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레이트의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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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주
작품등록일 :
2024.08.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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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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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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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기회 (1)

DUMMY

며칠 뒤.

주장님이 물으셨다.


“강마루.”

“네! 주장님!”

“어제도 공부했나?”

“네!”


그러자 주장님은 지나가는 투로 말씀하셨다.


“미팅, 말해도 된다. 준비하도록.”

“네? 그럼···.”

“수고해라.”


그대로 사라지는 주장님.


나는 월요일 빼고 매일 참석했다.

주장님과 전력분석팀장님의 미팅에.


사담은 일제 없었고 의견 제시도 금지였으나 행복했다.


주장님이 어떤 야구관을 가졌는지

어떻게 투수를 보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신인인 내게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의견 제시해도 된다고?

그 말은 즉···.


“널 포수로 보고 있단 뜻이잖아.”


초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남자.

도규철 선배였다.


“듣고 계셨어요?”

“그래. 불곰이 어린양에게 다가가는데 봐야지.”


그렇게 운을 띄운 도규철 선배는 평소처럼 직설적으로 물었다.


“뽀찌라도 찔렸냐?”


아, 이 선배는 정말··· 예측할 수 없었다.


“도 선배님.”

“와이. 정곡이냐?”

“전혀 아니어서요. 주장님이 그거 받고 좋아하실까요?”

“음··· 아니. 전혀. 오히려 그 손으로 사지를 찢겠지. 한 네 조각 정도로?”

“근데 왜 물었어요.”

“당황해서 그런다 왜. 너··· 신인이잖아.”


도규철 선배는 부연 설명했다.

단순한 참관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의견 제시는 처음 본다고.


“선배님이 어떻게 다 아세요. CCTV로 본 것도 아닌데.”

“하 이 새끼 자기가 주도권 잡았다고 이러는 거 봐라. 뭐, 내가 먼저 잘못했으니까 그냥 답하마. 표 팀장님 있지?”


표영훈 전력분석팀장님을 뜻했다.


“집이 근처여서 한 번씩 커피 한잔하거든.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근데 선배님.”

“왜.”

“저번에도 저한테 이러시더니 커피 쿠폰 주셨잖아요. 미안하다고.”

“···또 달라고?”

“아뇨. 이번엔 다른 걸 받고 싶어서요.”


그 말에 도 선배는 빵 터졌다.

너 같은 새끼는 살다 살다 처음 봤다고.


***


이날 경기는 홈, 고척돔에서 열렸다.

상대는 수원 라이트닝스.


선발 포수는 여전히 주장님이었으나.


“강마루. 준비해. 6회부터 나간다.”

“네!”


출전 빈도는 점점 늘어났다.


-빠르게 교체하네요?

-하용범 선수도 관리해줘야 하니까요.

-발 말씀이신가요?

-네. 하 선수를 계속 괴롭혔던 부위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강마루 선수인가요?

-네. 빠르게 발전하고 있거든요. 피닉스 경기 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강마루 선수, 똘똘해요.


예전엔 경기 후반에 주로 나섰다.

주장님이 대주자로 교체되면 그때야 포수 마스크를 썼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리고 있었다.

타자로서도, 포수로서도.


“내가 얘기했거든. 너랑 뛰는 게 편하다고.”


황도윤 선배였다.


“정말요?”

“그래. 다른 투수들한테도. 넌··· 조금 다르잖아.”


나는 2군에서 황 선배에게 조언했다.

선배는 오히려 포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불펜 특성상 성적은 오락가락했으나 선배는 1군에서 계속 뛰고 있었다.

원포인트 릴리프로.


“···오늘도 부탁할게.”

“당연하죠. 저만 믿으세요.”


우리는 대화를 나눈 뒤 자리로 향했다.


라이트닝스는 이번이 구면.

화력은 여전해 오늘도 장타를 자랑했다.


-황도윤 선수의 목표는 간단합니다. 선두 타자 애런 버틀러만 잡으면 됩니다.

-문제는 그게 간단하지 않단 거죠. 오늘도 멀티 히트를 때려냈으니까요.


나는 마스크를 쓰고 집중했다.

55|30|30|25|40


숫자는 여전히 포심을 가리켰다.


팡!

따악!


초구는 살짝 빠졌고 2구는 파울.

원 볼 원 스트라이크이나 상대가 버틀러임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았다.


‘보통 여기선 바깥쪽 슬라이더지만···.’


나는 황 선배와 눈빛을 주고받은 뒤 공을 정했다.


딱!


파울.

원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됐다.


-바깥쪽 포심에 파울! 상황은 투수에게 유리해집니다!

-방금 공은 생각도 못 했네요. 버틀러에게 3구 연속 바깥쪽 포심이네요.


왜 KBO는 좌타자용 좌투수를 종용할까.

이런저런 말이 많아도 왜 다들 활용할까.


결국 희소성과 슬라이더였다.

슬라이더 특성상 같은 손 타자에게 강했으니까.


“좋다! 좋아!! 잡고 가자!!”

“버틀러만 잡으면 된다! 버틀러만!”


쏟아지는 응원들.

팬들의 희망에는 근거가 있었다.


라이트닝스의 주포, 천재윤은 휴식차 오늘 경기에서 빠졌으니까.

다른 타자들도 잘 쳤으나 천재윤이 없단 것만으로도 한숨 놓을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고민했다.

여기서 들어갈까 아니면 빠질까.


-쉽게 들어가면 안 됩니다.

-네. 선두 타자 아닙니까. 게다가 황도윤 선수는 버틀러를 잡기 위해 올라왔으니까요. 투구수를 활용해야 합니다.


팡!


좋은 슬라이더가 들어왔으나 볼.

역시 애런 버틀러는 만만치 않았다.


-이걸 참아내네요.

-···이제 승부 걸어야 합니다. 풀카운트면 타자가 유리해요.


뭘 던질까.

포심? 슬라이더? 허를 찔러서 커브?


아니다.

이럴 때마다 떠올린다.

감독님과 아버지의 말씀을.


‘숫자를 믿자. 그리고··· 선배도!’


딱!


공이 뜨자마자 황 선배는 팔을 뻗었다.

다가오지 말란 뜻이었다.


어찌나 높이 떴는지 고척돔 천장에 맞을 듯한 기세였으나··· 볼은 얌전히 선배 글러브에 들어갔다.


-아웃! 황도윤이 오늘도 본인 몫을 다합니다!!


“아··· 저놈 뭐해 진짜! 저딴 투수에게!”

“······높은 쪽에 몰린 포심을? 140도 안 되는데?”


임무를 끝낸 선배는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오늘도 막았네.”

“그러니까요. 제 말이 맞죠?”


제구가 잘 된 건 아니었다.

높은 쪽 가운데로 몰린 실투.


만약 버틀러의 배트가 조금만 더 일찍 나왔거나 구위가 부족했다면 넘어갔겠지.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겼단 점이다.

선배 같은 원 포인트 릴리프에게 중요한 건 이닝도, 승수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적의 좌타자를 잡기만 하면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기만 하면 된다.


“오늘도 제 자랑 잔뜩 하셔야죠?”

“그래그래. 알았어. 우리 강마루 선생님 대단하다고 칭찬할게. 그거면 되겠지?”


그렇게 말하며 떠나는 선배.

나는 미래를 꿈꿨다.


선배는 필승조로.

나는 피닉스의 주전 포수로 홀드를 기록하는 장면을.


***


경기에 빨리 들어왔다는 건, 그만큼 타석에서의 기회도 늘었단 뜻이다.


6회 말엔 아쉽게 외야 플라이로 물러났으나 만회할 기회는 빨리 돌아왔다.


따악!


-추격의 적시타! 서울 피닉스! 턱 밑까지 쫓아갑니다!!!


8회 말 2사에 7대 5에서 7대 6으로.

만약 애드리언 킹이 안타를 때리면 기회는 내게 온다.


나는 나가려는 킹을 잠깐 붙잡았다.


“헤이 킹.”

“?”

“히트 플리즈. 히트.”


그러자 킹은 말했다.


“갈-비.”

“사달라고? 마음은 굴뚝 같은데 안 돼. 그 집은··· 소개가 있어야 예약할 수 있거든. 배 선배 그러니까 배쌤 없이는 못가.”

“······왓 더.”


모든 걸 알았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는 킹.


당연히 구라였다.

단순히 비싸서 잘 안 가는 것뿐.


“그러니까 안타 치고 말해. 그럼 기쁜 마음으로 데려갈 거야.”

“흠.”

“그 집, 항정살도 진짜 맛있어. 갈비 다 먹고 한 점 구워서 밥 위에 올려봐.”


침을 삼키는 킹.

이 정도면 대충 알아들은 거 같다.


따악!!


-애드리어어언! 키이이잉!! 담장을 맞추는 동점 적시타! 킹이 여유롭게 2루로 향합니다!!!


세레머니를 끝낸 킹은 웃으며 더그아웃의 배 선배를 가리켰다.


“엥? 나? 왜? 내가 무슨 말 했나?”


좋아하면서도 당황해하는 배 선배.

나는 웃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앞선 타석에선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일발 장타가 있거든요. 타율은 낮으나 외야로 뻗으면 모릅니다.


킹은 대주자로 교체된 상황.

즉 짧은 단타라도 홈을 노릴 수 있었다.


-전진 수비네요. 라이트닝스 외야진이 전진합니다.


나를 노려보는 투수와 네 명의 내야수.

그리고 역전만은 안 된다는 듯이 압박하는 외야수들.


투수도 날 강하게 몰아쳤다.


팡!

파앙!

뻐어엉!!


150에 이르는 포심과 폭포수처럼 꺾이는 커브까지.


역시 1군은 쉽지 않았다.

필승조의 공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밀려오는 파도에 커트밖에 할 수 없었다.


-밀리네요. 밀려요. 강마루 선수가 잘하고 있으나··· 지금은 조금 힘들어 보입니다.


딱!

따악!


간신히 커트.

호흡은 거칠어졌고 팔은 점점 무거워졌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역시 노려서 쳐야 할까.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할 수 있는 것만.


휙!


힘차게 날아오는 공.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휘둘렀다.

기술이라기보단, 본능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따악!!


-아! 타구가 타구가! 애매한 곳으로 갑니다! 1루수! 2루수! 우익수 모두 달려갔으나··· 빠졌습니다!!! 빠졌어요!!! 2루 주자 홈으로! 홈으로 홈인!! 역전!!! 서울 피닉스가 8회 말, 역전에 성공합니다!!!


“와 미친··· 쟤 뭐냐.”

“저걸 내야를 넘겨? 분명히 밀렸는데?”

“뭔가 타격이··· 짐승 같은데?”


나는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팬들도, 더그아웃의 선배들도 나를 보며 웃고 환호하고 있었다.


아 딱 한 명.

배 선배는 다른 의미였지만.


***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4승 6패, 5승 5패를 오가던 최근 10경기 전적이 처음으로 6승 4패가 되는 순간이었다.


-강마루 선수!

“네!”

-알고 계십니까? 타석에서 쳤다 하면 동점 아니면 결승타입니다! 클러치 상황만 되면 안타가 나오는데 비결이 뭘까요?

“음. 비결은 딱히 없습니다.”

-정말로요?

“네. 있었다면 평소에 쳤겠죠. 저도 3할이 목표라서.”


내 말에 빵 터진 중계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다만 그런 건 있어요. 오히려 그런 상황이니까··· 망설임 없이 휘두르는 거 같습니다.”

-망설임이라···.

“네. 마스크 쓰면 생각할 것도 많은데 방금 상황은 아니니까요. 타구를 외야로 보내겠단 생각밖에 안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중계진은 화제를 바꿨다.


-포수는요? 포수는 어떻습니까? 점점 출전 시간이 늘고 있는데.

“행복합니다.”

-짧지만 확실하네요. 많이 도와주나요? 주변에서?

“네. 매일 모르는 게 늘지만 그래서 더 좋아요. 정말, 기분 좋습니다.”


사실이었다.

2군과 1군은 달랐다.

공부할 것도, 외워야 할 것도 많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마치 지평선까지 뻗은 도서관을 만난 기분이었다.


***


출전 시간이 점점 늘어서 그럴까.

아니면 선배들의 칭찬 때문일까.


질문은 부쩍 늘었다.

야구, 피칭, 볼배합, 전력 분석 등등.


물론 사적인 질문도 늘었다.


“···애인님 미인이시던데 어떻게 고백을?”

“고백 안 했어요.”

“뭐?”

“필요 없었어요. 저희는 처음부터 이어져 있었으니까. 지구와 달 관계에 의심품은 적 있나요?”

“······아 그래.”


별이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웃었다.

무슨 기계도 아니고 뭐냐고.


오히려 반문하고 싶었다.


별이는 별이. 야구는 야구.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투수들과 회의에 돌입했다.

오늘도 이기기 위해.


“스플리터를 더 던지라고?”

“네. 선배님은 그게 더 좋아요. 최근 느끼지 않았나요?”

“······확실히 그렇긴 한데.”


긴가민가하는 선배.


뭐, 이해는 한다.

몇 번 합 맞추지도 않은 신인이 단정했으니까.


어떻게 할까.

강하게 밀어붙일까. 아니면 살살 꼬드길까.


방향을 잡고 말하려는 순간.


“뭐해 너희.”


소주환 형이었다.

어디 빈방에서 자고 왔는지 얼굴도, 머리도 푸석푸석했다.


“아, 형님.”

“회의 중이었어요.”

“···회의? 그게 왜 필요해.”


형은 크게 하품하면서 말했다.


“나는 몰라도··· 너희는 그냥 강마루가 시키는 대로 해. 쟤, 공 볼 줄 알아.”

“······네?”

“졸려서. 감독님 오면 말해.”


그대로 사라진 형과 눈을 동그랗게 뜬 선배들.


“저 형 저러는 거 처음 보는데.”

“야 강마루. 너 돈 좀 썼나 봐? 응?”

“얼마나 맛있는 걸 먹였길래.”


나는 웃으며 경기 준비에 나섰다.

한 명씩, 내 편이 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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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달라진 위상 (2) +4 24.09.11 3,227 10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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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탈꼴찌를 향해 (3) +6 24.09.09 3,337 10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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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탈꼴찌를 향해 (1) +3 24.09.07 3,508 97 12쪽
13 늘어나는 기회 (3) +7 24.09.06 3,509 98 12쪽
12 늘어나는 기회 (2) +5 24.09.05 3,664 92 12쪽
» 늘어나는 기회 (1) +7 24.09.04 3,777 107 12쪽
10 첫 선발 출장 (3) +4 24.09.03 3,982 101 12쪽
9 첫 선발 출장 (2) +6 24.09.02 4,108 105 12쪽
8 첫 선발 출장 (1) +3 24.09.01 4,270 96 12쪽
7 갑작스러운 데뷔 (3) +4 24.08.31 4,574 99 13쪽
6 갑작스러운 데뷔 (2) +8 24.08.30 4,745 111 12쪽
5 갑작스러운 데뷔 (1) +4 24.08.29 4,827 110 12쪽
4 1군으로 (3) +3 24.08.28 5,047 1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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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군으로 (1) +5 24.08.26 6,310 1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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