리그 가고 싶다고. 혹시 투수 아니면 미국 못 가?’
‘아니. 전혀.’
‘투수 안 하면 야구 그만둬야 해?’
‘···아니.’
‘그럼 답 나왔네. 투수하지 마. 네가 재밌어야 의미 있지 억지로 하면 좋아? 재미있어?’
별이는 내 눈을 보며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넌 그게 어울려.’
그때였다.
그저 소꿉친구였던 여자아이가, 내 우주의 중심으로 들어온 건.
나는 임샛별을 사랑하게 됐다.
***
“야! 강마루! 너 죽을래 진짜?!”
“어때? 네 미래 남편답지?
“말 돌리지 말고! 이거 뭔데?!”
별이는 사진을 보여줬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떡과 메시지 카드였다.
[우리 샛별 양, 잘 부탁드립니다 – 서울 피닉스 포수 강마루]
“신입 OT에 무슨 떡을··· 지금이 80년대야? 게다가 문구 뭔데? 우리? 잘 부탁한다고? 누가 누굴?”
“음. 별아.”
“왜.”
“화내는 모습도 예쁘다.”
“···아 미친!”
사실인 걸 어떡하라고.
객관적으로 봐도, 주관적으로 봐도 우리 별이는 예뻤다.
그냥 다른 말 필요 없이, 시내만 나가면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이 명함을 건넸다.
거듭된 거절에 지쳤는지 번화가 나갈 땐 모자와 안경으로 가렸지만··· 그 모습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떡은 어때? 맛있었지? 형한테 들었어. 이 집 떡 맛있게 먹었다고.”
“···망할 고릴라가 진짜.”
별이는 한숨 쉬며 무언가를 꺼냈다.
“자.”
“···이건 뭔데?”
“오다가 보이길래.”
나는 포장을 뜯었다.
프로 선수들이 주로 착용하는 실리콘 팔찌였다.
“팔찌? 팔찌는 왜.”
“너도 가리고 싶잖아. 상처.”
“···아.”
별이는 쇼핑백도 건넸다.
“선크림이랑 수분 크림. 까먹지 말고 발라. 금방 상한다.”
별이는 항상 그랬다.
동갑인데도 마치 자기가 누나인 것처럼 대했다.
“나 애 아니거든.”
“그래그래. 지울 때 물로만 씻지 말고. 클렌징 꼭 써. 알았지?”
그렇게 말한 별이는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사라졌다.
정말, 끝까지 애 취급이었다.
***
다음날.
나는 장비를 착용했다.
마스크, 프로텍터, 렉가드, 미트···.
대충하지 않고 정성을 담아서.
그라운드가 전쟁터라면, 포수인 내게 이 녀석들은 검이자 방패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오늘 경기는 7이닝이다! 첫째도 부상 방지, 둘째도 부상 방지다! 알겠나?!”
관중도 거의 없고 중계도 없는 2군 경기.
그것도 자체 청백전.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나에겐 소중했다.
아니, 적어도 투수였던 옛날보단 훨씬 낫다.
그저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웠다.
“선배님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크게 외치자 타자가 말했다.
“목소리 좋고. 신입이라고 했나?”
“네! 선배님! 강마루라고 합니다!”
“흠흠. 포수는 그래야지. 잘 부탁한다.”
배선호 선배는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푸른 하늘, 선발 출전, 대선배의 칭찬.
그리고 별이가 준 팔찌까지.
왠지 느낌이 좋았다.
왠지 기분이 좋고 힘이 넘쳤다.
기분이 고양된 탓일까.
나도 모르게 팔찌에 키스했다.
‘지켜봐 줘. 꼭··· 성공할게.’
그 순간, 살짝 현기증이 나더니 투수 머리 위에 무언가가 보였다.
다섯 개의 숫자였다.
55|30|30|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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